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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떡의 추억

 

언어의 특성에 관한 수업을 하다 보면,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 줄 때가 있습니다. 괜히 '라떼는 말이야~' 하는 것 같지만, 시대상이 달라지는 만큼 언어 사용의 양태도 변화한다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중 아이들이 큰 문화 충격을 받았다고 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사떡’ 이야기입니다.

 

어릴 때 저는 시골에서 서울의 한 아파트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90년대 초만 해도 서로 잘 지내보자고 이사떡을 돌리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뭐, 지금도 이사떡을 파는 업체가 있는 걸 보면 아예 없어지지는 않은 것 같지만, 옛날만 못한 게 사실입니다. 그 시절, 이삿짐센터 아저씨들이 아파트 복도를 돌아다니면 얼마 뒤 여지없이 따뜻하고 말랑한 떡이 식탁에 놓여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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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온 그 집의 자녀가 저와 비슷한 또래이면 왕래가 더욱 잦았습니다. 그 친구와 저는 운동장이나 PC방에서, 아버지끼리는 집 근처 대폿집에서, 어머니끼리는 서로의 집에서 각자의 놀잇감으로 시간을 보내고, 마음이 맞으면 같이 교외로 놀러 나가기도 했었지요. 그때도 삭막하다던 서울의 아파트가 그랬는데, 다른 지역은 오죽했을까요. 곱씹어 보면, 함께 모여 사는 정으로 손익 계산 없이 많은 것들을 후려치곤(?)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참 많은 것들을 묻는[埋] 습관이 있었습니다. 가정에서는 자녀가 학교에서 친구와 싸우고 와도 적당히 묻고, 손해를 봐도 적당히 묻고, 학교도 굳이 사건을 수면 위로 꺼내지 않고 적당히 묻었습니다.

 

요즘 법률로 강력하게 규정하고 있는 ‘학교폭력의 인지와 신고 의무’라는 개념도 없었죠. 그러니 어른들은 당사자를 불러다 놓고 희한한 콩트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영화 <범죄도시>에서 장이수(박지환 扮)와 독사(허성태 扮)를 강제로 화해시키는 형사 마석도(마동석 扮)를 보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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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석도는 ‘같은 동포끼리 사이좋게 잘 지내라.’고 일갈합니다. 둘의 표정을 보니, 으르렁거리는 두 조직 보스는 사이좋게 지낼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진정한 관계 회복이 아닌, 마석도의 포스로 갈등을 묻은 이들은 결국 각자 비극의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영화처럼, 갈등을 빚는 두 아이에게 과거 학교와 가정에서 자행된 ‘미안하다고 해!’ 나아가 ‘안 그러겠다고 약속~ 도장 꾹!’과 같은 “정에 호소하는 갈등 생매장”은 현실 도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어른들의 현실 도피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괴롭히는 남학생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여학생은 ‘에이, 너한테 관심이 있어서 그런 거야.’나 ‘너랑 친해지고 싶어서야.’라는 말로 달랩니다. 남학생이 맞고 들어오면 ‘사내자식이 때리지는 못할망정 맞고 들어오냐?’는 말로 타박합니다. 결국 마지막에는 ‘그냥 네가 좀 참아. 참는 게 이기는 거야.’라는 회피술을 가르칩니다. 극심한 내상을 입고도,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던 이에게 동정조차 받지 못한 아이는 점점 생기를 잃어가게 됩니다.

