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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는 어디로 가는가.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뉴스가 들려오는 가운데, Z세대가 이번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는 이야기, 뉴스에서 많이 보셨을 게다. 한국으로 치면 과거 민주화 세대가 아닌, 무려 1995년 이후에 태어난 이들이 총칼 앞에 앞장서 시위의 주체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Z세대는 민주화를 이끌어왔던 민주화 기성 세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미얀마의 현재 상황은 어떨까?"

 

행동하는 미얀마 청년연대의 활동가 웨 노에 흐닌 소 씨와 만났다(인터뷰는 사정상 ZOOM으로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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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 노에 흐닌 소

 

 

미얀마인에게 듣는 현재 미얀마 상황 : 통합정부 출연, 연합군 창설 추진

 

빵꾼(이하 ‘빵’) : 행동하는 미안마 청년연대는 어떤 단체인가요? 

 

웨 노에(이하 ‘웨’) : 쿠데타 발발 후, 한국 내 미얀마 노동자와 유학생 중심으로 결성한 단체입니다. KOCO 해외주민운동연대와 함께 여러 활동을 했습니다.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는 기자회견, 언론 인터뷰, 미얀마 희생자들을 위한 장례식,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들과 미얀마 상황에 대한 토론, 미얀마 현지에 구호품 보내기 활동 등을 해 왔습니다.

 

빵 : 최근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흐름은 어떤가요?

 

웨 : 요즘 저도 힘이 좀 빠진 상태에요. 쿠데타 발발 후 두 달까지는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엘리트층인 공무원의 참여도 적극적이라서, 희망이 있다’고 말했는데, 83일째 지나오니 지칩니다. 

 

지난 4월 1일엔 미얀마에서 국가통합정부(National unity government)가 출범했어요. 근데 희생자 수는 800명 이상으로 넘어섰고, 통합정부가 우리 국민을 보호해줄 수 있을까 의구심도 들어요. 그렇지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힘든 상황이죠.

 

(얼마 전, 국가통합정부의 정싱 명칭은 '민족통합정부'로 정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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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일. 아웅산 수치 여사가 군부에 의해 감금당한 상황에서, 미얀마 민주진영의 임시정부인 ‘연방정부 대표 위원회’는 통합정부 설립을 공표했다. 소수민족의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 ‘모든 연방 민주주의 세력의 연립 정부이자 집단 지도체제’를 표방한다. 

 

빵 : 통합정부의 모토처럼, 민주화 운동과 민족 통합은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미얀마 국민들은 지금 민주화 운동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웨 : 과거의 쿠데타 저항 운동하고는 차원이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특히, 미얀마 대다수를 차지하는 버마족이 강경 진압을 피부로 느끼게 되면서 과거 소수민족이 느꼈던 아픔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고 있어요. 소수민족 중에는 “70년이라는 반세기 넘은 시간 동안 탄압을 받아왔는데, 버마족이 고작 3달 만에 그 아픔을 공감할 수 있냐”라는 반론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버마족은 눈앞에서 가족과 동료들이 죽어가는 걸 보고 다르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거 군부가 소수민족에게 자행했던, 여성을 구금하고 성폭행하는 등의 행위를 이제 버마족에게 행하고 있어요. 아픔을 느껴왔던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그동안 소수민족의 아픔을 외면해왔던 역사를 반성하고 있습니다. 

 

 

통합의 필요성에 공감한 것은 의미 있지만, 사람들은 아직 로힝야족 학살을 옹호했던 수치 여사의 말을 기억한다. 로힝야뿐 아니라, 소수민족마다 조금씩 다른 문제를 지니고 있다. 통합정부, 가능한 일일까.

 

 

빵 : 통합정부의 통합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나요?

