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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들어서 가장 주목받는 이슈 중 하나는 청년 문제였다. 2020년 총선 그리고 2021년 보궐선거에서 2-30대 청년들의 문제는 당연히 주요한 화두일 수밖에 없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당 대표이자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던 양반이 청년들이 알바하다가 월급을 떼이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인생에 좋은 경험이라고 했던 것이나 대통령이란 사람(아니 그러고보니 최씨가 대통령이었나..)이 취업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청년들에게 나라가 텅텅 비도록 중동에 가서 일해보라고 했던 걸 생각하면, 청년세대의 이야기에 이렇게 온 정치권이 귀를 기울여주는 풍경이 격세지감을 넘어 생소하기까지 하다.

 

청년 문제가 이슈가 되니 자연스레 21대 국회에 청년 정치인들이 꽤 많이 진출했다. 여당의 장경태, 전용기, 오영환, 김남국 의원이나 정의당의 류호정, 장혜영 의원 그리고 국민의 힘의..에..그러니까..에..없네? 국민의힘은 맨날 청년 타령하지 않았나? 왜 청년 의원은 한 명도 없는 거지? 국민의힘에서 청년의 목소리를 혼자 다 대변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낙선 이준석씨는 의원이 아니고.. 누구 없나? 한명도 없네? 그래.. 뭐 그럴 수도 있지.. 넘어가자.

 

아무튼 여러 청년 의원들이 21대 국회에서 청년 문제를 의제로 삼아 활동하고 있다. 특히 사회적 약자인 청년과 여성을 대표하는 류호정, 장혜영 의원은 많은 미디어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들과 똑같이 청년이고 여성인 의원인데도 유독 주목을 받지 못하는 정치인이 한 명 있으니, 바로 오늘 소개할 기본소득당의 유일한 국회의원 용.혜.인 의원 되시겠다.

 

앞에 언급한 다른 의원들만큼, 아니 오히려 그들보다 뛰어난 실력을 갖추었고 국회의원이 되기 전부터 전 국민이 다 알만한 활동을 해왔는데도, 유독 용혜인 의원에게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가지 않는다. 대체 이유가 뭔지 궁금해졌다. 용혜인 의원을 디벼보기로 했다. 다짜고짜 치고 들어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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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남성에 대하여

 

근육병아리(이하 '근'): 이번 재보궐 선거 결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용혜인(이하 '용'):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 기간 동안, 마지막에 양당 간의 지지 세력들의 결집이 이루어지면서 좀 격차는 좀 줄지 않을까 생각했었죠. 기본소득당 같은 경우도 서울시장 후보를 냈지만, 우리당이 득표를 많이 할 수 있는 선거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두 후보가 워낙 강력했고, 이 두 후보가 95% 이상을 가져가는 선거가 될 거라고 예측했었죠. 그런데 당선자와 2위 후보의 표차가 생각했던 것보다 좀 컸죠. 작년 총선 이후 불과 1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잖아요. 민심이라는 게 정말 무서운 거라고 느꼈어요. 선거 결과에 대한 해석이 굉장히 분분하죠. 20대 남성들이 돌아섰다거나 뭐 이런 여러 가지 해석들. 20대 남성들의 어떤,,

 

근: 이반으로 인해.

 

용: 네. 20대 남성들의 이반으로 인한 선거 패배, 이런 해석. 민주진보 진영에서도 그렇게 해석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된다고 봅니다. 전 세대에 걸쳐서 국민의힘이 이겼다고 보는 것이 좀 더 정확한 해석이겠죠. 20대 남성들에 대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과연 정치적으로 이게 적당한 해석인지..

 

근: 옳은 해석인지.

 

용: 네. 그리고 두 번째로 따져보아야 할 것은 과연 이것이 정치적으로 유리한 일인지 인데, 20대 남성들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반 페미니즘, 반 여성'으로 어떤 정치세력화를 이뤄 본 적이 없어요. 그들의 어떤 정치적 대표자를 가진 적도 없고. 근데 그것을 시도하려는 분들이 있죠. 예를 들면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라거나 하태경 의원 같은 분들.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서 20대 남성을 다른 세대에 비해서 특별히 더 많은 의미 부여를 하는 것은, 20대 남성들이 정치세력화가 되길 바라는 그분들의 의도를 완성시켜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이 부분은 좀 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민주당의 패인에 대해 20대 남성들의 민심 이반만 얘기하고 있지만 민주당은 20대뿐만 아니라 40대를 제외한 거의 전 연령대로부터 그리고 서울의 모든 지역, 심지어 박영선 후보의 지역구인 구로구에서도 졌다. 이런 의미에서 과연 20대 남성의 이반으로 인해 민주당이 패배한 것인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용혜인의 문제의식, 타당하다.

 

민주당은 왜 참패했나

 

근: 국민의힘이 압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용: 선거 이후 여론조사 결과들을 봐도, '국민의힘이 잘해왔다 혹은 기대한다'라는 답변들은 많지 않잖아요. 이번 보궐선거를 치르는 동안 민주당의 선거 전략이 걱정이 됐던 부분이 좀 있었어요.

