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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암호화폐, 비트코인 같은 말은 한국사회에서 참 복잡미묘한 위치에 있습니다. 일단 내용 자체가 어렵죠. 그래서 복잡합니다. 여기에 더해 한국사회에서는 정치적 색채까지 더해집니다.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와 이에 대한 코인투자자의 반발을 메이저 언론들이 '청년층이 등을 돌린다'라는 식으로 해석하는 식이죠. 이 결과, 인터넷 커뮤니티나 소셜네트워크 상에서 암호화폐에 대한 논의가 벌어지면 곧잘 정치적 논의로 비화되곤 합니다. 복잡에 미묘가 더해지는 거죠. 

 

한편, 저는 IT밥 15년을 먹다가 최근 2년 반은 금융업에 발을 담궜습니다. 전통 금융은 아니고 소위 '핀테크' 업종입니다. 아무래도 금융계 출신이 핀테크를 하는 경우와 IT계 출신이 핀테크를 하는 경우 성향이 좀 다릅니다. 자기가 원래 하던 걸 중심에 놓게 되죠. 저는 금융도 하나의 IT서비스라는 시각으로 바라보지만, 금융권 출신들은 전통 금융을 중심에 놓고 IT 기술을 곁들이는 식으로 바라보죠. 그 결과를 아주 잘 드러내는 예가 바로 카카오뱅크 앱과 기존 은행 앱의 차이입니다. 뭐가 더 편한지는 각자가 판단할 문제지만, 서로 정체성이 다르다는 건 아실 겁니다. 

 

저는 2020년대는 금융업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날 시대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일단 상황을 보죠. 미국에선 페이팔, 스퀘어, 로빈훗 같은 서비스들이 이제 어엿한 금융업의 큰손이 되어가는 중이고, 중국에선 위챗페이와 알리페이 등이 14억 인구의 지갑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네이버, 카카오라는 IT거인이 금융에 뛰어들었고, 토스가 계속해서 보폭을 넓힙니다. 그 결과 '마이데이터'라는 새로운 라이센스를 두고 IT진영과 기존 전통금융 진영이 올 상반기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좀 과장하면) IT기술의 발달로 인해 전통 금융 산업은 점차 '완장질'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도입으로 은행 지점이 줄어들죠, 사람들은 현금은커녕 카드도 점차 안 들고 다닙니다. 주식은 당연히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사고파는 거고, 휴대폰만으로 대출부터 대출금의 이체까지 끝납니다. 물론 사기를 방지하고 대기업의 신용을 평가하는 과정엔 아직 사람의 직관과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AI기술이 의사와 변호사, 판사도 대체하려는 시대에, 전문 금융 심사역이라고 안전할까요. 수많은 금융기관 중 대부분은 필요할 때만 외주업체 쥐어짜면서 너무 뒤쳐지지만 않는 수준으로 버텨갑니다. 

 

'버티기'가 가능한 이유는 첫째, '금융업은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규제이고, 둘째, 수십 년간 쌓아온 고객층입니다. 

 

금융업은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규제는, 다시 말해, 소위 '라이센스'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돈 많고 능력이 있어도, 금융위로부터 적법한 절차를 통해 '너 이제 은행 해'라는 허락을 받기 전까지는 은행을 만들 수 없는 거죠. 이 라이센스를 받아둔 은행을 삐딱하게 보면 완장을 찬 거구요. 이 완장은 '인터넷 전문은행'이라는 제도가 생기고 나서야 겨우 2개 더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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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인터넷 전문은행 중 카카오뱅크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 대세를 뒤엎을 정도는 아닙니다. 기존에 쓰던 통장을 모두 없애고 새로 생긴 은행에 올인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게다가 장년층, 노년층은 그간 부은 적금이나 연금상품, 대출 등 금융상품을 유지할 필요성에 각종 우대혜택 등이 곁들여져 쉽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신용카드도, 주식계좌도 마찬가지죠. 사실 대형 금융기관은 카카오나 토스에 대해 그다지 큰 위기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집토끼가 워낙 많으니까요. 이것도 결국 최민식의 '니 내가 누군줄 아나? 읭?'의 감성이 흐른다는 점에서 완장질의 일면이 되겠습니다. 

 

IT 시각으로 보았을 때, 전통 금융 기업은 완장질스러운 이 2가지 요소를 제외하곤 경쟁력이 거의 없다는 게 제 결론입니다. 사실상 금융업이라는 산업에서 수행해야 할 본질적인 역량 측면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질문을 이렇게 하면 얘기가 좀 달라집니다. 'IT 기술'이 금융의 본질적 역량을 대체할 수 있는 거냐. 카카오뱅크 앱이 깔끔하고 토스 앱이 편한 것과 금융 기업이 좋은 금융상품을 만들고 부가가치를 늘리는 거랑 연관성이 있냐. AI기술이 사람들 모가지 잘라내면서 사람이 하던 일을 하면 더 나아지긴 하는 거냐.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마도 20년 정도 후에나 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은 그냥 추측과 가정일 뿐이죠. 

