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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에 리뷰노예로 납치된 불가사리. 거액의 제작비로 복수하겠다 다짐했지만, 딴지가 던져준 주제는 온통 싸구려들. 편집장 죽지않는돌고래(이하 죽돌)는 급기야 ‘대일밴드 리뷰’라는 미션을 내리고, 이걸 어떻게 리뷰해야 할까 불가사리는 혼란에 빠진다. 불가사리는 일단 딴짓을 하기로 작심하고... 과연 불가사리는 성공적으로 딴짓으로 딴지를 속일 수 있을까?

 

불가사리의 소비 대모험, 기대하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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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와인 오프너 기사 이후 와인에 대한 다른 용품도 리뷰해 달라는 수많은(대략 2건쯤) 요청이 있었다. 단순히 생각해 보면 와인병을 따는 와인 오프너와, 와인을 따라 마시는 와인잔 외에 무슨 용품이 필요할까 싶겠지만, 와인 애호가 생활을 하다 보면 두 가지 꼭 고려하게 되는 물건이 있다. 이는 와인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기도 하다.

 

첫 번째는 와인 마개(와인 세이버, 와인 스토퍼)이고, 두 번째는 디캔터와 에어레이터이다. 오늘은 이 중에서 와인 마개(와인 스토퍼)이야기를 해 보자.

 

둘이서 한 병은 너무 적고, 두 병은 너무 많아

 

와인은 한 병이 대개 750ml로 되어 있다. 사람마다 주량이나 좋아하는 술의 양은 다르겠지만, 이 양은 상당히 미묘한 양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한 병의 양을 두고, ‘둘이 한 병 마시면 모자라고, 각 1병 마시면 살짝 많은 양’이라고 표현한다(물론 각 1병이면 모자라고, 각 2병은 많다는 사람을 비롯한 예외도 얼마든지 있기는 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에탄올 양을 계산해 보면 간단하다.

 

술 속의 순 에탄올 양을 계산하는 식은 부피 x 술의 도수 x 0.8(에탄올의 비중)이다. 그런데 일반적인 드라이 와인(레드, 화이트 모두)의 도수는 11도에서 14도 정도, 평균 12~12.5도 정도로 보면 된다. 지구온난화와 함께 와인 도수가 높아지는 추세에 있어서 요즘에는 14도나 그 이상 도수의 와인을 보기도 어렵지 않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12.5도 정도로 계산하면 크게 다르지 않다. 즉 와인 한 병에 들어가 있는 에탄올의 양은 대략 75g(=750ml x 0.125도 x 0.8)이다. 소주 한 병(16.9도, 360ml)에 들어가 있는 알콜의 양이 48.6g이니, 와인 한 병의 알콜 양은 대략 소주 1.6병 정도라 보면 된다.

 

그러니 와인 한 병을 둘이 나누어 마실 경우, 둘이서 소주 한 병 반 정도를 마신 것으로 보면 된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상당히 애매한 양이다. 대개 ‘각 1병’ 정도면 적당히 마신 느낌이고, ‘각 1병 반’ 정도면 조금 많이 마신 느낌을 받는 이들이 많지 않은가. 식약처 2016년 통계에 따라 보더라도 한국인의 1회 음주량은 305ml인데, 에탄올 양을 계산하면 41.2g으로 와인 한 병의 에탄올 양 75g의 절반보다 20% 정도 더 많은 양이다. 즉 둘이 마실 때를 기준으로 볼 때, 한 병은 적고 두 병은 많아서, 남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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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술의 경우는 더한데, 와인 한 병을 혼자 전부 마시기에는 살짝 과음한다는 느낌이 든다. 와인은 반주로 마시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 번에 와인 반 병 조금 넘게 마시면 충분히 마셨다는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다. 한편 잔 와인(하우스 와인)을 파는 가게들의 경우에도 오픈한 상태로 와인을 며칠씩 놔둬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래서, 이미 딴 와인을 보존하는 경우는 늘 생기게 된다.