 

'오세훈 후보가 거짓말하고 있다 혹은 내곡동 땅에 대한 의혹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충분히 의심할 만한 의혹이다'

 

이걸 서울 시민들이 몰라서 찍은 건 아니라고 보거든요. 충분한 개연성과 의혹이 있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세훈 후보를 찍었다는 것이죠. 이 사람이 나쁜 사람인 줄 몰라서, 거짓말하는 줄 몰라서, 오세훈 후보에 대한 기대가 아주 커서 찍었다기보다는 지난 1년 동안 이어져 온 정치에 대한 평가로서의 선택이라고 봐야 한다는 거죠. 이것을 탄핵 당한 세력 복귀의 승인이라거나 국민의힘에게 어떤 새로운 기대를 한다거나 이렇게 해석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가 의정 활동이나 방송하면서 만나는 국민의힘 분들도 몸을 좀 사리시는 것 같더라고요. 겸손한 표현도 많이 하시고. 이것은 국민의힘에 대한 어떤 승인이 아니라, 정부 여당에 대한 평가라고. 그런 것들을 국민의 힘에서도 알고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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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

 

근: 그 평가가 그렇게 낮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뭘까요?

 

용: 여러 가지가 있겠죠. '조국 사태가 결정적이었다, 아니다. 다른 것이 결정적이었다, 아니다.' 하는 접근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의 마음이 돌아설 때, 예전에는 큰 문제가 아니었던 것도 이제 와서 보니 이유가 되어 보이는 거잖아요.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여러 가지 이견들이나 평가가 1년 전에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던 문제일 수 있지만, 지금 와서 보니 왠지 이것도 선거에 영향을 미쳤을 것 같고, 뭐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는 영역이거든요. 핵심은, 이전 선거에서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조국 전 장관 이야기가 나올 만큼 선거 결과가 왜 이렇게 나왔냐는 것인데, 결국 국민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충족시키지 못했던 것에 있다고 봐야겠죠. 정부여당에 시민들의 기대가 분명히 있었으니까요.

 

작년 2월에 코로나가 터졌을 때만 해도, 그 사태를 정부 여당의 리스크로 다들 생각했잖아요. 그런데 불과 두 달 사이에 대응을 잘했고, 전 국민 재난지원 같은 것들이 이루어졌고. 그때 이해찬 전 대표가 '단 한 명의 국민도 빠짐없이 지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된다.'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저는 그 게 정말 인상 깊었어요 당시에. 국가와 정부와 여당에 대한 신뢰가 형성될 수 있었던 조건들이 있었죠. 그래서 그 이후 총선에서 국민들이 180석을 만들어주셨고. 그 이후에 강하게 밀어붙인 검찰개혁에 의한 피로감, 악화되는 코로나19의 위기 속에 계속 어려워지는 생계, 거기에 다소 소극적이었던 대응들, 그리고 부동산 문제까지 겹치면서 조건들을 계속해서 잃어갔던 것 같아요.

 

부동산 문제를 보면, '집값 잡겠다, 잡아야 된다'라고 처음에 분명히 얘기했지만 그 뒤에 민주당 몇몇 의원들이 '우리도 집값 떨어뜨리겠다는 건 아니다' 이런 표현들 많이 쓰셨거든요. 저는 그거 보고 진짜 우려스러웠어요. 지역구 표를 관리하려면, 특히 서울 지역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이해는 하는데, 약속했던 것이 있거든요. 임대차 3법, 그리고 부동산 3법 통과시키면서 약속했던 것. 부동산 안정시키겠다, 집값 잡겠다는 약속들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와 박탈감 같은 것들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이번 선거 결과는 검찰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여서, 2020년 총선에 문제없었던 조국 전 장관 문제가 이제 와서 불거져서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런 것들에도 불구하고, 정부 여당에 대한 신뢰로 180석까지 몰아줬는데도, 민생 문제와 경제 위기 문제 이런 것들에 대한 진행이 지지부진하고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보냈던 신뢰를 거둬들여지게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동의한다.

 

근: 민주당의 초선 의원들이 낸 사과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용: 단순하게 조국 전 장관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못했던 자신들에 대한 반성이, 과연 국민들이 '아~ 저 사람들이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할까? 그렇지 않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근: 적절한 사과의 형태가 아니다?

 

용: 네. 어떤 특정한 요건을 두고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앞으로 정부 여당이 어떻게 할 것인지, 무슨 과제가 남아 있는지, 향후 1년 동안 대선까지 국회에서 어떤 일을 할 것인지, 거기에 초선 의원들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차이로 패배를 한 선거 이후에 당 안팎으로 여러 가지 수습이 필요한 상황에서 2030 세대의 의원들이 앞장서서 목소리를 낸 것 자체는 용기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 내용이 과연 국민들의 마음이 움직일 정도의 어떤 맥을 짚은 이야기였느냐 하는 건 다른 이야기지만요.

 

정확하다. 언론을 통해 보도되지 않았을 뿐, 용혜인이 사안마다 하는 발언에서 드러나는 시각은 늘 정확했다. 동년배 정치인 중에 발군이다. 반성문을 발표한 5명의 민주당 초선의원들이 꼭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다.

 

선거 그리고 기본소득당

 

근: 정당이 선거에 후보를 내는 건 당연한 거죠. 하지만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기본소득당이 후보를 내면서 당선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거 같은데.

 

용: 네 그렇죠.

 

근: 그러면, 득표를 조금 했건 많이 했건 기본소득당이 이번 선거에서 의도한 바는 무엇이었고, 얻은 게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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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이번 선거를 준비하면서, 최근 몇 년간의 선거를 분석해봤어요. 제3의 후보가 서울시장 선거에서 3% 이상 득표했던 기록은 단 한 번. 2010년에 노회찬 전 의원이 2010년 지방선거에서 받은 3.2%가 전부 더라고요. 전국구로 유명했던 노회찬 전 의원님도 겨우 넘긴 3%를 기대하진 않았어요.

