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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주당 당심≠민심, 경선 룰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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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7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한 더불어민주당과 간만에 승리한 국민의힘 모두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민주당은 죄송하다 외치고는 있지만, 반성문 아닌 반성문 쓰는 자들의 속내는 이렇다고 본다. 자신들 탓은 아니고 모조리 남 탓이라는 거. 반대로 야권연대로 모처럼 여당에 이긴 국민의힘은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측이 서로 볼썽사나운 말(쌍욕에 가까운)을 공개적으로 주고받으며 ‘이번에 이긴 건 모두 내 덕’이라 외치고 있다. 

 

진 민주당이나 이긴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이나 당 안에서 네 탓, 내 탓 핏대를 올리는 이유는 따로 있다. 다가오는 전당대회에서 어떻게든 당권을 거머쥐기 위해서다. 내년에 있을 두 번의 큰 선거,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주도권을 쥐겠다는 개개인의 욕망과 야망이 후진 방식으로 얽히고 설키는 중이란 말씀.

 

국민의힘을 위시한 야권은 선거에서 이긴데다 여론조사 지지율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긴 자가 가장 큰 고깃덩어리를 쥐는 내년 대선에서 승리해 정권을 되찾아올 수 있다는 희망에 부푼 듯한 모습이라 자기들끼리 찌그락 째그락 해도 찻잔 속 태풍처럼 느껴지긴 한다. 늘 그런 모습을 보여주던 인물이 모인 정당이라 그런지, 새로울 것도, 대중들에게 별다른 자극을 주는 것 같진 않다.

 

여러 의미에서 신선한 자극을 주는 건 더불어민주당의 행태다. 갑자기 내달 2일에 있을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뽑는 전당대회의 룰을 바꾸자는 주장을 들고 나왔다. 그동안 왜곡된 경선 룰 때문에 민주당의 '극렬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 의사가 대표되었다는 이유에서다.

 

때 아닌 친문과 비문, 비문과 민주당 권리당원들 사이에 ‘룰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2. 모든 게 ‘문빠’ 탓? 아무말 챌린지 승자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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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전당대회 투표 반영 비율은 대의원 45%, 권리당원 40%, 일반 국민 여론조사 10%, 일반당원 여론조사 5%다. 비문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인사들은 대의원이나 권리당원의 80% 이상이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 소위 말하는 ‘문빠'고, 그동안 과잉대표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기 어려우니 일반 국민 여론조사 비율과 일반당원 여론조사 비율을 올려, 당심과 민심의 괴리를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친문 의원들은 '지금의 경선 룰 구조는 대의원의 투표 가치가 권리당원의 투표 가치와 비교해서 60대 1의 차이가 나니, 되레 권리당원의 투표 가치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권리당원과 대의원, 일반국민의 비중을 5:3:2 혹은 4:4:2로 조정해, 대의원의 의사가 과다 대표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대로 룰을 조정하려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제도의 근본원리에 맞아야 하고 이치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 ‘룰의 전쟁’에서 거론되는 이 두 가지 중 어느 주장이 ‘멍멍이 소리’인지 좀 따져봐야 한다.

 

그전에 정당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명확히 해야 할 필요도 있고.

 

3. 정당의 주인은 누구인가

정당의 주인은 다만 얼마라도 꼬박꼬박 당비를 내는 당원, 그러니까 '진성당원'을 말한다. 진성당원의 의사에 따라 당이 운영돼야 하는 게 정당정치의 근간이다.

 

