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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부터 2007년까지 : 불교 중심의 반정부 운동과 군부의 회유

 

88년, 한국이 그러했듯, 민주화 운동의 불을 지핀 건 학생들이었다. 어느새 승려들은 운동의 중심이 되었고, 1988년 8월 8일 8시 8분(8888운동)에 반정부 시위를 전개하면서 ‘복발 운동’을 시작한다. 미얀마 전역에 있는 4만 8천 개의 절, 그리고 약 30만 명의 승려는 반정부 네트워크의 중심이 된 것이다. 이윽고 89년, 군부가 모든 유형의 정치적 반대에 대한 탄압을 시작하자, 절간은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가 되었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가들이 명동 성당이나 조계사에 숨어 들어가듯, 그들도 그러했다.

 

90년, 7천 명의 승려들이 88년 행진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행진하자, 일부 군인이 이들 향해 발포하여 승려 2명을 포함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다. 이 사태는 그동안 관망하던 미얀마 최고 ‘큰스님’들의 지지를 끌어냈고, 복발은 전국적 운동으로 확대되었다. 그런데 군부는, 그동안 미얀마 사람들이 절대 상상할 수 없던 방식으로 탄압한다. 군대가 절간을 포위하고 격리하거나, 승원을 몰수하고, 최고 권위를 지닌 스님을 체포한 후 승적을 박탈하고 추방하는 일을 벌인다.

 

군부 2기는 새로운 전략을 모색했다. 승가와의 대립이 계속해서 역효과만 거두게 되자, 아예 자신들이 ‘진짜 불교’임을 어필하기 시작한다. 미디어를 통해 불교적 수사 표현을 계속 내보내면서, ‘위빠사나’와 ‘카르마’ 이론을 통치 정당화의 근거로 사용한다.

 

수행자들의 전통적인 명상법이었던 위빠사나 수행은 우 누 총리의 노력으로 대중화했는데, 군부는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였다. 즉,

 

“열심히 수행하다 보면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무상하다는 걸 알 거야. 그러니까 정치 이런 거 관심 두지 말고 열심히 수행이나 하자”

 

라는 논리로, 자신들의 정책 실패를 감추고 반정부 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훼방 놓았다. 물론, 일선에 있는 수행자들은 선의를 기반으로 위빠사나를 가르쳤지만, 군부는 그 현상을 자신들의 것으로 이용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겠다.

 

또 하나는, 일반인에게도 익숙한 업보, 즉 카르마(karma) 이론이다. 후려치면, 이런 식이다.

 

“지금의 지도자는 전생에 졸라 쩌는 공덕을 쌓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의 통치는 정당하다. 또한, 그들에게 도전하는 것은 우주 질서에 대한 위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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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에요 무성이형,,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떠받치는 다르마(dharma) 이론처럼, 업설은 그들에게 현재의 부조리를 합리화하는 근거로 사용되었다. 업설은 원래 다르마에 반하여 행위의 책임을 묻는 아이디어였는데,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이러한 프로파간다를 주장하면서, 정치적으로는 승가 정치세력을 회유하고, 반대파 승려들은 탄압하며 주도권을 공고히 해 나갔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행위는 불교에 기반한 민주주의적 메시지를 던지는 아웅 산 수치 여사 보다, 군부가 더 ‘정통 불교’임을 어필하는 전략이었다.

 

샤프란 혁명, 그 이후

 

승려들이 주도했던 2007년의 샤프란 혁명은 비록 그 자체로는 실패했지만, 서방의 적극적인 참여를 끌어내었을 뿐 아니라, 2008년 사이클론 ‘나르기스’가 미얀마를 정통으로 때리면서 군부는 더 이상 힘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나르기스 사태 때, 승려들은 적극적으로 구호 활동을 펼치며 민중들의 스승으로서 임무를 다 했다.

 

결과적으로, 미얀마의 불교는 2015년~2021년 동안 유지되었던 아웅 산 수치 여사의 민주화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2012년, 새로운 불교 세력이 등장하여 미얀마 정치사 전면에 선다. 이른바, 배타적 민족주의를 핵심으로 두는 강경 불교 단체, 마바타(Mabatha)의 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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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니의 상이 따로 없다

 

민족종교 보호를 위한 애국연합, 마바타의 수장이자 승려인 위라투는 페이스북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반 무슬림 정서를 부추겼다. 과거, 군부는 이슬람 민족 거주지 경계에 승려의 시신을 두고, “무슬림이 죽였다”라면서 버마족을 부추겼다. 마바타 역시, 온갖 가짜 뉴스와 혐오 뉴스를 페이스북으로 보내 여론을 움직였다. 아웅 산 수치 여사는 선거 승리 때문에 반 무슬림 여론과 타협해야만 했고, 이는 수치 정권의 발목을 잡는 일이 된다. 로힝야족 사태의 최대 원흉은 군부였는데, 욕을 가장 먹는 건 수치 쪽이었다.

 

어쨌든, 미얀마 최고 불교 위원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마바타는 그 세력을 확대하며 미얀마 불교를 극우적으로 이끌었다. 미얀마 불교가 움직였다는 이야기는 미얀마가 움직인다는 말과도 같다. 군부 쿠데타는 그 틈새를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파고든, 반 이슬람 정서를 먹고 자라는 괴물이다.