 

제 기억 속에는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이런 대처가 큰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그들에게 큰 기대를 걸고 뭔가를 말한 것도 아니었음에도 나의 이 불편함이 통째로 무시되었던 그때, 그리고 그 불편함을 안고 살아야만 했던 그때가 떠오릅니다.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그 이야기를 상대방이 경청하고 있는지 묻지 않고, 그저 이해 당사자의 마음속을 삽으로 파내서 묻어 버리기 급급했던 그 옛날의 어른들. 이것도 다 옛날이야기가 되어갑니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각교에 학교폭력 사안 처리 절차를 전담하는 부서가 설치되면서 이런 모습은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묻지[埋] 못하게

 

가정을 위해, 학교를 위해, 더 나아가 공동체를 위해 개개인의 침묵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학교폭력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폭력의 피해를 입은 개인이 침묵하면 당시 관련자들은 편할 수야 있겠지만, 개인의 희생으로 인해 감수해야 할 사회적 비용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이에 쉴 새 없이 불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교육부는 학생의 학교폭력 신고를 차근히 ‘절차대로’ 풀어가게끔 매뉴얼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각 학교 생활지도부장 선생님이 성경처럼 다루는 <학교폭력 사안 처리 가이드북>입니다.

 

교사의 입장에서 학교폭력 사안 처리 과정을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 갈등을 빚는 두 학생이 있습니다. 

 

A와 B는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다. 그리 친한 관계는 아니었지만, ‘그런 애가 있다’는 정도는 알고 지낸사이였고,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 몇 번 축구를 한 적이 있었다.

 

중학교 1학년을 서로 다른 반에서 보내고, 2학년이 되었다. 둘은 같은 반에 배정되었다. A는 반가운 마음에 B의 어깨를 주먹으로 내리치며 학생들 모두가 들리게끔 “와, 씨발! 같은 반이네!”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B는 같은 반이 된 새 친구들 앞에서 그런 일이 있었던 것에 수치심을 느꼈다. 갑자기 한 대를 얻어맞은 것이 너무 분하고 억울했다. 담임에게 이 일을 알렸다. 마침 학교폭력 사안 처리 절차에 대해 연수를 받은 담임은 초기 대응을 위해 B의 진술서를 받아서 학교폭력 책임교사(이하 “책임교사”)에게 가지고 갔다.

 

책임교사는 이를 인지한 즉시 학교폭력 신고 접수 대장에 수기로 관련 내용을 기록했다. 이후 B의 진술서를 보고, A의 이야기도 들어봐야 한다고 판단되어 A를 따로 불러 진술서를 쓰도록 했다. A는 ‘반가운 마음에 가볍게 장난이라 생각하고 그런 언행을 했다’고 진술했으며 ‘아까의 일을 반성하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책임교사는 이 사안을 즉시 관련 학생 학부모와 학교폭력 전담기구 구성원에게 알렸으며, 교육지원청에 접수 보고서를 만들어 문서를 발송했다.

 

위의 사례를 어떻게 보십니까? 기계적 중립은 풀겠습니다. 여러분들께서 위 두 학생의 학부모라면, ‘학교폭력으로 접수되었다’는 책임교사의 전화를 받고 어떤 판단을 내리시겠습니까? 아래 책임교사의 안내를 참고해서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A/B 학생 학부모님이십니까? 네. 저는 OO 중학교 학교폭력 담당 부장 OOO라고 합니다. 혹시 지금 전화 통화 잠깐 괜찮으십니까? (대답을 듣고)

 

네, 감사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오늘 개학 첫날인데, A/B 학생 관련하여 학교폭력으로 사안이 접수되어 안내를 드리고자 전화를 드렸습니다. 조금 당황스러우실 텐데, 잠시 사안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대답을 듣고)

 

네. 오늘 B 학생이 교실에 앉아 있는데, A 학생이 다가와서 반가운 마음에 어깨를 주먹으로 때리며 ‘와, 씨발! 같은 반이네!’라고 소리를 쳤다고 합니다. 이 상황에서 B 학생은 공개적으로 다른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욕을 듣고 맞기까지 해서 수치스럽고, 억울하고 분하다고 진술했습니다. 이 내용은 담임선생님께서 사건을 인지하고 조사해 주신 부분이고요, 그 뒤에 제가 A를 불러서 조사를 해 보니, ‘반가운 마음에 가벼운 장난이라 생각하고 그런 언행을 했다. 반성하며,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일단 여기까지가 사안 내용입니다. 사안이 저희에게 접수된 만큼 공식적인 절차가 진행될 예정인데요,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판단되면 아이들이 불편하지 않는 선에서 조사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사안 관련하여 학교에 설치된 ‘학교폭력 전담기구’에서 사안 처리를 논의할 예정인데요, 날짜가 확정되면 추후에 다시 안내드리겠습니다. 혹시 학교에 원하는 점이라거나 해 주실 말씀 있으십니까? (후략)

 

- 내가 B(피해학생)의 학부모라면?

