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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직후 32만 명 수준이었던 주한미군은, 60년대 6만 명 수준, 닉슨 독트린 발표 후 4만 명으로 줄었다. 냉전이 끝나고 넌-워너 수정안이 미 의회에 통과된 후에는 3만 6천 명 수준이 되었다(1단계 감축안이 진행되다가 북핵 위기가 터졌다). 

 

그러다 소위 말하는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됐다.

 

냉전이 끝나고 미군은 변신을 꿰한다. 아니, 변화를 '강요받았다'는 것이 맞을 거다. 소련이란 강적이 존재했을 때는 탱크와 장갑차로 무장한 기갑사단을 잔뜩 만들어서 전 세계에 뿌려야 했다. 당장 소련의 기갑웨이브를 전면에 받아야 할 유럽에는 M1A1 전차와 브레들리 장갑차 MLRS로 무장한 5군단과 7군단을 뿌려놨다. 이들은 전면전을 상정해놓고 전투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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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덜컥, 소련이 무너졌다. 

 

호랑이가 사라졌으니 크고 무거운 총들이 필요 없어졌다. 이때 미육군을 개혁하겠다고 등장한 이가 에릭 신세키(Eric Ken Shinseki) 미 육군 참모총장이다. 

 

미군이 분쟁지역에 신속하게 파견되기 위해서 그는 '세계 어디에도 빠르게 전개할 수 있는 신속한 편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나온 게 스트라이커 장갑차를 장비한 신속 전개 부대, ‘스트라이커 여단 전투단(SBCT : Stryker Brigade Combat Team)'이다. (럼즈펠드는 이 개념이 마음에 들었는지, 무거운 전차와 자주포를 없애려 했고, 신세키는 경량화를 한다고 해서 무조건 다 없애는 게 아니라고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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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이커 여단이 한국에 시사하는 바는 크다. 한반도는 전 세계 유일의 냉전지대다. 북한과의 전면전 가능성에 대비해 무거운 탱크와 장갑차 등등을 구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거다.

 

문제는 테러와의 전쟁이란 블랙홀 때문에 미군은 계속해서 병력을 수급하고 돌려야 했는데, 한반도에 병력이 묶여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걸 빼서 급한 쪽으로 돌리고 싶은 게 미국의 속내였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주한미군은 부대해체나 순화배치 등등의 명목으로 계속해서 전력과 병력을 줄이고 있다. 이미 <테러와의 전쟁> 때문에 1만 2천 명 가까운 주한미군이 다른 쪽으로 빠져 나갔다. 한반도에 전개된 아파치를 빼서 돌리고, 대신 미 본토에서 A-10이 오는 등등 전력 교체도 꽤 있었다. 주한미군의 핵심인 2사단의 경우도 예전의 위용을 찾아보기 조금 어렵다. 2사단 전투력의 근간이 되는 전투여단 2개가 본토에서 순환 배치되는 스트라이커 여단으로 재편된 거다. 

 

(미 제2보병사단 중 국내에 배치된 전력 중 핵심이 되는 건 MLRS를 장비한 제210야전포병여단과 아파치 헬기를 운영 중인 제2전투항공여단이다. 스트라이커 여단은 1개씩 순환 배치되는 상황이다. 주한미군에서 발로 뛰는 보병이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주한미군의 주력은 육군이 아니라 공군으로, 오산에 주둔 중인 51전투 비행단과 군산에 있는 8전투비행단이 주한미군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미군은 끊임없이 줄어들었고, 줄어들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한반도 남쪽 이곳저곳에 분산돼 있던 미군 기지를 평택으로 다 집결시키겠다는 포부로 캠프 험프리(Camp Humphreys)를 만들었다. 평택에 만들었다는 자체가 중국에게는 상당히 불편할 텐데, 이제 주한미군은 북한 억제수단이라기 보다는 '對중국 포위망'의 한 조각으로 바라보는 게 맞을 지도 모른다. 

 

“주한미군이 한국에서 완전히 철수하지는 않을 거다.”

 

란 안도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이 부분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분명한 건 중국의 부상으로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이전보다 높아진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게 있어 일본보다 그 가치가 높다고 보긴 어렵다. 미국 입장에서 일본은 미국의 태평양 패권을 지켜주는 방파제다. 그리고 이 방파제의 역할은 냉전 시절 철저한 검증을 통해 인정을 받았고, 중국과의 싸움에서도 유용함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이 아무리 중국을 찌르는 비수의 역할을 한다고 하더라도 태평양의 패권을 지켜주는 일본이란 방패보다 그 효용이 높을 순 없다. 