 

이상한 일이다. 민주화를 이끌었던 수 천 명의 스님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순간이 다가온다

 

미얀마 승가의 기본적인 자세는, ‘세속의 일은 세속에게’이다. 즉, 기본적으로는 세속과 거리를 두고 수행에 주력해야 한다는 스탠스를 취한다. 정치에 관여할 때에도, 몇 번의 쿠션을 거치는 귀찮은 과정을 거친다. 샤프란 혁명에 나섰던 승려들의 다수도 다시 명상하러 절간으로 돌아갔다. 그런 승가가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군부가 승가를 직접 터치했다는 ‘실수’에 기인한다.

 

즉, 오랜 세월의 경험으로 군부는 승가를 ‘이용’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들의 권익을 직접 건드리지는 않고, 오히려 겉으로는 고위 승려들을 숭상하는 모습을 연출한다. 이번 시위에서도 주요 종교시설을 개방하는 ‘여유’를 보여주었다. 또한, 자신들과 아주 코드가 맞는 세력(마바타)를 이용해 배타적 민족주의를 자극한다. 로힝야족 사태의 명분 중 하나가 ‘불교를 보호한다’라는 것이었기 때문에, 미얀마의 불교 세력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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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심장, 쉐다곤 파고다

불교 성지가 민주화 운동의 중심지가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군부는 파고다의 전면 개방을 선언했다.

 

작금의 심각한 상황에서 불교계의 뚜렷한 행동이 나오지 않았던 것도 그것의 연장 선상이다. ‘미얀마는 곧 이슬람이 될 것이며 불교도는 탄압받을 것’이라는 마바타의 주장에 미얀마 사람들은 상당히 동조했고(다시 생각해보니, 만악의 근원은 네 윈이 아니라 영국이다), 쿠데타의 주역인 민 아웅은 로힝야족 학살을 주도한 인물이다. 로힝야족 학살 때만 해도, 적지 않은 불교도가 그 명분에 동조했다.

 

물론, 피 흘리는 중생을 보고도 모른 척하는 승려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을 주민들과 함께 체포된 시위대의 석방을 위해 경찰서를 찾는 승려 2명도 있었고, 시민들에 대한 구호 활동을 펼치는 승려들도 등장했다. 또한, 2007년 샤프란 혁명에 참여했던 승려 30명들은 시민들과 함께 평화 행진 시위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에 반대하는 마바타 계열 승려들이 승복을 입고 시위에 참여했던 시민들의 차를 박살 내는 안습한 일도 같이 생겼다. (https://news.myantrade.com/archives/18177 사진 참조)

 

미얀마에는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종파만 9개이며, 영향력을 갖춘 전국 단위 승단 조직은 8개다. ‘미얀마 불교’로 퉁치기에는 어려운 각 집단의 생각의 차이가 분명히 있다. 마바타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그나마 고무적인 것은, 정치적으로 가장 영향력을 가진, 보수적인 스탠스를 취해왔던 미얀마 최고 불교 위원회가 군부에 반하는 메시지를 던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9개 종파의 대표기구인 미얀마 불교협회도

 

“군부가 아무리 큰 힘을 가졌더라도 살생과 무력을 사용해선 안 된다. 방화, 총기 사용, 화학 무기 등 폭력에 대한 책임은 결국 (현재 정권을 장악한) 국가 지도자들에게 되돌아갈 것이다.”

 

라고 말했다. 결국, 승가가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동남아시아든, 동북아시아든, 모든 불교 승려는 속세를 떠남을 지향한다. 그러나 결코 속세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속세가 있기에 탈속세도 존재할 수 있다. 미얀마의 고승들이 불심 깊은 미얀마인들이 피 흘리는 광경을 언제까지 침묵할 순 없을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그들이 나서주기를 희망한다. 모든 중생의 스승으로서, 그 역할을 다 해주기를, 머나먼 한국의 일개 불교도로서 발원한다. 하나 더, 현재 로힝야족, 까렌독립군 등 일부 소수 민족이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민주화 운동의 성공이 미얀마 민족 간 화합의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뱀발

 

미얀마 사람들은 현지 불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또 우리는 어떻게 그들을 도울 수 있을까? 그 점을 묻기 위해 미얀마의 불교도와 대화를 나눌 예정이다. 다음 주 기사에서 그 내용을 소개하겠다.

 

<계속>

 

참고 문헌

 

이중남, 「버마 승가의 저항 역할에 관한 역사적 연구」, 성공회대학교 석사논문

정기선, 「미얀마 불교의 역사와 사회적 위상」, 동국대학교 석사논문

미얀마뉴스 애드쇼파르 news.myantrade.com

 

 



 

 

편집부 주

 

독자 여러분의 성원 덕에 

필자의 책,<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여전히 잘 팔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번엔 후속작,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이 나왔다. 

 

안 사줄 것 같이 하다가 기사가 올라오면

슬그머니 주문하는 샤이 독자 여러분 덕에 

필자는 눅눅한 골방에서 

조금 덜 눅눅한 골방으로 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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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조선사 교양서를 쓰고 있는, 딴지가 배출한 또 하나의 잉여 작가
딴지의 조선사, 문화재, 불교, 축구 파트를 맡고 있슴다.
이 네 개 파트의 미래가 어둡다는 거지요.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시시콜콜 조선부동산실록』 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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