 

웨 : 핵심은, 국가방위 연합군의 창설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죠. 지금 군부에 대항할 버마족 자체의 군대는 전혀 없고, 소수민족만 각각의 무장단체를 운영하고 있죠. 통합정부는 버마군을 창설하고, 소수민족들의 무장단체와 협력하여 '연합군'을 만들려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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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렌족 독립군은 국경 지역에서 미얀마 군을 급습하고, 미얀마 군은 까렌족 마을을 공습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빵 : ‘평화적인 시민불복종 운동으로는 민주화가 불가능하다’라는 공감대가 퍼졌군요. 유일한 대안은 무력으로 맞서는 것이라는 결론인건가요?

 

웨 : 그렇죠. 그러나 통합정부 인사들은 정권에 있었던 2015년~2020년 동안 소수민족에 대한 무시와 차별을 진행했었습니다. 그래서 프로젝트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시선이 많이 있습니다. 즉, 그들에게 믿음과 신뢰를 먼저 줘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아세안(ASEAN)이 학살의 주동자인 민 아웅 흘라잉을 초대했잖아요. 통합정부에 힘이 전혀 실리지 않고 있죠.

 

 

4월 24일, 인도네시아는 로힝야 사태의 주범이자 쿠데타의 주역인 민 아웅 흘라잉을 아세안에 공식 초대한다. “합법적인 정부의 수장으로 초대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쿠데타 주역에게 공식적인 외교무대를 제공한 것이었다. 민 아웅은, 28일, 아세안과의 합의를 날려버리고 또다시 국민을 향해 발포했다.

 

 

여전히 군부 편인 일선 군경들

 

빵 : 한국은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경찰이나 군인이 시위대를 지지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미얀마는 어떤가요?

 

웨 : 극소수의 탈영 사례만 발생하고 있습니다. 근데 시민을 학살하고 있는 주체가 군 상부뿐 아니라 일선 군경이기도 해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언론에서는 잔혹한 진압을 하는 군경이 반강제로 약에 취해 그렇다는 설이 나오는데, 83일 동안 약에 취할 수는 없는 법이죠. 지금까지 올라온 영상을 보면, 최전방의 군경은 희열을 느끼면서 학살하는 모습도 보여요. 

 

빵 : 왜 그럴까요? 그들도 같은 버마족일텐데

 

웨 : 그들의 한 달 월급은 한국 돈으로 8~10만 원입니다. 반면, 대위 이상의 고위 군인들은 미얀마의 가장 큰 부를 독점하고 있죠. 일상적인 착취와 억눌림에서 해방된 그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해방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빵 : 광주민주화운동을 떠올려 보면, 전두환은 끝까지 자신은 시민을 향한 발포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발뺌했습니다. 지금 미얀마 군부도 그러한 태도인가요?

 

웨 :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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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영상 링크

 

빵 : 군경이 돌아서지 않는 이유는 전국민적 지지가 모이지 않았기 때문인 것도 같은데요.

 

웨 : 일단, 시위 동력이 빠진 결정적 계기가 모바일 데이터의 차단입니다. 3월 14일부터 모바일 데이터를 다 차단했습니다. 그동안 운동을 SNS 중심으로 진행했는데, 그게 불가능해진 거죠. 이제 소식을 전달할 유일한 채널이 국영방송밖에 남지 않았어요. 아마 새로운 정부가 출범됐다는 것을 모르는 국민이 대다수일 겁니다. 또한, 평범한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주면서,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을 만류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웨 노에 씨는 지속적으로 통합정부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했다.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달라”라고 말하는 통합정부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죽어가는 청년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무력한 정부의 태도가 답답한 것에 공감이 간다. 그런데, 궁금했다. 소수민족이 통합정부를 불신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민주화의 수혜를 받은 미얀마 Z세대도 통합정부를 불신한다. 민주화를 도입했던 통합정부를, 왜 불신할까?

 

 

Z세대가 '민주화 기성세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

 

빵 : Z세대는 통합정부 인사들이 문민정부 시기에 진행한 민주화 업적, 경제 발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요?

