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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내용이 같아도 견적은 다를 수 있다

 

바다에 젖은 나비 꼴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언짢은 듯, 풀이 죽어있는 듯한 상태의 나는 한 마디로 마음이 상했다. 누구 때문에? 이게 모두 D업체 탓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지 않다. 

 

이해하기 힘들지만 ‘계약 전에는 견적을 내주지 않는다’는 영업 방침을 세우는 건 그들의 자유다. 내 입장에서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D업체와 계약을 안 하면 그만이다. ‘쎄하고 무시당한 기분’은 내 감정의 필터가 크게 작용한 것이므로 더욱이 그들을 탓하기 어렵다. 

 

아직 견적 상담이 몇 건 남아 있다. 그런 다음에는 견적서 메일이 속속 날아들 것이다. 마음을 가라앉히며 견적과 관련된 인테리어 카페 글을 더 맹렬하게 눈팅했다. 카페 글로 확인한 다른 이들의 간접 경험과 오늘 있었던 네 차례의 견적 상담을 떠올리자 막연히 알고 있던 몇 가지 사실이 한결 선명해졌다.

 

인테리어 사진1.jpg

 

인테리어 업체들은 각자의 상황과 규모에 따라 챙겨야 하는 마진이 다르다. 오늘 만난 네 곳의 업체만 해도 그렇다. ‘동네 인테리어’스타일이라고 말했던 B업체는 사무실 면적도 가장 좁았고, 상주해 있는 직원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사장님 혼자 일하는 1인 업체라 보아도 무방했다. 

 

반면 D업체는 내가 대충 눈으로 훑어보기에도 너덧 명 이상의 직원들이 사무실에 상주하여 근무 중이었다. 당연히 사무실 면적도 B업체 보다 몇 배는 넓었다.

 

단순 비교해도 B와 D는 한 달 고정비의 사이즈가 다를 것이다. B업체에 비해 D업체는 사무실 임대료부터 인건비, 기타 잡비까지 모든 면에서 드는 돈이 많을 것이고 따라서 같은 공사라도 마진을 더 가져가야만 수지타산이 맞을 거다. 

 

D업체가 B업체 보다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공사 건수가 많을 것이므로 건당 마진율의 차이가 반드시 존재하겠느냐는 의문도 들 법하지만 척 보기에도 D업체는 B업체보다 제공하는 서비스의 양과 질 모두 앞설 것이 자명하기에 같은 공사라도 견적이 비쌀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미리 말해 둘 것은, 인테리어의 ‘결과’가 B업체에 비해 D업체가 무조건 더 나을 거라 말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결과적 만족도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갈릴 수 있는 부분이고 시공의 완성도 또한 B업체가 D업체에 비해 처진다고 단언할 수 없다(이 경우 높은 확률로 인건비가 센 고급 인력을 동원한 곳의 완성도가 높은데, 비용을 많이 받는다고 해서 무조건 더 고급 인력을 고용한다고 볼 순 없기 때문에).

 

 

견적과 '시공의 완성도'가 꼭 비례하는 건 아니다

 

위에서 말한 ‘서비스의 양과 질’이란 예컨대 이런 것이다. 

 

D업체를 방문했을 때 본 너덧 명 이상의 직원들 중에는 분명 인테리어 디자인 업무를 하는 분도 있었을 거다. 이런 업체는 인테리어 공사를 실행하기에 앞서 시공 후 완성된 모습을 구현한 3D 렌더링 이미지를 의뢰인에게 제공한다. 공사 현장의 실측 내용과 의뢰인의 요청사항을 반영하여 ‘공사 끝나면 이렇게 나옵니다’하고 보여주는 것이다. 

 

렌더링1.JPG

3D 렌더링 예시. 본문 속 디자인과 관련 없음.

 

의뢰인이 자기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열심히 업체에 설명했는데 막상 공사가 끝나고 보니 ‘이게 뭐야!’ 하지 않기 위한, 의뢰인과 업체 간 소통의 삑사리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랄까. 게다가 동시에 여러 건의 공사를 수행할 수 있는 인테리어 업체일수록 시공 건수가 많고 디자인 경험이 풍부할 가능성이 높으며, 전문 인력을 두고 있으니 시공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디자인의 퀄리티가 뛰어날 여지가 충분하다. 어디까지나 ‘가능성’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전 글에서 ‘동네 인테리어’ 스타일이라고 말한 것이 무시하는 표현이 아님을 밝힌 바 있다.   ‘인테리어 공사를 계획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돈이 더 들더라도 규모가 있는 곳을 택해야 한다’는 뜻으로 한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취향과 예산에 따라 인테리어 공사에 기대하는 바가 다르다. 

