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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그 날은 제가 제대로 된 책을 처음 읽은 날이었죠. 연일 이어지는 장마 덕분에 집안이 어두컴컴한 날, 저를 따돌리고 오락실로 도망간 형 때문에 울다가 책 하나를 집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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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 위인전』이었습니다.

 

“만주벌판 달려라 광개토대왕”이라는 노래 가사를 전혀 모를 때였지만, 위인전에서 그려지는 광경은 어린 제 가슴이 웅장해지는 내용의 일색이었어요. 광활한 만주벌판을 달리며 연전연승을 거듭하는 광개토대왕의 호쾌한 풍모와 크고 아름다운 고구려의 영토 그림은 역사의 참맛을 알게 해준 결정적 장면이었죠.

 

그리고 그때였을 거예요. 제 가슴에서 환빠의 새싹이 틔어난 것은.

 

 

1일 3권 역덕 학창생활

 

고등학교의 저는 쭈구리였습니다. 지금도 쭈구리 시절은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아있습니다. 몇 년 전, 편의점 일을 하고 있을 때, 한 손님과 사람과 시비가 붙었는데, 그가 저의 출신 고교를 알자마자, “너 ㅇㅇ고의 ㅇㅇㅇ알지? 걔 내 친구야”라는 말로 저를 비웃었습니다. 그때 저는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아무 말 없이 데꿀멍 당해버렸죠.

 

ㅇㅇㅇ는 학교 전체의 일진이었는데, 운동도 잘하고 인기도 많아 제겐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가 저를 딱히 괴롭힌 건 없지만, 그의 앞에만 서면 마치 상전 앞의 노비가 된 것 마냥 수구리고, 긴장하며, 어버버버 하곤 했죠. 그랬던 기억이 성인이 되고 난 뒤에도 이어지다니,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죠?

 

그 시절의 저를 위로하고 꿈꾸게 해준 것은 오직 책 속의 세계뿐이었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하루키의 마지막 세대’라고 생각하는데, 하루키에서 시작해 여러 일본 문학 작가의 소설과 함께 한국의 역사 관련 교양서는 제 대출 리스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상실의 시대』 속 야한 장면이 나오는 페이지를 속지에 모조리 기록하자 『상실의 시대』는 도서관 대출 순위가 급상승하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고등학교 3년을 통틀어 제가 가장 빛났던 시기랄까요?)

 

고3이 되자 저의 일상은, 그야말로 간서치(看書痴) 이덕무도 울고 갈 만큼 미친듯한 책덕후의 삶으로 채워졌습니다. 일찌감치 수능 포기 선언을 해버렸기 때문에(자세한 것은 '서른 살 새내기입니다만 1 : 10년간, 고졸(링크)'을 참고해주세요), 아침 1교시가 끝나자마자 도서관으로 달려가 한 권을 빌려 수업 시간에 몰래몰래 읽고, 5교시가 끝나면 다시 두 권을 빌려 야자 끝날 때까지 읽었습니다.

 

그때 읽었던 역사 관련 책들은, 국사 교과서와 서점에 즐비했던 역사 만화들, 여러 대체 역사 소설과 이덕일류 역사 교양서들, 그리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역사 교양서들. 그 밖에도 서점에 즐비하던 역사 만화들, 그리고 국사 교과서와 참고서가 있습니다.

 

모든 책을 읽고 저는 이런 의문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왜 우리는 저 만주 벌판을 잃어버려야만 했던 것일까?’

‘왜 우리는 이기론이니 저기론이니 하면서 쌈박질만 하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미개한 상태로 놔뒀어야 했던 것일까?’

‘왜 우리는 끊임없는 외침을 당했으면서도 끝끝내 남의 나라의 속국이 되고야 말았던 것일까?’

 

 

환빠 제1기 : 의혹기에 빠지다

 

이러한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가운데, 저는 도서관에 꽂혀있던 어느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제목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 ‘5만 년’, ‘민족’, ‘숨겨진’ 따위의 단어가 들어간 꽤 긴 제목의 매우 두꺼운 책이었죠.