한국 헌정사에서 정당정치의 괴리는 여기서 발생한다. 70년 헌정사에서 당의 간판을 수십 차례 바꿔 달았다고 하더라도,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큰 틀에서 보면 일관되게 생명을 이어온 양대정당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정당 모두 당원 중심의 운영이 아니었다. 당원의 질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진성당원 비율이 얼마 되지 않았고, 전부 국회의원과 지역 조직 등 당에 어떤 식으로든 몸 담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5개 이상 시‧도‧당을 두고 각 1000명 이상의 당원이 있어야 정식 정당으로 등록이 가능한 요건을 갖추기 위해, 아무나 당원으로 등록시켰다. 워낙 인구가 많고 인구 계층도 다양한 서울이나 경기도는 5000명 모으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지만, 인구가 점차 줄어들고 노인이 절대다수인 시골에서는 1000명 모으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명의만 빌려서 입당서류 만든 뒤 정당 등록하는 건 꼼수도 못 됐다.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진성당원이 거의 9만이었다. 통합진보당의 전신 민주노동당의 진성당원은 많을 때 15만까지도 됐다. 소수정당이었지만 당원의 질만 놓고 보면 가장 정당다운 정당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던 2016년 더불어민주당이 월 1000원만 내면 되는 온라인 당원을 받으면서, 비로소 진성당원이 가장 많은 정당다운 정당으로 탄생했다. 그 이후부터 당의 중요한 의사는 당원에 의해 결정되었다. 이는 2016년 총선에서 여소야대의 구조를 만들고, 이듬해 치러진 대선, 뿐만 아니라 2018년 전국지방동시선거,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총선거에서 압승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4. 당의 기반이 취약하면 여론에 기댄다 그리고 룰의 역사 

 

그렇다면 진성당원의 비율이 그다지 높지 않은 정당은 어떤가?

 

당의 경선은 본선에서 이기기 위한 후보를 뽑는 예비전이라 이때부터 전국민적 관심을 끌어야 본선에서도 지지율을 높일 수 있다. 전당대회의 경우는 당원 없이 하나마나한 전당대회보다는 일반 국민들이 일시적 당원이 되어서 당의 의사를 결정해주는 게 차라리 낫다고 볼 수 있어–관심과 지지율도 높일 수 있고- 100% 여론조사나 일반국민 경선으로 치른다.

 

애초 당의 주인인 당원의 구조가 취약하므로 이런 정당은 룰이 어떻든 간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당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이번 재보궐 선거 때 국민의힘 후보를 정하는 예비경선에서 100% 일반시민 여론조사 방식을 도입한 것과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전신 통합민주당이 경선 방식으로 채택했었던 일반국민 모바일 선거를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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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앙일보>

 

2012년 통합민주당이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뽑는 1월 전당대회에서 처음 도입한 모바일 선거에서 대박을 쳤었다. 그런데 당내 조직과 지지기반이 강했던 당시의 박지원, 박주선 등 호남계, 즉 비노 쪽에서는 모바일 경선제에 대해 강하게 비토했다. 대중적 지지가 당시 친노로 대표되는 한명숙 전 대표 등에 비해 약했기 때문이다. 비노 측의 주장은 당의 주인은 당원이기에, 당원도 아닌 사람들이 어느 날 모바일 투표로 당대표 뽑으면, 당원들은 새되는 거 아니냐는 말이었다.

 

일견 맞는 소리다. 그런데 당시 민주당 당원의 질이 그렇게 좋았냐는 것이다. 어느 일개인의 조직 동원력이 당의 의사결정을 좌우할 수 있어, 호남의 토호들이 오랫동안 당의 지분을 나눠먹었다. 그게 이어지다보니 당이 경쟁력도 잃고, 지지율 면에서도 당시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에 뒤쳐져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도 자기 밑동을 쳐가며 대중적 열풍을 일으키기 위해 모바일 경선 방식을 도입했다. 당시 모바일 경선제에 대한 위헌 논란이 일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애초부터 제대로 된 정당정치가 이뤄지지 않았기에 그 논란은 기실 큰 의미는 갖지 못했다.

 

상황이 달라진 건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에 꼬박꼬박 당비를 내고 당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진성당원이 늘어나면서다. 이전의 정당정치와 비교했을 때 그야말로 상전벽해.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의사결정 비율을 낮추고, 일반당원과 일반국민의 의사결정 비율을 높이자'는 비문계의 주장은 정당정치의 기본 자체를 무시하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대의원의 의사가 너무 과잉대표 되고 있으니 오히려 권리당원의 의사 비율을 높이자'는 주장은? 비례원칙상 일리가 있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대의원들이 당에 기여한 바가 어떤 식으로든 높기 때문에 일정 정도의 가중치를 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권리당원이나, 일반당원들의 의사가 무의미 할 정도로 소수의 대의원 의사에 가중치를 심하게 준다면 그것은 비례원칙에 어긋나고, 평등선거 원칙에 반한다. 뿐만 아니라 당원의 의사조차도 제대로 당의 의사결정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정당정치의 원칙을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제 와서 불과 한 달도 안남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꽤 오랫동안 정착되고 합의되어 온 룰을 갑자기 변경한다는 거 자체가 공정성을 해치는 일이라는 것을 굳이 짚어줘야 하는 건가. 그래서인지 이 룰의 전쟁은 민주당 당원들의 화만 돋운 채 유야무야 되는 듯 하다.

