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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엘리트 스님들, 이재용에게 고백하다  

 

'주지'란 사찰의 전체 운영권을 가진 스님을 말한다. 주지스님은 절마다 한 명씩 있다. 전국에 산재한 조계종의 등록 사찰은 총 2856개. 그중 제각기 역사와 사연을 가진 전통사찰은 769개이다. 이 가운데, 가장 대빵 사찰들이 25개 있다. 이를 교구 본사라고 한다. 즉, 25개 교구 본사의 주지들이 모인 조계종 주지협의회는 조계종의 살림을 책임지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그런 주지협에서 구속 수감 중인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탄원서를 발표했다. 죄를 더 확실히 물으라는 탄원이 아니라, 재드래곤의 감빵생활을 끝내라는 탄원이다. 확실히, 조계종 내 최고의 엘리트 스님들답게, 제법 글빨이 서 있다. 한번 보자.

 

우리 정치가 어두운 시절을 지나오며 불가피하게 성장통을 겪어 왔듯이 삼성 또한 이 성장통을 함께 겪을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어려움이 우리 사회에 있어 왔습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과 발전은 국민 모두의 열정과 헌신으로 이룩된 것인 동시에 삼성의 중추적인 역할에 힘입은 바가 많습니다.

 

부처님은 제자들이 죄나 허물을 지을 때마다 참회(懺悔)하게 했습니다. 참회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타인에게 용서를 구하는 일입니다. 과거는 물론 현재의 잘못과 허물을 뉘우치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각오와 그에 따른 실행입니다.

 

(중략)

 

사람은 누구나 허물 많은 중생이며, 이재용 부회장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가 과거의 잘못을 참회하고 자신의 맹세를 말이 아닌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이재용 부회장이 다짐한 대로 삼성이 권력의 후원자가 아닌 대한민국 국민의 후원자로서, 법과 사회적 윤리를 지키며 초일류를 지향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재용 부회장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부처님의 대자대비하신 가르침을 받들어 청원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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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앙일보 캡처>

 

전혀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터져 나온 주지협의 탄원서. 이걸 보자마자 대략 정신이 멍해졌다. ‘부처님 대자대비’ 운운한 수사적인 표현을 그렇다고 해 두자. 원래 탄원서라는 게 그런 거 아니던가. 만해스님도 총독부에 ‘건백서(建白書)’를 쓸 때 매우 정중한 표현을 썼었다. 의아한 점은 따로 있다. 주지협은 좀처럼 이러한 사안에 선제적인 메시지를 내지 않는 보수적인 집단이기 때문이다.

 

교구 본사의 주지는 원칙적으로 선거로 선출 되어왔다. 교구 본사는 본사뿐 아니라, 적지 않은 수의 말사나 암자를 두고 있다. 즉, 본사의 주지는, 교구 본사에 등록된 정식 승려들의 투표에 의해 선출되는데, 선거 한 번 치를 때마다 한국인의 정이 아름답게 꽃 핀다. 한 명의 스승과 그의 제자들, 이를 ‘문도(門徒)’라 부르는데, 큰 절 하나를 두고 문도 간 계파싸움이 절정에 치닫는 순간이 바로 선거다. 왜냐하면, 한국의 정치 시스템보다 더 불균형적인 ‘The winner takes it all’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선거를 바꾸고 추천제로 전환 중이다.

 

잃을 게 많은 자리는 지키기도 어렵다. 주지협은 불교 국가인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에도 큰 언급이 없었다. 지난 박근혜 하야 촛불시위 때도 격론 끝에 하야 요구 성명을 ‘간신히’ 내놓았다. 주지협은 항상 총무원이 움직인 후에야 입장을 정했다. (전국의 주지 선거는 총무원 집행부의 권력 구도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상식적으로, 누가 정권을 잡든 간에 시주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기에 보수적인 스탠스가 안전빵이다.

 

그런데 우짠 일로, 주지협의 주지들이 총대를 메고 나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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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삼성과 조계종의 관계 

 

삼성과 조계종이 본격적으로 연을 맺은 것은 마침 재드래곤과 사이좋게 빵생활중인 가카께서 재임하시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0년,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은정진흥원의 장학후원회를 발족했다. 당시 장학후원회에는 여러 기업의 회장님들이 많이 들어가 있었다는데, 이때 홍라희 여사가 이재용과 함께 자승스님과 밥을 먹었다는 썰이 돌아다녔다.

