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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브스쿨 사이트

 

‘아이러브스쿨’의 재림은 이 땅에 긍정적 부정적 효과를 동시에 불러왔다. 화제성과 영향력은 오늘날 어떤 SNS보다 대단했다. 여름밤 해변 불꽃처럼 화려하게 타오르다 사라졌고, 신화처럼 남게 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업적은(?) 우리 셋도 지현이와 접속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인터넷 세상에도 문턱이 있다면 닳아 없어질 정도로 사이트를 들락거렸지만, 회원 중에 지현이의 이름은 없었다. 감수성이 예민한 중재가 -모두가 우려하고 있지만- 차마 입으로 내뱉지 못한 말을 토해냈다. 

 

“혹시 지현이는 우리를 잊은 게 아닐까?”

 

“지현이가 치매겠냐? 벌써 잊게! 진짜 겁나는 건 우리와의 추억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이 학교로 가입을 안 하는 거지. 머 겨우 2년 반 다닌 시골 학교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낭만주의자 중재와 현실주의자 철수의 답 안 나오는 걱정과 분석이 이어졌다.   

 

며칠 후, 철수가 아이러브스쿨에 가입한 지현이를 발견하고 쪽지를 보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지현이 떴다!”

 

철수와 나는 퇴근을 한 후, 신림동 지하 자취방에서 지현이의 답장을 애타게 기다렸다. 심각한 기계치인 내가 모니터를 이리저리 옮기자 신경이 날카로워진 철수가 나를 향해 쏘아붙였다..

 

“이거 라디오도 천리안도 아니다. 무식한 티, 밖에서는 내지 말고 다녀라.”

 

“어…어.. 그래…그런데 세상 진짜 좋아졌다. 삐삐와 휴대폰에 이은 현대 과학의 승리다.”

그 순간 줄곧 침착함을 유지하던 철수가 모니터를 껴안고 소리를 질렀다. 

 

“야! 왔다! 답장 왔어! 지현이 강남역에 있는 회사 다닌 데!”

 

“그래? 빨리 약속 잡아. 중재에겐 내가 지금 연락할게”

 

그 날밤 철수와 나는 아이러브스쿨의 재림은 아폴로 13호의 달 착륙보다 위대한 업적이며, 개발자에게는 노벨 기적 상이라도 신설해서 수여해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다 잠이 들었다.

 

금요일 저녁 7시 30분, 강남역 뉴욕제과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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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셋은 가지고 있던 몇 벌 안 되는 옷 중에서 최선의 코디를 서로에게 조언했고, 무스 한 통을 다 쏟아부은 듯한 기름진 헤어스타일로 약속 장소에 30분 일찍 도착했다. 나는 대학교 합격 발표 날 보다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있었다.

 

“진짜 가슴이 터질 것 같다. 그런데 우리 서로 못 알아보는 거 아냐?”

 

떨기기는 중재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왜 이렇게 안 가냐? 지현이 약속 잘 안 지키는 편일까?”

 

철수만이 나름의 냉철함을 유지하고 중재와 나의 대화의 오류를 지적했다.

 

“우리가 30분이나 일찍 나왔고, 아직 3분밖에 안 지났다. 그 입들 좀 닥쳐라.”

 

금요일 저녁의 뉴욕제과 앞은 사람들로 넘쳐났고, 서른을 앞둔 우리들은 새 학기를 앞두고 지현이와 한 반이 되기를 기도하는 소년으로 회귀해 있었다. 

 

약속 시각을 5분 정도 남겼을 때 철수가 자신이 칠 공의 방향을 예측했다던 베이브 루스처럼 우리의 왼쪽을 가리켰다.

 

“지현이는 아마 저쪽에서 올 거야.”