 

이번 선거 결과를 보면, 시민들이 탄핵 당했던 그 세력인 줄 몰라서 뽑은 건 아니잖아요. 정부 여당에 대한 비판과 부족함이 느껴질 때, 국민의힘이 아닌 제3의 선택지, 대안으로서 기본소득당이 인정받고 등장하는 계기가 되지 못했던 점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을 뼈아프게 받아들이고 고민하고 있죠.

 

근: 선거에 임하면서, 예를 들면 득표율을 얼마나 하겠다든지 아니면 뭐를 의제로 만들겠다든지 아니면 시장 후보의 인지도를 올리겠다던 자 하는 목표 같은 것은 없었나요?

 

용: 있었죠. 여러 측면에서. 첫 번째는 기본소득당을 알리는 것. 창당한지 1년 된 신생정당이니까요. 기본소득당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는 것부터가 제 의정활동의 가장 큰 과제입니다.

 

둘째로 득표율은 2018년 지방선거에서 아주 뭐 이슈가 많이 됐었던 신지예 후보가 받았던 1% 정도가 목표였어요. 하지만 두 후보가 97% 이상을 가져가는 선거였기 때문에 저희 입장에서는 좀 아쉬운 결과가 나왔죠.

 

세 번째는 ‘기본소득’의 개념을 서울에서도 익숙하게 만들고 아젠다로 세팅하는 선거를 하고 싶었는데, 이게 결과적으로는 좀 쉽진 않았죠. 정권 심판이냐 아니냐를 두고 벌이는 선거 사이에서 저희의 의제를 가지고, 정책을 가지고 비집고 들어가는 것 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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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독 야구소녀

 

근: 주제를 바꿔보죠. 시점을 과거로 돌려 의원님에 대해 알아보는 조금은 구태의연한 시간을 가져 보도록 하겠습니다. 학교 다닐 때 좋아하는 아이돌이나 연예인이 있었나요?

 

용: 학교 다닐 때는 신화 좋아했었고요.

 

근: 신화창조?

 

용: 네.

 

근: 얼마 전에 에릭과 김동완 씨의 문제는 아시나요?

 

용: 네. 알고 있죠.

 

근: 그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용: 오빠들이 이젠 나이 들었구나.

 

근: 그건 무슨 얘기죠?

 

용: 사람이 살다 보면 친구 관계에서도 그렇고 가족 관계에서도 그렇고 뭐 이렇게 저렇게 마음 상하기도 하고, 관계가 틀어지기도 하고 그렇잖아요. 저도 신화를 좋아한 지가 한 20년 가까이 되는데, 그 시간 동안 어떻게 좋은 일들만 있을 수 있겠어요. 저희가 알지 못하는 다양한 뭐 문제들이나 불만들이나 감정들이 있겠죠. 다만 그게 SNS를 통해서 표출되는 걸 보면서 왜 저럴까 싶었고. 그런데 또 이렇게 소주 한잔하면서 풀고 그랬다니, 워낙 또 같이 지내온 시간들이 많고 하니 저렇게 또 풀리는구나 했어요.

 

근: 최애 누구였어요?

 

용: 신혜성.

 

근: 다른 취미는 없나요? 게임을 한다든지.

 

용: 최근에는 못하고 있는 건데 저는 야구 보는 거 되게 좋아하고요.

 

근: 어느 팀을 좋아하세요?

 

용: 예전에 현대 유니콘스 어린이 회원이었죠.

 

근: 현대 유니콘스.

 

용: 좀 크고 나서 이제 야구를 보기 시작했던 건 이제 대학 들어오고나서 였고, 그때 이렇게 좀 가난하고, 잘 못하는 팀이 고군분투하는 것에 좀 매력을 많이 느껴가지고.

 

용혜인이 어떤 방식으로 정치적 노선을 결정했는지가 짐작이 간다. 약자에 대한 응원과 연민과 동정. 진보 정치인들이 반드시 가져야하는 기본 성정이다.

 

근: 현대가 가난하진 않잖아요.

 

용: 그래서 그다음에 넥센을(웃음). 현대 때는 어렸으니까 그냥 부모님이 좋아하는 팀을 응원했던 거 같고. 대학을 들어오고 나서 본격적으로 야구를 보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쭉 응원한 팀은 키움 히어로즈. 야구를 보러 다니는 것도 되게 좋아하는데 국회의원 당선되고 그래서 한 번도 못 갔네요. 시즌 중에 경기도 거의 못 챙겨 보고요.

 

근: 좋아하는 선수는 누구예요?

 

용: 다 좋아하는데. 가장 마음이 가는 선수는 서건창 선수.

 

근: 어렸을 때부터 약자한테 마음이 가는 쪽인가요? 예를 들면 스포츠 경기를 봐도 약한 팀을 응원하게 된다거나. 그게 아니면 어느 순간 성향이 바뀐 건가요?

 

용: 글쎄요. 그냥 좀 원래 좀 잘 울고, 남한테 쉽게 감정이입하고 이런 편이기는 해요. 남들이 보고 절대 울 것 같지 않은 영화, 이런 거 있잖아요. 사람들이 진짜 혹평하는 영화 이런 거 보면서도.

 

근: 어떤 영화요?

 

용: 지금 뭐 딱히 하나를 짚긴 좀 어려운데. 예전에 그냥 TV에서 해주는 영화들인데 남들이 영화관 가서 절대 안 본다고 하는 그런 영화들. 되게 뻔한 내용인데 눈물이 막 나는 그런 거 있잖아요. 누가 봐도 이 장면에서 감독이 ‘울어라’라고 이야기하는 그 순간이 되면 바로 눈물이 나요. <신과함께>에서도 감독이 ‘이제 딱 지금부터 울면 돼.’라는 하는 순간이 있잖아요. 그러면 거기서 착실하게 잘 울고.