 

웨 : 그들에 대한 환상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과거에는, 한 사람의 정치적인 업적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를 믿었습니다. 2019년 국제재판소에서 로힝야족 사태를 옹호한 일도 ‘그분이 했기 때문에 그게 맞을 거야’라고 지지했죠. 이젠 그런 지지와 믿음에 의심을 갖게 된 거죠.

 

빵 : 돌이켜보면, 수치 여사가 옹호 발언을 하게 된 계기는, 역시 선거가 다가왔기 때문이었는데요. 극우 세력이 불 지펴놓은 반 무슬림 정서가 강력했었죠. 지금 버마족의 Z세대는 그 발언이 정말 잘못되었다고 느끼고 있는 건가요?

 

웨 : 맞습니다. 과거, 사람이 좋아서 판단력 없이 받아들였던 것을, 이제는 한 사람의 정치적인 행위에 대한 잘잘못을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정치인이 제대로 정치해야 우리는 인정할 것이다’식의 분위기로 바뀌고 있죠.

 

빵 : 기성세대들이 민주화의 아이콘으로 쌓아왔던 이미지와 영향력에만 의지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명한 정치적인 플랜과 어젠다를 던지는 ‘리더’가 필요하다. 라는 공감대인가요.

 

웨 :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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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국경제>

 

1년 전만 해도, 버마족에게 로힝야족 사태에 대해 묻는 것은 금기에 가까웠다. 해외에서 평등과 인권을 공부하는 사람들도 그 대화만은 피했다. 그랬던 그들이 이제, 적극적으로 비판을 던진다.

 

 

빵 : ‘Z세대가 전면에 서고 88세대(1988년 대규모 민주화 운동을 경험했던 세대를 이른다. 이때의 민주화 운동은 실패했다)가 뒤에서 지원하고 있다’라고 하던데, 실제 상황은 어떤가요?

 

웨 : 88세대를 대표하는 주요 인물 밍 코 나인 등이 시위에 참여하고는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이 세대의 정치적 영향력은 크지 않습니다.

 

빵 : 왜일까요?

 

웨 : 2015~2020년도의 문민정부가 88세대와 연대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88세대의 나름 역사가 있고 활동가가 있는데, 정치 대안 세력으로 자리 잡지 못한 것이죠. 이번에도 88세대가 거리로 나오긴 하지만, 이들을 대표할 수 있는 운동가들은 다섯 손가락 이내입니다. 그마저도 일부는 구금되어있는 상태입니다.

 

빵 : 유력 재야 정치인들은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나요?

 

웨 : 한국은 국민의힘, 민주당, 정의당 등 다양한 정당이 있지만, 미얀마는 그동안 군부냐, NLD냐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재야 정치인이라고 부를만한 다른 세력이 없습니다. 대안 세력이 전혀 없는 것이죠. 그래서 답답한 것이고요.

 

 

시위를 이끌어 가는 세대는 Z세대고, 그 뒤를 공무원을 비롯한 엘리트들이 받치고 있다. 그러나 민주화 운동의 경험이 있는 88세대는 영향력을 잃어간다. 범민주 진영을 이끌어야 할 통합정부는 적극적으로 시위에 나서는 Z세대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 대안이 되지 못 하는 정치세력은 전망이 어두운 법이다.

 

 

빵 : 미얀마의 Z세대도 부모님과의 세대적 갈등이 있나요?

 

웨 : 아무래도 부모님의 반대와 갈등이 있죠. 또 일부는 지지하는 부모님도 계십니다. 그렇지만 부모님이 반대하든 찬성하든, Z세대의 의지는 아주 강렬합니다. ‘내가 이 집에서 나가더라도 나는 운동을 계속 할 거야’라는 태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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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그들을 보호해주지 않는다.

 

 

웨 : 한국의 87년 투쟁을 보면 재야 정치인과 종교 지도인, 학자들이 앞장서서 운동을 했었죠. 그 점이 가장 부럽습니다. 우리도 그랬다면, 젊은 학생들의 희생이 덜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 종교 지도자를 비롯한 인사들이 아무도 안 나오고, 학생들을 보호해줄 사람들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들에 대한 분노가 일어날 지경입니다.