 

따면 금방 마셔야 하는 술, 와인

 

와인은 대개 스크루 마개가 아니어서 다시 잠그기가 애매하다. 설령 코르크를 다시 밀어 넣어도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서 그 맛이 완전히 변해버리기 일쑤다. 불가사리처럼 매일 술을 마시는 인간이라면 하루 정도 놔둔 와인을 마시는 것이니 마실 만 하겠지만, 일주일만, 많은 경우는 3일만 지나도 좋은 향과 맛은 대부분 없어지고 쿰쿰한 향이 남게 된다. 와인 잡지 ‘디캔터’에 따르면, 레드 와인의 경우 한 번 따면 코르크를 교체하고 서늘하고 어두운 곳에 보관해도 3-5일 이상은 보관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니 선물 받은 와인을 조금 마시고 아까워서 다시 마개를 닫은 채 몇 달 동안 보관해 두었다면, 주저 없이 요리에 사용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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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와인이 쉽게 변질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우선 와인의 도수인 12.5도에서는 미생물(특히 초산균)들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 탄닌과 폴리페놀을 비롯한 수많은 항산화물질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술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간략한 이해가 필요하다.

 

포도당 같은 ‘당’에 효모를 첨가하여 뚜껑을 닫으면, 효모균은 ‘당’을 먹고 에탄올과 이산화탄소를 ‘싼다’. 이렇게 만들어진 효모균의 배설물이 술이다. 그리고 이 에탄올을 사람이 먹으면, 에탄올은 아세트알데히드를 거쳐 아세트산(초산, 식초라고 생각하면 된다)이 된다. 물론 이걸 인간만 하는 것은 아니고, ‘초산균’이라는 균도 같은 일을 한다. 인간이 하면 ‘숙취’라고 부르고, 초산균이 할 경우에는 ‘초산 발효’라고 부른다. 그런데 알코올 도수가 19~20도가 되면, 자신이 싼 똥에 똥독이 올라서 죽는 사람마냥 효모균은 죽게 되고, 초산균 또한 생존할 수 없게 되며, 사람은 행복해진다. 좀 더 자세하고 간단한 설명을 원하면 아래를 누르시라.

 

이과출동

 

당화 상태의 탄수화물에 효모를 첨가하고 산소를 차단하면 효모균은 알코올 발효를 진행한다.

 

C6H12O6(글루코오스) -> 2CH3CH2OH(에탄올) + 2CO2 + 2ATP

 

에탄올에 초산균을 첨가하고 산소를 넣으면 초산균은 초산 발효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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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효모균과 초산균이 활동을 멈추는 16~17도 이하의 술에 균들과 산소가 유입되면 술의 에탄올 성분은 필연적으로 변질되고, 장기적으로는 식초처럼 변한다. 우리가 아는 ‘발사믹 식초’는 와인에 초산균과 산소를 넣어 아예 식초로 만든 것이고, 같은 원리에서 ‘막걸리 식초’등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와인은 초산균이 딱 좋아하는 도수인 12.5도 정도여서, 쉽게 식초처럼 변할 수 있다.

 

이런 변질은 막걸리, 청주 등도 동일하게 겪는 일이다. 그러나 와인만큼 극적으로 변화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와인에는 상당량의 당(흔히 ‘잔당’이라 부른다)이 남아 있고, 포도에서 비롯된 폴리페놀, 안토시아닌, 탄닌 등의 수많은 항산화물질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물질들은 몸에서 활성산소와 먼저 결합할 만큼 산소와 잘 결합하는 물질들인데, 그 자체로 맛과 색을 가지고 있고 산소와 결합할 경우 맛이 변한다. 흔히 와인을 병에 담은 채 몇 년이고 몇 십 년이고 숙성하는 이유는 결국 탄닌을 비롯한 물질들을 천천히 산화시키는 것이고, 디캔팅을 하거나 스월링(와인잔을 흔드는 것)을 하는 것, 와인을 가늘게 따르는 것도 이 물질들을 빠르게 산화시켜서 적당한 수준의 맛으로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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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물엿입니다

 

결국 와인병을 따 두면, 알콜 뿐 아니라 이런 물질들이 산소와 결합하여 ‘먹기 좋은 상태’를 지나 불쾌한 맛과 향의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 그리고 와인마다 차이가 있지만, ‘먹기 좋은 상태’를 넘어서는 기간이 대개 3~5일 정도라 보면 된다. 그리고 ‘와인 마개’란, 이 기간을 늘려주는 제품들이다.