 

여기에 더해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위협하는 카드 하나가 있다. '대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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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US 대만 방위 사령부 앞에서

마지막으로 미국 국기를 내리는 모습

 

1979년까지 미군은 대만에 주둔했었다. 물론, 손바닥 뒤집듯 대만에서 병력을 뺀 게 미국이지만, 미중갈등이 지금보다 더 치열하게 이어진다면, 가오슝 항에 다시 미국 태평양 함대 분견대가 주둔할 수 있다. 가능성이 없을까? 필리핀도 22년 만에 미군의 재주둔을 허용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이상한 소리를 하는 중이지만 말이다. 

 

대만이란 카드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까지 아무도 모른다. 만약 중국을 포위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국과 대만을 놓고 어디에 더 중점을 둬야 하냐고 묻는다면? 누가 봐도 대만이다. 지금 수많은 변수들을 가지고 고민을 하는 중이다.

 

(미국과 대만이 외교관계를 끊었다고 손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미국과 대만은 서로 대표부를 두어 관계를 이어나갔고, 미국도 대만관계법을 만들어서 일정 수준의 연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미군 역시 퇴역한 장성들을 대만으로 보내 만일을 대비한 군사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대만은 중국의 턱밑을 노려보는 위치다. 한때 3만 명이나 되는 미군이 주둔할 정도로 전략적으로 탁월한 위치다. 뜬금없이 미국과 대만이 수교를 한다거나 하는 분위기가 아닌 게, 지금 대만과 미국의 관계는 상당한 수준까지 가까워졌다. 이미 미 상원에서는 미군 군함의 대만 정박을 허용하는 법안이 통과됐고, 그동안 금지했던 대만으로의 무기 판매도 허용했으며, 대만에 신축중인 대표부의 경비를 외교공관에 준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리기로 결정했다. 해병대가 파견된다는 의미로, 대만에 미군이 들어갔다는 소리다. 미국과 대만의 수교 가능성이 계속 점쳐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경우 ‘하나의 중국’을 말하는 중국과의 마찰은 불을 보듯 뻔하다. 아니, 그 이전에 중국 턱밑까지 칼이 들어오는 거다)

 

대만에 미군이 주둔한다면, 주한미군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떨어질 거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3순위로 밀려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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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대만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주한미군이 한국의 ‘필요’에 의해서 주둔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란 걸 다시 한 번 강조하기 위해서다. 동맹이란 건 결국 서로의 필요와 목적을 맞춰나가야지만 이어질 수 있다. 동맹의 가장 핵심적 증거가 바로 ‘군대의 주둔’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위대함에 대해 말하는 보수층이 있지만, 대만을 보면 알 수 있다. 전략적 가치가 떨어졌을 때는 손바닥 뒤집듯 버림을 받았고, 다시 전략적 가치가 높아지자 수교를 물밑에서 고민하고 있다. 

 

냉정히 따지자면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며, 절대불변의 원리원칙이 아니란 소리다. 제6조의 파기요건을 보면, 

 

“두 나라 중 한쪽이 통고하면 1년 후 효력이 상실 가능하다.”

 

라고 명시돼 있다. 즉, 미국의 입장이 바뀌면 언제든 파기될 수 있는 조약이란 소리다.

 

그리고 누구나 알고 있지만, 입 밖에 꺼내지 않는 한 가지,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미일동맹에 종속돼 있는 하위 카테고리다.”

 

미국의 입장에서 일본은 사활적 동맹 국가이다(독일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한국은? 그 일본의 동쪽을 지켜주는 존재란 거다. 즉, 한국은 일본의 안보를 지켜주는 전초기지 역할이다. 주한미군은 주일미군을 지키기 위해 한국에 주둔하고 있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일본이 한국에 대해 온갖 쌍욕을 다하고, 반한감정을 터트리고 있지만 결국 근본으로 들어간다면 한국이 일본의 안보를 지키는 최전선이란 의미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일본이 적극 찬성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 여기까지 이야기 했으니 이제 원론적인 질문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에게 주한미군이 과연 필요한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