 

 

승려들에 실망하는 젊은 미얀마인들

 

빵 : 미얀마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승려들이라고 생각합니다. 2007년 샤프란 혁명에 나왔던 스님들은 다 어디로 갔나요?

 

웨 : 로힝야족 사태와 연관이 있습니다. 문민정부는 출범하자마자 큰 과제를 받았는데, 그것이 로힝야족 학살 사건이었습니다. 그 배경에 종교 근본주의를 이끈 위라뚜라는 승려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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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라뚜

 

빵 : 마바타(Mabatha)라는 단체의 수장이죠. 그 사람이 쿠데타를 하자마자 자수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처벌이 감경될 테니까요.

 

웨 : 맞아요. '미얀마애국협회'가 마바타라는 조직입니다. 종교 제일주의와 민족주의를 내세우죠. 1960년대에 들어선 군사 정부는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승려를 앞에 세웠습니다. 종교 제일주의를 통해 모든 반론을 잠재웠었죠. 마바타는 “이슬람이 우리의 땅을 차지할 수 있다”는 가짜 뉴스를 퍼뜨리며 모든 걸 부추기고 있습니다. 

 

빵 : 그 단체 외의 영향력 있는 승려들은 어디로 갔나요?

 

웨 : 샤프란 혁명을 일으킬 때, 소위 톱10이라 할 수 있는 승려들은 없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권력을 잡고 있는 승려들은 항상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습니다.

 

빵 : 샤프란 혁명때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그들은 혁명의 주역이 아니었다?

 

웨 : 그렇습니다. 톱10 승려들은 군부의 보시를 받고, 그 덕으로 벤츠를 타면서 호화롭게 삽니다. 그러면서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고 불교 대학이나 복지센터를 세우지만, 나중에 가면 문 잠겨 있어요. 이런 알 수 없는 일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또 최근에는 일부 고위 승려들이 군부 쿠테타 인사들과 함께 국영방송에 나왔다고 합니다.

 

빵 : 충격적이네요.

 

웨 : 젊은 친구들은 “나 어쩌면 무교가 될 것 같다”면서 충격과 배신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분노를 느끼면서요.

 

빵 : 고위 승려들의 영향력이 미얀마 국민에게 크기 때문에, 이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미얀마 일반 국민들이 움직이지 않을 것 같다는 우려가 듭니다.

 

웨 : 기성세대는 충분히 그럴 것이나, Z세대는 더이상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태가 끝나고 나면, 운동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간에, 세대 간의 간격이 굉장히 벌어질 것 같아요. 한국에서도 태극기 시위하는 부모님 세대와 같이 살 수 없다는 청년들도 있었잖아요.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빵 : 불교최고협의회나 주지협회에서는 군부의 탄압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내기 시작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웨 : 나오려면 진작에 나왔어야죠. 지금 사태가 이렇게나 오래 흘렀는데. 눈치만 보는 거죠.

 

빵 : 아, 쇼맨쉽이군요. 이미 사태는 다 끝났으니까?

 

웨 : 맞습니다. 물론, 샤프란 혁명에 참여했고, 지금도 시민들과 함께하는 승려들도 있고, 로힝야 문제를 다루는 훌륭한 승려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제가 비판하는 승려들은, 종교 제일주의와 민족주의를 다 가지고 있는 최악의 미얀마 애국협회의 승려들, 군부와 늘 함께해 온 최고의 법사들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웨 노에 씨는 “자기들에게 보시하는 신도들이 죽어 나가고 있는데, 경전이나 읊는다고 사태가 진정될까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다. 그동안 자비경(慈悲經)이나 읊고 있었는데, 그런다고 사태가 진정되겠는가”라고 말했다. 한국불교도 새겨들어야 할 분노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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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에 참여한 승려들

 

 

군부를 몰아내는 것은 '사람답게 살 권리'를 얻기 위해서다

 