 

사실, 2009년부터 자승스님과 홍라희 여사의 인연을 다루는 언론 보도들이 등장했다. 홍라희 여사가 법정스님의 병원비 6,000여만 원을 대납하여 화제가 됐었고, 고(故) 이건희 회장이 배임과 조세포탈죄로 징역 3년, 벌금 1100억 원을 때려 맞은 시절, 자승스님이 청와대 오찬 자리에서 이 회장의 사면을 건의했다는 썰도 돌았다.

 

그로부터 보름 뒤, 이건희 회장은 평창올림픽 유치를 명분으로 역사상 최초 ‘1인 특별사면’의 대상이 된다. (물론 자승스님이 특사 결정에 의미 있는 영향력을 끼쳤다고 보는 것은 너무 순진하다) 이후 자승스님은 리움미술관장에 공식 초청되어 둘러보기도 하고, 홍라희 여사의 모친 고(故) 김윤남 여사의 빈소에서 “일생에 사사로움 없어 후덕하고 아름다운 공덕행을 쌓았으니, 화신불의 영접을 받아 극락정토에 왕생할 것”이라며 총무원장답게 쩌는 마이크웍을 선보이기도 했다.

 

홍라희 여사는 자승스님 뿐 아니라, 종정(宗正) 진제스님과도 인연이 있다. (총무원장이 행정기구의 수장이라면, 종정은 종단의 정신적 지주이다) 진제스님이 창건한 부산 해운대구의 해운정사에서 남편과 아들을 위한 수륙재(水陸齋, 천도재의 일종)를 열기도 했다. 확실히 삼성은 사이즈가 다르다. 스님들도 이렇게 S급 스님들하고만 친하다.

 

앞서 말했듯, 교구 본사의 주지는 선거 또는 추천으로 임용되며, 각 계파는 주지 자리를 놓고 첨예한 대결을 벌인다. 자승스님은 조계종 역사에서 가장 정치력이 쩌는 스님이었다. 출중한 정치력으로 반대파들도 잘 포섭하여 총무원장을 연임했다. 퇴임 이후에도 현재 조계종의 크고 작은 뉴스를 지배하는 쉐도우 보스다. 또한, 종정 진제스님과 자승스님은 한 번도 견해를 달리한 바가 없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삼성과 조계종 집행부 사이의 관계이다. 삼성을 위해 총대를 멜 정도인가 싶지만, 못 멜 것도 없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고, 어려울 때 빤쓰벗고 나서주면 얼마나 고맙겠는가. 기왕 이재용을 위해 목탁을 치기로 결심했다면, 지금이 삼성과 또 하나의 가족이 될 절호의 빤쓰, 아니, 찬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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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시 떠오르는 성철스님과 삼천배

 

불심 깊은 독자들은 스님들의 이재용 탄원서를 보자마자 성철스님의 여러 일화가 떠올랐을 것이다. 성철스님은 자신을 찾아온 사람이 누구든지 간에 “절 돈 3,000원 내놔라”라며 법당에서 삼천 배를 하고 오도록 명령한 것은 유명하다. 보통, 삼천 배는 쉬엄쉬엄한다고 해도 꼬박 밤을 새워야만 채울 수 있다.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는 것이 어떤 기분이지 경험하고 싶은 자, 적극 권한다. 물론 삼천 배를 마치고 나면 드라마틱한 마음의 변화를 느낄 수도 있다) 어쨌든, 성철스님 덕분에, 성철스님이 기거하던 해인사 백련암 신도들은 지금도 삼천배 스페셜리스트들로 유명하다.

 

그래서 일찍부터 성철스님을 향해 ‘오만한 스님’이라며 ‘지가 뭐가 잘났다고 삼천배를 시키는가’라는 비판이 따라왔다. 세상이 뭐라 떠들든 성철스님은 굽히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박 대통령에게 삼배를 요구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 1978년, 구마고속도로 개통 때 박 대통령이 해인사를 찾았지만, 성철스님은 반인반신 대통령에게 삼배를 요구하며 이렇게 말한다.

 

“대통령은 세상의 어른이지만 총림(叢林, 승려 교육기관이 모두 갖춰진 곳)에선 방장(대빵스님)이 어른인데, 날 만나 삼배를 안 하실 바에야 서로 안 만나는 게 낫다”

 

그 바람에 당시 해인사 소속 집행부 스님들과 박 대통령을 보좌하던 사람들이 땀을 뻘뻘 흘렸다고 한다.

