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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에 등장하는 바텐더는 허구의 인물이다. 허구의 인물을 이용하여 기사 속에 정신분석학, 심리학적 요소를 담았다.

 

남의 돈을 받아먹는 일은 쉽지 않다. 그건 삼척의 동자승도 안다. 옆에서는 경쟁자들이, 위에서는 포식자가 나를 옥죄어 온다. 사방에서 눈치를 보며 생존하는 꼴이 마치 가여운 임팔라와도 같다. 

 

정글에서는 적자만이 생존한다 하던가. 잔혹한 약육강식의 한복판에서 살아남은 선조들을 보며 생각한다. 이 잔혹한 자본주의의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면 우리에게도 어떤 생존의 지혜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 글은 그런 여러분을 위한 생존 키트다. 

 

 

직장 상사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후배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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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후배가 가게를 찾았다. 녀석은 갑자기 지갑을 열더니 상품권을 꺼냈다. 

 

“이 또 영세 상인 도와주려고 내가 왔지요. 형네도 이 상품권 받지?”

 

“아니 상품권은 또 어디서 났대? 너 이런 거 안 쓰잖아?”

 

직장 상사가 줬단다. 아니 뭐 이런 천사 같은 상사가 다 있나. 상사 잘 만나서 좋겠다고 칭찬을 해주는데, 녀석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푹 숙였다. 

 

“형. 이게 좋은 게 아니야. 나 회사 다니는 게 너무 힘들다.”

 

상사의 비위를 맞추는 게 힘들다면서, 그가 어떤 타입인지 파악이 안 되니 도움을 달라고 했다. 

 

입사할 때만 해도 후배는 그가 천사라고 생각했다. 아래 사람을 깍듯이 대하고, 다른 상사들처럼 막말하지도 않아 좋았다고.

 

“아니 그러니까 막 나쁜 사람은 아니야. 분명히 나쁜 사람은 아닌데, 뭐라고 해야 하나. 열라 사람을 돌려 깐다고 해야 하나? 그니까 내가 뭘 해 가도 만족스러워하질 않고 좀 핀잔을 준다고 해야 하나?”

 

후배는 한 번도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푸념했다. 후배는 학교 다닐 때부터 칭찬에 목말라하는 그런 성격이었다. 왜 잘한다 잘한다 해주면 일 더 잘하는 그런 사람들 있지 않나. 

 

“한 번은 밤새워 보고서를 작성해서 그걸 보고하러 갔어요. 갔는데, 표정이 영 탐탁지 않은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하는 말이 이거 쓰는 거 며칠 걸렸냬. 솔직히 말했지. 어젯밤 새서 썼다고. 그랬더니 이 사람이 '아... 혹시 내가 보고서 쓰라는 말을 언제 했었지? 기억이 잘 안 나서...'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2주 전 쯤에 말씀하신 것 같다고 했더니 이 사람이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갑자기 한숨을 쉬는 거야. 아, 이거 뭔가 마음에 안 드나 보구나 내가 생각을 했지.”

 

“마음에 안 들었나 보네”

 

“그러더니 자기가 비교하려고 하는 건 아니라고 오해하지 말라면서 갑자기 서랍에서 어떤 보고서를 꺼내는 거야. 보니까 우리 옆 팀에 있는 여직원이 써온 거더라고. 무슨 미술 작품처럼 표지부터 색깔이 알록달록하더라고. 그걸 보여주면서 하는 말이 뭐 문단이나 폰트 같은 게 정리가 잘 돼 있고 뭐 줄 간격이 맞고 어쩌구저쩌구 세세한 중요하지도 않은 걸 갖고 딴지를 거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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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는 기분이 나쁨에도 불구하고 반박이 어려운 게 문제라고 말했다. 기분은 분명히 나쁜데, 상사가 딱히 틀린 말을 하는 게 아니기에 반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상사는 한 번도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소리를 지르거나 심지어 인상을 쓴 적도 별로 없다고. 

 

대신 항상 <조직경영론> 같은 책을 들고 와 조목조목 설명을 하며 상하와 부하직원의 관계가 어때야 한다는 등의 설명을 늘어놓는데, 그게 사람을 더 지치게 만든다고 한다. 후배뿐 아니라 다른 직원들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그러니까 우리 상사는 절대 대놓고는 뭐라고 안 해. 근데 사람 진짜 민망하게 만들 때가 있단 말이지. 한 번은 술자리를 갖게 됐는데, 아무래도 술자리다 보니 갑자기 신박한 섹드립이 생각 난 거야. 마침 또 친한 남자 동료들 밖에 없고 해서 쳐봤는데, 다들 빵 터지더라고? 근데 그 상사 표정만 엄청 굳는 거야. 갑자기 분위기 이상해지고, 나만 이상한 놈 되고...”

 

“그 사람이 좀 성적인 이야기 나오는 걸 싫어하나 보지?”

