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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뒷골목 

 

민우를 만난 건 1년 전쯤이다. 어느 날 민우가 우리 팀에 왔다. 작업반장이 민우를 나에게 소개해줬다.

 

“야~! 니네 둘이 동갑이니까 앞으로 친하게 지내라.”

 

차라리 형이거나 동생이면 편하련만, 사회에서 만난 동갑은 괜히 불편하다.' OO 씨~' 해가며 존대하기도 닭살 돋고, 그렇다고 섣불리 말 놓기도 어렵다. 동갑이라고 다 친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므로.

 

민우와 난 서먹서먹하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어디 사냐고 물었다. 민우는 어디 산다고 했다. 내가 고등학교 나온 동네였다. 혹시 어디 고등학교 나왔냐고 물었다. 대박. 민우와 난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아 그래? 민우 너도 거기 졸업했구나. 아휴, 그럼 그냥 친구 하면 되겄네. 근데 어떻게 고등학교를 3년이나 같이 다녔는데 서로를 몰랐지? 하하하.”

 

“아~ 내가 고등학교 내내 운동부였거든. 수업 안 들어가고 맨날 체육관에만 있었엉. 그래서 그럴 거야. 헤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널 모를 순 있지만, 민우 니가 날 모른다는 건 이해가 안 되네? 우리 학교에서 날 모르는 얘가 있었다고? 푸하하하.”

 

알고 보니 민우와 난 친구의 친구 사이였다. 고등학교 때 어울렸던 친구들이 제법 겹쳤다. 다녔던 PC방과 당구장, 분식집, 심지어 몰래 담배 피우던 학교 앞 주택 뒷골목까지, 활동반경도 얼추 비슷했다. 작정하고 피해 다니지 않고서야, 모를 수 없는 관계였다. 그런 서로를 졸업한 지 15년 만에 알게 됐다니! 신기했다. 민우는 우리 사이를 이렇게 정리했다.

 

“아마 학교 다닐 때 수없이 서로를 봤을 거야. 대화해본 적이 없어서 기억 못 하는 거겠징. 아니지, 아니지. 어쩌면 그때 그 뒷골목에서 같이 담배 피우면서 얘기 나눠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당. 헤헤. 신기해, 신기해. 지금이라도 알게 됐으니까 친하게 지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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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먹은 남자가 친구를 만나면 어떻게 인사할까. 보통은 “어, 왔냐?”라거나, “밥 먹었냐?” 정도일 거다. 그게 내가 아는 ‘서른다섯 한국 남자’의 평균치다. 민우는 안 그런다. 양팔을 어깨 높이로 올리고, 양 손바닥을 쫙 펼친 후, 세차게 흔든다.

 

“주홍아 왔엉? 안녕~~~”

 

언제나 그렇게 인사한다. 그것도 아주 다정한 목소리로. 민우라는 사람을 생각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모습이다.

 

그렇듯, 민우는 다정다감하고 친절하다. 거칠고 험한 노가다판에 드문 경우다. 지치고 힘들어도 인상 한 번을 안 쓴다. 처음 우리 팀에 온 날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렇다.

 

민우는 목수 일이 처음이었다. 그렇다 보니 이래저래 욕먹을 일이 많았다. 가끔은 옆에서 지켜보는 게 안쓰러울 정도로 처절히 깨졌다. 저 정도로 깨지면 홧김에라도 한 번 대거리하거나, 때려치울 법한데 민우는 안 그랬다. 하루도 안 빠지고 성실하게 나왔다. 늘 웃는 얼굴로 말이다.

 

해서, 난 지레짐작했다. 아마도 평탄한 삶이었을 거라고. 혹은 어릴 때부터 사랑 듬뿍 받고 자란 사람일 거라고.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초긍정적일 수는 없었다.

 

그런 민우의 개인사를 알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이다. 어지간하면 빠지지 않는 민우가 하루 쉴 거라고 했다.

 

“무슨 일 있어?”

 

“아, 아버지가 좀 아프셔서. 병원 업무 좀 처리해야 해서.”

 

아버지가 화물차를 운전하시는데, 아주 큰 사고가 난 모양이었다. 기적적으로 살았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산재처리를 해야 해서, 부득이하게 하루 쉰다는 거였다. 그런 일이 있는 줄 몰랐다. 단 한 번도 형편을 내색한 적이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큰 슬픔일 것 같았다. 위로차 저녁을 같이 먹었다. 그날이었다. 민우를 존경하기로 마음먹은 날.

 

불행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운동부 출신이 운동을 그만뒀을 때, 그렇게 사회에 내던져졌을 때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잘 안다. 민우 삶도 다르지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운동을 접었다. 중고등학교 내내 교실이 아닌 체육관에서 시간을 보냈건만, 이 더러운 세상은 1등만 기억한다. 배운 거 없고 가진 거 없는 민우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공장에 갔다.

 

26살, 그곳에서 만난 애인과 결혼했다. 행복은 길지 않았다. 이제 막 100일 지난 아기를 남겨둔 채 아내가 떠났다. 무능하다는 게 이유였다. 젖도 떼지 않은 아기를 안고 부모님 집으로 들어갔다.