 

또한, 대한민국의 전설적인 사채업자, 이철희-장영자 부부가 성철스님을 찾아왔을 때, ‘친견만 허락한다면 종단의 불사를 모두 책임지겠다’라는 큰손 다운 의지를 보였다. 달콤한 제안에 주변 스님들은 성철스님에게 한 번만 그들을 만나달라고 졸랐다. 성철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그런 불사라면 안 할란다.”

 

성철스님은 왜 사람들에게 삼천배를 시켰을까? 법정스님은 여러 차례 성철스님의 삼천배를 ‘생각 없이 하는 삼천배는 그냥 허리 운동이다’라며 비판하곤 했었는데, 그에 관한 두 스님의 대담이 남아있다. 삼천배의 이유를 묻는 법정스님에게 성철스님은 이렇게 답한다.

 

“찾아오는 이들에게 ‘여기 찾아올 때는 나를 찾아오지 말고 부처님을 찾아오시오. 나를 찾아와서는 아무런 이익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데 고민 끝에 생각해 낸 것이지”

 

이것이 일반인에게 삼천배를 시키는 이유라면, 권력가, 정치인, 사장님, 회장님들에게 절을 요구한 이유는 좀 다르다. 성철스님의 시봉 스님이었던 원택 스님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원택 스님은 “당시엔 스님이 3천배를 시키는 이유를 몰랐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명백해진다”고 했다. 그는 “스님은 산중에 머물렀지만 절친한 도반들이 종정과 총무원장을 했기에, 종단 정치판과 브로커들의 장난질에 큰스님들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고 잘 알았다"라며 “권력과 돈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3천배라는 만리장성을 쌓았다”고 보았다. 욕망을 채우려는 아만 때문이 아니라 욕망을 없애는 방식으로 취한 방편이라는 것이다.

 

‘큰스님들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고 잘 알았다’라는 말, 울림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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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모두가 성철스님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주지스님은 절간의 곳간을 책임지는 자리다. 주지스님의 역량에 따라 다 쓰러져 가던 절이 뚝딱뚝딱 중창불사에 성공하기도 하고, 반대로 멀쩡히 잘 굴러가던 절이 폐허처럼 휑하게 변하기도 한다. 절간의 식구들, 그러니까 스님들과 노동자를 먹여 살리는 것은 주지스님을 비롯한 사찰의 집행부의 역량에 달려 있다. 이렇게 행정적인 일을 담당하는 스님들을 ‘사판승’이라 부른다.

 

사판승 제도의 원래 취지는, 수행에 전념하는 이판승들을 책임지고 서포트하기 위함이었다. 누군가는 신도들에게 시주를 권해야 하고, 또 누군가는 받은 시주를 관리해야 한다. 그런데 승려의 본분은 수행이니, 최소한의 인원만 그 ‘악역’을 담당하자는 취지였다. 따라서 주지스님들은 세상이 어떻게 바뀌든 간에 시주를 잘 받을 책임과 의무가 있다.

 

성철스님은 자신들의 제자들을 절대로 주지를 비롯한 주요 보직에 임명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 자리에 가면 자연스레 검은 물이 들 수밖에 없음을 너무나 잘 안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두가 성철스님처럼 될 수는 없는 법이다. 누군가는 그 역할을 해야만 한다.

 

그런데 그 역할이 ‘더 크고 아름다운 불사’를 위한 것이라면, 이제는 다르게 생각할 때가 됐다. 아무리 큰 절간을 지어나도 드나드는 사람이 없으면 귀신의 집과 다를 바 없다. 불교의 고령화는 심각해지는데, 새로 불자가 되는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드물다. 수행자는 감소 사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서도 주지스님들은 불사에 목을 맨다. 불교 내에 산적해 있는 시스템 문제의 해결은 한없이 뒤로 미뤄둔 채, 크고 아름다운 절을 지어놓으면 사람들이 찾아올 것으로 생각한다.

 

그 방법은 이제 틀렸다. 이제는 불사를 할 때가 아니라, 있는 절간을 ‘절간답게’ 만들 때다. 성철스님과 법정스님이 한국불교의 아이콘이 된 이유를 잘 돌아보자. 모두가 그들처럼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들이 했던 방향은 쫓아야 한다. 그것이 불교의 위기를 극복할 유일한 대안이며, 다른 종교에서 제공할 수 없는 메리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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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보시, Take가 없는 Give

 

속세를 꿰고 있는 논리는 기브 앤 테이크이다. 그런데 불교에서 말하란 보시란, ‘바라는 것 없이 행하는 베품’, 즉 Take가 없는 Give이다. 스님들은 신도들에게 보시하라는 권유를 할 때 항상

 

