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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구 십만 유지에 실패했다고 공무원들이 검은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는 소도시에서 태어났다. 엄마가 저녁 먹으라고 소리칠 때까지 골목에서 축구를 했고, 여름이면 물고기를 가을에는 메뚜기를 잡으러 다녔다. 그리고 초중고를 함께 다닌 철수 중재와 한 소녀를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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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년 2학기가 시작되자 지현이가 서울에서 전학을 왔다. 지현이는 철수와 한 반이 되었고 나는 그 옆 반이었다. 철수 중재와는 여전히 친했지만, 나의 생활 반경은 4학년 1반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지현이와 제대로 인사를 하게 된 것은 학년이 바뀌고 나서였다.

 

5학년이 된 지현이는 이번에는 중재와 같은 반이 되었다. 나는 토요일 오후 야구 배트에 생선처럼 글러브를 낀 채 중재네 집으로 향했다.

 

“중재야!”

 

그땐 그랬다. 친구를 보고 싶으면 친구 집으로 가서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잘 가꾸어진 정원을 가로질러 집 안으로 들어서니, 중재네 반 친구들이 이미 거실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중재 엄마가 내준 과일과 과자를 먹던 아이 중에 지현이가 있었다. 중재의 소개로 나와 그녀는 처음 인사를 했고, 나는 그 순간 마른하늘에 벼락 떨어지듯이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다음 날부터 지현이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 중재네 반 앞을 서성였고, 지현이가 당번인 날에는 동선을 미리 파악하여 지현이의 목적지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자연스러운 만남을 가장하기 위하여 학교 건물을 크게 우회한 것이다. 각 학년 6학급에 한 반 인원이 60명이 넘었던 학교를 우회하려면 내려가는 계단에서 얼마나 시간을 줄이느냐고 관건이었다. 그래서 난간에 배를 대고 미끄러져 내려갔다. 고소공포증이 많아 철봉도 무서워하는 내가 망설임 없이 몸을 던졌다. 그러나 헐떡이는 숨을 참으며 정작 지현이 앞에 서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마치 두 발로 처음 서게 된 아이처럼 서 있는 것조차 힘겨웠지만, 지현이를 보는 것만으로 좋았다.

 

이듬해 이마에 광채가 나던 어떤 이는 온 국민이 1986년 아시안게임의 성공적 개최에 역량을 모아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기도에 열정을 쏟아붓고 있었다.

 

“부처님이든 하느님이든 올해는 제발 지현이와 같은 반이 되게 해주세요.”

 

그러나, 새 학기를 앞둔 봄방학, 청천벽력 같은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지현이가 다시 서울로 전학 간대!”

 

홍콩 할머니 귀신이 아이들을 잡아먹으러 다닌다는 괴담보다도 무서운 소식이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6학년 전체가 운동장에 모여 담임 선생님의 호명을 기다리게 되었다. 300명 넘는 아이들 속에 지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6학년 1반을 맡게 된 안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렀고, 반 배정이 마무리될 즈음 안 선생님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황지현! 황지현?”

 

끝내 지현이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철수는 5반 중재는 6반이 되었다. 그날 우리 셋은 학교 느티나무 아래에 모였다. 이미 소도시 구석구석 모르는 곳이 없던 철수가 길을 떠날 것을 제안했다.

 

“지현이가 정말 전학을 갔는지 집에 한 번 가볼까? 여고 근처에 큰 벚나무 집 있는 곳이 지현이 집이라던데.”

 

지현이 집은 어린 우리의 행동반경을 크게 벗어나는 곳이었지만 용기를 내어 가보기로 했다. 하지만,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돌담 위로 큰 벚나무만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정말 전학을 간 건가? 고백도 못 했는데.’

 

문을 두드릴 용기를 끝내 내지 못한 우리는 지현이 집을 한참 벗어난 후에야 그녀의 이름을 허공에 대고 크게 불렀다.

 

“지현아~~~~~~~지현아~~~~~~”

 

6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고 3일이 지난날, 지현이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여전히 무신론자이지만 그때는 누군가 내 기도를 들어줬다고 믿었다.

 

나와 지현이는 6학년 1반의 반장과 부반장이 되었다. 반장이 되면 여러분들의 걸레가 되어 학급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지현이와 협업을 해야만 했고, 반장 부반장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지나치게 열심히 지현이와 무언가를 끎임 없이 상의했다.

 

지현이를 못 보게 되는 주말이면 중재, 철수와 함께 지현이 집을 찾았다. 철수와 중재는 선의의 라이벌이 아닌 동반자 같은 존재였다. 딱히 신사협정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셋 중 한 명이라도 빠지는 주말에는 지현이 집을 찾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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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폭우로 인해 단축 수업이 실시되었다. 나는 친구들과 중재 집 근처 방천에 물 구경을 하러 갔다. 우리의 야구장인 방천에는 토사를 가득 머금은 황토 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었다. 그때 동화처럼 소나기가 내렸고 우리는 조인성과 손예진이 되어 중재네 집으로 내달렸다.

