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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낙관론과 비관론 사이에서

지난 서론에 많은 댓글들이 달렸습니다. 관심을 가져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댓글 중 논쟁적이었던 부분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논쟁은 사실 지난 번 서론에서 언급한 '코인이라는 화제의 복잡미묘함'과 연결됩니다.

 

코인에 대한 논쟁, 특히 온라인 상에서 익명으로 벌어지는 논쟁은 이런 구도를 띕니다.

 

코인은 내재적 가치가 없으므로 모두 거품이다

vs

코인은 자산으로써의 가치가 있으며, 그 가치는 지금 평가받는 가치보다 높다

 

전자(이하, 비관론이라 하겠습니다)에 해당하는 분들은 아마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를 후자(이하, 낙관론)에 해당한다고 보시는 것 같습니다. 일면 맞지만 일면 다릅니다. 저는 '코인의 자산적 가치를 가늠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내재적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이죠. 하지만, 지금 평가받는 가치보다 높은지 낮은지는 코인마다 다르고, 과대평가된 코인이 더 많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낙관론자라고 할 수 없겠죠.

 

공교롭게도 이 글의 초안을 쓰고 하루가 지난 5월 19일, 코인장 폭락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저의 견해를 좀 더 명확하게 밝힐 수 있겠습니다. 저는 이 폭락에 대해 코인의 거품이 빠진 것이 맞다고 봅니다. 하지만 일부 코인들의 내재적 가치는 이번 폭락으로 인해 낮춰진 시세보다는 더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어떤 결과가 벌어지든 빠져나갈 수 있는 얍삽한 포지셔닝이라 해도 할말 없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저는 실제로 저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논쟁에서 저는 비관론자 또는 낙관론자 중 하나로 간주되곤 합니다. 그로 인해 참여하고 싶지 않은 논쟁 사이에 놓일 때도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왜 기술에 대한 논의가 사라지고 자산 가치의 낙관론과 비관론 양극단의 갈등만이 남았을까요. 이번 편에서는 그 원인과 의미를 살펴봅니다.

 

 

2. 결제와 거래소라는 핵심 그리고 나의 2014년 비트코인 실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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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이 떠오른 건 2017년입니다. 가격이 뛰어올라 관심이 커진 것인지, 관심이 커져서 가격이 뛰어오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변화는 폭발적이었죠. 한편, 2017년의 큰 상승 이전에 2011년, 2014년에 구글 트렌드의 상승이 있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때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을 요약하자면, '그냥 공돌이 장난만은 아니었나?'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2008년 발표된 논문과 2009년 최초로 시작된 비트코인의 블록은 아직 얼리어답터 공돌이들의 상상이었습니다.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은 아직 '시도'에 의미를 두는 공돌이들 사이에서의 놀이 성격이 강했습니다. 오픈소스 초기 상태 프로젝트 중 하나 정도였죠. 기술의 밑바닥이 모두 공개돼있고, 이걸 활용하고 발전시키는 데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오픈소스의 특징입니다. 이 과정에서 세계의 공돌이들(꼭 공학전공자를 말하는 건 아닙니다)이 '이런 것도 할 수 있겠는데?', '이런 건 이렇게 보완하면 좋겠는데?'라는 논의와 시도를 이어갑니다.

 

이러한 시도가 공돌이들의 사적인 유희에 그칠 때까지는 그다지 세상에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래 두 가지가 출현하면서 세상에 영향을 끼치게 됐죠.

 

1. 결제

2. 거래소

 

이 둘이 결합되면 현금으로 비트코인을 사서, 그 비트코인으로 다른 상품이나 콘텐츠를 구매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목적성을 지녔기 때문에 '화폐' 또는 '통화'라는 의미로 'currency'라는 명칭을 붙인 것이겠죠. 그 목적에 따라 공돌이들은 거래소를 만들고, 비트코인으로 무언가를 살 수 있게 만듭니다.

 

'돈으로 그냥 사면 되는데 왜 비트코인으로 사야돼?'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만약 기존 법정화폐가 모든 곳에 사용될 수 있다면 그렇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단, 암시장이나 불법적인 거래의 경우가 있죠. 음지에서 사용된다는 점이 아직도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비트코인으로부터 불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한편으로는 음지가 아니더라도 온라인 상에서 기존 결제수단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해외직구를 하는 경우를 보죠.

