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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눈 목수에 관하여

 

『피터팬 죽이기』(민음사, 2004)라는 소설이 있다. 김주희 작가가 썼다. 소설 속 주인공 ‘예규’는, 10살 때 왼쪽 눈에 야구공을 맞았다. 그 뒤로 십 년 동안 서서히 시력을 잃었다. 스무 살 때 실명 판정을 받았다. 소설에서 예규는 이렇게 말한다.

 

「한쪽 눈으로 바라보는 하늘은 높지 않았다. 왼쪽 시력이 저하되면서 나는 거리 감각을 상실해 갔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면 풍경이 뚝, 뚝, 끊어진 채 절뚝거리며 내 눈동자에 들어왔다.」

 

한쪽 눈을 가리고 창밖을 바라봤다. 불과 10초? 답답해서 얼른 손을 내렸다. 평생, 한쪽 눈으로만 살아야 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아마도 매우(‘매우’라는 부사에 다 담을 수 없겠지만), 불편하겠지. 그것이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경우라면, 또 어떨까. 남들 시선까지 의식해야 하는 경우라면 말이다. 다행히도 소설 속 예규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첫 번째 애인은 또, 남에게 상처를 까발리지 말라고 했다. 남에게 건너간 상처는 술자리에서든 길바닥에서든 농락당할 가능성이 있으며, 상처가 농락당한다는 것은 상처의 주인이 쓰레기 취급을 받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중략) 나는 그 사람의 말대로 실명 사실을 비밀에 부쳤다.」

 

강 씨 형님이 우리 팀에 처음 온 날, 나는 예규’ 떠올렸다. 강 씨 형님은 예규처럼 “실명 사실을 비밀에” 부칠 수도 없었다. 보는 순간 알았다. 왼쪽 눈이 실명이라는걸.

 

재작년이었던가. 오른쪽 눈에 다래끼가 났다. 그런가보다 했더니 며칠 뒤, 눈이 탱탱 부었다. 안과에 갔다. 의사는 살짝 째서 짜내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시술을 마치고 오른쪽 눈에 안대를 했다. 괜찮겠지 싶어, 다음날 현장에 나갔다. 작업반장이 일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물론이라고 했다.

 

망치질하려는데 도무지 조준이 안 됐다. 거듭 ‘헛방’을 내려쳤다. 망치질도 망치질이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걷는 것 그 자체였다. 거리 감각이 없다 보니 자꾸만 뒤뚱거리며 걷게 됐다. 두어 번인가 자빠질 뻔했다. 몇 푼 벌려다가 큰 사고 칠 거 같았다. 작업반장한테 갔다.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는데, 안 되겠어요. 망치질을 할 수가 있어야죠.”

 

“그러게 뭐랬냐. 한쪽 눈으로 일하는 게 쉬운 줄 아냐? 다치면 너만 손해니까 우선 들어가고, 안대 풀면 나와라.”

 

강 씨 형님이 일하는 걸 지켜보다가, 문득 그때 생각이 났다. 내 의지와 다르게, 엉뚱한 곳에 망치질하던 그날을 말이다. 강 씨 형님은 두 눈으로 망치질하는 사람만큼, 아니 그 이상 망치질을 잘했다. 망치질뿐 아니라, 모든 작업을 능수능란하게 해냈다. 누가 봐도 ‘베테랑 목수’였다. 그 뒤로도 꽤 오랜 시간같이 일했지만, 단 한 번도 의식하지 못했다. 강 씨 형님 왼쪽 눈이 실명이라는걸.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그제야 실감했다. ‘맞아, 그랬었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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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고도 명징한 이치

 

나중에 알게 된 얘기다. 강 씨 형님은 망치질하다 콘크리트 못이 튀어 왼쪽 눈을 잃었다.

 

망치질하다 못이 튀는 건, 현장에서 아주 흔한 일이다. 목수가 제일 많이 쓰는 못이 3인치 쇠못이다. 대가리 지름이 불과 5mm다. 2인치 쇠못이나 콘크리트 못은 대가리 지름이 2~3mm밖에 안 된다. 제아무리 베테랑 목수여도 열에 한두 번은 빗겨 때릴 수밖에 없다. 그럼 여지없이 튄다.

