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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 살까지 망치질해야 하는 삶이란

 

난 주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일한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주워듣는 정보가 많다. 이를테면 이번에 공사 들어가는 아파트가 언제 분양하는데 아파트값이 얼마고, 얼마까지 오를 예정이라더라, 청약 경쟁률이 얼마라더라 하는 이야기들 말이다. 그런 정보가 수시로 돌다 보니 형님들이 점심시간에 나누는 대화도 이런 거다. 집값이 올랐니 내렸니, 청약을 넣었니 안 넣었니, 대출이 가능하니 마니..

 

A형님 사정 들은 것도 그런 대화 나누던 중이었다. 청약에 당첨돼 얼마 전 새 아파트로 이사했고, 앞으로 20년 동안 매달 200만 원씩 대출금 갚아야 한단다. 그 형님은 어쨌거나 평생의 소원을 이뤄 너무 기쁘다고 했다.

 

“이야~ 맨날 허름한 집에서 살다가 새 아파트에서 자니까 괜히 잠도 잘 오는 것 같어~ 너도 부지런히 청약 저축혀~ 그래야 집 장만하지. 언제까지 월세에서 살 거냐?”

 

“예예 그래야죠. 하하.”

 

그날 난, 집으로 돌아오며 곰곰이 형님을 생각했다. 형님 나이 올해 쉰하나다. 목수가 한 달 평균 400만 원쯤 번다 치자. 매달 월급에서 절반이나 뚝 떼 빚 갚아야 한단 얘기다. 그것도 20년이나. 손목이 으스러져도 일흔 살까지 망치질해야 하는 삶인 거다. 그 삶에 대해 생각했다. 대출금 갚고 남은 200만 원으로 한 달을 버텨내야 하는 형님과 형수님과 그 자식들의 삶에 대해서 말이다. 내 까짓 게 뭐라고 감히 형님 삶을 평가할 순 없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그날 난 어쩐지 좀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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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영화 변호인>

 

같이 일했던 형님 중엔 이런 경우도 있었다. 나보다 나이가 두어 살 많은 형님이었다. 결혼 얘기가 나왔다.

 

“나 아직 결혼 안 했어~ 사실 모태솔로야. 하하하.”

 

“아 그래요? 아니, 그럼 형님은 술도 안 마셔, 담배도 안 피워, 여자도 안 만나,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살아요? 주말엔 뭐 하세요?”

 

“주말에? 하하. 일하지 뭐 하겠어~”

 

“예? 일요일도 일하신다고요?”

 

얘길 들어보니, 토요일까지 여기서 일하고, 일요일엔 인력소에 나간다는 거다.(참고로 요즘 아파트 현장은 일요일에 현장 문을 닫는다.) 날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쉬는 날 제외하고는 1년 365일 하루도 안 쉰다고 했다. 사연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소싯적에 도박해서 빚이 있다거나, 부모님 하시던 사업이 망해서 대신 빚을 갚아줘야 한다거나.

 

“아니, 굳이 왜 그렇게까지…….”

 

“아~ 돈 모으고 있어. 집 사려고. 이제 1억 5천 모았어. 대단하지?”

 

노가다판 온 지 7년 만에 1억 5천 모았다니 대단하긴 하다. 그럼에도, 눈부시게 찬란한 30대 전부를 노가다판에 때려 박을 필요까진 없는 거 아닌가 싶었다.

 

“형님~ 아휴~ 뭐 결혼을 꼭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연애는 하셔야죠. 여행도 한 번씩 다니시고요.”