 

미용실 갈 때마다 시상식에 참여하는 배우나 결혼식을 앞둔 신랑, 신부와 같은 기대치를 품는 사람은 부담이 되더라도 비싼 돈 주고 강남의 유명 헤어 메이크샵을 찾아야 한다. 그런 큰 기대감이 없더라도 대신 큰 계좌를 가진 사람은 부담 없이 그런 곳을 밥 먹듯 갈 수 있겠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 정도 기대와 목적을 갖고 머리를 하는 것은 아니며, 주머니 사정이 동일하지도 않다. 우리 동네 미용실이 그런 비싼 헤어샵만큼 내 머리를 잘해주지 못할 것이라 단언할 수도 없다(심지어 결혼식 당일 비싼 돈 주고 헤어, 메이크업하고도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인테리어에 너무 큰돈을 들이고 싶지 않다면, 내가 원하는 인테리어 스타일을 무난하게 해줄 수 있겠다는 나름의 확신이 있다면 규모가 작은 동네 인테리어 업체를 찾는 편이 더 합리적이다. 규모가 작다고 일은 덜 꼼꼼하게 한다고 생각하면 편견이다. 

 

비록 3D 렌더링 된 결과물을 미리 받아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소통의 삑사리를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더 자주, 많이 확인하고 소통의 횟수와 양을 늘리면 된다(대신 그걸 귀찮아하지 않는 사장님을 만나야 한다). 특히나 세입자를 위한 인테리어를 계획하는 집주인들에게는 공사 현장 주변에 있는 동네 인테리어 업체를 찾는 것이 최선일 수 있다. 큰 돈 들이지 않으면서, 무난하고 깔끔하게, 그리고 같은 구조의 현장 경험이 풍부한 곳이니까. 

 

하여, 같은 공사 내용이라도 견적은 다를 수 있다. 각자의 여건에 따라 챙겨야 하는 마진 폭이 다르고 스스로 ‘이 정도는 받아야겠다’고 설정한 액수도 다를 테니까. 

 

결론은 늘 같다. 

 

인테리어 업체를 정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깥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내가 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정리하고 거기에 가장 부합하는 업체를 찾아서 과하다 싶을 만큼 자세히 설명하고 묻자. 돈 더 주고 더 큰 곳에 맡길지, 규모는 작지만 저렴하고 무난하게 할 수 있는 곳을 선택할지 답은 내 안에 있다. (이 순간만큼은 규모가 크든 작든 견적이 비싸든 싸든 눈탱이로 향하는 지름길은 우리 곁에 늘 열려 있다는 사실 따위는 잠시 잊어주자)

 

어느새 바다에 젖은 나비의 날개가 바싹 말랐다.

 

 

인테리어 견적 상담기 2일 차 (상담기 1일 차 기사 링크)

 

E업체

 

전날 전화 문의를 통해 시간을 정하고 오전 9시에 찾아간 이곳은 블로그와 인스타에 시공 사례가 비교적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곳이었다. 뭐랄까 업체 이름과 로고, 블로그에서 풍기는 전반적인 느낌이 경쾌하고 밝은 느낌이었는데 사장님을 만나보니 내가 상담한 모든 업체 가운데 가장 젊어 보였다. 

 

어제 네 곳의 업체를 다니며 했던 말들을 똑같이 되풀이하는 중에도 틈틈이 새롭게 배운 것들을 녹여내며 상담에 임했다. 내가 대단히 독특한 스타일의 인테리어를 원하는 게 아니다 보니 대부분의 업체 사장님들은 대충만 듣고도 뭘 원하는지 대번에 알아챘다. 말도 잘 통했고, 이것저것 설명도 잘 해주셔서 내심 기대가 컸다. 

 

“견적서는 3일 내로 메일로 보내드릴게요”

 

이곳은 결론부터 말해야겠다. 3일이 지나도 견적 메일은 오지 않았다. 4일째 되는 날 전화를 걸었다.

 

“아, 죄송합니다. 일이 너무 많아서… 내일까지 꼭 보내드릴게요”

 

다음날에도 견적은 오지 않았다. 

 

최병장 빡침.jpg

 

나도 더 이상 전화하지 않았다. 뭐지? 막상 견적 낼 생각을 하니 별로 돈이 될 것 같지 않았나? 아니면 같은 기간에 공사할 다른 건수가 있었나? 그냥 바빠서 약속을 어기다 보니 자신도 면이 살지 않아서 그냥 포기한 건가. 알 수 없다. 딱히 궁금하지도 않았다. 별일이 다 있다.