 

근: 신파에 약하다.

 

용: 네. 감정이입을 좀 쉽게 하는 편이었어요.

 

각성의 계기 : 크레인 위의 여자

 

근: 다른 인터뷰에서 봤는데, 원래 정치적 성향 이런 게 보수적이었는데 변했다 뭐 이런 식의 이야기가 있더군요. 보수적이었다가 어느 정도의 보수성을 말하는 걸까요. 예를 들면 국민의 힘을 지지할 정도의 성향이었던 건지, 그거는 아닌데 지금에 비하면 훨씬 보수적이었던 건지.

 

용: 제가 고3 때가 08년이었거든요. 그때 이제 FTA 반대 촛불시위 있고 막 이럴 때였어요. 이명박 정권 딱 시작하자마자. 제 친구들이 열심히 촛불집회에 열심히 나갔어요. 제가 안산에 살았기 때문에 지하철 타고 시청에 애들이 갈 수 있는 그런 거리였거든요. 맨날 야자 째고 집회에 가고 그런 게 저는 잘 이해 못 하는 편이었죠.

 

근: 가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용: 네. 많았죠. 그 촛불 소녀들 세대, 딱 그 세대들이었고. 진짜 많이 갔어요. 그 학교 땡땡이치고 집회 가고. 아침에 교복 입고 집회 나갔다가 밤새 집회하고 이제 아침에 학교 와서 자고 이런 친구들도 있고.

 

근: 보면 무슨 생각 했어요? 제네들 공부 안 하고 뭐 하나? 이런 생각 했어요?

 

용: 아니 뭐 저렇게까지 하지? 뭐 이런 생각. 당시에는 그런 운동권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되게 낡고 고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요. 투쟁을 외치는 낡고 고루한 시대는 끝났고, 젊은 사람들은 진보적이라는 것도 좀 편견이다. 이렇게 생각했었고. 그때 아마 제게 투표권이 있었다면 한나라당 뽑았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한나라당을 지지해서라기보다는 어떤 이런 운동권, 뭐 이런 것에 대한 반 편향으로서의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FTA 문제도 당시에는 이렇게 파이를 키우려면 일정 부분, 일정 분야에서의 희생은 좀 불가피하다는 주류 언론들의 시각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었고요. 당시에 굉장히 이슈였기 때문에, 수행 평가할 때 그런 거 가지고 토론하고 이럴 때도 그런 내용들로 준비해서 수행평가 준비하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근: 그러면 지금은 운동권이나 FTA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용: 제 생각들이 깨진 순간은 2011년 한진중공업 김진숙씨 농성 현장을 본 이후였어요.

 

근: 김진숙 지도위원.

 

용: 네. 크레인 농성하는 현장.

 

근: 타워크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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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그곳에 우연히 가게 되었어요. 제가 부산에 한 번도 안 가봤었거든요. 대학 때 친구들이랑 막걸리 마시다가 '희망버스라는 게 있다더라' 하는 말이 나와서, 부산에 놀러 가는 기분으로 따라갔었죠.

 

근: 그 정도만 돼도 이미 성향이 고등학생 때와는 많이 바뀌어 있는 것 아닐까요? 희망버스라는 것을 보통의 대학생들이 많이 아는 것은 아니니까요.

 

용: 제 친구들이 관심이 좀 있었던거죠. 저는 거기에 희망 버스가 왜 가는지도 사실 잘 몰랐어요. 전 그냥 철없이 놀러 가는 마음으로 버스를 탔는데, 내린 사람들이 행진을 해서 도착한 곳이 그곳이었죠. 갑자기 담벼락 안에서 사다리가 넘어오더니 사람들이 다 거기로 담을 넘어갔거든요. 그랬더니, 저기 위에 사람이 있다고 하고, 그 노란색 헬멧을 쓴 용역들이 막..

 

근: 용역 깡패들.

 

용: 네. 너무 충격적이었던 장면이었어요. 그 사람들이 이제 사람들이 막 담을 넘어서 들어가니까 용역 깡패들이 도망가는데, 자판기를 털어가지고 음료수를 집어던지더라고요. 빈 캔은 맞아도 별 충격이 없지만, 음료가 들어있는 캔을 던지면 폭발하듯이 촤악~ 터지거든요. 저거 맞으면 정말 죽겠구나 싶었어요. 처음 봤어요. 그런 광경은. 노동자들이 공장을 점거하고 있고 저 위에 어떤 나이 든 여성이 한 명 올라가 있고 용역 깡패들이 진을 치고 있고. 이 사람들이 막 정말 목숨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뭔가를 집어던지고, 그때 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죠.

 

“저분이 올라가 있는 저 크레인이 저분의 동료가 예전에 목숨을 스스로 끊었던 곳이래.”

 

나는 이제 투쟁의 시대는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크레인에 올라가있는 김진숙 지도위원과 한진중공업 정리 해고 반대 투쟁을 보면서 알게 되었어요. 그렇지 않다는 걸. 그날과 그 장면은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죠.

 

용혜인이 본, 당대

 

근: 그걸 계기로 세상에 대한 시각이 바뀐 건가요?

 

용: 돌이켜 보면, 대학에 입학한 이후부터 조금씩 조금씩 바뀌어 온 게 있었던 것 같아요. 그전에 2010년 노회찬 서울시장 후보 선거운동을 했었는데..