 

장대한 내용이었지만, 핵심 내용은 간단했습니다. 졸라 오랜 옛날, 환인이 몽고의 최전성기 따윈 가뿐히 씹어먹을 만큼의 영토를 가진 나라를 세웠고, 좀 뒤에 환웅 치세와 단군 이래를 거쳐 수천, 아니 수만 년간 그 영광은 이어져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아말로, 충격과 공포였습니다. 세계사 과목 중 로마나 몽고 파트에서나 볼 수 있던 강역 지도, 그럴싸하게 편집된 고고학적 근거들, 소위 강단사학계에 대한 집중적인 공격들. 교과서에는 분명히 없었던 수많은 단군의 계보와 홍산 문명(그들의 표현대로), 한사군 요동설, 킹갓제네럴백제설 등. 기본적으로 ‘도서관 = 지식의 성전’이라고 교육받아 온 저에게 이런 류의 책은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이우혁의 소설 『치우천왕기』도 한 몫 거하게 했었죠)

 

하지만, 정말 다행인 건, 제 왕성한 호기심이 관련한 주제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보게 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구체적인 반박 자료를 자세히 따져 보려면 그만큼의 지식 수준이 필요했습니다. 아무리 사료와 논문을 갖다 대더라도, 전체적인 맥락과 세부적인 학문적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죠.

 

‘환단고기 위서론’을 주장하는 자세한 글들, 고대사 학술서적과 인터넷 상의 반론들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저는 기어코 ‘환빠 제1기 : 의혹기’가 되고야 말았습니다. 고구려의 최대 강역을 교과서보다 1.5배 쯤 넓게 잡고, 한사군의 위치를 한반도 외부에 잡으며, 백제의 요서경략설을 굳건한 팩트로 믿는 수준입니다. 여기에 더 나아가, 

 

‘설사 『환단고기』가 위서라 하더라도, 그 내용을 담고 있는 더 오래된 책은 아직 발굴되지 않은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을 품게 되었습니다.

 

(킹무위키에 따르면, 환빠는 제1기 : 의혹기, 제2기 : 확신기, 제3기 : 비약기, 제4기 : 신앙기, 제4기 : 실행기로 나눠집니다. 초록불 님의 블로그 만큼, 킹무위키는 환빠에 관해서라면 굉장한 퀄리티를 자랑합니다)

 

지금이야 인터넷 상의 밈이 되어버렸을 뿐이지만, 그 시절엔 환빠가 국회도 진출하고 역사 코너의 상당수를 점유했을 만큼 나름 진지한 일종의 사회운동이었습니다. 사실, 그 기원은 더 오래됐습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는데, 아버지의 서재에 『규원사화』나 『단』, 『천부경』, 『소설 일본서기』 같은 책이 있었습니다. 다 80년대에 나왔던 책이었죠.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 세대가 가장 힘을 발휘했던 시대인 90~00년대에 환빠는 전성기를 맞이했던 것이죠. 아마도 NL을 비롯한 거대한 민족주의 담론이 한반도를 뒤덮었던 시기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그러했듯, 기존에 배우던 역사에 관해 가졌던 그들의 안타까움도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개쩌는 민족인데, 왜 뒤로 올수록 역사는 허접하지?”

 

 

‘국사(國史)’에 대한 관점이 바뀌던 순간

 

다행인지 불행인지, 환빠질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환빠류 서적에서 제시하는 주장의 근거들이 일종의 정황증거와 추측, 그것도 아니면 “그래야만 한다.”라는 확증편향이었고, 슬슬 그것에 지쳐가기 시작했죠. 그에 비례하여 커지는 갈증은 결국, 저를 이글루스 블로거 초록불 님의 블로그로 향하게 하였습니다. 초록불 님의 블로그를 읽었던 단 며칠 동안, 몇 개월간 저를 괴롭게 한 환독은 깨끗하게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역사에 대한 고민과 안타까움은 남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환빠가 될 뻔한 까닭은, 우리나라의 역사가 굴종과 굴욕의 역사만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닌가, 라는.

