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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주한미군 철수를 말하기 전에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하는 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주독미군과 주일미군에 관해서는 철수에 관한 논란이 한국처럼 시끄럽지는 않았다. 

둘째, 한국 주한미군의 경우 한국의 ‘필요’가 아니라 미국의 ‘필요’에 의해 철수가 이루어졌다.

 

라는 거다. 전 세계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나라가 59개국 정도 된다. 이 중에서 1만 명 이상 유의미한 병력이 주둔하고 있는 국가는 이렇다.

 

일본(52,060명), 독일(38,015명), 한국(28,487명), 이탈리아(11,799명), 쿠웨이트(11,313명)

 

(영국에도 거의 9천 명 가까이 있지만, 이들 대부분은 공군에 몰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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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위 해당 국가의 미군 주둔 현황. / 이미지 출처-<GREEN BLOG>

 

하나씩 살펴보자. 이탈리아 같은 경우는 지중해와 아프리카 쪽을 커버쳐야 했다. 실질적으로 따져보면 육군 병력은 4천 명 수준이고, 해군과 공군이 그 나머지를 채우고 있다. 이들은 유럽사령부 소속으로 지중해, 유럽, 아프리카를 커버칠 수 있는 미국의 주요한 포스트가 된다. 

 

쿠웨이트를 볼까? 쿠웨이트 주둔 미군의 압도적 다수는 육군이다. 걸프전의 직접적 원인이 되는 이라크가 바로 위에 있고, 옆에는 미국의 숙적 이란이 있다. 이곳에도 미국의 이익이 걸려 있다. 

 

독일을 볼까? 독일 주둔 병력의 70% 이상은 육군이다. 38,015명 중 23,269명이 육군이다. 냉전 시절부터 독일은 미국의 최전선이었다. 냉전 시절 미 육군의 최정예 기갑군단으로 불린 제5군단이 독일에 계속 주둔했었다. 걸프전 당시 이 5군단을 빼서 사막으로 보낼까를 살짝 고민했을 정도였다. 물론, 5군단 대신 7군단이 사막으로 가면서 논의에선 제외됐다(다만 일부 부대가 7군단 지휘를 받으며 참전하긴 했다)

 

냉전 시절 유럽 주둔 미 제7군의 핵심 세력이 바로 5군단과 7군단이었다. 이들은 전쟁 발발 시 소련의 압도적인 기갑웨이브를 막아낼 미국의 핵심전력이었기에 당시 최강, 최정예의 이미지로 비춰졌고, 실제로 그러했다. 냉전이 끝나고 테러와의 전쟁으로 계속 축소 재배치 됐지만 그럼에도 주독미군은 3만8천 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트럼프가 집권한 뒤 방위비 2% 논란이 불거졌고(GDP의 2%를 방위비로 내라는), 그 결과 주독미군은 2만 4천 명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계획까지 나왔는데, 바이든이 나오면서 전면 백지화됐다. 바이든이 내놓은 ‘동맹 회복’ 공약의 실천이기도 했지만, 러시아가 역내에서 일으키는 긴장감을 생각한다면 함부로 병력을 빼기 어려웠을 거다. 

 

일본의 경우는 냉전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 지정학적 위치에 의해서 미국의 주요한 파트너가 될 수밖에 없었다. 

 

냉전 시절에는 소련의 태평양 진출을 막아내는 ‘뚜껑’이 된 게 일본이었다. 나카소네가 괜히 불침항모론을 내놓은 게 아니었다. 새로운 적으로 부상한 중국 앞에서 일본은 당당히 쿼드(Quad : 미국·일본·호주·인도)의 한 축이 돼 중국을 포위하고 압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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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나카소네 일본 수상 (재임 1982년-1987년). 나카소네는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원 하 태평양에서 소련에 맞서 싸우기 위해 일본열도 전체를 침몰하지 않는 거대한 해상기지(즉 불침항모)로 만들겠다는 ‘불침항모론’을 주장했다.

 

주일미군은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일본에 있을 거다. 

 

 

4.

자, 그렇다면 주한미군은 어떨까? 냉정하게 보자. 미국에게 있어서 한국의 효용가치는 독일과 일본에 대해 떨어진다. 

 

(이건 내 판단이 아니라 주둔 미군에 대한 철수 논의를 기반으로만 이야기하는 거다. 주한미군은 계속해서 논란이 돼 왔지만, 주독미군-주일미군이 이런 논란에 휩싸인 적은 거의 없다. 한국과는 안보상 상황이 크게 차이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잡음이 덜하다. 트럼프 시절의 잡음이 있지만... 이건 바이든 정부가 하는 걸 지켜보면 대충 윤곽이 나올 거다)

 

(주둔미군의 전력을 기준으로 보면) 전략적 가치에 있어서 일본보다 한국이 떨어지는 건 분명하다. 우리가 일본보다 가치가 높은 게 아니란 건 분명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중국의 부상으로 한국의 가치가 이전보다 높아졌다는 점인데, 그렇다고 일본의 위치를 점할 순 없을 것 같다. 

 

여기서 또 하나 생각해 봐야 하는 게 광화문에서 태극기를 든 어르신들이, 

 

“주한미군 철수 반대!”