 

저는 2014년 즈음 해외 직구를 위해 처음 비트코인을 구매했습니다. 전자담배 기기를 사야하는데 제가 갖고있는 어떤 카드로도 결제가 안됐었습니다. 그런데 비트코인으로는 결제가 가능했었던 거죠. 수수료와 환차를 고려할 때 꽤 손해이긴 하지만, 다른 대안에 비해서는 여전히 저렴했어서 시험삼아 비트코인으로 결제했습니다. '이게 되네?' 싶었죠. 그 비트코인을 직구에 써버리지 않고 그냥 갖고 있었더라면... 이라는 후회를 시작하면 눈물이 앞을 가려 더이상 연재를 할 수 없게 될 것 같아 더 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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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으로 물건을 살 수 있는 일본의 한 가전제품 매장

 

3. 첫 번째 자본의 선택, 거래소 

이렇게 비트코인을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이유가 만들어지면, 돈을 주고 비트코인을 살 이유가 생깁니다. 이전의 비트코인 거래소는 그냥 공돌이 덕후들의 유희였다면 이 시점부터는 저 같은 일반인(이라기엔 공돌이 덕후에 가깝긴하지만 문과입니다)이 거래소를 찾아야 할 이유가 생긴 겁니다. 매수자가 늘고, 거래량이 많아집니다. 그러면 무슨 일이 생길까요?

 

그렇습니다. 거래소가 돈을 법니다.

 

코인판이 아니더라도, 돈을 버는 어떤 사업이든 돈은 몰리게 돼있습니다. 특히 2010년대는 IT기술에 돈이 몰리는 현상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했습니다. 스마트폰의 활황과 앱산업의 부흥, 머신러닝, VR, IoT, 소셜네트워크, 공유경제 등등, 전세계 여기저기서 '제2의 실리콘밸리'를 자청하고 엔젤투자자와 벤쳐캐피탈의 자금이 쏟아진 때죠.

 

이 가운데 블록체인을 이용한 수많은 시도들이 발표되고, 자본의 시야에 이 주제가 들어옵니다. 어떤 모험적인 자산가는 이더리움이나 라이트코인 같은 것을 몇천만 원, 몇억 원 사보기도 합니다. 이보다 덜 모험적인 어떤 투자자들은 거래소가 돈을 벌고 있음을 보고 거래소 운영사를 대상으로 좀 더 전통적인 지분투자를 하기도 합니다.

 

이번 편에서 주목할 결과는 '거래량이 더 많아진다'는 것이죠. 거래소는 투자금을 바탕으로 마케팅을 해, 아직 코인이란 것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돈도 많고 모험심도 강한 사람들에게 다가갑니다. 누군가는 어떤 알트코인 프로젝트가 신빙성이 있다고 믿고 스스로 코인을 매수합니다. 이렇게 어느 수준의 거래량이 쌓이면 부의 축적은 가속됩니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수많은 시도 중, 거래소가 가장 먼저 자본의 선택을 받게 되는 것이죠.

 

4. 거래, 그 자체의 게임

주식이든 코인이든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기술적 투자' 내지 '기술적 분석'이라는 말은 들어보셨을겁니다. 가치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그저 시세의 변동 자체를 분석하는 것으로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관점입니다. 이 역사는 18세기 또는 19세기에 기원을 둡니다. 200~300년 전부터 본연적 가치와 관계 없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고안된 것이죠.

 

기술적 분석은 사실 꽤 과학적인 시도입니다. 어떤 현상을 발견하고, 현상의 반복을 관찰한 후, 반복 속에서 법칙을 찾아내는 것은 과학이라는 학문의 시작과 매우 유사합니다. 하지만 자연과학과는 전혀 다른 결정적 차이가 있고, 이것이 문제를 일으킵니다. 자연과학은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자연현상을 탐구합니다. 하지만 기술적 분석이 탐구하는 대상은 바로, 순전히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낸 '거래되는 시세'라는 점이죠.

 

뉴튼이 만유인력에 대한 탐구를 했다고 해서 사과의 질량을 맘대로 높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기술적 분석을 파고들다보면, '이 거래시장을 맘대로 쌈싸먹으려면 돈이 얼마쯤 필요하겠는데?'라는 계산이 가능해집니다. 소위 '작전 투기'가 성립되는 것이죠. 여기에 게임 이론이나 간단한 심리학이 곁들여지면 본연의 가치와는 아무 관계 없는 허구적 가치 변동이 만들어집니다.

 

코인 얘기가 나오면 늘 뒤따르는 튤립 파동이나 미시시피 거품은 허구적 가치변동의 고전적 사례입니다. 숱한 주가조작 사건도, 최근의 게임스탑 숏스퀴즈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길게 보면 200~300년 간, 못해도 최근 수십 년간, 이렇게 가치와 무관하게 인위적인 시세 변동을 만들어내는 수법에 대한 연구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그 수법이 실행됩니다. 뒤따르는 수많은 피해자가 생기죠. 그래서 각 나라에서는 이러한 행위 중 악의적인 경우에 대해 처벌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합니다. 톰과 제리 같은 도둑잡기 속에서 수법도, 제도도 점차 발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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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이 등장, 거래량이 엄청나게 늘어납니다. 이 거래소는 휴일도 없고, 사실상 국경도 없고, 생소한 기술이다보니 아무런 제도도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내재적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방법도 마련되지 않았죠. 어찌보면 가장 순수한 형태의 '거래 그 자체'가 벌어지는 시장. 이런 시장에서 점점 큰 돈이 오가는데, 인위적 시세차익을 만들려는 사람이 끼어들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요? 코인 거래소는, 가치와 무관한 거래 자체의 게임에 대한 수많은 전략들이 각축을 벌이기 가장 좋은 환경이었던 셈입니다. 이에 더해 코인은 물리적 실체보다 코드 상에서 벌어지는 일의 비중이 더 큽니다. 기술적 분석을 바탕으로 한 각종 수법이 빠르게 시도되고 더 효과적인 수법을 발굴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인 셈이죠.