 

생각해볼까요. 저는 200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죠. 그런데 왜 저는 삼전도의 굴욕에 부들대고, 이순신 장군의 활약에 가슴이 웅장해지는 것일까요? 무엇이 저와 그들을 엮고 있는 것일까요? 왜 우리는 고구려를, 신라를, 백제를 다 같은 민족이라는 인식을 하면서 신라의 삼국통일을 민족에 대한 반역행위이며 만주벌판을 상실하게 된 결정적 장면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요?

 

제가 품고 있던 많은 고민과 의문들은, 수백수천 년 전의 국가와 그 백성까지 저와 같은 ‘민족’으로 엮고 있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는 결론이 들었습니다. 김연아와 박지성이 대활약하는 것은 나와 같은 국적의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뽕이 차오르게 하죠. 그런데 광개토대왕과 저는, 단순히 ‘민족’이라는 것으로 엮기에, 너무나 먼 시간과 너무나 많은 차이가 있지 않은가요.

 

국사 교과서는 오랫동안 두 가지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소위 재야사학계에서는 굴종과 굴욕의 역사만을 가르친다는 비판을, 역사학계에서는 국뽕이 기반한 뽕사를 가르친다는 비판을 보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역사를 가르칠 것인가 하는 거대한 문제에 대해 제가 답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제 경우에는, ‘미시사’에서 많은 해답을 찾았습니다.

 

 

천사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

 

제가 가졌던 고민과 문제의식은 새로운 류의 교양서를 읽으며 사라졌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관점과 호기심의 전환이랄까요. 노대환의 『조선의 아웃사이더』, 정민의 『미쳐야 미친다』, 강명관의 『조선의 뒷골목 풍경』, 고미숙의 『열하일기 :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등, 환빠에서 벗어나면서부터 읽게 된 이런 책들은 진짜로 제가 원하는 역사, 제가 배우고 싶었던 역사가 무엇인지 알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역사 교과서 첫 장에서 에드워드 카(Edward H. Carr· 1892~1982)의 유명한,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을 배웁니다.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는 사료가 많을수록 충분하죠. 영정조 시기를 다룬 수많은 교양서 덕분에 이제 이 시기의 사람들과 우리의 대화는 꽤 말이 통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8세기 이후를 다루는 교양서는 절망적으로 적습니다. 우리의 인식 속에서 18세기 이후란, 세도정치라는 망국행 급행열차를 타고 있음에도 문호를 개방하지 않아 결국 남의 속국이 되고야 말았던 때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18세기를 조망한 책은 잘 팔리지도 않죠. 저 또한, 별 관심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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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조선 시대의 편지 자료를 뒤적이면서 제가 몰랐던 18세기의 풍경이 너무나 생생하게 다가왔습니다. 명문가 안동 의성 김씨의 자손으로 막대한 부를 물려받은 파락호 김용환(金龍煥, 1887년 ~ 1946년)의 생애는 여러 짤방 덕분에 유명해졌습니다. 김용환의 할아버지 김흥락(金興洛, 1827 ~ 1899)과 김흥락의 사촌인 김희락(金熙洛. 1761년 ~ 1803년)이 일본 헌병에게 무릎을 꿇게 되는 사건을 보게 됩니다. 그 뒤로 도박장을 전전하면서 집안 팔아먹은 사람이라고 욕을 먹지만, 사실은 독립 자금을 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위에서 소개한 김흥락의 아명은 ‘차돌이’입니다. 의성 김씨 집안에는 차돌이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쓴 한글 편지가 많이 남아 있는데, 편지에 그려진 차돌이는 경제권을 쥐고 엄마에게 돈 한 푼 안 주는 짠돌이면서, 엄마가 해주는 섟박지를 맛있게 먹는 먹방러이자, 과거를 준비하면서도 여러 환경 때문에 눈치를 보는 ‘공시생’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의 제 모습, 혹은 제 친구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수많은 편지의 담긴 그들의 사랑하고, 아파하고, 즐거워하고, 실망하는 모습들에서 삼국지에 열광했던 그 시절의 설렘을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삼국지는 삼국지로 있을 때 빛나지, 위진남북조시대라는 거대한 시대관에 갇히면 허망한 짧은 세월일 뿐이죠.