 

제가 위에서 "2020년대에 가장 큰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한 건 어떤 가정 아래에서 입니다. 그 가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금융 베테랑 집단이 최신 IT기술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IT 베테랑 집단이 각종 금융산업의 면면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은행지점장은 코딩을 못하지만, 30년 차 개발자는 기업 신용을 평가할 수는 있다'는 식의 얘기는 아닙니다. 순식간에 그 복잡한 금융 실무 노하우를 모두 습득해서 수행할 순 없죠. 제가 말하는 건 두 산업의 ‘질적인 성격의 차이’입니다.

 

금융산업이 '종(vertical)'방향이라면 IT산업은 '횡(horizontal)'방향이라고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종방향이라는 걸 생각할 때 다른 산업들과 나란히 서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죠. 금융업 옆에 유통업이 서있고, 그 옆에 제조업이 있고 등등. 유통업자가 돈을 구하려면 은행에 가야하듯, 금융업자가 사무실에 사무용품 놓으려면 제조업자와 유통업자가 필요합니다. 서로 각자의 역할을 하는 것을 종방향이라고 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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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방향은 모든 종방향 산업들이 공통적으로 만나게 된 하나의 패러다임입니다. 유통업자도 데이터를 처리하고 더 좋은 업무 프로세스를 연구해야 합니다. 온라인에서의 판매가 오프라인 판매를 넘어서기 직전에 놓여있죠. 제조업자도 불량률을 줄이기 위해 AI기술을 도입합니다. 이 시대에 사람 한 명 없는 공장은 상상할 수 있지만 PC가 한 대도 없는 공장을 상상하긴 쉽지 않죠. 그래서 IT는 횡방향 산업이라고 표현한 겁니다. 결국 IT의 역사는 모든 종방향 산업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는 역사이기도 한 셈이죠.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금융기관이 IT를 이해하는 건 생각의 틀을 바꿔야하는 일입니다. 소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디지털 기술을 적용하여 전통적인 구조를 바꾸는 것)'이라고들 하죠. 안하던 걸 해야되는 겁니다. 서예가한테 포토샵 배우라는 거죠.

 

하지만 IT산업이 금융을 이해하는 건, 지금까지 하던 종방향 산업 하나를 더 이해하는 일일 뿐입니다. 프로게이머한테 게임 하나 더 하라는 거죠. 서예가가 포토샵 배우는 것보다 유리합니다. 게다가 금융은 숫자의 정합성과 확률통계가 중요한 업종입니다. 이 두 가지가 중요한 또 다른 업종이 있다면, 바로 IT입니다. 즉, 금융업은 IT입장에서 이해하기가 쉬운 편에 속합니다. 게임 중에서도 원래 전문이던 게임과 장르가 같은 게임인 셈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풀리진 않습니다. 

 

"그래서 IT가 금융을 더 좋게 바꿀 수 있느냐. 앱 좀 잘만들고 마케팅 좀 세련되게 하는 거 아니냐."

 

회의적인 시각이 분명 존재하고, 일리도 있습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블록체인, 암호화폐, 비트코인. 코인 기술은 IT 기술 중 금융산업의 핵심에 파고들어 아예 판도를 뒤엎기 위해 최전방에서 돌진하고 있는 기술입니다. 

 

AI기술의 기계학습 이론 중 인공신경망 이론이 딥러닝, 강화학습, 인공지능으로 이어졌고, '인간이 학습을 통해 사고 수준을 높이는 과정'을 IT로 풀어내는 단초를 제공했죠. 그 결과 지금 이 순간, 말 그대로 ‘하루가 다르게’ 인공지능 기술은 발전하고 있습니다. 어제까지의 한계가 오늘 깨지는 사건이 세계 각지의 연구소에서 일어납니다. 살아생전에 ‘특이점’을 넘어서는 순간을 보게 될 지도 모릅니다.

 

코인 기술도 비슷합니다. 분산원장과 비트코인이 이더리움과 스마트 컨트랙트로 이어지면서 금융의 역사가 IT 역사로 편입될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되었다 볼 수 있습니다. 단지, 언론과 여론의 시선이 ‘떡상 코인’과 ‘코인 사기’에 쏠려 있을 뿐이죠. 대중과 언론이 도지코인 떡상의 허망함과 각종 잡코인 사기에 달려드는 동안, 수많은 공돌이들은 인류가 수천 년간 쌓아온 금융과 화폐의 역사를 IT로 재현하며 자기들끼리 역사를 써나가는 중입니다. 물론, 그 공돌이들은 이미 평생 먹고 살 걱정은 없는 돈을 벌어놓은 상태이고 말이죠. 

 

도대체 그 공돌이들이 뭘 어떻게 하고 있다는 건지, 계속 알아보겠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