 

그 결과, 2017~2018년 사이 우리는 어떤 시장의 거래시세가 얼마나 미친듯이 오르고 또 미친듯이 떨어질 수 있었는지를 경험했습니다. 2021년, 우리는 코인 하나가 하루에 20~30%씩 오르내리는 걸 밥먹듯이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이점이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라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일종의 저주로 자리잡습니다. 코인에 대해 '이런 광기가 만들어진 근원'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 것이죠.

 

그런데 저는 좀 의아합니다. 튤립 파동으로 인해 튤립을 탓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미시시피 계획 때문에 미시시피 강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을까요? 코인 비관론자들은 말합니다. 코인은 그냥 자기들만의 놀이일 뿐, 실질적 가치는 전혀 없다. 과연 그럴까요? '거래 그 자체의 게임 논리가 판을 쳤고, 그 결과 내재적 가치에 대한 논의보다 시세의 급등락이 선행됐다'는 사실이, 근원이 되는 기술마저도 무가치하다는 평가로 이어져야 할까요?

 

그런 면에서 확실히 코인 비관론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버블은 버블이고 기술은 기술입니다. 닷컴 버블로 수많은 피해가 일어났다는 사실과, 닷컴 시대의 유산이 결국 이 시대 우리가 누리는 기술적 성과의 바탕이 됐다는 사실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맹목적인 낙관론에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최근의 도지코인 시세 급등락을 목격했죠. 일런 머스크라는 일개 개인이 이 거대한 시장에 끼치는 영향이 허망하리만치 크다는 사실도 경험 중입니다. 아직도 수많은 거래소에는 그저 소스코드 복붙 수준에 그치는 소위 '잡코인'들이 급등락합니다. 이런 잡코인의 급등락은, 아마도 예상컨데 앞서 얘기한 '거래 그 자체의 게임 전문가들'의 놀음판에 일반인들이 털리는 과정에 가까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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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 다 동의할 수 없는 저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수많은 공돌이들이 십수 년간 만들어가는 기술이 지향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게 뭔지 궁금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5. 막대한 부를 쌓은 이들의 다음 행보 

2021년 현재, 지난 십수 년간의 IT기술 역사를 이해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격차는,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경력직 개발자 연봉 테이블로 드러나죠. 어쩌면 코인 기술이 머지않아 쓸모없는 기술이라고 평가될 지도 모릅니다. 5~6년 전 미래를 바꿀 것 같던 VR, AR 기술에 이제는 시큰둥해진 것 처럼 말이죠. 망할 가능성이 더 크다면, 굳이 코인 기술의 미래를 궁금해할 필요는 없겠죠.

 

하지만 코인 거래소 광풍은, 저주와도 같았던 동시에 명실상부한 전환점을 만듭니다. 거래소 광풍 덕분에 코인 업계가 어마어마한 자본을 지니게 됐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죠.

 

불과 3~4년 전 벤쳐캐피탈의 투자를 받기 위해 전전긍긍하던 거래소들은, 광풍 사이에서 어마어마한 돈을 법니다. 스스로 벤쳐캐피탈을 만들고 또 다른 벤쳐캐피탈에 자본을 투입하는 입장으로 돌변했습니다. 거래소 뿐 아니라 다양한 관련 사업이나 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한 이들은, 보유했던 코인의 가치가 엄청나게 오르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그 과정이 합당했느냐에 대한 판단과는 무관하게 그들은 이미 막대한 자본력을 갖췄습니다. 2020~2021년 코인 시장의 2차 부흥은 이들의 막대한 부를 더더욱 막대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자본의 선택을 받은 수준을 넘어, 스스로 주요 자본가의 일원이 됩니다.

 

이렇게 막대한 부를 쌓은 집단이 움직인다면, 100% 잘된다고 볼 순 없겠지만, 최소한 망하는데 3대는 걸립니다. 똑같은 리스크를 갖고 시도해도 더 많이 시도를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만큼 성공의 가능성도 높아지죠.

 

성공의 가능성이 높다면,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그들이 나아가는 방향에 대해서. 그리고 그 방향이 우리의 삶에 끼칠 영향에 대해서.

 

다음 편에서 그 방향과 영향을 더 알아보겠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