 

비에 젖은 8명의 초등학생은 중재네 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고, 잔망스럽게도 전기 놀이를 시작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내 몸 밖으로 들리는 것 같았다. 어쩌면 오늘 지현이와 손을 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 체육 시간 포크댄스 때 지현이는 나뭇가지를 쥐고 누구에게도 손을 허락하지 않았었다. 아이들이 밍크 담요 아래로 속마음을 감추려는 눈치싸움이 이어졌다.

 

그러나 내 기억은 여기서 멈추었다. 그날 셋 중 누가 지현이와 손을 잡았는지 여부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난제로 남게 되었다. 비 오는 날의 전기놀이 이후, 나는 김동완 기상캐스터 아저씨가 전하는 날씨 예보를 경건한 마음으로 보게 되었다.

 

“엄마 내일 비 온대! 으흐흐”

 

봄날 들판의 냉이 같던 우리는 단지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었다. 훗날 대학생이 되어 캠퍼스에는 우리들의 천국이 존재하지 않고, 내일도 사랑은 없을 거라는 절망감이 밀려오는 날에는 그때 그 시절이 더 그리웠다.

 

신은 나의 소원을 지나치게 디테일하게 들어주셨다. 지현이와 영원히 함께해달라고 빌걸. 왜 소심하게 한 학기만 함께 해 달라고 빌었을까! 후회가 밀려왔지만 늦었다. 지현이는 여름 방학 일주일 전 우리에게 서울로의 전학 소식을 알렸고, 종업식 날 선생님의 공식 발표가 있었다.

 

“자! 한 한기 동안 부반장으로 고생한 지현이가 서울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떠나는 친구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자.”

 

“오랫동안 사귀었던……정든 내 친구여…..”

 

교실은 울음바다가 되었고 나는 유독 서럽게 울었다. 

 

방과 후 중재, 철수와 지현이 집을 찾았다. 지현이 엄마가 서울 집 주소를 알려주며 우리를 배웅해주었다.

 

“우리 지현이 좋아해 줘서 고마워.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생 되면 서울에서 꼭 다시 만나라.”

 

우리는 지현이의 서울 집 주소를 손에 꼭 쥐고 눈물을 닦으며 집으로 향했다. 언제 대학생이 된단 말인가! 교회에 다니던 중재와 성당을 다니던 철수, 부처님을 조금 더 편애하는 나는 각자의 신에게 빨리 대학생이 되게 해달라고 사정을 했다.

 

지현이의 부재 속에서 우리는 중학생이 되었다. 매일매일 편지할 거란 굳은 다짐은 땡볕 아래 조스 바처럼 녹아버렸다. 서울은 우리에게 너무나 먼 곳이었다. 지리 수업을 마친 어느 날 철수가 지도책을 가지고 중재와 나를 불렀다.

 

“지현이가 oo 대학교 부속 중학교에 다니고 있고, 집 주소로 추측건대 지현이 집은 여기 어디쯤이야.”

 

중재와 나는 철수의 손가락 끝을 바라보며 철수를 향해 따봉을 날렸다. 언제쯤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지현이도 아직 우리 생각을 할까? 그리움과 걱정이 함께 쌓여갔다.

 

고등학교 진학과 함께 지현이와 연락이 완전히 끓어졌다. 그래도, 우리는 끊임없이 지현이 이야기를 하며, 대학생이 되고, 군인이 되고, 20세기를 보냈다.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어도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고, 지현이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는 퇴근 후 조금 드물게 지현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우리들의 상상 속 지현이도 다마 구찌처럼 성장했다. 그녀는 미스코리아급 미모에 대기업을 다니며 연애는 하지 않는 미스터리한 상태로 남아있었다. 15년이란 시간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지나갔다.

 

그리고, 성냥팔이 소녀 이전에 ‘아이러브 스쿨’이 이 땅에 재림했다.

 

<계속>

 

 

필자의 변

 

딴지일보 연재물 '찌라시한국사'로

작가라는 부캐를 얻은 지 6년 차.

 

퇴근해서 (한)약 빨고 쓴 에세이

'나 아직 안 죽었다'가 출간되었으나,

책 소개해주는 언론 한 곳 없도다!

 

작가의 길로 영도해 준 딴지는

선거 끝날 때까지만 버티라 하네!

그래도 믿을 건 친정뿐이로세!

 

책을 통해 추억이 된 행복했던 기억으로 웃음을

경험이 된 아팠던 기억을

어루만져 줄 터이니,

 

2권 사서 한 권은 친구에게 선물하여

딴지에서 역주행 책 한 권 만들어 주시기를 청원하나이다!

 

 

아이돌만 역주행 하냐! 아재도 역주행 좀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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