 

와인 스토퍼의 아이디어

 

앞의 이야기를 보고 모두가 생각했을 것이다. 와인의 변질을 막기 위해서는, 결국 와인과 산소가 만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말을 아주 길게 한 것이다. 그렇다면 와인과 산소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처음 사람들이 생각한 것은 와인병안에 있는 공기를 제거하는 것이다. 와인병은 주로 두꺼운 유리병으로 되어 있기에, 공기를 제거하는 정도로 잘 깨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병안에 있는 공기를 완전히 없애면, 와인과 만날 산소도 없으니 변질되지 않는다. 그러나 완전한 진공을 만드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고, 설령 진공을 만들었다 쳐도 막은 마개 사이로 들어가는 공기를 완전히 막기도 힘든 일이라는 점이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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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볼 수 있는 이 물건도 결국 진공을 최대한 만들려는 아이디어로 나온 물건이다.

 

그래서 두 번째로 생각한 방법은 산소보다 무거운, 그러나 와인을 산화시키지 않는 기체(주로 아르곤이 사용된다)를 넣어서 산소와 만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 이 방법의 문제는 병이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무거운 기체가 흔들릴 수 있고 그 사이로 산소가 비집고 들어갈 수 있다는 문제가 있고,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매번 기체를 넣어줘야 하는데 산소보다 무거운 기체의 가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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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보존용 아르곤 가스 스프레이 ‘와인세이브’. 현재 한국에서 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세 번째로 생각한 방법은 공기 속에 있는 산소를 화학적으로 제거하는 것이다. 주로 김 포장이나 신선제품 포장 안에 ‘탈산소제’라는 물건이 들어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것들을 병 속 공간에 넣어 산소를 제거하면 될 것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 탈산소제 역시 산소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고, 탈산소제를 매번 바꾸어 사용해야 하므로 가격이 꽤나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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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산소제를 공간에 넣는다는 개념의 한국 발명품 ‘플라빈’

 

오늘의 리뷰는 이 세 가지 카테고리의 물건들이다. 우선 대표적인 물품들을 간단히 소개하고, 마지막에는 동일한 곳에서 구매한 동일한 와인을 동일한 날 동일한 만큼 마신 후 각 마개로 막은 뒤 개봉하여, 남은 와인이 얼마나 변질되었는지 테스트하도록 하겠다.

 

공기제거형 - 1) 배큐빈(VacuVin), 2) 전동 자동 진공 와인 스토퍼

 

기체보관형 - 3) 풀텍스 안티옥스(Anti-Ox)

 

산소제거형 - 4) 플라빈(Flavin), 5) 리푸어(Repour)

 

테스트를 위한 와인은?

 

테스트용으로 고른 와인은 1865이다. ‘몬테스 알파’와 함께,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와인으로 늘 1, 2위를 다투는 제품이다.

 

말이 나온 김에 이야기하면,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와인의 통계는 존재하지 않고, 각 유통 채널이나 마트별 통계만 존재한다. 그런데 대부분 마트의 판매 1위는 그 마트의 PB(이마트의 ‘도스 코파스’, 롯데마트의 ‘L’, 홈플러스의 ‘Vineyards' 등)이다. 그리고 이를 제외한 통계를 보면, 어떤 유통 채널이건 5위권 안에 위치하는 와인이 ’몬테스 알파‘와 ’1865‘이다.

 

둘 다 칠레 와인이고, 한-칠레 FTA의 수혜를 입은 와인이지만, 두 와인의 성향은 매우 다르다. ’몬테스 알파 까베르네 소비뇽‘은 탄닌의 쓴 맛이 강하고 오크향 및 그에서 비롯된 바닐라, 나무 향 등도 매우 강한, ’타격감‘이 있어서 뭔가 와인을 마신다는 느낌을 주는, 그래서 고기나 강한 향의 한국 음식과도 어울리는 와인이다. 반면 ’1865 까베르네 소비뇽‘은 과일 향이 좀 더 화사하고 좀 더 부드러우며 ’목넘김‘이 좋아서 술 자체를 즐기기에 좀 더 적절한 와인이다. 사실 한국에서는 ’18홀을 65타에‘라는 이야기로 골프장 인기 와인이 되어 인기를 끈 면도 있지만, 여러모로 밸런스가 좋은, 가성비 좋은 와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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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골프백 모양의 케이스에 와인을 넣어 주고 그랬다

 

‘몬테스 알파’가 아니라 ‘1865’를 고른 이유는 간단한데, ‘몬테스 알파’가 좀 더 향과 맛이 세서 공기 노출에 따른 변화가 적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하고, 두 와인의 가격은 늘 비슷한데 와인을 사러 간 날 기준 ‘몬테스 알파’보다 ‘1865’가 1000원 더 비쌌기 때문이기도 하다. (보고 있나 딴지 편집장?)