 

F업체, G업체

 

온라인 견적 문의 창구가 있길래 작성해놓고 연락을 기다렸다. 혹시나 확인을 안 했을까 싶어 전화로 견적 문의 넣어두었다고 알렸다. 연락이 오면 미팅 일정을 잡으려 했는데… 두 곳 다 연락이 없다.  뭐, E업체에 비하면 고맙긴 하다. 헛걸음조차 안 하게 해줘서.

 

H업체

 

여긴 엄밀히 말해 둘째 날 방문한 곳은 아니고, 생각보다 둘째 날 방문할 곳이 줄어서 당일에 전화로 상담이 가능한지 문의했던 곳이다. 이날은 시간이 되지 않는다 하여 서울에 올라오고 나서 카카오 채널톡으로 견적 의뢰 내용을 정리해서 보냈다. 다음날 대략적인 견적이 돌아왔고, 미팅 일정을 잡고 1주일 후에 방문했다. 

 

사장님 포함 너덧 명의 직원이 일하는 이곳은 첫날 방문했던 C업체 못지않게 화이트 미니멀 인테리어 시공 사례가 블로그와 인스타에 많이 포스팅되어 있어서 관심을 가졌던 곳이다. 인테리어 카페에 검색해보니 추천 댓글도 몇몇 눈에 띄었다.

 

미팅 자리에서 만난 사장님은 지금까지 만난 여느 업체 사장님들과 마찬가지로 무심하고 시크한 느낌이었지만 설명은 자세하게 잘 해주셨다. 수차례 견적 상담을 해오면서 같은 질문이더라도 사람마다 답이 다른 부분이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아마도 각자의 경험과 취향이 반영돼있기 때문이겠다. 수일 내로 견적 메일을 보내주시겠다고 한다. 

 

이로써 모든 견적 상담을 마쳤다. 견적 메일을 받고서 어느 곳하고도 계약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검색과 상담을 이어가야 하겠지만 솔직히 더 알아본다고 대단히 남다르게 상담을 해주시거나 특별한 견적을 내줄 곳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충분히 알아봤다... 고 믿고 싶었다.

 

 

견적을 기다리다. 그리고 업체를 선정하다

 

내가 원하는 인테리어 스타일의 견적이 대충 어느 선에서 나올지는 인테리어 카페 견적 후기 글을 통해 짐작하는 바가 있었다. 그럼에도 견적 메일을 기다리는 내 심정은 수능 점수 발표를 기다리던 때와 비슷했다. 가채점을 해봐서 대략 몇 점이 나올지는 예상되지만 그럼에도 결과물을 받아들기까지 떨며 기다리는 기분. 이왕이면 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업체의 견적이 내가 기대하는 만큼 저렴하게 나와주길 기대하는 마음도 얹었다. 이게 뭐라고, 메일이 한 통씩 올 때마다 떨리는 손으로 문서를 열었다.

 

메일 클릭.JPG

 

가장 저렴한 견적이 나온 곳은 B업체였다. 견적 상담이 끝나자마자 ‘한 4천쯤 나오겠네!’ 하며 쿨하게 예상가를 던졌던 사장님 말씀대로 견적은 부가세를 제외하고 딱 3천 9백 3십만 원이 나왔다. 요청한 대로 꽤 상세하게 견적을 뽑아주셨음에도 정확하게 4천만 원 언저리의 견적이 나온 건 사장님의 내공일까 기술일까. 미천한 내 눈으로는 가늠하기 어렵다.

 

가장 비싼 견적은 A업체에서 나왔다. 부가세를 제외하고 약 5,300만 원이다. 다른 곳과 비교했을 때 샷시 비용이 대략 40% 정도 높게 나왔는데 샷시야말로 실측을 해야 정확한 견적이 나오는 부분이니 그렇다 치고 그 외 철거나 타일, 목공 등 전반적으로 다른 곳에 비해 견적이 높게 잡혀있었다.

 

실측을 의뢰하여 최종 견적까지 받을 두 곳의 업체는 C와 H로 정했다. 견적을 내줄 수 없다는 D와 견적을 내주기로 해놓고 생깐 E, 아무런 응답이 없었던 F와 G는 그렇다 치고 A, B, C, H 중에서 하필이면 견적가가 제일 낮은 A와 제일 높은 B를 제외한 건, 내가 기계적으로 올림픽 체조 점수 산정 방식을 적용했기 때문은 아니다. 

