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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 요약

 

태국인에게 골칫거리에 가까운 사람들이 있다. TV에서 그들은 강력 범죄의 유력한 용의자이자 잠재적 범죄자 또는 불법 월경을 통해 태국으로 들어와 일자리를 빼앗는 존재, 국적 없는 아이들을 생산하는 부정적 이미지로 묘사되었다.

 

사실 그들은 태국인들이 꺼리는 3D 업종에 종사하는 저임금 비숙련 이주노동자가 대부분이다. 상당수는 정치안보적 이유로 난민이 된 사람들이며, 어떤 국적도 소유하지 못한 무국적자이다.  그들이 어떠한 지위와 처지이건 상관없이 그저 그들은 다른 땅에서 온 환대 받지 못하는 이방인, 즉 나쁜 타자에 불과했다. 

 

그리고 태국 내에서 '그들'의 대상은 주로 미얀마인이었다.

 

이런 태국 사회의 타자들에게 태국인과 국제 사회가 관심을 기울이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일명 ‘태국 동국 소년들’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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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YTN>

 

2018년, 유소년 축구단 소속 12명의 아이들과 코치가 담력훈련을 위해 동굴로 갔다가 갑작스런 폭우로 인해 동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고립되었던 사건이다.

 

우여곡절 끝에 아이들과 코치는 약 이십여 일만에 구출되었다. 이들의 생환 소식은 전 세계에 보도되었고, 이들은 모두 미얀마 소수종족 출신으로 불법적인 루트를 통해 태국 땅에 들어온 사람들이라는 것도 알려졌다. 

 

당시 태국에선 이들에게 태국 국적을 부여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었고, 태국 정부는 이들에게 태국 주민등록증을 발급하였다. 이후, 2년 반이라는 시간이 흐르며 이 사건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많이 잊혀졌다. 

 

여전히 태국에는 50만 명에 가까운 난민들이 존재하며, 무국적자를 비롯한 불법적인 상태의 미얀마 출신 이주민들이 최소 2백만 명 이상 존재하고, 태국인들이 갖고 있는 미얀마와 미얀마 출신 인구에 관한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 단어들로 가득 차 있다.     

 

왜 태국인이 미얀마인을 이토록 ‘혐오’할까?  잠시 태국과 미얀마의 역사적 관계를 살펴보자. 

 

태국과 미얀마의 관계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처럼 역사적 앙숙이었다. 두 국가는 지정학적 특수성으로 인해 수많은 전쟁을 치렀으며, 오랜 기간 동안 상대 국가를 ‘적’이라 생각해왔다.

 

그리고 태국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에 이르는 민족국가 건설 시기, 애초부터 진정한 태국다운 실체가 없었기에 외부에서 태국답지 않은 것을 찾아내어 ‘태국의 민족성’을 재구성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외부의 태국답지 않은 것을 ‘악한 것’이라 두고, 그것과는 이항대립적 관계 속에서 선한 ‘태국의 민족성’을 확립했다. 태국답지 않으며, 온갖 부정한 오명을 뒤집어쓴 악의 화신이자 공포스런 (외부의) 적은 ‘미얀마’라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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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반 태국의 지도. 화질이 좋진 않으나 위 지도를 자세히 보면, 가운데는 태국 그 위에는 미얀마인데, 태국은 천사의 이미지가 미얀마는 악마의 이미지가 그려져 있다. 위 지도는 태국이 미얀마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잘 보여주는 지도이다.  

 

 

태국인이 미얀마인에 갖고 있는 공포와 편견

 

인류학자인 필자는 태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미얀마 출신 이주민들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적이 있는데, 이때 학생들의 답변 중 상당수에는 그들에 대한 공포와 편견이 담겨 있었다. 아래는 그 예이다. 

 

“태국 사회에 위협요소가 될 수 있다.” 

 

“태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사람들이다.”

 

“태국 사회에 동화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태국인이 낸 세금으로 그들에게 복지 혜택을 주는 것은 부당하다.” 

 

“뉴스에 도둑, 강간범, 살인범으로 나오는 걸 많이 봤는데, 그래서 무섭다. 법도 잘 지키지 않는 사람들 같다.” 

 

“마약과 관련된 사람들이다.” 

 

“더럽다.” 

 

“몸에서 냄새가 난다.” 

 

“우리보다 낮은 계층의 사람들이다.” 

 

“교육을 많이 받지 못했고, 여전히 귀신을 믿는다.” 

 

위의 답변들을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미얀마와 미얀마 출신 인구들에 대한 태국인들의 부정적 인식이 대부분 근거가 매우 취약한 편견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이 인식 속에는 개개인의 성품이나 성향에 대한 고려는 없다. 그저 미얀마에 대한 공포와 편견, 증오심이 투영되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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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미얀마 출신 타자들은 태국인들이 꺼리는 3D 업종에 종사하는 존재들로 태국의 실업률과 이를 직접적으로 연결시키는 데에는 무리가 따른다. 더불어 이주노동자를 위한 기본적 복지 체계가 잘 마련되어 있지 않은 현 상황에서 그들을 복지 혜택의 수혜자로 보기도 어렵다. 태국의 일반 범죄율과 미얀마 출신 타자들이 저지른 범죄율 간 차이도 없다. 

