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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격수 강정호

 

지금까지 만나 봤던 선수 중, 최고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난 강정호라고 대답한다. 후천적인 노력으로 다진 피지컬도 훌륭했지만, 특히 멘탈적인 부분이 남다른 선수였다. 메이저리그에서 KBO출신 타자 중 최고의 가능성을 보여줬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후인 2015시즌. 그에게 미국 투수들 상대해보니까 어떠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예상한 대답은 ‘한국과는 비교가 안된다.’ 정도의 대답이었다. 하지만 강정호의 대답은 달랐다.

 

"뭐 한국에서 보는 외국인 선수랑 별 차이 없어요"

 

패전처리로 올라온 투수들도 다 공이 빠르다는 거 말고는 비슷하다는 대답이었다. 강정호는 역시 다르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메이저리그에 유격수로 스카우트되고, 미국에서도 가능성을 인정받는 선수가 신인 때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걸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팬들은 그의 마지막 모습만으로, 강정호는 원래 야구를 잘했던 선수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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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신인으로 당시 현대유니콘스에 입단한 강정호는 2차 1번으로 지명받으면서 박진만의 뒤를 이을 유격수라는 기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2006년 시즌이 시작하고 10게임, 21타석 만에 2군행을 통보받고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 그 당시 여러 야구인들이 강정호는 풋워크가 안 좋아서 유격수로서는 가능성이 없다는 얘기를 많이 했었다. 2008년에는 3루수로 포지션 전향했다. 당시 포수가 취약했던 히어로즈 팀에서는 포수로 출장한 적도 있다. 어깨가 강하니까 투수를 시키자는 의견도 있었다.

 

미국행이 거의 확정되어가던 분위기였던 2014년 시즌 중 강정호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8년 전만 해도 유격수로는 절대 안 된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내년에 유격수로 메이저리그를 가지 않냐면서 그때와 비교하여 기술적으로는 어떤 부분이 좋아졌다고 생각하냐고. 정호의 대답은,

 

"기술은 고등학교 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아요. 단지 달라진 것은 게임을 유격수로 계속 나가면서 자신감이 생기고, 몸이 좋아지고 힘이 붙었죠."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본인 스스로가 그런 대답을 할 줄은 몰랐다.

 

선수들 중에 코치나 감독으로부터 좋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는 선수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 부분을 메우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평가가 나아지지 않고 스스로도 실력이 정체되어 있다고 느끼는 선수가 있다면, 생각을 조금 달리해보길 바란다. 과연 현재 부족한 부분이 정말로 기술인지, 체력인지 아니면 멘탈인지.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기술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내린다. 기술적인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을 했는데도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다른 부분에 가능성을 두고 생각을 달리해보는 게 좋을 것이다. 아인슈타인도 말하지 않았는가.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건 미친 짓이라고.

 

코치 박재상 : 폼 잡지 않는 그의 야구

 

2020년 SK 와이번스에서의 1년은 나에게 정말 힘든 한 해였다. 예기치 못한 부상도 많았다. 팀에 적응도 하기 전에 감독님은 쓰러지고, 팀은 꼴찌 싸움을 하고 있었다. 17년 프로야구팀에서 일하는 동안 가장 힘들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래도 1년은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건 박재상 코치 덕분이었다. 일을 하면서 제일 재밌는 순간은 역시 뭔가를 배운다는 느낌이 들 때이다. 박재상 코치와 대화를 하고 그가 선수를 지도하는 걸 옆에서 지켜볼 때가 그랬다.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코치로서 내가 진정 무언가를 배웠다는 느낌이 들 때는, 선수들을 가르치는 독특한 아이디어, 새로운 연습 방법을 알게 되었을 때다. 그런 아이디어나 방법들이 진짜로 효과적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저 그동안 봐오던 것이 아닌 새로운 것을 볼 때, 야구장 나가는 것이 즐거웠었다.

 

사실 코치들이 하는 말이나 연습 방법들은 서로 크게 다를 게 없다. 어릴 때부터 같은 걸 보고, 배우고 하며 야구선수로 성장해왔기 때문에 코치 본인이 특별히 노력하지 않는 이상 그전부터 해오던 방법들을 답습하게 되어있다.

 

A라는 지도자가 B 선수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을 했다고 치자. 그러고 나서 내가 B 선수에게 방금 지적받은 내용에 대해 예전에 들어본 적 있냐고 물어보면 99% 아마추어 때나 프로에서 다른 코치로부터 들어본 얘기라고 대답한다. 처방을 내린 방법도 언젠가는 다 해본 것들이라고 한다.

 

야구단에서 일하면서 많은 코치들을 봐왔다. 가르치는 내용이나 방법이 크게 다른 부분이 없다. 지도자들도 선수 때 자신들을 가르쳐준 지도자에게 야구를 배웠다. 요즘에서야 미국에서 많은 자료들을 구해 보기도 하고, 유튜브로 정보를 얻기도 하지만,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이전 지도자한테 배운 정보 말고는 습득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노력하지 않는 지도자들이 선수들을 가르치는 방법들은 다른 지도자들이 가르치는 그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하지만 박재상 코치는 달랐다. 선수들을 대하는 방법이나 연습 방법, 야구 이론 등이 이전에 내가 들어왔던 것들과는 다른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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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

 

박재상코치가 선수 때 별명이 아트스윙인건 아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예술적이고 교과서적인 스웡폼으로 3할을 기록한 적이 없는 선수였다는 점은 잘 모를 것이다.