 

- 내가 A(가해학생)의 학부모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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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A는 B에게 신체폭력과 언어폭력을 가한 것이 확인됩니다. 두 학생이 보인 행동들의 전후 맥락을 모두 알지 못한다면 이 사안의 전말과 경중을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보는 이에 따라 반응이 제각각일 것이지만, 그 어떤 반응도 정답은 아닙니다.

 

학폭법 제20조제1항에 따르면 교사뿐만 아니라 누구나 학교폭력을 인지한 순간 신고의 의무를 가집니다. 해당 담임교사는 초동대처로써 B의 신고를 받고 사안을 인지한 뒤에 B의 진술서를 받았으며 이를 책임교사(생활지도부장)에게 가져가 정식으로 접수를 진행했습니다.

 

학교폭력을 인지한 기관은 이를 즉시 접수하여 관련 학생 학부모에게 알리고 48시간 이내에 교육청에 보고해야 하며 학교 내에 설치된 학교폭력 전담기구는 사안 조사에 착수하여야 합니다. 전담기구에는 보건교사와 상담교사, 그리고 각 학년부장이 소속되어 있습니다. (학부모 위원도 전담기구 구성원의 3분의 1 이상 소속되게 규정되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추후에 다루겠습니다.) 이들은 관련 학생의 신체적, 정신적 가·피해 상황에 대한 조사에 협조하며 평소 교우관계에 관해 책임을 공유하는 사람들입니다. 책임교사는 관련 학생들의 개인적 특성과 기존 갈등 상황 및 신체적·정서적 특징을 이해하고 이후 사안 조사에 참고 자료로 삼습니다.

 

일차적인 조사가 끝나면 책임교사는 관련 학생 학부모에게 이 사안을 인지시킵니다. 이렇게 공식 절차를 밟게 되는 순간, 담임교사는 사안 처리 과정에 협조할 뿐, 무엇을 결정하거나 절차를 진행할 자격은 없습니다. 저는 이때마다 담임선생님께 ‘양측 학부모님께서 문의하시면 공감과 위로를 전해드리되, 절차에 있어서는 책임교사와 상담하시라고 안내해 드리라’고 이야기하며 제 번호를 알려드리라고 합니다. 담임은 뭐 하고 앉아있냐는 학부모님의 불만을 조기에 불식시키기 위함입니다.

 

책임교사는 학부모님과의 통화나 면담에서 상황을 알려주되 판단하지 않고, 있었던 일만 알려드리며, 당황스러운 마음을 잘 추스를 수 있도록 합니다. 그리고 추후 조사 일정과 절차를 안내한 후, 본격적인 사안 조사를 시작합니다. 서로 말이 맞지 않는 부분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관련 학생을 다시 불러서 조사하거나 목격자 진술을 받습니다. cctv가 설치되어 있다면 그 장면을 돌려보며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 자료들을 종합한 것을 바탕으로 학교폭력 전담기구 회의를 실시합니다. 회의 결과 ‘학교장 자체 해결 사안’인 경우, 심의위원회를 개최하지 않기를 원한다는 피해 학생 보호자의 요청서와 회의록을 작성합니다. 자체 해결 사안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 심의위원회 개최 요청서를 사안 조사 보고서와 함께 교육지원청에 발송합니다. 이후 교육지원청은 심의위원회 개최 일자 및 위원회 조치 결과를 학교와 관련 학생 학부모에게 알리고, 추후 절차(가해학생 선도 조치, 피해 학생 보호 조치, 학교생활기록부 조치사항 기재 등)는 학교에서 진행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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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학교장 자체 해결 요건