 

근: 갑자기?

 

용: 그게 학교 선배가 일당 7만 원씩 준다고 그래서 알바 겸 선거운동을 했었어요. 제가 당시 진보신당이 너무 좋아서라기보다는, 이런 정당도 사회에 있어야지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선거 끝나고 막 항의 전화 같은 게 굉장히 많이 왔었어요.

 

근: 그랬겠죠. ‘민주당 후보가 진보신당 때문에 떨어졌다’ 하는..

 

용: 한명숙 후보가 그만큼 딱 표차 정도로 떨어져서 가지고. 제가 정치학을 전공했거든요.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정당 정치라는 게 다양성도 보장되어야 되고, 이런 정당들이 존재하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당에 후원을 하기도 했었고. 그래서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에 내려갔을 때는 저에게 진보적인 어떤 의제 같은 것들에 반감이 예전처럼 막 크지 않았을 때였어요. 하지만 적극적인 활동이나 행동까지는 큰 관심이 없었을 때였는데, 크레인위에 있는 김진숙씨와 그 아래에 용역깡패들의 풍경은 너무도 큰 충격이었죠. 2011년에 저에게는 김진숙 씨가 정말 죽을까 봐 그게 너무 걱정됐었거든요.

 

80년대에 대학을 들어왔던 사람들은, ‘선배들이 몰래 품 안에서 꺼내준 자료집에서 광주 학살에 대한 잔혹한 사진과 내용들을 봤다. 거기에 대한 부채감으로 그렇게 민주화 투쟁을 했다.’ 이런 얘기 많이 하시잖아요. 광주만큼은 아니겠지만 저에게도 김진숙씨의 그 정말 죽을 것 같은 위태로운 투쟁을 본 그날의 기억이 마음의 부채로 남아있어요.

 

근: 그 선거운동 때 7만 원 받은 거로는 뭐 했어요? 7만 원씩 며칠 받았을 테니까.

 

용: 네. 7만 원, 7만 원을 다 받지 못했고 그 식대 빼고 5만 원씩, 2주. 그냥 생활비 썼어요.

 

근: 뭐 여행을 간다든지 갖고 싶은 걸 샀다든지 그런 건 아니었고요?

 

용: 그런 건 없었어요. 왜냐하면 당시 경제적으로 저희 집이 힘들 때였기 때문에.

 

근: 그럼 원래는 집이 좀 넉넉한 편이었는데 힘들어지신 거예요? 아니면?

 

용: 고등학교 때까지는 넉넉했다가 고3 정도, 대학 들어오면서 고3 때 아버지 사업이 좀 잘 안되면서 힘들어졌어요. 대학교 1학년 때 최저 시급이 3800원이었거든요. 시급 3800원 받으면서 강남에 있는 예식장에서 그 서빙알바 하면서 학교 다녔었고. 그때가 2008년 금융위기 직후였거든요. 그때 학자금 대출 이자가 7%대. 그 이자 갚고, 생활비 내가 벌어서 쓰고 그러면서 생활했었죠.

 

근: 그렇다면 의원님은 계급에 맞춰서 정치 성향을 갖고 있었던 거라고 볼 수 있겠네요. 넉넉했던 고3 때까지는 한나라당에게 표를 줬을지도 모르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진 후에는 진보 신당을 지지했던 걸 보면요.

 

용: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근데 그게 저한테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은 그렇게 크게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내가 한나라당이 아닌 진보적인 정당에 투표를 하는 것이 나의 삶에 도움이 된다거나 이런 생각은 잘 안 했던 것 같긴 해요.

 

부정할 수도 있는 질문인데 순순히 긍정한다. 스스로에게 솔직한 걸까? 아니면 솔직한 것처럼 보이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좀 더 파본다.

 

근: 어느 나라나 다 비슷하지만, 대한민국도 계급 투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죠. 이른바 강남 좌파라고 하는, 배울 만큼 배우고 먹고 살만하고 이런 사람들이 진보적인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고. 진보적인 쪽에다가 표를 던져야 되는 분들이 오히려 자기들한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국민의힘 쪽에다 표를 던진단 말이에요. 정치인으로서 그 현상을 어떻게 보시나요. 그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다가가야 할까요?

 

용: 군부독재의 역사가 길었던 한국에서, 시민들이 민주화 운동 이외에 정치 세력화의 경험이 부족한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노동조합같은. 자신의 계급적 이해관계에 따라서 활발히 결집해보지 못한 거죠. 그런 시도들은 언제나 군부에게 짓밟히거나 실패로 끝났고. ‘그런 거 하면 잡혀간다, 그런 거 하면 먹고 살길 끊긴다, 그런 거 하면 못 산다.’라는 의식이 머릿속에 굉장히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에 그 여파들이 아직도 미치고 있는 거라고 봐요.

 

저희가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에 주목했던 건, 정치는 결국에는 다수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거고, 그랬을 때 가장 다수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그 시대의 보편을 형성하는 것이 어떤 정치 세력으로서 성공할 수 있냐 아니냐의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랬을 때 87년은, 86세대들이 민주화라는 시대의 보편이 만들어낸 거죠.

 

근: 하지만 노태우가 당선이 되었는데. 보편이 되지 않은 거 아닌가요?

 

용: 하지만 군부독재를 끝냈죠.

 

근: 그래도 노태우는 군인이었죠.

 

용: 민주화운동을 했던 후보들이 이렇게 갈라져서 나왔던 것에 대한 아쉬운 점들이 있죠.