 

후배는 상사가 성적인 농담을 극혐하기도 하지만, 유머 감각 자체가 아예 없어서 어떤 조크로든 업무나 술자리에서 재밌는 분위기를 느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어쩔 때는 이 사람에게 감정이라는 것이 있나 하는 의문도 든댔다.

 

“이 사람 보면 좀 로봇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일하는 로봇? 그리고 뭘 그렇게 사장 눈치를 보는지. 사장한테 보고서 들고 가기 전에 도대체 몇 번을 확인하는지 몰라. 지나칠 정도로. 그니까 완벽주의의 화신인데 효율은 또 무지하게 떨어져요.”

 

“그나저나 너 이 상품권은 어떻게 받게 된 거야?”

 

갑자기 상품권의 출처가 궁금해졌다.

 

“아니 그날 그 보고서 사건으로 개 털리고 나서 막 침울해져 있는데, 다음날 갑자기 내 자리로 오더니, 힘 내라면서 이걸 주시더라고. 뭐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한데”

 

“그런데?”

 

“아 몰라. 근데 썩 기분이 좋지 않은 건 왜일까?”

 

사람들은 타인과 소통할 때 그들의 말과 행동의 표면적인 내용에 신경을 쓰느라 진짜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소통을 하며 마음속에 불러일으 켜진 감정과 표면적 내용이 불일치하게 되면서 혼란이 나타나는 것이다. 결국 그 말이나 행동에 대한 적절한 대응 방식을 찾지 못하게 되고, 혼란은 더욱 가중되기에 이른다.

 

나의 감정을 믿어야 할까? 말이나 행동의 표면적 내용을 믿어야 할까? 이럴 때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는 게 좋다. 

 

만약 후배의 경우처럼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면 본인과 타인들이 느끼는 감정 쪽이 더 정확할 확률이 높다. 상사의 발언이나 행동은 그것이 아무리 좋게 포장되어 있더라도 사실은 불만이라든지 모종의 공격성을 포함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뭔가 그 사람이 방어기제로 취소 같은 걸 쓰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네.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거든. 마음에 걸리는 행동을 하고 나면 그걸 무의식적으로 되돌리려고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 그렇게 하면 덮어씌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말이지.”

 

“어우 형 갑자기 소름 돋는데? 그게 맞는 것 같아.”

 

대충 이 사람에 대한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유머 감각이 없고, 융통성이 없는 데다가 감정 표현이 극히 드물고, 완벽주의에다가 불안 불안해 하는 성격. 아마 강박성 성격에 해당하지 않을까? 확인을 위해 인터넷에서 진단기준을 찾아봤다.

 

 

‘강박성 성격’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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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성 성격장애' 진단기준

 

융통성, 개방성, 효율성을 희생시키더라도 정돈, 완벽, 정신적 통제 및 대인관계의 통제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광범위한 양상으로 이는 청년기에 시작되며 여러 상황에서 나타나고 다음 중 4가지 (또는 그 이상)로 나타난다.

 

1. 내용의 세부, 규칙, 목록, 순서, 조직 혹은 스케줄에 집착되어 있어 활동의 중요한 부분을 놓침

2. 완벽함을 보이나 이것이 일의 완수를 방해함 (예, 자신의 완벽한 기준을 만족하지 못해 계획을 완수할 수 없다)

3. 여가 활동이나 친구 교제를 마다하고 일이나 성과에 지나치게 열중함 (경제적으로 필요한 것이 명백히 아님)

4. 지나치게 양심적임, 소심함 그리고 도덕 윤리 또는 가치관에 관하여 융통성이 없음 (문화적 혹은 종교적 정체성으로 설명되지 않음)

5. 감정적인 가치가 없는데도 낡고 가치 없는 물건을 버리지 못함

6. 자신의 일하는 방법에 대해 정확하게 복종적이지 않으면 일을 위임하거나 함께 일하지 않으려 함

7. 자신과 타인에 대해 돈 쓰는 데 인색함. 돈을 미래의 재난에 대해 대비하는 것으로 인식함

8. 경직되고 완강함을 보임

 

 

역시. 대부분이 들어맞는 것 같다. 더군다나 이 사람은 방어기제로 ‘취소’ 뿐 아니라 ‘지식화’를 종종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강박성 성격인 사람들은 대부분 대화를 나눌 때 감정보다는 이성이나 지식을 갖고 대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불만이 있어도 그 불만을 감정에 담아서 이야기하기보다는 어떤 이론적인 틀이나 객관화된 형태로 이야기를 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뜻이다. 이런 사람들은 감정을 똑 떼어내서 의식화되지 않는 영역으로 보내버리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걸 ‘고립’이라고 하고, 이성을 사용하여 우회해서 감정을 받아들이거나 표현하려는 경향을 ‘지식화’라고 한다.

