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넌-워너(Nunn-Warner) 수정안’에 대해 말하기 전에 다시 강조하고픈 이야기가 있다.
“광화문에서 아무리 태극기를 흔들어도 미국의 마음을 돌릴 순 없다.”
물론, 우리가 미군철수를 외치며 시위를 하고, 미군을 쫓아내려 한다면 미국도 마음이 움직일 거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건 미국의 ‘전략적 필요’란 거다.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면 미군은 나가라고 해도 한국 땅에서 나가지 않을 것이고,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아무리 태극기를 흔들어도 미군은 떠난다. 그 증거가 바로 '넌-워너 수정안'이다.
1989년 11월, 미 의회에서 넌-워너 수정안이 통과되자마자 주한미군 철수가 착착 진행되었다. 1990년 2월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주한미군 비전투 병력 5~6천 명을 단계적으로 철수하겠다는 것, 평시작전통제권을 한국 측에 반환하겠다는 것을 합의했다(김영삼 정부가 평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자신의 치적으로 포장하긴 했지만).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논란을 정치적 색깔논쟁으로 끌고 가는 이들이 많은데, 이 이야기는 그 이전, 그러니까 보수정권 시절에 나왔고, 심지어 미국 쪽에서 나왔다. 주변 여건에 따라 시기와 방법론에 대한 논의가 계속 이어지긴 했지만 이걸 정치쟁점화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1990년 4월, 미 국방부는 의회에다가 10년 간 주한미군 3단계 감축안을 제출한다.
“21세기가 되기 전에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감축할 계획입니다.”
의회가 넌-워너 수정안을 내자 국방부는 이에 화답하듯이 3단계 감축안을 내놨다. 미 국방부는 21세기가 되기 전에 주한미군 감축을 완료할 예정이었다.
(넌-워너 수정안이 그대로 진행됐다면, 1996년 이후 한반도에서의 군사작전에는 한국군이 방위의 주도적 역할을 맡고, 미군은 지원만 했을 것이다. 남북관계의 유동성을 고려해 2사단의 병력 감축 혹은 재편을 모색했다. 하지만 분위기라는 게...)
한국 정부는 크게 불안감을 느끼거나 하지는 않았다. 세계는 동구권의 몰락으로 뒤숭숭한 상황이었다. 동구권은 하나둘 개혁개방의 물결에 휩쓸렸고, 1990년 10월 3일엔 서독과 동독이 통일을 했다. 말이 좋아 통일이지 동독이 서독에 흡수된 것이었다. 완벽한 체제 경쟁의 승리이자, 공산주의의 몰락. 노태우 정부는 이 와중에 북방외교 정책을 펼쳐서 국제적으로 나름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통일비용이 문제긴 한데, 북한도 얼마 버티지 못할 거다.”
이런 말들이 솔솔 흘러나오던, 북한의 몰락이 예견되던 시절이었다.
(북핵 사태 당시 클린턴 행정부의 어쩌면 ‘나이브’한 대응의 배경에는 이런 분위기가 있었다. 동구권이 완전히 붕괴된 상황에서 북한이 얼마 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고,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이걸 지금의 시점으로 비판하는 것엔 문제가 있는 게 당시 시점으론 북한이 이상한 거였다. 독일이 통일됐고, 사회주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졌고, 동구권도 싸그리 몰락했다. 소련의 원조와 구상무역으로 겨우겨우 버티던 북한이 살아남을 거라고 그 누구도 생각하기 못했다)
1991년 주한미군 감축 1단계가 시작됐다. 우선은 주한미군 비전투 병력의 철수였다.
이 와중에 덜컥 문제가 터졌다.
“북핵 위기”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1992년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북한의 핵개발 의혹을 제기했다.
“너네 핵무기 개발하는 느낌적인 느낌이 드는데? 특별사찰 좀 하자.”
특별사찰은 6번이나 이어졌고, 1992년 7월 보고서에 적힌 플루토늄의 양과 실제 플루토늄 양이 다른 게 발견됐다. 북한 측이 미심쩍은 미신고 시설에 대한 특별사찰을 거부하면서 이야기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거에서 아버지 부시가 지고, 아칸소 주의 촌뜨기 클린턴이 대통령이 됐다. 당선과 함께 시작된 북핵 위기 앞에서 주한미군 감축론은 명분을 잃게 됐다. 21세기가 시작되던 시점까지 북핵 위기는 롤러코스터를 탔고, 주한미군 감축론은 허공 속으로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한국 쪽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게 된 사건이 터진다. 바로 효순이-미선이 사건이다. 당시는 2002 한일 월드컵 기간 중이었기에 그리 큰 논란이 되지 않았지만, 월드컵이 끝나고 사건의 후속처리 과정에서 논란이 되었다. 피의자인 미군 2명이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게 대한민국 국민들의 감정에 불을 지폈다.
(이보다 10년 전 '윤금이 사건'이 있었다. 윤금이 씨가 미 육군 이등병이었던 케네스 마클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당한 사건이다. 이를 공론화한 건 대학가 운동권 뿐이었는데, 이들이 SOFA 개정과 주한미군철수를 외쳤어도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 10년 세월이 모이고 모여 효순이-미선이 사건 때 터졌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어떤 한 가지를 딱 집어 말하긴 어렵다)
이 사건은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가지게 됐다. 일반 대중들까지 반미구호를 외치며 거리에 나섰고, 미국 대통령이었던 아들 부시가 전화로 유감 메시지를 보낼 정도가 됐다. 주한미군의 필요성에 대해서 일반 국민들이 의문을 표하게 된 최초의 ‘강렬한’ 사건이었다.
아무튼 북한이 핵을 들고 나오면서 주한미군은 21세기까지 2만 명 이상 한국에 머무르게 됐다. 그리고 그 숫자는 계속 바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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