 

그 뒤로도 비슷한 사연 가진 형님, 많이 봤다. ‘내 집 마련’이 인생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 말이다. 하긴 뭐, 정도 차이가 있을 뿐,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대다수가 그런 삶을 살 거다. 우리 아빠도 그랬고, 결혼한 친구들도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 대출받아 집 사고, 월급의 상당 부분을 빚 갚는 데 쓰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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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

 

인생에서 ‘내 집 마련’을 뺄 수 있다면

 

30대 중반에 접어든 나는 여전히 월세에 산다. 그 나이 먹도록 전셋집 하나 마련 못 하고 뭐 했냐고 물으면 할 말 없다. 변명하자면 자의 반 타의 반이었다. 사회 생활한 지 10년이다. 안 먹고 안 써가며 악착같이 모았으면 전셋집 하나쯤 얻었을 거다. 그렇게 남들처럼 살 수도 있었다. 근데,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 내가 벌 수 있는 돈은 제한적이다. 무언가는 반드시 포기해야 한다. 그게 나에겐 ‘내 집 마련’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대단히 과소비하는 사람도 아니다. 우선, 명품이란 걸 아예 모른다. 아니, 명품은 고사하고 꾸미는 거 자체에 관심 없다.(학창 시절 운동으로 다져진 넓은 어깨, 180이 넘는 큰 키, 청바지에 흰 티만 입어도 잘 어울린다나 뭐라나. 푸하하하. 죄송.) 그 흔한 명품 지갑이나 시계 하나 없다.

 

요란한 취미도 없다. 쉬는 날도 집에서 책 읽거나 글 쓰거나, 가까운 카페에서 커피 한잔하는 정도다. 미식가도 아니다. 피부 알레르기가 있어 가리는 음식이 많다. 주로 집에서 해 먹는다. 술은 입에도 못 댄다. 도박? 토토? 할 줄 모른다. 로또복권도 안 산다.

 

그나마 책 사는 데 돈 안 아끼고, 담배랑 커피 즐기고, 친구 만나면 기분 좋게 밥 사고, 부모님께 용돈 한 번씩 드리는 정도다.

 

그러니까, 대단한 것도 없다. 가정 꾸리고 자식 키우는 사람보다야 조금 더 여유로운지 모르겠으나, 딱 그 정도다. 이 상황에서 ‘내 집 마련’ 하려면 부모님 용돈도 못 드리고, 친구 만나도 계산할 때 눈치 보고, 담배랑 커피 줄이고, 책 한 권 살 때마다 고민해야 한단 얘기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은 거다.

 

왜 너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지 못하느냐고? 26살 때 일이다. 당시 난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기자였다. 우연한 계기로 해방촌의 ‘게스츠하우스 빈집’을 취재했다. 내가 취재했던 게 2012년이다. 당시 기준으로, 내가 이해했던 대로 ‘빈집’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한마디로 인생에서 ‘내 집 마련’을 빼는 거다. 그럼 돈을 조금만 벌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다. 그럼 주거는 어떻게 하느냐. 그들은 해결책으로 ‘협동조합+공동 주거’라는 대안적인 삶을 택했다. 협동조합 취지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집은 곧 돈이다. 집을 사기 위해 돈을 벌고, 돈을 벌기 위해 집을 산다. 재산, 소득, 지출, 저축, 대출, 투자, 상속 등 돈과 관련된 생활의 중심에는 집이 있다. 처음에 보증금 없이 쪽방과 고시원에서 시작해서, 어떻게든 보증금을 마련하고 월세방으로 옮겨 가서 저축을 통해 보증금을 늘려가다가, 전셋집을 구해서 결국 월세에서 해방되고, 계속해서 저축과 투자를 늘리고 대출을 더해 마침내 내 집 마련, 그 후 부동산 투자를 더 해서 늘어난 자본을 자녀에게 상속하는 것. 이 과정을 차례차례 밟아 나가는 것이 우리 삶의 표준 경로이고, 발전 단계이다. 그 사람의 현실 계급은 이 경로에서 어느 단계까지 왔는지에 따라 규정된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돈을 벌고 집을 사는 것으로 점철되어 있다.」

 

‘빈집’의 세세한 내용을 여기서 다 소개할 순 없다. 아무튼 나에겐 매우 신선한 삶의 방식이었다. 이제 취직했으니 적금 열심히 붓고, 청약해서 얼른 집 사야지 정도의 평범한 삶을 상상하던 때였다. 그러던 시기에 ‘빈집’ 취재한 거다. 살면서 처음으로 대안적인 삶(내 방식대로 표현하자면 ‘울타리 밖의 삶’)에 관해 고민해봤던 거 같다. 그 고민에서 비롯한 여러 생각과 선택이 쌓여 지금처럼 살게 됐다.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적당히 즐기고, 월세방 전전하며 말이다.