 

과거 프로이트를 비롯한 전통적 분석가들은 이런 성격이 성적인 억압을 잘 해소하지 못해 생긴다고 보았다. 성을 억압하다 보면 사랑, 미움 같은 감정들을 동시에 억압하게 되면서 감정 표현에 미숙해지게 된다는 것이다. 

 

마음속에서 성적 관심이나 감정이 올라오기는 하는데 그대로 표현할 수가 없으니 빙빙 돌려서 지식화된 형태로 표현을 하거나, 아니면 자기 안에서 감정을 그냥 떼어버리는 식으로 방어가 나타난다. 옛날 이론의 틀이긴 한데, 그 상사가 성적인 이야기에 민감하다는 말을 듣고 보니 얼추 의미가 통한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해?”

 

“글쎄, 네가 그 사람을 고칠 자신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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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렬한 도리도리

 

“형 미쳤어? 당연히 없지. 고치려고 싸우면 오히려 내가 나가리 될 것 같은데... 내가 여기 들어오려고 얼마나 기를 쓰고 노력했는데. 아무리 못해도 10년은 여기서 버텨야 해 형...”

 

그럼 그 상사에게 맞춰줄 수밖에. 후배에게 강박적인 사람의 비위를 맞출 수 있는 방법을 하나씩 알려주기로 했다.

 

 

‘강박적인 사람’은 어떻게 맞춰야 할까

 

후배의 보고서 건에 대해 생각해보자. 

 

강박적인 사람들은 상황이 통제되지 않는다고 느끼면 굉장히 불안해한다. 보고서를 쓰라고 했는데 직원이 팽팽 놀면서 딴짓을 하고 있으면 그 시간 내내 그 직원을 보며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만약 보고서를 제때 안 가져오면 어쩌지? 저렇게 놀다가 대충 써오면 결국 내가 다 수정해줘야 할 텐데 그럴만한 시간이 될까? 사장에게 욕을 먹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상사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그런 괴로움이 그대로 직원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이다.

 

“근데 일을 미리 시작하는 건 도저히 내 스타일이 아닌 걸 어떡해 형?”

 

후배가 되묻는다.

 

“모든 상황에서 항상 사실 그대로를 이야기할 필요는 없어. 나름의 융통성을 발휘해야지. 회사 일이라는 게 각자 다른 사람들끼리 모여 하나의 일을 같이 진행하는 거니까. 상사가 너더러 이거 언제부터 준비했냐고 했을 때, 솔직히 네가 언제부터 했는지 상사가 그걸 어떻게 알겠냐. 굳이 네가 어제부터 시작했다고 말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그렇게 하면 상사의 불안감은 커지고, 너에게 잔소리하는 건 늘어날 게 뻔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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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그들의 불안감을 자극해선 안 된다. 그리고 이들이 불안감을 느끼는 포인트도 대개 정해져 있다. 사람들은 완벽주의적인 사람을 어떻게 다 맞춰주냐고 생각하지만, 이들이 생각보다 그렇게 완벽하지는 않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강박적인 사람들은 종종 특정한 부분에서는 지나치게 꼼꼼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부분들에서는 허술한 모습을 보이곤 한다. 그래서 이런 완벽주의의 화신 중에서 생각보다 침실이나 서랍, 돈지갑 등이 지저분한 경우가 많다. 

 

요약하자면, 그들이 눈여겨보는 부분만 잘 통제해주면 된다는 말이다. 상사의 사례에서 그것은 보고서의 모양과 글씨체 같은 것이다.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이런 요소가 틀에서 벗어나면 이들의 불안감을 자극하고 불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쉽지 않겠는데? 달라도 나랑 너무 다른 사람 같다.”

 

“당연하지. 우리가 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 똑같은 인간처럼 보여도, 사실은 서로가 철저한 외계인이라고 생각해도 될걸?”

 

“내가 그냥 맞춰주는 쪽으로 노력할 수밖에 없는 거겠지? 한 번 해볼 게 형.”

 

힘없이 풀이 죽어 나가는 후배의 뒷모습이 안쓰럽다. 뭐 어쩌겠니. 월급 받아먹는 사람이 윗사람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고. 너도 참 고생이 많다. 기운 내려무나. 우리 언젠간 이 노비 신분을 벗어나 함께 날아보자꾸나. 그렇게 무의미한 나의 응원만이 바의 홀을 가득 메운다.

 

 

 

리빙 포인트 : 강박성 성격의 상사를 두고 있는 부하직원들을 위한 팁

 

1. 상사의 비위를 맞추려면 일단 그 상사가 어떤 스타일인지부터 파악하라.

2. 말과 행동의 표면적 내용보다는 그것의 의도에 집중하라.

3. 통제감을 유지하고자 하는 그들의 욕구를 맞춰줘라.

4. 겉으로 보이는 정리 정돈에 신경써라.

5. 감정보다 이성과 논리로 무장한 그들의 대화방식에 익숙해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