 

업체 선정에 있어 견적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부정하지는 않겠으나 최저 4천만 원에서 최고 5천 3백만 원 사이의 갭이라면 못지않게 중요하게 고려할 요소는 상담 과정과 포트폴리오 검색을 통해 느낀 나의 직관이다. 말을 그럴듯하게 해서 직관이지 나와 잘 맞을 것 같은 곳을 고르는 ‘감’이 중요하단 거다. (실제 결과가 어떻게 이어질 지는 모르지만)

 

거기에 약간의 눈에 보이는 근거를 덧붙이자면 C와 H의 블로그 포스팅에 화이트 미니멀 스타일의 인테리어 시공 사례가 많았고 그 결과물이 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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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미니멀 스타일 인테리어 예시. 본문과 관련 없는 이미지. / 이미지 출처-<호미파이>

 

A 업체가 배제된 건 오로지 가장 높은 견적가 때문만이 아니다. 어차피 C와 H의 견적가도 당장 덥석 오케이할 만큼 만만한 것은 아니어서 선택과 포기를 통해 견적 조율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A업체는 견적도 제일 비싼 데다 포스팅된 시공 사례를 통해 본 디자인이 딱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내가 이사할 곳과 동일한 현장을 시공한 경험이 있다는 점이 플러스 요인이었는데 그 점만으로는 다른 마이너스 요소를 넘어서지 못했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견적에 대한 얘기를 더 해보자. 

 

실측이 수반되지 않은 견적은 어디까지나 가견적일 뿐이며, 실측 후 나온 견적이라 해도 견적만으로 업체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위험하다. 이전 글에서 간략하게 말했듯이 인테리어 공사에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은 선택 요소가 있고 그만큼 비용을 책정해야 하는 제품군도 다양하다. 아무리 상세 견적을 낸다 한들 사소한 부분 하나 하나까지(이를테면 목공에 사용하는 본드의 종류라던가 필름 시공에 사용할 필름 단가와 같은) 세밀하게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다. 게다가 업체마다 고용하는 시공 인력의 인건비와 숙련도마저 제각각이다. 견적 하나로 판단의 모든 근거를 갈음하기에는 영 무리가 따른다.

 

무엇보다, 우리가 받아보는 거의 모든 인테리어 견적서에는 ‘마진’ 항목이 들어 있지 않다. 앞서 업체 규모와 상황에 따라 가져가는 마진이 다르다고 말했지만 정작 우리는 견적서 상으로 그걸 확인할 수 없다. 마진이라고 말하지 않고 설계/디자인 비용이나 감리 비용, 진행비와 같은 명목을 따로 만들어 견적을 낸 곳 또한 적어도 내 경험상 없었다. 기억 앞에 겸손해야 하겠지만 내가 숱하게 눈팅한 카페의 견적 글 중에서도 그런 견적은 없었다. 

 

이건 업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그냥 인테리어 공사라는 판이 그렇기 때문이라고밖에 못하겠다. 견적서에 고이고이 마진이 얼마, 디자인 비용이 얼마 이렇게 적어 넣는다고 해서 의뢰인들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일지도 의문, 혹시나 마진 좀 깎으라고 덤벼드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걱정, 그렇다고 다른 업계가 모두 ‘우리는 마진 얼마 먹을랍니다’하고 공개하는 것은 아니니 이걸 강요하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다. 그러니 우리 같은 인알못은 그저 견적 비교를 통해 대충 이 정도 선에서 비용이 드는구나 하고 이해한 뒤에 다른 판단 기준을 종합하여 업체를 선정할 뿐이다. 

 

어떤 업체를 고르느냐가 인테리어 턴키 시공의 성패에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사실이지만, 업체를 선정하고 계약하는 단계는 턴키 시공의 시작일 뿐이다. 모든 에너지를 견적 비교와 업체 선정에 쏟고 나서 ‘이제 맡기기만 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게 실은 가장 위험한 태도일지 모른다.

 

 

선택과 포기를 해야 하는 첫 번째 순간

 

C와 H업체에 실측 방문을 의뢰하기에 앞서 견적에 대한 간단한 추가 상담을 요청했다. 가견적 그대로 진행하기에는 내가 설정한 예산 범위 초과였기에 몇몇 시공에서 선택과 포기, 타협을 해야 했는데 이걸 포기하면 견적이 얼마나 줄어드는지, 시공 방식을 바꾸면 얼마나 절약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실측 후 최종 견적에 반영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다. 하고 싶은 거 전부 집어넣어도 될 만큼 예산이 넉넉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런 선택과 포기 절차는 필수다.