출처 - 교육부<학교폭력 사안 처리 가이드북(2021)> 33p

 

 

전담기구의 의결 권한이 일절 없었던 2020년 이전에는, 신고 접수된 사안에 대해서는 자치위원회를 개최하여 심의해야 한다는 지침이 있었습니다. 이후 자치위원회 개최에 따른 교사들의 과도한 업무 강도 및 자치위원회의 전문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짐에 따라, 교육지원청 심의위원회로 업무가 이관되었으며 학교장 자체 해결 제도가 공식적으로 마련되었습니다. 하지만 위 자체 해결 요건에 해당한다고 할지라도, 피해 학생과 학부모가 심의위원회 개최를 요구할 시에 학교는 무조건 심의위원회 개최를 교육청에 요청해야 합니다.

 

위 절차에 문제가 있을 시, 행정심판 및 행정소송 과정에서 학교의 과실로 이어지고 나아가 민사소송의 피고가 될 수 있습니다. 혹여 가해 사실이 명확한 학생에게 훈계를 잘못했다가 아동학대로 고발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케이스든, 접수가 이뤄지는 순간 이 절차는 항상 유지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책임교사는 항상 긴장 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무엇보다 가해학생이든 피해 학생이든 할 것 없이 학생과 학부모의 마음이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안절부절못하는 상황을 자주 겪게 됩니다.

 

이러한 절차들이 마련됨으로써 학교폭력을 적당히 묻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이런 절차들로 인해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화해의 장을 마련해 줄 수 없는 교사, 위원회의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는 학부모, 아이들 간에 사소한 갈등으로 열린 학폭위가 불만인 학부모. 그렇다고 이런 절차가 없던 시절의 폭력성을 생각해 보면, 무엇이 정답일까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몇 년 전 일입니다. 피해 측은 학폭위를 열지 말지 계속 고민중이었고, 가해 측은 용서를 구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도 참 혼란스러웠습니다. 이를 학폭위 위원장이신 교감선생님께 털어놓으니 다음과 같은 답변을 들었습니다.

 

“그러면 그냥 열어. 열어서 처리하는 게 가장 깔끔해. 나중에 딴 얘기 들을 수도 있잖아.”

 

‘학폭위가 열린다’는 것 자체가, 피해를 막론하고 아이들에게는 큰 고행입니다. 학부모님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가장 우울한 위원회’를 주최하는 교사도 부담이 막중합니다. 회의록 서기를 맡은 교사는 그날 밤을 새워야 합니다. 위원회가 끝나고 통지하는 결과는 그 누구도 만족을 못 합니다.

 

보신주의와 절차적 정당성이 만들어 낸 이 상황 속에서,  절차를 만들고 누더기처럼 고치기를 반복한 위정자들은 어느새 뒤로 빠져 있습니다. '교육적 가치'를 지향한다며 정한 룰은, 결과적으로 비교육적일 때가 많습니다. 비극은 관련자들이 표를 의식해 본인이나 본인이 소속된 정당에 유리한 방향으로 법을 개조할 때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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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학교폭력 현장에 가장 맞닿아있는 어른 입니다. 하지만 법을 고치는 과정에서 열리는 공청회에 교사가 공식 발언대에 초대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결국 이로 인한 마음의 짐은 관련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현장의 교사들이 질 수밖에 없는 시스템으로 고착되었습니다.

묻는[問] 용기

 

학교폭력에 대처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지 수 년이 흘렀습니다. ‘법대로 하라’는 말은, 말처럼 깔끔하지 않습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하는 자조와 함께 서로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교사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 두려워 절차에 얽매이고, 나아가 그 누구에게도 공감하지 못하는 사안 처리 기계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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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차. 중요합니다. 주먹구구식으로 학교폭력을 다루면, 결국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고 누군가는 나을 수 없는 상처를 살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절차를 지키면서 얻게 되는 깔끔함에는 자주, 씁쓸한 뒷맛이 있습니다.