 

욜로야 말로 허무주의에서 비롯된 소비패턴이니까

 

내가 하려는 얘기가 “다들 집 같은 거에 인생 바치지 말고 즐기면서 사세요!” 따위의 뜬구름 잡는 결론은 아니다. 적당히 즐기면서 산 대가로 월세방 전전하는 삶이 결코 정답은 아닐 테니.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도 정답은 모른다. 아니, 주거문제에 정답이라는 게 있긴 한 건지 도대체 모르겠다. 정부에서도 풀지 못하는 게 주거 문제다. 나라고 뭐 특별한 묘수가 있을 리 없다.

 

2017년 tvN에서 방영했던 <이번 생은 처음이라>라는 드라마가 있다. 2048년까지 대출금 갚아야 하는 ‘하우스푸어’ 남주인공이 나온다. 그의 라이벌로, 집을 반지하 월세로 옮기고 비싼 오토바이 끌고 다니는 카페 알바생이 나온다. 그 둘이 나누는 대화다.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집 대출금 따위에 낭비할 순 없잖아요. 저는 뭐 하우스푸어, 이런 사람들이 제일 한심하더라고요.”

 

“뭐, 한심할 것까지야. 각자 인생에 지향점이라는 게 있는 건데.”

 

“그건 지향점이 아니죠. 자기 인생을 소중히 하지 않는 거지. 어떻게 집 같은 거에 인생을 바쳐요? 삶을 매 순간 즐기면서 살아야지.”

 

“매 순간 즐긴다고 믿고 싶은 거겠죠. 욜로야 말로 허무주의에서 비롯된 소비패턴이니까. 벌어봤자 모아봤자 이룰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순간의 소비로 도피하는 거죠.”

 

남주인공 말마따나 나는 지금 “매 순간 즐긴다고 믿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끔은 나도 불안하다. 나중에 늙고 병들어 더 이상 밥벌이할 수 없을 땐 어떡하나 싶다. 4년 전 점쟁이가 말하길 내 인생에 역마살이 많다던데, 이렇게 살다 객사하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된다.

 

최근 정치권에서 기본소득이니 기본주택이니 하는 말들이 많길래 혹시 저게 대안은 아닐까 싶다가, 관련 자료를 이리저리 찾아보다가, 이런저런 생각에 빠졌다가, 머리가 복잡해져 답답해하다가,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얘기가 길어졌다.

 

그냥 좀 함께 고민해봤으면 싶다. 다른 사람은 주거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나와 비슷한 삶(적당히 즐기면서 살지만, 한편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가진)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어떤 계획이 있는지, 혹시 내가 모르는 대안적인 방법이 있진 않은지 궁금하다.

 

당신은 월세, 전세, 자가 어디에 살고 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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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겨레>

 

 

해방촌의 빈집은 결국 거의 문을 닫은 듯하다. 2018년 <경향신문> 기사가 마지막인 거 같다. 그 기사에선 “한때 8개에 달하는 주거공동체와 1개의 마을 카페의 연합체였던 빈집은 현재 2개의 공간만 남은 상태”라고 설명한다. 경리단길, 도시재생사업 등의 영향으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낙후된 구도심이 활성화되면서 사람들과 돈이 몰리고, 결과적으로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이 심화한 모양이다. 그럼에도 난 그들의 실험을 실패로 규정하고 싶진 않다. 대한민국 주거 문제에 새로운 화두를 던진 건 분명하므로.



 

편집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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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본지 인터뷰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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