 

가장 고민이 되었던 부분은 거실이었다. 맘 같아서는 확장을 하고 싶은데 비용이 만만치 않았고 무엇보다 아내가 확장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차선이 폴딩도어였는데 폴딩도어야말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시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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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딩도어. / 이미지 출처-<두현창호>

 

하길 잘했다는 사람, 후회한다는 사람이 짠 듯이 비슷한 비율로 나뉘었다. 확장보다는 저렴하지만, 일반 샷시 내창을 다는 것보다는 돈이 더 들기 때문에 쉬이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견적은 폴딩도어 시공을 전제로 냈지만, 실측 후 최종 견적은 폴딩도어를 하지 않았을 경우로 받기로 하고 선택을 미뤘다.

 

바닥을 강마루로 하려다 2.5T 두께의 장판으로 바꿀 경우의 견적도 문의했다. 대략 2백만 원 가까이 견적을 세이브할 수 있다고 한다. 올해 태어난 아이를 키울 집이라 강마루에 비해 덜 단단한 장판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했다. 요즘은 장판도 디자인이 다양하게 나온다고 하니 옵션으로 고려해볼 만 했다. 역시나 최종 선택은 나중으로 미뤘다.

 

안방과 아이방의 붙박이장은 그대로 간다고 치고, 주방의 싱크대 상하부장을 제외한 ‘냉장고장+수납장’을 제작하지 않았을 때의 견적도 고려했다. 인테리어 비용에서 샷시 못지않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제작 가구다. 냉장고장을 포함한 싱크대 반대편 수납장은 따로 기성 제품을 구입하면 예산이 크게 절약된다. 다만 살고 있는 집 사이즈에 맞춤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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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장 + 수납장 / 이미지 출처-<올댓가구수리>

 

서재방 내창은 교체가 아닌 필름 시공으로 때우는 경우의 견적도 문의했다. 안방이나 아이방처럼 자는 방이 아니라서 단열이 조금 미흡해도 괜찮겠다 싶었다. 현관 신발장도 새로 만드는 대신 기존 신발장에 필름만 교체하는 방식, 욕실 시공 시 기존 타일 철거와 방수 시공을 하는 경우와 철거 없이 덧방(기존 타일 위에 새 타일을 덧붙이는 것)으로 할 때의 견적도 비교했다. 샷시의 브랜드를 한 단계 아랫급으로 내리고 단열 옵션 몇 가지를 타협하는 경우의 견적까지 문의했다.

 

이렇게 세부 내역에서 조금씩 포기하거나 타협했을 경우에 견적이 어디까지 줄어드는지 체크하고 실측 견적까지 확인한 후에 공사 내용을 확정할 계획이다. 모든 걸 다 선택하거나 포기할 생각은 없다. 내가 원하고 기대했던 집의 모습에 최대한 가까이 가는 선에서 어떤 것들을 포기하고 선택할지 정해야 한다. 이게 참 어려운 일이다. 

 

혹자는 ‘차라리 원하는 시공을 다 해주면서도 예산에 맞춰 견적을 내주는 업체를 찾는 편이 낫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왜 당초 계획에 맞추어 견적을 내는 업체를 찾지 않고 업체를 고른 뒤에 계획을 맞추려 드는가? 

 

콕 짚어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다만 내가 원하는 시공 계획과 예산에 그대로 맞춰준다고 하는 업체는 왠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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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를 보고 그래줄 리 만무하고 결국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비용 절약을 위해 내가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부분들에서 타협과 포기가 이루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내가 타협과 포기의 주체가 되자. 조율된 예산 범위 내에서만큼은 믿고 맡길 수 있을 만한 업체를 내가 가진 모든 촉과 경험을 동원해서 고르자.  

 

어느 날 오후 C와 H업체를 연달아 만나 1차 견적의 절충 버전으로 견적을 조율했다. 이제 이사 갈 집의 매도인에게 연락해서 실측 방문이 가능한 시간을 여쭙고 업체와 방문 일정을 잡기만 하면 된다. 처음부터 실측 방문 ‘최대 2회’를 말씀드리고 양해를 구한 터라 두 업체 모두에 실측을 맡겨도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그러나 계획과는 달리 현장 실측은 H업체 한 곳만 진행했고 최종 계약까지 H와 하게 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