 

애석하게도 불행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졸지에 손녀를 떠맡은 어머니 허리가 버티질 못했다. 안 그래도 안 좋던 허리였다. 두 차례에 걸친 허리 수술. 화물차 운전으로 근근이 먹고살던 부모님에겐 청천벽력이었다. 민우가 빚을 지게 된 것도 그즈음부터였다. 허리 수술한다고 얼마, 생활비가 모자라 얼마, 뭐 한다고 얼마, 뭐 한다고 또 얼마, 그렇게 빚은 야금야금 쌓여갔다.

 

공장에서 버는 돈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민우가 노가다판에 온 이유였다. 노가다판에 온 후부터 그래도 조금씩 빚을 줄여나갔다. 그러던 참에 불행이 또다시 민우를 덮쳤다. 아버지가 사고를 당한 거다. 산재처리해도 병원비 전부를 지원해주는 건 아니었다. 민우 빚은 또다시 늘었다. 더군다나 이제는 온전히 혼자 네 식구를 책임져야 했다.

 

같이 저녁 먹던 그날, 그렇게 밝고 유쾌하던 민우가 처음으로 눈시울을 붉혔다.

 

“그래서 빚이 얼만데?”

 

“8,000만 원 정도. 누나가 가끔 도와주기는 하는데, 누나가 친정까지 챙기기는 쉽지 않지. 내가 감당해야지 뭐.”

 

“그랬구나. 전혀 몰랐어. 민우 니가 그렇게 힘든 상황인 줄은…….”

 

“그래서 내가 하루도 안 쉬고 악착같이 일하는 거야. 빚 갚으랴. 네 식구 먹고살랴. 늘 빠듯해.”

 

“연애 같은 건 꿈도 못 꾸겠네? 하하.”

 

“푸하하하. 넌 이 와중에도 연애 얘기야? 니 덕분에 웃는다. 연애는 생각도 못 하징. 딸이 아직 여섯 살밖에 안 돼서, 쉬는 날엔 딸이랑 놀아줘야 해. 연애하려면 돈도 있어야 하는데, 돈도 없고. 이혼하고 연애해본 적 한 번도 없어~ 슬픈 얘기다, 증말!! 헤헤헤. 그래도 행복해. 퇴근하고 집 가면 딸이 쪼르르 쫓아 나와서 안기거든. 그러면 피로가 사르르 녹아.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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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민우

 

겁 없이 날뛰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제일 똑똑하고 잘났다고 생각하던 시절. 그러다 이혼했고, 노가다꾼이 됐다. 정신 차려보니 난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15만 원짜리 반지하 방에 누워있었다. 내 나이 서른둘이었다.

 

그때 난 어느 책에선가 읽은(후에 내가 좀 각색한) 문장, 「내 선택의 누적분이 곧 내 삶이다. 그러니 누구를 탓할 것도, 원망할 것도 없다.」를 종이에 적어 벽에 붙여놨다. 매일 아침 소리 내 읽었다. 일종의 자기암시였다.

 

그렇게 매일 아침 스스로를 다잡아도 소용없었다. 불쑥불쑥 화가 올라왔다. 모든 게 원망스러웠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하게 느껴졌다. 가끔은 꿈같았다. 지금의 현실이 꿈이었으면 좋겠다가, 과거의 내가 꿈이었던가 싶었다가,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민우와 저녁을 먹고 돌아온 날, 이 세상에서 나를 제일 불쌍한 놈으로 여겼던 때가 떠올랐다.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민우 형편에 비하면 나는 어린애 투정이었다.

 

그날 난, 이런 생각을 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8천만 원의 빚이 있고, 네 식구를 먹여 살려야 하고, 빚은 좀처럼 줄지 않고, 연애는커녕 가벼운 취미생활조차 할 수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면, 그런 상황이라면 나는 어떻게 할까.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결론은 하나다. 도망. 내 그릇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다.

 

민우라고 왜 때때로 버겁지 않겠냐만, 그래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유쾌하게 망치질하는 모습만으로도, 그리하여 ‘어릴 때부터 사랑 듬뿍 받고 자란 사람’으로 비치는 것만으로도, 민우는 제법 덤덤하고 의연하게 현실을 마주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난 민우를 섣불리 동정하거나 위로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나 따위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그 큰 그릇을 존경하고 응원하기로 했다.

 

요즘 난, 민우 이름 앞에 ‘내 친구’를 붙여 부른다. 내 친구여서 너무나도 자랑스러운, 그래서 언제나 내 친구였으면 하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내 친구 민우는 오늘도 열심히 자재를 나른다. 이제는 제법 망치질도 잘한다.(내가 누굴 평가할 수준은 아니지만. 하하.) 멀리서 지켜보다가 괜히 한 번 불렀다.

 

“내 친구 민우!!!!”

 

“(애교 섞인 목소리로)웅~~ 주홍이 왱~~~”

 

내 친구 민우가 활짝 웃는다.



 

 

편집부 주

 

딴지일보 화제의 에세이 <노가다 칸타빌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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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본지 인터뷰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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