 

더불어민주당 김한규 법률대변인은 “경선 룰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만 있었지, 진지한 논의는 아닌 거 같다. 그리고 경선 룰을 못 바꾼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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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심과 민심이 차이가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외부에서 민주당을 흔드는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당 내부적으로도 당심, 민심의 차이에 대해서 이야기 하다 ‘우리가 말려드는 거다’라는 이야기가 있는 것 같다. 그런 식의 구분은 잘못된 질문으로, 질문 자체가 틀린 것이라는 인식이 생겨서, 그런 룰 셋팅과 관련한 논쟁은 수그러든 것 같다”

 

 

5. '문빠' 전문가 박구용 교수를 만나다

 

여기서 그칠 수 없다. 재보궐 선거 패배 이후 원흉으로 지목돼 머리채 잡힌 ‘문빠’가 정말 문제인지, 경선 룰을 바꾼다는 게 정확한 해법인지 제대로 된 진단을 받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전문가를 찾아 나섰다. 소위 '문빠'에 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다 못해 2019년에는 ‘문파, 새로운 주권자의 이상한 출현’이라는 저서까지 출간한 전남대학교 철학과 박구용 교수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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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물었다. 소위 말하는 문빠, 요즘 당에서 이리저리 쳐맞고 있는 '극렬지지자'가 정말 당을 망치고, 나아가서는 문재인 정부를 망치고 있는 지, 극성 당원들에 당이 휘둘려서 재보궐 선거에서 진 것인지, 디벼 보았다. 다음은 그 전문은 싣는다.

 

- '문빠', 진짜 문제일까?

 

헤르매스 아이(이하 ‘헤’): 민주당이 서울, 부산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패한 책임을 '문빠'에게 묻고 있다. 당이 '문빠'에게 휘둘려서 그렇다고 하는데, 정말 민주당의 강성당원, 극렬지지자라는 '문빠'가 문제일까?

 

박구용 교수(이하 ‘구’): 지금 '문빠' 탓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정치현상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한 거 같다. 진보적인 정당을 지지하거나 또는 그 정당과 정책을 주도적으로 지지하는 세력들의 변화가 명확하다. 그들이 표출하는 방식도 명확하게 달라지고 있다. 나라마다 조금씩은 차이가 있지만 '변화'라는 것은 명확하다. '문빠'라고 하는 것은 변화의 한 줄기라고 본다. 사람들은 '문빠'를 극렬지지자라고 한정지어서 말하려고 한다.

 

그러면 쉬운 말로 물어 보겠다. 나꼼수 멤버 4명은 '문빠'에 포함 된다고 보나? 안된다고 보나?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헤: 넓은 의미에선 포함될 거 같다.

 

구: 그렇다. 넓은 의미에서 포함되는데, 그 사람들이 극렬지지자인가?

 

헤: 당연히 아니다.

 

구: 내가 만난 '문빠'는 너무 다양한데, 그 중에 실체화된 집단이 있다. 그 실체화된 집단 또는 실체화를 누렸던 집단, 실체화를 추구했던 집단은 명확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집단이 아주 소수다. 2018년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경선과정에서 이재명과 전해철이 붙었을 때 ‘이재명을 무조건 죽여야 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 코어 세력이 거기에 해당한다. 이 사람들은 아주 소수다. 이 소수가 지금 민주당의 패배에 연관이 있다든가, 방금 나온 '새로운 민주당의 지지세력'이 민주당 패배의 원인이라던가 하는 건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잘못 짚어도 너무 잘못 짚은 생각이라고 본다.