 

를 아무리 외쳐도, 미국이 필요 없다고 판단하면 주한미군은 언제든 빠져나갈 수 있다. 1970년대 대만은 미군들의 낙원이었다(실제로 대만 휴양소에는 베트남에 주둔 중인 장병들이 휴양차 찾아왔다. 이때 일본이 식민지 시절 만들어 놓았던 휴양소에서 미군이 노는 아주 기이한 일들이 많이 벌어졌지만)

 

군사적으로도 마찬가지였다. 1979년까지만 해도 타이베이시립미술관과 중산미술공원 일대는 주(駐)대만 미군사령부(USTDC)가 주둔하고 있었다. 타이중, 타이난에는 미국 공군기들이 이착륙을 했고, 가오슝에는 미 제7함대 분견대가 주둔했다. 

 

대만은 미국의 아시아 전진기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이 당시 대만의 어깨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중국 공산당과 싸우려면 미국도 우리와 손을 잡아야 할 거다.”

 

그러나 이런 ‘뽕’은 얼마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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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2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

 

미중 수교와 함께 대만에서의 미군 철수가 이어진 거였다(덤으로 미국제 무기를 사는 것도 상당히 힘들어지게 됐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랄까? 대만도 한국의 전철을 그대로 따랐다. 이들도 자주국방을 위해 핵개발에 뛰어들었다가 미국에 의해 발각됐다(내부의 배신이었지만)

 

월남까지 갈 필요도 없다. 한국만 봐도 그렇다. 주한미군은 언제나 미국과 국제정치적인 상황변화에 따라 그 숫자가 움직였다. 

 

2차 대전 직후 남북한 분할 점령 당시 주한미군 숫자는 7만 7천 명 수준이었는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인 1949년에는 주한미군 철수를 결정하고 고문단 500명 정도를 남겨두고 철수를 하게 된다.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그 숫자는 32만 명까지 치솟았고, 한국 전쟁이 끝난 직후부터 단계적으로 병력을 축소해서(당시 북한에 주둔 중인 중공군도 중국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중공군은 0명이 됐지만, 주한미군은 계속 주둔하게 됐다), 1960년대가 되면 6만 명 수준이 됐다. 

 

이 상황에서 닉슨이 치고 나온 거였다. ‘닉슨 독트린’으로 주한미군 7사단이 빠져나가게 되면서 이야기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한국이 불안해진 거였다. 이 상황에서 땅콩농장 농장주(지미 카터)가,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며 치고 나왔다.

 

“주한미군 지상군 3만 2천 명을 철수하겠다!”

 

대통령 공약으로 내놓은 이 말을 듣고 한국 정부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필요가 아닌 미국의 이익에 의해 주한미군은 언제든 나갈 수 있다. 이걸 다시 한번 확인한 거였다. 이러다 보니 박정희 정부가 다급해진 거였다. 

 

 

5.

이 불안은 레이건의 등장으로 다시 가라앉게 됐다. 신냉전이 시작된 거였다. 소련과의 대결 구도가 이어지자. 주한미군 감축론은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됐다. 

 

(레이건 시절 600척 함대론에 스타워즈 등등 소련을 박살 내겠다며 온갖 기기묘묘한 무기들을 개발하던 때였기에 냉전의 최전선인 한반도에 미군은 계속 있어야 했다)

 

그러다 덜컥 냉전이 끝이 났다. 동구권이 붕괴되고, 소련이 휘청이더니 러시아로 그 이름을 바꿨다. 20세기 최대의 실험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이 난 거였다. 미국은 축배를 들게 됐고, 그동안 허랑방탕하게 돈을 써재끼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아니, 그 이전부터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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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반부터 미국은 주한미군의 효용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한국 이제 살만해지지 않았어? 조금 있으면 올림픽도 하잖아?”

 

“그렇지. 쟤들 이제 좀 살만해졌어.”

 

“병력도 한 60만 넘고... 우리가 굳이 있어야 할 이유가 있나?”

 

“그렇지. 괜히 지상군 짱박아 놨다가 나중에 전쟁 터졌을 때 사상자 나면 그거 골치 아파.”

 

“닉슨 때도 그랬고, 카터 때고 그랬고 걔들이 주한미군 철수하자고 한 게 괜히 말한 게 아니라니까 다 짱구 굴려보니까 이게 아니라고 결론 내린 거야.”

 

“그래, 주한미군. 이거 감축하자. 아니, 철수하자!”

 

이런 논의들이 모여서 1989년 미 의회의 상원 군사위원장 샘 넌과 상원의원 존 워너가 하나의 안건을 내놓게 된다. 바로 <주한미군 감축 5개년 계획안> 소위 말하는 ‘넌-워너(Nunn-Warner) 수정안’이다. 이 수정안의 골자는 간단했다. 

 

① 한반도에서 미군은 한국군의 보조적인 역할을 맡는다. 

② 점진적으로 주한미군을 감축한다.

③ 주한미군 주둔 비용에 대해서 한국 측 부담금을 증액한다.

④ 한국에 있는 병력과 시설들도 효율적으로 재배치한다.

⑤ 특정 임무와 작전권을 한국에 반환한다. 

 

이 수정안은 1989년 11월 미 의회를 통과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