 

3년 전 이야기를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전후 맥락 없이 판단하자면 절차를 무시한 행동이었지만, 학교폭력을 다룸에 있어 한 번 생각해 볼 지점이 있는 사례입니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의 질문을 받아주던 중이었습니다. 바깥에서 저를 급히 찾는 목소리가 들려 뛰어나갔습니다. 나가보니 남학생 A가 목에 시뻘건 손자국이 생긴 채 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는 다른 남학생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몸이 굉장히 약했던 A는 교우관계에 적응을 잘하지 못하던 학생이었습니다. 학생에게 마음이 쓰였던 담임교사는 같은 반 남학생 B에게 ‘선생님이 없을 때 A를 잘 챙겨주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잘 챙겨주는 친구가 편해진 A는 B에게 의지를 많이 했습니다. 친구가 편해진 A는 종종 B에게 소위 ‘깐죽대는’ 발언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날 점심시간, 점심을 같이 먹으러 가자는 A의 이야기에 B는 ‘속이 안 좋아서 밥을 안 먹겠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A는 계속 같이 가자고 졸랐습니다. 계속되는 재촉에 B의 표정이 안 좋아지는 것을 지켜본 B의 또 다른 친구인 C가 A에게 ‘그만 좀 하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A는 ‘니가 뭔 상관이냐? 꺼져라.’고 소리쳤고, 이에 폭발한 C가 A의 목을 조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사건을 인지한 즉시 신고를 접수했습니다. 각반 담임과 보건교사, 상담교사를 불러 긴급회의를 진행했습니다. A의 몸이 원래 좋지 않았다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던 사항이었습니다. 교육청에 보고할 서류를 만들고 자시고 할 겨를조차 없었습니다. 얼른 둘의 진술서를 받아서 검토한 후에 학부모님께 긴급히 내교하여 주실 것을 부탁드렸습니다.

 

가장 놀란 사람은 당연히 A의 어머님과 아버님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몸이 좋지 않은 아들인데, 학교에서 폭력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얼마나 놀라셨을까요. C의 아버님도 놀란 마음을 붙잡고 학교에 오셔서 고개만 푹 숙이고 계셨습니다. 어쨌든 급히 교실 두 개를 잡아서 각각 학생과 학부모, 담임교사를 들어가게 했습니다. 다행히 양 담임선생님께서 해당 내용을 숙지하시고 학생과 학부모를 안정시키셨습니다.

 

저는 아이들의 진술서와 사안 처리 가이드북 그리고 학교폭력 사안 처리 절차가 담긴 서류를 들고 A 학생이 있는 교실에 들어갔습니다. 학교폭력으로 처리해 달라고 말씀하실 게 분명하다고 짐작했기 때문입니다. A 학생의 어머니는 혼란스러워 보였습니다. 같이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용서를 하고 싶다가도, 아이가 입은 상처를 보니 화가 다시 올라오시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A 학생의 아버지께서 용기를 내셨습니다.

 

“제가 C를 만나서 직접 물어보면 안 될까요. 분명히 사정이 있었겠지요.”

 

가해,피해 학생과 학부모를 대면하게 하는 것은 화해의 종용으로 오해를 받을 수 있으니 되도록 지양하라는 지침이 떠올랐습니다. 많이 고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도 용기를 냈습니다. ‘모가지를 거는’ 용기까지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성경 말씀을 거스르는 용기 정도는 됐던 것 같습니다. 더구나 피해 학생 아버님의 용기였기에, 참작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겉으로 보면 C는 결국 A에게 상해를 입힌 가해학생입니다. 하지만 A 학생의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저는 일단 색안경을 벗고 C가 있던 교실에 들어갔습니다. C의 아버지는 씁쓸한 표정으로 ‘혼자 키우다 보니 제가 잘못 키운 것 같다’면서 자책하셨습니다. 저는 C에게 물었습니다.