 

 

- 재보궐 선거 패배와 '문빠'는 상관이 없어

 

헤: 이번 재보궐에서 크게 패배한 민주당이 짚어봐야 할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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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민주당이 패배하고 지지율이 떨어진 핵심 원인을 '20대 남성'이라고 한다. 그러면 지금 현정권과 민주당은 그들이 요구하는 의견과 의지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 것이지 않나? 간단히 말하면 대변하지 못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뭘 대변하지 못하고 있나? 도대체 무슨 생각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나?

 

첫 번째는 민주당이나 현정권이 너무나 오랫동안 '상징투쟁'을 한 점이다. 옛날에는 '국가보안법 철폐' 같은 상징투쟁을 했다. 그리고 이번엔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검찰을 너무 상징화했다. 일단 이 투쟁에 대한 피로도가 높아졌다.

 

헤: 추-윤 갈등 말하는 것인가?

 

구: 그렇다. 그런데 나는 추-윤 갈등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건 언론이 만든 것이고, 그냥 윤석열이 조국한테 막 했다. 범진보적인 입장에서 봤을 때는 정말 용서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윤석열을 무시하는 전략으로 갔어야 하는데, 마치 적의 수장처럼 만들어버렸다. 그렇게 인식하도록 만들어버렸다. 그게 '상징화'했다는 것이다. 상대편을 상징화하고, 상대편이 그것을 정의나 공정으로 여기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를 첫 번째 전략적인 실패라고 본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20대 남자들에게, 더 나아가서 지금 민주당을 지지하는 핵심 세력에게 문 정부가 뚜렷한 희망을 주지 못한 것이다.

 

정치 고관여층이나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명박, 박근혜랑 비교를 해서 더 나아진 점을 이야기하고 공정해진 점을 이야기 하는데, 보통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문재인 정부를 이명박이나, 박근혜 정부랑 비교하고 평가하지 않는다. 그런 시대는 이미 끝났다. 도대체 문재인 정권이 나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하고 있냐는 게 핵심이다. 문재인 정부 전반이 인기가 떨어지고 있지만, 이재명 경기도지사까지 외면한 건 아니다. 그것은 이재명은 적어도 우리의 의지와 희망을 반영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거다. 사람들한테 아직은.

 

 

- ‘문빠 탓’은, 민주당 안에서 세력들끼리 합의된 정치적 수사

 

헤: 왜 화력을 '문빠'에게 집중하는 것일까?

 

구: 우리 정당이 아직까지 그렇게 대중적인 정당이 아니란 말이다. 옛날엔 간부 정당 형태였다가 요즘은 유권자 정당이 되었지만, 의원들은 언제든지 자기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선거방식을 바꿀 수 있는 정당체제다.

 

그나마 민주당이 우리나라 역사에서 처음으로 대중적 이념정당이라는 형태를 조금이라도 갖춘 정당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뿌리가 얕고 낮다. 뭔가 하고 싶은데, 선거 절차를 바꾸려면 공동의 적이 필요하지 않겠나? 이 '공동의 적'이라는 게 민주당에서 보면 '문빠'다. 좁은 의미의 '문빠'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넓은 의미의 '문빠'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극렬지지자’라는 표현을 쓰면 다 누구나 '나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정치적 수사라고 봐야 된다.

 

헤: 관철은 못 시키고 욕만 디립다 먹다가 그냥 그대로 가는 것 같다.

 

 

- '문빠' 팰 시간에 20대를 보라 

 

구: 아직도 민주당은 자신들의 정치적 의제에 대해 안이하다. 그러니까 20대 남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요즘 20대 남자들을 만나고 있는데, 이들은 일단 가치체계가 완전히 자본주의화되어 있다. 대부분이 돈으로 정확히 환산되는 가치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 환산된 가치체계로 봤을 때 자기들이 너무 불안한 것이다. 그리고 그 불안함을 조장하는 가장 강력한 것 중 하나가 페미니즘과 군대다.