 

근: 그렇지만 노태우 때 이미 군부 독재는 끝났다고 보시는 건가요 그러면?

 

용: 노태우는 분명히 군부 세력이죠. 군부 독재 영향력이 남아 있었고. 그런데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방식, 전두환 정권 때와 같은 노골적인 방식으로 하기는 쉽지는 않았던 변화들을 국민들이 만들어낸 거죠. 그러니까 87년 6월이 없었다면, 정권을 승계한 노태우가 전두환과 똑같은 방식으로 통치를 했을 거라고 봐요. 물론 전두환을 끌어내리고 그 이후에 바로 민주 정부로 넘어가 강력한 개혁을 하고많은 것들을 급격하게 바꿀 수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요.

 

근: 그러면 이 정도면 절차적으로 민주화로 나아가는 길을 세웠다 이렇게 보시는 건가요?

 

용: 그렇죠. 더디지만 그렇게 변화한 것 자체가 큰 의미라고 생각해요. 87년 6월 항쟁 이전까지 민주화라는 건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소수 학생들의 운동이었다면, 그 이후로는 온 국민의 어떤 염원이 된 거잖아요. 그것이 지금도 86세대라고 불리는 분들이 영향력을 가지고 계속해서 정치 활동을 할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86세대가 욕도 많이 먹지만 그들이 역사적으로 가졌던 의미는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 시대에 86세대의 역사적 의미가 무엇이냐라고 하면 또 다양한 의견들이 있겠지만, 그 시기에 그들은 분명히 그런 역할들을 했던 사람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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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영화 1987>

 

솔직하고 유연하다. 역사의식도 가치도 유연하게 바라볼 줄 안다. 아직 젊기 때문일까? 아니면 기본적인 성정일까? 어느 쪽이든 이런 시각을 가지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86세대, 밀레니얼 서대

 

근: 86세대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86세대에 대해서, 지금 2030세대가 소위 ‘꿀빤 세대’라고 보는 시각이 분명히 있거든요. 온라인에서는 지배적인 담론이기도 하고요. 그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용: 86세대가 꿀을 빨았다?

 

근: 취업도 쉽게 했고. 편하게 살았고. 이제까지 계속 누리고 있고. 이런 시각을 분명히 갖고 있는 사람도 있단 말이죠.

 

용: 저는 86세대가 목숨 걸고 싸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목숨 잃은 분들도 많이 계시고요. 그런데 지금의 청년들이랑 조건이 다르다고도 생각합니다. 경제가 계속 성장하던 시기에 대학을 다니면서 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학생 운동에 투신했고,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면 안정적인 직장을 잡을 수 있었고, 거기서 뭔가 차근차근 돈을 모으고, 결혼도 하고, 집도 사고, 애도 낳고. 86세대가 이런 어떤 ‘인생의 각’을 세우는 것이 가능했던 세대라면, 지금 청년들은 목숨을 걸 필요는 없죠.

 

하지만 결혼하고 애 낳고 있는 제 또래들을 보면, 잘 사는 집 친구들도 자기가 돈 벌어서 집 살 거라고 아무도 생각 안 하거든요. 자수성가가 불가능해진 사회, 집을 사거나 결혼을 하는 게 부모 도움이 있어야만 가능한 세대, 부모 도움이 없이는 이렇게 인생의 각이 안 서는 사람들인거죠. 내가 10년 뒤, 20년 뒤 뭘 하고 있을지는 커녕 당장 1년 뒤에 취업이 되어 있을지, 안 되어 있을지도 알 수 없는 그런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거니까. 

 

이 차이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면 86세대에 대해서 그냥 ‘꿀 빤 사람들’이라고 치부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어르신들이 청년들에 대해서 ‘너네는 사회에 관심도 없고 다들 니네 애들 밥그릇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세대야’라고 서로 간의 답 없는 비난만 이어지게 되는 거죠.

 

사안마다 거의 정답에 가까운 답을 낸다. 청년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정치가 청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한다면, 용혜인을 주목해야 한다.

 

지금의 세대갈등은 그냥 있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부추기는 누군가가 있다. 586 운동권이 꿀을 빨았다는 욕은 대개의 경우 그나마 민주화 운동이라도 했던 민주당 정치인을 향할 뿐, 민주화 운동조차 하지 않고 ‘꿀을 빤’ 국민의힘 정치인을 향하는 법이 없다.

 

기본소득 : 돈 때문에 죽지않는 사회

 

근: 어떻게 하다 국회의원이 될 생각을 하셨는지?

 

용: 저는 이전까지 시민사회 운동을 해왔어요. 특히 세월호 이후로. 세월호의 진상 규명과 사회적 해결을 위한 활동들이었죠. 제가 그 활동들을 하면서 가장 절망스러웠던 순간은, 해결은 너무 더딘데 비슷한 사고가 계속 반복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사후적으로 사회적 해결 진상 규명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사건이 일어나도 또 똑같은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은 거죠. 그게 너무 절망스러웠어요. 끝이 보이지 않는 길 같은 느낌.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그런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고, 그 방법을 찾기 시작했죠. 이 세월호 참사의 기저에 깔려 있는 사회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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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용혜인의 이전 딴지이너뷰 (링크)

 

세월호 참사의 다양한 원인들을 제기하시는 분들이 계시고 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하시는 분들이 계시죠. 제가 주목했던 건, 우리 사회가 돈 버는 게 안전에 들이는 비용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사회라는 거였어요. 세월호가 침몰했으니까 문제가 되었지, 침몰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청해진해운은 제주도로 배를 띄우고 있었을 거예요.