 

“어쩌다 그 행동을 하게 되었니? 그리고 그 행동을 했을 때 너의 감정을 얘기해 줘.”

 

C는 ‘신경 끄고 꺼지라’는 말에 자기도 모르게 화가 났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예전부터 본인의 친구인 B의 주변에서 계속 맴도는 A의 행동이 너무 귀찮았고,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고 솔직히 말했습니다. 저는 그때 한 가지를 더 물었습니다.

 

“A가 몸이 안 좋다는 건 알고 있었니?”

 

C는 이 이야기를 듣더니,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그런 줄 전혀 알지 못했다는 눈치였습니다. 그러고서는 몸이 약한 친구에게 손을 댄 자신의 모습을 반성한다고, 꼭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고 제게 부탁했습니다. 저는 침울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부자에게 이야기했습니다.

 

“A의 아버님께서 같이 만나서 함께 이야기하기를 원하십니다. 아버님, 괜찮으시겠습니까?”

 

“예. 아버님이 괜찮으시다면 저는 당연히 뵙고 용서를 청해야지요.”

 

피해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 그리고 복잡한 민원을 차단하기 위해 마련되어 있던 수많은 절차에 구속되어 있던 저는 이 색다른 광경에 매우 놀랐습니다. 그 와중에도 저는 C와 C의 아버님께 절차를 설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참 못나 보이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A의 부모님께서 학폭위를 열고자 하시면 열어야 합니다. 그 부분은 감안을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네, 괜찮습니다. 우선 용서를 비는 게 먼저이지요.”

 

결국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A의 부모님께서 C에게 건넨 첫 마디가 아직도 새록새록 합니다.

 

“C야, 너도 많이 놀랐지?”

 

C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크게 혼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위로를 들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너도 화가 많이 났겠더라. 근데 C야, 알지는 모르겠지만 A가 몸이 많이 안 좋아. 어릴 때 뇌를 다쳤어. 그래서 너를 불편하게 했는지 모르겠어.”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C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A는 상황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지, 눈만 깜빡거렸습니다.

 

“친하게 지내라고는 못 하겠지만, 그래도 학교에서 지내면서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네가 조금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

 

눈물을 뚝뚝 흘리는 C에게 이야기했습니다.

 

“C야, 너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하렴.”

 

C는 끓어오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자기 속에 있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A가 그렇게 아픈 줄도 몰랐어요. 알았다면 절대 오늘 일이 없었을 거예요. 너무 죄송하고 A에게 미안합니다. A야, 앞으로 이런 일 없을 거야. 오늘 일 정말 미안해. 앞으로 내가 잘할게.”

 

울먹이던 A의 부모님, 그리고 펑펑 울던 C 사이에서, 제 눈에도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맺혔습니다. 

 

학생과 부모님을 보내고, 진술서와 각종 서류들을 파쇄기에 집어넣으며 참 묘한 기분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절차를 무시한 교사로 손가락질을 받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피해 학생 학부모님께서 보여주신 ‘물어보는 용기’ 그리고 가해학생이 보여준 ‘솔직히 대답하고 인정하는 용기’를 지켜본 것은 제 교사 인생에 오래도록 남는 장면이었습니다.

 

물론, 대화만으로 모든 사례가 이렇게 아름다운 결말을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 모두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엄격한 절차는 계속 논의되고 확립되어 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그전에, 학교폭력 해결 나아가 관계 회복의 첫걸음은 ‘법대로’가 아닌, ‘상대에게 물어보는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그 행위의 주체가 피해자이든 가해자이든, 혹은 그 사이에 서 있는 교사이든 말입니다. 여기는 다른 곳이 아닌, 학교이기 때문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