 

그저 오랜 역사적 과정을 거치며 형성된 태국인들의 미얀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태국 사회 도처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으며, 이를 태국의 젊은 세대들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태국은 왜 미얀마 출신 타자들에게 국적을 부여했나

 

다시 동굴 소년단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동굴 소년단 이야기를 통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미얀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만연한 태국 사회는 왜 코치와 3명의 미얀마 출신 타자들에게 국적을 부여하였는가?” 

 

이 질문은 “왜 부정적 타자인 그들에게 태국 사회는 환대를 허하였는가?”와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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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소년들과 코치가 극적으로 구조되었을 때, 그리고 3명의 아이들과 코치가 무국적자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시민사회는 이들에게 국적을 부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였다. 

 

2008년 개정된 태국 국적법과 주민등록법의 해당 조항을 뒤져 이들에게 국적을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주었다. 해당 법들에는 부모 혹은 부모 중 1인이 태국 국적 소유자거나, 태국 영토 내 출생이 확인될 경우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당시 아이들이 다녔던 유치원 기록을 뒤진 공무원, 입학 증명을 발급하기 위해 나선 초등학교 교장 등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미얀마 출신 타자들에게 지역 사회의 많은 이들이 아이들의 국적 취득을 위해 노력하였다. 

 

사실 이들의 국적 취득은 2008년 개정된 국적법과 주민등록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2008년 법 개정 이전에는 태국 국민 혹은 합법적 체류자격을 지닌 비국민만이 태국에서 출생등록을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언어(태국어), 제도에 대한 무지 등의 문제로 인해 출생등록에 필요한 서류를 제대로 갖추기 힘들거나(고산족), 미등록 상태인 부모의 자녀(미등록 외국인의 자녀, 주로 이주노동자, 난민, 무국적자의 자녀)는 출생등록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2008년 법 개정을 계기로 태국 내 여러 무국적 상태의 아동들이 출생등록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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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족. 고산족이란 태국 북부 고산지대에 거주하는 소수종족들을 일컬어 가리키는 말이다.

 

2008년의 전환이 주목되는 이유는 정부 차원에서 태국 내 출생하는 모든 아동의 출생을 아동의 국적·성별·언어 등에 관계없이 등록할 수 있도록 한 점이다. 

 

현실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는 부모의 지위가 미등록 상태인 경우인데, 이들 부모는 출입국관리법 위반에 대한 처벌과 강제퇴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녀의 출생등록을 망설였었다. 그러나 태국의 출입국관리법상 출생등록 담당 공무원이 미등록 체류자를 발견하더라도 신고할 의무, 즉 ‘통보 의무’가 없어 국적법 및 주민등록법과 상호 저촉되지 않는다. 이러한 보편적 출생등록제도로의 여정은 향후 태국 출생 비태국인 타자의 자녀들이 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태국의 사례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처럼 보편적 출생등록으로 가는 여정에 있어서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태국 사회의 현 상황은 타자(이방인)에 대한 부분적 환대를 허(許)한 상태라 할 수 있다. 타자, 특히 부정적 오명으로 얼룩진 타자에 대한 ‘절대적 환대’는 “(절대적) 환대란 없다”는 자크 데리다의 선언적 명제처럼 현재적 관점에서 빛바랜 희망사항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환대의 원을 지속적으로 확장시켜 나가다 보면, 즉 조건적 환대와 절대적 환대 사이의 거리를 시나브로 좁혀 나가면, 미등록 상태나 무국적 상태의 ‘불법적인 인간’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초석이 바로 누구나 출생을 등록할 수 있는 권리, 즉 보편적 출생등록일 것이다. 

 

태국 사회의 좀 더 진일보한 보편적 출생등록제도를 확립하기 위한 시도는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의 경우 기존 호적부의 체계에 따라 이미 등록된 자(주로 한국 국적 소유자)의 자녀만 출생을 등록할 수 있다. 이를 관장하는 제도가 가족관계등록부인데, 혈통을 중시하는 현행 한국의 제도로는 문화 다양성이 강조되는 현시대의 사회적 필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난민 자격을 취득하지 못한 상태의 부모를 둔 자녀, 미등록 체류자의 자녀, 미혼부의 자녀 등 현행 제도하에서 출생등록을 할 수 없는 제도의 사각지대에 위치한 여러 유형의 아동들이 존재한다(어떤 상황이든 이 아이들은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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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등록 이주노동자 자녀들의 시위 현장. / 하빕(가명)은 2013년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만 쓰고 한국 음식만 먹는다. 하지만 출생신고도 되어 있지 않고, 외국인등록증도 받을 수 없다. 아버지 나단(가명)이 10년 전 케냐에서 한국으로 와 난민 신청을 했지만, 여전히 미등록 체류 신분으로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빕은 당연히 건강보험 적용 대상도 될 수 없다. / 출처-<한겨레>

 

현재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련 법안에 관심을 가진 몇몇 의원들이 법안 상정을 준비 중이다. 지난 2월 중순에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 취임 이후 열린 첫 정책위원회에서 ‘외국인 아동 출생등록제’ 도입에 관해 심의하였다. 

 

이처럼 현 정부가 보편적 출생등록제도 마련을 위한 심의를 거치고 있는 상황은 고무적이다. 물론 난관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순혈주의와 단일민족 이데올로기에 경도된 혈통에 대한 편향이 강한 한국 사회이기에 더 큰 난관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국제적 위상에 걸맞게 이제 ‘부모의 법적 지위 또는 출신에 관계없이 모든 아동의 출생이 등록될 수 있는’ 제도 마련에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 이제, 우리가 아닌, 너희(타자)에게 환대를 허(許)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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