 

안전교육에는 1년에 56만 원 쓰면서 TV 광고비에는 3억씩 쓰고 접대비 6천만 원씩 쓰는 회사. 그게 유능한 경영이라고 인정받는 사회. 이런 끔찍한 참사가 나야 그 유능함들이 사실 사람들의 안전을 담보로 한 거였다는 것이 겨우 드러났다가 또 금세 묻히는 사회. 이걸 바꿔야 한다는 고민을 시작했어요. 그때가 2014년, 25살이었죠.

 

돈 때문에 사람이 죽지 않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그 답을 찾다 만난 것이 기본 소득이라는 아이디어였어요. 역발상 같은 거였죠. 최소한의 소득이 보장된다면 돈 때문에 죽는 일은 없지 않을까. 시민운동 진영에서, 기본소득이 다양한 맥락에서 지금 시대에 의미 있는 효과 있는 정책이 뭘까 공부하고 고민해왔습니다. 하면 할수록 한국은 정치의 힘이 굉장히 센 국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생각이 직접 출마를 해야겠다고 이어졌고요. 당선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당선됐다. 결과를 기대하지 않아도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 덕에 우리는 용혜인이라는 국회의원을 얻게 되었다.

 

근: 한국이 정치의 힘이 센 국가라는 평가는 상대적인 건데. 어디에 비해서 그런 거 같으세요?

 

용: 한국과 비슷한 경제 수준에 있는 나라들을 보면 노동조합이라거나 이런 데들이 굉장히 큰 영향력을 갖잖아요. 정당과 노동조합이 연결되어 있고, 배타적 지지도 하고.

 

근: 예를 들면 어떤 나라가 있죠?

 

용: 프랑스도 그렇고 독일도 그렇고. 다 정당과 노동조합이 연계되어 있고, 정치 성향에 따라서 가입하는 노동조합이 달라지고. 파업하고 이런 것들이 익숙한 나라들에서는 국가의 정책 결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들이 다양하게 있죠. 한국은 정치가 아니면, 정당이 아니면, 어떤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죠.

 

근: 그런데 그런 나라는 이른바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선진국들이고, 우리는 아직 그 수준에 못 미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의원님은 우리가 이미 그 수준에 있는데 왜 그 나라하고는 다를까라고 고민하신 건가요? 아니면 그 수준에 가지 못했지만 그 수준으로 가야 된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용: 경제적으로 한국은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죠. 하지만 한국은 후발 주자잖아요. 짧은 시간 동안 집약적인 성장이었고 변화였기 때문에, 사회적 인프라에 있어서는 아직 더 많은 변화나 개혁이 필요한 상황이죠.

 

근: 그럼 의원님은 정치의 힘이 너무 세니까 정치의 힘을 빼고 오히려 그런 사회적인 조직들이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신 건가요?

 

용: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려면 정치를 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기본소득당이라는 당을 만들었던 것이고, 많은 시민사회 진영에서 위성정당이라고 비난받았던 선거연합 정당에도 참여했던 거고요. 동료들과 이런 결정들을 해나갔던 거죠.

 

불리한 얘기가 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중요한 얘기가 될 수밖에 없는 주제를 자연스럽게 꺼내놓는다.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다.

 

위성정당에 관하여

 

근: 그럼 그 위성정당 얘기를 좀 해보죠. 위성정당으로 참여하기로 결정할 때 어떤 고민이 있었나요?

 

용: 저는 참여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 과정이 쉽진 않았죠. 위성정당이라고 표현하지만 저는 위성 정당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협상들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저희가 제시했던 원칙과 요구가 있었어요. 기본소득당이 선거연합정당에 참여를 한 거니까, 기본소득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어야 된다. 정책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했죠.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단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던 전제이죠. 선거가 끝나면 당연히 기본소득당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기본소득당의 의정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굉장히 가장 중요한 조건이었거든요. 민주당에서도 ‘당연히 돌아가셔야죠.’ 이렇게 얘기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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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정당을 비판하시는 많은 분들이 "용혜인은 그냥 민주당에 간 거다. 못 돌아올 거다."라고 하셨어요. 민주당이 보내주겠느냐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저는 이번 기회에 기본소득당이 원내에 진출해서 국회 안에서 기본소득을 실현시키는 의정 활동들, 정치활동들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움직였죠.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그 과정이 절대 쉽지는 않았어요. 2주 동안 집약적으로 사람들을 설득해야 했죠. 정말 매일 밤마다 사람들이랑 통화하고 상황을 공유하고 전국 운영위 같은 회의체들을 준비하고 그 과정에서 진통도 꽤 겪었어요. 저희도 탈당하시는 분들도 꽤 있었어요. 시 도당 위원장님들 중에도 반대하시는 분들이 꽤 있었죠. 왜냐하면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선택이기 때문에. 이해해요. 하지만 저로서는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아요.

 

진보 정치는 기본적으로 약자의 정치다. 강자들은 하던 대로 해도 되지만 약자는 영리하고 유연하게 움직여야만 한다. 약자이기 때문에. 용혜인의 선택은 영리하고 유연했다.