 

중재와 나는 중학교 시절 지도책에서 지현이 집을 유추해내던 철수의 손가락을 떠올리며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때 거짓말처럼 전방 100미터 앞에서 지현이가 우리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우려와 달리 우리는 한눈에 그녀를 알아보았고, 그녀는 광채를 내뿜으며 주변 사람들을 병풍으로 만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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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밤 강남역이 아니라 출근길 신도림역 안에서도 지현이를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발은 바닥에 뿌리를 내린 것 같았고, 입은 3중 잠금장치가 설치된 것 같았다. 시각 외에 모든 감각이 기능을 상실했다. 지현이가 우리 앞에 다가오자 셋 중 한 명은 살짝 침을 흘린 걸로 추정이 되는데, 오늘날까지도 자기는 아니라고 각자 우기고 있다.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지현이를 만났지만, 우리 셋은 지난주에 만난 친구를 다시 만난 것처럼 간단히 인사를 하고 철수가 예약해둔 파스타 집으로 향했다. 지현이도 어색했는지 약간의 거리를 두고 우리 뒤를 따랐다.

 

우리 셋은 모든 부사와 형용사를 찾아내어 지현이에게 반갑다는 인사만 반복했다..

 

“아까 주문할 때 까르보나라 대신 반가워 주세요 라고 할 뻔 했어. 지현아! 지겹겠지만 정말 반갑다.” 

 

중재의 헛소리에 지현이가 웃음으로 반응을 보이자 철수와 나의 속 빈말들이 이어졌고, 한참 후에 지현이의 알찬 말이 우리를 감동 시켰다.

 

“나… 너희랑 헤어지고 다시 서울로 돌아온 후 너무 힘들었어. 만화책만 보다가 학교 안 가는 날도 있었어. 그때 엄마가 열심히 공부 안 하면 너희 셋을 다시 만날 때 부끄럽지 않겠냐고 말했었고, 너희들 생각하면서 열심히 공부했어.”

 

지현이는 한의학으로 유명한 서울 소재 대학 약학과를 졸업한 후, ‘사’자 들어가는 여자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우리 셋은 서로의 눈을 보며 지현이에게 따봉을 들어 보였다. 그때 철수가 입을 열었다.

 

“그래? 우리랑 완전히 반대네. 우리는 지현이 네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공부를 못했어! 집중이 안 되더라고.” 

 

이런 헛소리에도 지현이는 활짝 웃었고 심지어 감동한 눈치였다. 철수가 주도하는 대화로 인해, 우리는 점점 편안해졌다.

 

2차로 맥주를 간단히 마신 우리는 노래방으로 향했다. 철수가 지누션의 ‘말해줘’로 갖은 재간을 부렸으며 나는 구피의 ‘비련’으로 주책을 떨었다. 뒤이어 중재가 배일호의 ‘흙에 살리라’를 부르자 지현이가 탬버린을 집어 들었다. 그 와중에 지현이는 한 손으로 다음 곡을 예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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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이가 한 손에 탬버린을 들고 예약한 곡은 샵의 ‘가까이’였다. 노래 가사에 충실한 안무가 당시의 트랜드였기에 지현이가 ‘가까이 가까이 더 가까이’를 부를 때마다 우리 셋은 발맞춰 지현이에게로 다가갔다. 

 

지현이는 12살 소녀처럼 까르르 웃었고, 그런 지현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지난날의 그리움을 보상받는 것 같았다.

 

우리는 경복궁에서 다시 만났다. 

 

지현이 손에는 디카가 들려 있었다. 우리는 6학년 경주 수학여행 이후 처음으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어느 고고학자는 현 인류의 디지털 정보보다 종이나 돌에 새겨진 정보가 더 오래 보존될 거라고 한다. 그날 지현이가 찍은 디지털카메라 속의 우리 모습은 어디에도 없고, 인사동에서 찍은 스티커 사진 한 장만이 남아있는 걸 보면 그 학자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셋은 성장하는 내내 지현이를 그리워했지만, 누구도 지현이에게 한 발 더 가지 않았다. 타인과의 약속을 잘 지키지 못하는 성인이 되어서도 -합의하지 않은- 신사협정만은 잘도 지켰다.

 

3개월 후 이번에는 내가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떠나게 되었다.

 

캐나다로 떠나기 전, 우리 넷은 서울 어딘가에서 만났다. 십여 년 전처럼 울지는 않았다. 1년 후면 다시 볼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른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을까?