빵 : 한국에서는 ‘미얀마를 위해 연대하자’라는 공감대가 어느 정도 성립하여, 연대와 지지를 표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국제기구가 방관하는 상황에서 어떤 단체를 믿고 후원할 수 있는지 우려스럽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웨 : 아까 미얀마는 정치 세력이 두 가지밖에 없다고 말씀드렸죠. 미얀마는 아직 시민단체라는 개념이 미약합니다. 정치인들이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감시하는 일도 부족했죠. 이번 계기로 미얀마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한 단체로 발전해 나가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또한, 저희는 후원금을 미얀마 정치인들 대신, 시민 대 시민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군부의 탈취를 우려하기 때문이죠. 초창기에는 거리시위를 위해 안전모를 비롯한 안전 물품을 전달했고, 최근엔 카렌주를 비롯한 이재민, 피난민들에게 구호품을 지원했습니다. 저희는 후원금을 통해 구호품을 마련하고, 그것이 실제로 미얀마 사람들에게 들어가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빵 : 후원금을 전달한 공식적인 루트는 없다. 있어도 군부에게 뺏길 위험이 크니까. 대신 이어진 가족들이 있을 테니, 그분들이 직접 미얀마의 피난민이나 유가족분들에게 지원하고 있다. 라고 이해를 해도 될까요?

 

웨 : 맞습니다. 또한, 기금의 지원 내용에 대해서는 개인톡으로 전달해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군부에게 노출될 위험 때문에 홈페이지를 통해 공식적으로 전달할 순 없습니다.

 

빵 : 미얀마가 민주화된 이후, 어떤 일상을 꿈꾸고 계시나요?

 

웨 :해외에서 10년 넘게 살아왔는데, 가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우리 마을이 생각나서 가슴이 아플 때가 있습니다. 한국은 빈부격차가 있어도 절대적 빈곤 상태에서는 벗어난 상태죠. 미얀마는 절대적 빈곤 상태에 시달리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모든 부는 다 군부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장군 한 명이 기업체 50개를 가지고 있고, 모든 설비와 시설을 군부가 다 점유하고 있죠. 그래서 군부를 몰아내는 것은 단순한 정치적 문제가 아닙니다. 불평등을 해소하고 ‘사람답게 살 권리’를 만들어갈 사회 전반의 기회입니다. 

 

언젠가 시골에 들어가, 사람답게 사는 세상,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지금 농촌의 부모님 세대는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계시지만, 우리라도 깨어 있는 상태로 그 세상을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한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한국어가 능숙한 웨 노에 씨는 ‘깨어 있는 상태’를 이야기했다. 아마도 한국 정치와 문화에 이해가 높기에 나온 말일 것이다. 이제, 군부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수치 여사의 시대를 뒤로 하고, ‘깨어 있음’을 자각하는 세대가 나타났다. 시민불복종운동은 전망이 어둡고, 내전이 성공할지도 불투명하다. 또한, 여전히 많은 국민이 수치 여사를 지지하고 있다. 다만 이들이 있기에, 나는 미얀마의 미래에도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뱀발. 인터뷰로 받을 고료는 아래 단체에 후원할 예정이다. 국제기구는 아니지만, 약소하게나마 후원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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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주

 

독자 여러분의 성원 덕에 

필자의 책,<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여전히 잘 팔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번엔 후속작,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이 나왔다. 

 

안 사줄 것 같이 하다가 기사가 올라오면

슬그머니 주문하는 샤이 독자 여러분 덕에 

필자는 눅눅한 골방에서 

조금 덜 눅눅한 골방으로 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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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조선사 교양서를 쓰고 있는, 딴지가 배출한 또 하나의 잉여 작가
딴지의 조선사, 문화재, 불교, 축구 파트를 맡고 있슴다.
이 네 개 파트의 미래가 어둡다는 거지요.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시시콜콜 조선부동산실록』 신간(*´∪`)

https://www.instagram.com/ddirori0_0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