 

어디로 튈지는 아무도 모른다. 못 잡아주는 손등, 발목, 심지어는 옆에서 작업하는 사람에게 튀기도 한다. 얼굴로 튀는 경우도 많다. 튕겨서, 재수 없이 못 끝으로 맞으면 속절없이 찢어진다. 나 또한 그렇게 손등, 발목, 얼굴에 못이 튀어 찢어지고 긁히고 찍힌 적, 많다.

 

특히나 콘크리트 못이 아프다. 이름 그대로 콘크리트 바닥에 박는 못이라, 나무에 박는 쇠못보다 훨씬 ‘짱짱’하다. 그런 데다가 튀기도 더 잘 튄다. 콘크리트라는 게 원래 못이 잘 안 박힌다. 시계나 액자 건다고 벽에 못질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알 거다. 잘 안 박히니까 자꾸 망치가 튕겨 나온다. 그래서 못도 같이 튄다.

 

그럼 일반 가정에서 하듯, 드릴로 먼저 구멍 뚫고 그다음 못 박으면 안 되느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현장에선 그럴 시간도 여유도 없다. 목수들은 그냥 ‘쌩짜’로 무식하게 때려 박는다. 강 씨 형님이 왼쪽 눈을 잃은 것도 그런 이유였다. ‘쌩짜’로 콘크리트 바닥에 때려 박다가 재수 없게 못 끝이 눈으로 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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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난, 강 씨 형님을 가만히 바라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망치 때문에 한쪽 눈을 잃었으면서, 다시 그 망치를 잡을 수밖에 없었던 한 인간에 관해서 말이다.

 

김훈 작가는 에세이 『밥벌이의 지겨움』(생각의나무, 2007)에서 이렇게 말한다.

 

「전기밥통 속에서 밥이 익어가는 그 평화롭고 비린 향기에 나는 한평생 목이 메었다. 이 비애가 가족들을 한 울타리 안으로 불러 모으고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아 밥을 벌게 한다.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두 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 이것이 진저리 나는 밥이라는 것이다.」

 

그렇듯, 한쪽 눈을 잃어도 끼니는 어김없이 찾아온다. 한쪽 눈을 잃었어도 나와 아내와 자식은, 끼니마다 밥을 먹어야 산다. 그것이 강 씨 형님, 아니 우리 모두가 감당해야 하는 무섭고도 명징한 이치다.

 

인간은 누구나 나약하다. 나를 다치게 한 무언가로부터 다시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오죽하면,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할까. 강 씨 형님은 그 트라우마를 극복한 걸까. 굳은 의지로 이겨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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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의 삶은 아름답다

 

여기서 대한민국 현실을 한번 생각해보자. 평생 망치질만 한 중년 남성이 있다. 불의의 사고로 한쪽 눈을 잃었다. 그 중년 남성을 받아줄 직장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있을까. 서글픈 얘기지만, 요원하다.

 

그래서 다시 망치를 잡았을 거다. 배운 게 도둑질이니까. 어쨌거나 당장 먹고살아야 했을 테니까. 그러니 강 씨 형님은 트라우마를 극복한 게 아니라, 어쩌면 그저 견디어 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안 봐도 빤하다. 같은 실수를 해도, 강 씨 형님이 실수하면 분명 한쪽 눈 안 보여서 그런 거라고 나무랐을 거다. 그런 소리 듣기 싫어서라도 강 씨 형님은 남들 이상 노력했을 거다. 어쩌면 퇴근하고 집으로 가, 혹은 주말에 틈틈이 망치질 연습을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했을 거다. 그렇게 오직 실력으로, 다시 인정받았을 거다. 그 노력의 세월을,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겠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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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작가는 또 다른 에세이 『라면을 끓이며』(문학동네, 2015)에서 이렇게 말한다.

 

「돈과 밥의 두려움을 마땅히 알라.(중략) 돈 없이도 혼자서 고상하게 잘난 척하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아마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말아라. 추악하고 안쓰럽고 남세스럽다. 우리는 마땅히 돈의 소중함을 알고 돈을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 돈을 사랑하고 돈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들만이 마침내 삶의 아름다움을 알고 삶을 긍정할 수가 있다.」

 

그래서 그의 삶은 아름답다. 밥벌이의 소중함을 알고, 그리하여 다시금 ‘베테랑 목수’로 살아가는 강 씨 형님의 삶 말이다.



 

편집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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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본지 인터뷰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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