 

박 코치가 선수 생활 중 유일하게 3할을 2년간 기록한 적이 있긴 하다. 바로 상무에서의 2년이다. 얼핏 생각하기에 2군이라서 타율이 높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박 코치 개인이 느낀 바는 그게 아니다. 상무에서는 폼에 대한 지적이나 스트레스를 전혀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본인이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야구를 했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왔다는 것. 이 경험을 계기로 박 코치는 선수들에게 그런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 노력했다. 편안한 마음으로 스윙할 수 있게 선수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노력하는 코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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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

 

일부 지도자들은 선수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하고 즐겁게 해주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꼰대들이다. 그렇게 하는 게 가장 힘들다. 박 코치를 인정하지 않는 지도자들은 가르치는 게 중요하지 재밌게 해주는 게 무슨 코치냐고 한다. 박 코치가 선수들에게 어떤 걸 가르치는지 알지 못해서 하는 소리이다. 이론적으로, 방법적으로 내가 본 지도자 중 준비가 잘 되어 있는 몇 안 되는 젊은 지도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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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

 

내가 겪어본 아마추어나 프로선수들 대부분 폼에 대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 지도자들도 자신들이 선수 생활할 때 폼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았음에도, 지도자가 된 이후에는 그 부분에 대한 고민이 적다. 본인들이 하는 말이 선수들에게 스트레스가 된다고 못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문화에서 선수들은 지도자 앞에서 특별한 감정 표현을 잘 하지 못한다. 지도자 앞에서는 ‘좋습니다’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지금은 덜하지만 예전에는 코치가 시킨 폼을 따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2군을 보내는 경우도 있었을 정도였다.

 

강정호와 입단 동기인 유선정 여주 ID 베이스볼 클럽 감독은 프로에서의 선수 생활 중 가장 아쉬웠던 점이, "원하는 폼을 해보지 못하고 코치들이 원하는 대로만 야구를 했던 것"이라고 했다. 공 던지는 건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는데 한 코치가 공 던지는 폼을 바꾸려고 했다는 것이다. 시키는 대로 하니 자신의 장점은 잃어버리고 팔이 아프기 시작했다고 한다. 동기 중 자기 스타일대로 야구를 했던 선수들과 3-4년 지나니 실력 차이가 크게 나 있었다고 한다. 자신이 겪은 고통을 지금 가르치고 있는 제자들은 느끼지 않게 하겠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저는 생각보다 멀리치는 타자입니다 

 

2020년 자신의 잠재력을 터트린 기아 최원준 선수는 자신의 20시즌 성공 비결로 타격폼을 꼽았다. 새로운 감독과 새로운 타격코치를 만나 타격폼을 수정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자신이 가능성을 인정받았던 고교 시절의 타격폼으로 돌아간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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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기아타이거즈>

 

 

최원준은 한 인터뷰에서 이런 대답을 했다.

 

"첫 구단에 들어왔을 때 빠른 공에 대처하기 위해 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폼을 바꾸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었어요. 하지만 윌리엄스 감독님, 송지만 코치님, 최희섭 코치님과는 폼보다는 수 싸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타격에 자신이 있었던 본래의 타격폼으로 돌아온 것 같아요."

 

스스로 어떤 유형의 타자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물었을 땐 이렇게 답했다.

 

"저는 생각보다 멀리치는 타자입니다."

 

저 짧은 한마디 속에 그동안의 과정들이 다 보인다.

 

‘스윙이 크면 헛스윙 한다.'

‘방망이 짧게 잡고 쳐라’

 

나도 무수히 봐왔던 그런 시행착오들을 최원준 선수도 겪었을 것이다.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경기에서 결과도 좋지 않고, 또 스트레스받고.. 악순환의 연속.

 

2019년 여름, 당시 롯데에 있던 채태인 선수가 부탁을 했다. 자신이 아끼는 후배가 있는데 만나서 조언 좀 해주라고. 상대팀인 내가 어떻게 조언을 하냐고 극구 말렸지만 채태인은 결국 한 선수를 불렀다. 롯데 한동희 선수였다.

 

직접 만난 한동희는 하드웨어가 보통이 아니었다. 내 기준에서는 야구를 못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어떤 부분에서 고통받고 있는지는 짐작하고 있었지만. 어린 선수들이 고통받는 건 다 똑같다. 동희가 원하는 건 하나였다.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폼으로 한 번만 해보는 게 꿈이라고 했다. 입단하고 난 이후 자신이 원하는 폼으로 야구를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허문회 감독이 롯데 감독으로 선임되고 나서 한동희의 포텐이 터질 거라고 예상했다. 허문회 감독은 폼에 대한 스트레스를 주지 않을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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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롯데자이언츠>

 

폼이 중요할 수도 있지만 완벽한 폼이 존재한다면 메이저리그의 모든 선수들이 하나의 폼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 말은 완벽한 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예술적인 타격 폼을 가진 박재상 코치가 3할을 못 치는 걸 보면 폼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폼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는 선수들을 많이 봐왔다.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수동적으로 폼을 수정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선수들이 많다. 폼을 건드리기 이전에 선수가 부담 없이 변화를 줄 수 있는 원인을 찾아 먼저 해결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한다. 선수들이 폼에 너무 연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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