 

페미니즘부터 말하자면, 아주 쉽게 말해 ‘나는 그렇게 자라지 않았다!’는 것이다. 엄마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는데, 내가 사랑하고 싶고, 만나고 싶고, 꼬시고 싶은 여자는 엄마 같은 여자가 아닌 거다. 감당할 수가 없고, 앞으로도 감당이 안 될 거 같아, 영원히. 그리고 내 욕망을 실현할 수 없을 거 같다는 것이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직장과 집이다. 직장은 군대를 가기 때문에 직장을 잡는데 불이익이 있다고 말하고, 집은 LH 부동산 투기 이런 거 보면 다 똑같다는 것이다. 자신이 집 사는 게 어려운데, 지금 진보네 하는 사람들이 전부 페미니즘적인 경향이 있는 거 같아. 그래서 뭉뚱그려서 다 싫은 거다.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20대 남자들은 이걸 거침없이 이야기한다. 

 

헤: 나도 어쩌다보니 2016년부터 20대 대학생 남자들을 관찰하고 있다. 정말 남학생들은 교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자라오면서 전혀 여자들이 차별 받고 자라온 거 같지 않다"고 말한다. 공부를 하고 시험을 봐도 여자애들이 더 잘 보고, 힘으로도 안됐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학생들 때리면 선생님한테 쥐어 터졌고, 여자들은 남자들 때리면 혼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중,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 가서 장기자랑 할 때도 나와서 춤추고 노래하고 나대는 건 여자들이었고, 남자들은 가만히 앉아서 박수만 쳤다. 전체 사회구조는 남녀차별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들은 자랄 때 그렇게 자라지 않았다고 한다.

 

구: 하하하, 그렇다.

 

헤: 검찰이나, 언론직, 취직 시험을 볼 때도 성적으로만 하면 남자들을 전혀 뽑을 수 없다. 10명 안에 남자가 한 명 들어올까 말까다. 기관에서는 남자들 좀 뽑으려고 자체 보정을 한다. 여자들은 거기서 빡친다. 전체 비정규직 비율을 보면 90년대생 여자들의 비정규직율이 제일 높고, 임금격차는 갈수록 심해지니까. 코로나 이후 90년대생 여자들의 자살율이 월등히 높아졌다. 교수님 말처럼 20대 민심 이탈에 대해서 정치권에서 너무 방향타를 잘못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구: 맞다. 나는 이 문제가 중요한 의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 내년 대선은 진보와 포퓰리즘의 대결

 

구: 다음 대선은 진보와 포퓰리즘의 대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헤: 이 세대를 타깃으로 한 포퓰리즘 정당이 탄생한다면 서유럽의 극우정당이나 트럼프 지지자들 같은 정당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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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의사당을 습격 중인 트럼프 지지자들

 

구: 지금 20대의 불가피하게 생겨나는 분노를 어떻게 서로에 대한 열망, 사랑에 대한 열망으로 바꿔야 되는가가 엄청나게 중요한 의제다.

 

헤: 마사 누스바움(현존하는 미국의 철학자이자, 윤리학자)도 결국 혐오에 대응하는 건 인류애 밖에 없다고 했다.

 

구: 그렇다. 최근 유럽이나 미국을 보면 진보진영의 적이 남자, 가족, 헤지펀드 이런 식으로 간다. 그래서 페미니스트들이 진보를 주도하고, 전통적인 진보의 주류였던 조직화된 남성 노동자는 다 보수로 갔다. 이건 무서운 이야기다.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 전부 그렇다.

 

헤: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당’ 지지 세력들도 주로 그렇다.

 

구: 프랑스도 심각한 수준이다. 우리가 그렇게 가지 않으려면 빠른 시간 내에 사회적 협의가 필요하다. 진보진영이 그 협의를 이끌어 내지 못하면 강력한 포퓰리즘이 등장할 텐데, 지금 쓸데없이 정치공학적인 전술을 펴고 있다. 이게 대부분 필패하는 것이다. 항상 망하는 건 경선 룰 바꾸기, '문빠' 탓 등 정치공학적인 것이 너무 범람해서다.

 

헤: 알겠다. 그럼 뭐 결론은 ‘문빠는 원인이 아니다!’, ‘중요한 건 포퓰리즘이다!’.

 

구: 그렇다. 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지금 그 사람들은 '문빠'가 뭔지도 모르는 거 같아.

 

이상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