 

근: 선거법 틈새를 파고들어 거대 양당이 꼼수를 써서 횡포를 부렸다고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위성정당 문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용: 사실 원 외에 있는 아주 작은 소수 정당 입장에선 크게 다를 건 없어요. 어쨌든 3%라는 봉쇄 조항이 있으면 1%의 지지를 받든 2%의 지지를 받든 국회에 못 들어가는 불합리함은 똑같거든요. 그러니까 300명을 계산하면 1%의 지지를 받았을 때 3명 정도의 국회의원이 있어야죠. 그런데 1%를 받던 2%를 받던 2.9%를 받던 3%를 넘지 못하면 어떤 국회의원도 배출할 수 없는 기존의 선거제도가 가지고 있는 한계는 지금도 똑같아요. 지난번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두고 둘러싼 논쟁을 저희가 원외에서 바라보았을 때는, 국회 안에서의 의석 논쟁이라는 생각을 좀 많이 했었어요.

 

근: 정의당의 입장에서는 거대 양당이라고 했지만,

 

용: 저희 입장에서는,

 

근: 기본소득당 입장에서는 정의당 너희들도 있지 않냐. 너희들도 배부른 소리 아니냐.

 

용: 봉쇄 조항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어떤 표의 등가성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해는 하지만, 저희 입장에서는 사실은 별로 변한 게 없는 거죠. 표의 등가성은 어차피 지켜지지 않는 거고. 물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이런 비례정당 없이 치러졌다면 그나마 좀 나아지긴 했겠으나 아주 작은 정당들 입장에서 보면 뭐 크게 달라지는 건 아닌 뭐 이런.

 

근: 그리고 정의당만 꿀 빨았을 거다.

 

용: 정의당만이라고 보기는 좀 어렵겠지만.

 

근: 정의당, 민생당 등등 국민의당.

 

용: 어쨌든 원내에서의 의석 싸움이다, 정도의 아쉬움이 있었죠.

 

통렬한 비판이다.

 

근: 세력 다툼이지 그것이 올바른 무언가를 지향하는 안은 아니었다. 그러면, 만약에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그런 형태로 만들지 않고 사실은 더 폭압적인 형태로 위성정당을 만들 수도 있었던 거잖아요. 자기들끼리 해버려도 되는 건데, 그러지 않았고 그 결과 본인이 원내로 진출하셨단 말이죠.

 

용: 민주당. 더불어 시민당을 지지해 주셨던 시민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크죠. 그리고 그분들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제가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던 거고 기본소득당이 원내정당이 될 수 있었던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 연합 정당을 만들고 논의했던 과정을 같이 하고, 선거를 같이 치렀던 민주당 쪽 분들에게는 그런 의미에서의 같이 고생한 동료적 마음이고요.

 

근: 동료의식.

 

용: 위성정당이라는 표현보다는 저는 ‘선거연합정당’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어요. 저를 지지를 해줬던 시민들에 대한 고마움과 또 그리고 같이 선거를 고생하면서 치렀던 분들과의 전우애라고 할까요. 그런 마음과는 별개로, 선거연합정당 자체는 서로 간에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좀 정리 내리는 게 맞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좀 들어요.

 

유니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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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젊은 나이에 국회의원이 되셨어요. 특별한 배경이 있는 금수저도 아니시고, 갑자기 국회의원이 되신 건데. 주변에 혹시 부러워하거나 배아파하는 시선들도 있나요?

 

용: 아니요. 그렇진 않아요. 제 주변엔 왜 그렇게 힘든 일을 하니?라고 이야기하는 친구들이 좀 더 많고요. 같이 정당 활동을 하고 있는 동료들과 저는 '스타트업 기업을 운영하고 하고 있는 거랑 비슷하다'라는 생각을 많이 하곤 해요. 처음에 저희가 당을 만들 때, 될지 안될지는 모르지만 한 6개월 정도만이라도 알바도 하지 말고 지금까지 모아뒀던 돈 까먹으면서 당을 만드는 데에 올인 해보자라고 약속하고 시작했거든요. 결과적으로 창당에 성공했죠. 지금 생각해 보면 진짜 무모한 짓이었다라고 생각하지만..

 

근: 성공한 사람들이 주로 하는 이야기죠. 돌아보면 무모했다.

 

용: 그런데 그때는 선배들이나 주변에 계신 분들이 당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니. 이렇게 얘기하시면 어렵긴 어렵겠지만 못할 건 또 뭐야라고 생각했거든요.

 

근: 아이돌 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니? 이런 거랑 똑같은 얘기지 않을까요. 영화배우 되는 게 얼마 어려운지 아니? 같은.

 

용: 지금 생각해 보면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인 거죠. 그래서 지금도 당을 운영할 때 저도 세비 받는 것을 당비로 많이 내고 있고. 다들 활동비도 받지 않고 일하던 사람들이 이제 최저임금 정도 받고 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마련한 거죠. 제가 국회의원을 하는 게 중요하다기보다는 기본소득당이라는 하나의 프로젝트에 제가 국회의원이라는 역할, 그런 롤을 맡고 있는 거죠. 마케팅에 뜻이 있는 동료가 그 일을 맡고, 온라인이나 홈페이지, 데이터 분석 이런 것에 강점이 있는 친구들이 각자 역할을 하는 거죠. 저에게 의원직은, 그 동료들과 같은 N분의 1의 저의 역할일 뿐입니다. 저희의 목표는 스타트업 기업이 잘 되어서 유니콘 기업이 되듯, 유니콘 정당이 되는 것이에요.

 

스타트업 정당을 유니콘 정당으로 만들어 정치인 용혜인은 무얼 하고 싶은 걸까? 2부에서 더 알아보도록 하자.

 

계속

 

 

지난 토요일 저녁 용혜인 의원의 아이가 태어났다고 한다.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용혜인 의원 가정에 무한한 행복이 깃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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