“바라는 것 없이 베푸세요. 그것이 진정한 보시입니다. 절간에만 보시하란 얘기가 아니라, 내 주변의 이웃에게도 바라는 것 없이 보시하세요”

 

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주지협의 탄원서는 그간의 Take, 혹은 앞으로의 Take를 보상하는 Give다. 누구보다 보시가 무엇인지 보여줘야 할 스님네들이 이런다면, 합리주의 시대를 사는 불자들이 뭘 보고 보시를 한단 말인가. 이러한 탄원서가 나왔는데 종단의 원로들이 아무런 ‘혼꾸녕’이 없다는 것도 서글프기 짝이 없는 일이다. “중은 중노릇 해야지, 뭐 하고 있는 기가?”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한데,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절간을 책임져야 하는 주지스님들의 고충을 이해한다. 모두가 성철스님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이러한 탄원서가 전체 불교를 위한 ‘전략적 판단’이었다면, 이제는 진심으로 그 전략을 수정할 때가 되었다고 외치고 싶다. 스님답게 사는 것은 정해진 것이 없지만, ‘전략적’으로 살 필요는 있지 않겠냐고.

 

그것도 아니면, 최소한 가만히라도 계시라고, 외치고 싶다.

 

뱀발

 

이 기사에서 다룬 것들은 불교계 안에선 특별할 것 없는 정보다. 오히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쥐꼬리만 하다. 쥐꼬리만한 이야기인데, 이런 불교 관련 글을 쓸 때마다 분에 넘치는 댓글을 받는다.

 

바닥이 무지 좁은 걸 아는 분들이, 여기서 살아가야 할 사람이 이런 글을 올리니 기특해서 그런가부다. 사실, “전체 불교를 위해, 그리고 묵묵히 수행하는 수행자들을 위해 쓰지마라”는 말이 내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고백컨데 나, 쫄보다. 고작 이 글을 쓰면서도 수없이 자기 검열한다. 느낌적으루다가 삼성에 하청받는 업체 사람이 이재용과 임원들 비판하는 느낌이다. 

 

딴지일보에 글을 쓰고 연재를 하고 책을 내다 보면 나의 과거가 알려져서인지(?) 칭찬하는 종이 언론사의 홍보기사들이 슬 사라지는 체험을 하기 마련인데 이제는 삼성과 불교계 양쪽으로 발 뻗고 누울 자리가 없어지는 건가...! 흐음. 

 

나름 첫 책도 베스트 셀러 딱지가 붙은 마당에, 이제 나도 서울 갈 때마다 멋진 야경을 볼 수 있는 호텔에서 자고 싶은데! 딴지와의 모든 과정을 부정하고 이력에도 다 빼버리고 그렇게 살면 홍보도 더 잘 되고 막 강연 요청도 더 많이 오지 않을까! 헌데 나는 왜, 지난 무수한 세월동안 다음 달 날아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딴지에(요즘들어선 더욱) 계속 글을 쓰는 걸까.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인연생기의 법칙이 그러한 것을, 또 내가 배워먹은 붓다의 말씀이 그러한 것을 어쩌랴. 게다가 아무리 업보 스탯이 많은 사람이라도, “이건 아니다”라고 말할 자유는 있는 거 아닌가. 

 

암튼, 혹시라도 심기가 불편하신 분들이 항의를 하거나 고소하길 원한다면 죽지않는돌고래 편집장(고소장에 쓸 본명 : 김창규)에게 보내시길 바란다. 필진들 괴롭힌 댓가도 다 인연생기의 법칙이다.     



 

 

편집부 뱀발

 

독자 여러분의 성원 덕에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여전히 잘 팔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안 사줄 것 같이 하다가 기사가 올라오면

슬그머니 주문하는 샤이 독자 여러분 덕에 

필자는 눅눅한 골방에서 

조금 덜 눅눅한 골방으로 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전망이다.

 

이번엔 후속작,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이 나왔다. 

 

행여 권력을 가진 스님들이 본 기사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면 아래 책의 

무게나 사이즈가  

분서갱유에 적합하다는 것을 일러둔다. 

 

본명(박영서)과 이력을 확인해, 

불교계의 새싹도 발본색원 가능하니 

가히 일석이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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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조선사 교양서를 쓰고 있는, 딴지가 배출한 또 하나의 잉여 작가
딴지의 조선사, 문화재, 불교, 축구 파트를 맡고 있슴다.
이 네 개 파트의 미래가 어둡다는 거지요.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시시콜콜 조선부동산실록』 신간(*´∪`)

https://www.instagram.com/ddirori0_0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