 

캐나다에서 돌아오니 나는 서른 살이 되었고, 여전히 취업에 애를 먹었다. 사회에서 조금씩 입지를 굳혀가는 친구들 집을 전전하며 백수로 지내다 보니 초조해졌고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인생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나의 불행과 상관없이 한국 축구 대표팀이 사상 최초로 월드컵 16강에 진출한 날,나는 슬픔의 눈물인지 기쁨의 눈물인지 모를 눈물을 토해냈다. 철수는 말없이 나의 빈 잔을 채워주고 계산을 했으며, 중재는 취한 척한 나를 안아 주었다. 친구가 세상의 전부이던 시절이었다. 중재의 위로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슬픔과 궁상도 월드컵의 환호와 함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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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보니, 지현이를 못 본 지 2년이 훌쩍 지났다.

 

“참! 중재야! 그동안 지현이랑 가끔 만났니? 다음 주에 한번 보자. 내가 취직 턱 쏠게.” 

 

“연락 끊긴 지 오래다. 너 캐나다 있는 동안 우리 한 번도 안 만났어. 전화번호도 바뀌었더라고”

 

나는 둘의 무책임한 처사에 격분했지만, 지금은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라며. 뭔가를 해야 한다고 모두를 독려했다.

 

“지현이를 다시 찾아보자. 한 번 찾았는데 두 번 못 찾겠냐? 싸이! 싸이월드 있잖아.”

 

나의 재촉에 철수가 싸이월드 주소창에 알파벳을 끼워 넣으며 말했다.

 

“우리 강남역 뉴욕제과 앞에서 다시 만난 날 지현이가 말한 다음 메일 주소 생각나냐?”

 

철수는 IQ146이지만 단순 암기에만 특화된 특이한 천재 유형이다. 자신이 명문대학 진학에 실패한 원인은 한국의 교육 시스템과 맞지 않았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철수는 전국의 도시 이름을 모조리 외우고, 지하철 노선도를 지하철 안에서 큰 소리로 되새기며, 내각이 개편될 때마다 정부 부처의 장관 이름을 외우는 데 자신의 뇌를 사용했다.

 

그날 지현이가 한숨을 쉬며 말한 기억이 난다.

 

“내 메일 아이디 괴상하지? 이게 사실 약 이름인데 너무 길고 안 외워져서 궁여지책으로 내가 메일 주소로 만들었어.”

 

철수는 그때 지현이가 한 번 이야기한 그 약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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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재와 나는 철수를 향해 어김없이 따봉을 날렸고, 철수는 싸이월드 주소창에 암호 같은 지현이의 다음 아이디를 탁! 탁! 탁 찍었다. 아이러브스쿨에 이어 싸이월드에서 지현이를 만나는 문이 열리고 있었다.

 

아이러브스쿨은 우리에게 환상 속의 지현이를 보여주었으나, 싸이월드는 현실의 지현이를 보여주었다. 지현이는 한 남자와 결혼했고, 미국에서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행복해 보이네……….”

 

“야 싸이에는 원래 행복해 보이는 사진만 올리는 거야. 맨날 싸우고 살지 누가 알아.” 

 

 

여기까지가 시골 소년들이 사랑했던 한 서울 소녀 추적기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지현이 이야기를 하던 소년들은 아이러브스쿨과 함께 사라졌다. 가장이 된 소년들은 그들이 사랑했던 소녀 이야기 대신 대출금 상환과 퇴직 이후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 시절 노래방 엔딩 곡은 언제나 015B의 ‘이젠 안녕’이었다.

 

가사처럼 “우리는 서로 가야 할 길을 가게 되었지만, 시간은 우리를 다시 만나게 해줄까?” 

 

<끝>

 

 

필자의 변

 

딴지일보 연재물 '찌라시한국사'로

작가라는 부캐를 얻은 지 6년 차.

 

퇴근해서 (한)약 빨고 쓴 에세이

'나 아직 안 죽었다'가 출간되었으나,

책 소개해주는 언론 한 곳 없도다!

 

작가의 길로 영도해 준 딴지는

선거 끝날 때까지만 버티라 하네!

그래도 믿을 건 친정뿐이로세!

 

책을 통해 추억이 된 행복했던 기억으로 웃음을

경험이 된 아팠던 기억을

어루만져 줄 터이니,

 

2권 사서 한 권은 친구에게 선물하여

딴지에서 역주행 책 한 권 만들어 주시기를 청원하나이다!

 

 

아이돌만 역주행 하냐! 아재도 역주행 좀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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