 

역사도 그렇습니다. 쪼개고 나눠서 볼수록 하나의 사건, 한 인물, 자그마한 시대가 갖는 의미가 부풀어 오릅니다. 우리는 그들의 생생한 모습을 보면서 그들을 현재로 불러올 수 있으며, 또한 시대성을 음미하면서 우리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 디테일한 잔재미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우리의 민족은 개쩌는 민족인데 뒤로 갈수록 왜 역사는 허접하지?’

 

라는 고민은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왜냐면, 제가 그들을 읽을 때처럼, 현재를 사는 우리의 소박한 일상도 누군가에게는 큰 의미를 줄 수 있는 역사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앞광고

 

혹자는 저의 이런 얘기에

 

“결국 굴종과 굴욕의 역사라는 문제의식을 회피한 것뿐이지 않은가?”

 

라고 비판하실지 모릅니다.

 

그런데 저는 굴종과 굴욕의 프레임에 갇혀 사실을 왜곡, 나아가 없던 사실을 재창조하기보다, 그저 있는 사실 내에서 즐거움을 찾아 나가기를 택했습니다. 취미 생활은 기본적으로 즐거워야 하는 것 아닐까요? ‘위대한’, ‘웅장한’ 역사임을 피를 토하며 역설하고 싶은 생각은 1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제 역사관은 두 가지로 정리되었습니다. 첫 번째, 거대 담론과는 적절한 거리 두기. 두 번째, 깨알 같은 개인과 시대의 상황에는 적절한 감정이입.

 

이 책은 그런 관점에서 썼습니다. 시대 정신, 거대 담론과는 적절한 거리 두기를 하면서, 그들의 감정과 신세 한탄에 깊게 이입하며 제멋대로 윤색과 편집을 가했죠. 학자라면 해서는 안 되는 글쓰기지만, 저는 학자가 아니라 그들과 대화하려는 수다쟁이라서 괜찮다는 심보로 썼습니다.

 

딴지에 올린 첫 글은 불교였고, 두 번째 글은 역사였습니다. 그동안 함량 미달의 기사로 많은 분들의 시력에 위협을 가했던 점,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죽지않는돌고래 편집쨩은 제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빵꾼님은 자기가 쓰고 싶어서 쓰는 글과 남이 시켜서 쓴 글의 퀄리티 차이가 너무 나요.”

 

덧붙여,

 

“그러니까 자기가 쓰고 싶은 글로 장기 연재를 해보는 게 어때요?”

 

그 말을 듣고 썼습니다. 무려 17년에. 딴지 기사 연재를 야심차게 노리고 썼지만, 지금도 알 수 없는 죽돌 편쨩의 높은 커트라인을 통과하지 못하고 연재에는 실패했죠. 그런데 작년, <서른 살, 고졸입니다> 시리즈를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은 편집부를 퇴사한 코코아 팀장이 출판 권유와 함께 꿈과 용기를 주었고, 30여 군데에 원고 투고를 한 끝에 드디어 발행하게 된 책입니다.

 

즉, 제 인생의 첫 책이자, 역덕후 생활을 결산하는 책입니다. “역사학자, 또는 작가가 되지 못할 거라면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아!”라고 마음먹었던 쭈구리 고3의 꿈은 10여 년이 지나 드디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파토님, 필독님, 홀짝님, 펜더님 등 딴지의 쟁쟁한 필진에 비해 너무나 부족한 글빨로 기사를 써왔습니다. 그래서 첫 책 발간도 늦었습니다. 그래도 딴지 편집부와 제 졸고를 읽어주신 여러분들 덕분에 꿈을 이뤘으니, 비록 지금은 공부하는 중이라 많은 기사를 쓰지 못하지만,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한 마디만 더 PR하고 싶습니다. 제가 너무도 쓰고 싶어서 쓴 글입니다. 이 문장이 제가 드릴 수 있는 가장 자신감 있는 멘트입니다. 무명 작가의 졸고를 믿고 발간해 준 들녘 출판사의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딴지의 오래된 홍보 문구처럼 두 권 사서 한 권은 버리고 한 권은 라면받침으로 써주세요.

 

모두, 감사드립니다. 이 시리즈는 앞으로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시시콜콜한 조선의 상소들』로 이어갈 예정입니다. 뻔뻔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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