 

테스트의 방식은 이렇다. 동일한 박스에서 나온 동일한 빈티지의 동일한 와인을 동일한 판매처에서 구했다. 코스트코 양재점에서 같은 박스에서 나온 1865 셀렉티드 빈야드 까베르네 소비뇽 2019를 다섯 병 샀다. 그리고 같은 날, 동일한 양, 대략 병의 3/5정도의 와인을 마셨고(쉽지 않은 일이었다), 각 마개들을 이용해 닫았다. 이날이 7월 25일이었다. 그리고 2주 뒤인 8월 9일에 모든 와인을 오픈해서, 남아 있는 와인의 상태를 비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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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정도 마신 뒤 각 마개로 닫아 둔 1865 와인들

 

술 마시러 여러 사람이 모이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현재, 남아 있는 와인 상태 비교에 적절한 도구가 없을지 고민을 했다. 불가사리의 코와 혀만으로는 객관적인 비교가 된다고 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pH검사기를 구매했다(으하하 보고 있냐구 죽돌 편집장!!). 전술한 바와 같이 와인의 변질은 산소와 많이 닿아서 생기는 일이고, 산소와 많이 닿으면 닿을수록, 알콜이 아세트산으로 발효되는 정도가 클 것이고, 따라서 산소와 많이 접촉한 와인일수록 더 산성에 가까워질 것이다. 에탄올의 pH는 7.0이지만 1M 아세트산 용액의 pH는 2.4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pH가 낮게(즉 더 산성으로 나오는) 와인일수록, 더 많은 산소와 접촉했다고 보아도 될 것이라 가정했다. 두고 보니 이 실험은 맞는 부분도 있었지만 여러 한계가 있기는 했다. 이 부분은 후술한다.

 

우선은 점수부터 확인해보고, 그 순서대로 마개를 소개하도록 한다. 다만 pH 테스트를 두 번씩 진행하긴 했지만 그 편차가 크지 않아서, pH 정도로 산소가 얼마나 들어갔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을 것 같으니 어디까지나 참조만 했으면 한다. 이외에 불가사리와 아내가 블라인드 테스트로 점수를 매겼는데, 첫날 따서 적당히 스월링(잔 흔들기)한 와인의 맛을 5점으로 둘 때 상대적인 점수를 매겼다. 이 점수가 pH와 차이가 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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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플라빈 (FlaVin) - 마개 1개와 패치 10개에 25,900원

 

pH 테스트상 1위를 차지한 제품은 자랑스러운 한국의 제품, 플라빈이다. 불가사리와 아내가 맛본 바에 따르더라도, 2주 이상 지난 시점에도 맛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했다. (4.4점/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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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 3.78을 기록한 플라빈

 

철가루, 활성탄, 비타민c 등의 물질은 산소와 쉽게 결합하는데, 이를 와인병 내의 공기 부분에 매달면 산소가 제거될 것이라는 간단한 아이디어로 2011년 한국에서 개발된 물건이다. 사용 후 4시간 이내에 내부 산소의 99.9%가 제거된다고 한다. 실제 모양을 보면 스토퍼 아래에 탈산소제 패치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데, 모양이 예쁘지는 않지만 최대한 공기와 가까운 곳에 패치가 있어서 산소 제거에 유리하다. (반면 뚜껑 안에 탈산소제가 들어 있는 리푸어 등의 제품은 산소 제거에는 구조상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 제품의 가장 큰 문제는 사용자 경험이 좋지 않다는 데 있다. 우선 마개에 매번 탈산소제 패치를 매다는 것이 귀찮은 일이고, 탈산소제가 와인과 닿으면 안 되기에 기울이거나 흔들려도 안 된다. 패치의 길이가 있다 보니 와인을 조금만 마시고 보관할 경우에는 사용할 수도 없다. 뭔가 어설퍼 보이는 모양도 그닥 매력적이지 않고, 패치를 매다는 마개는 3,000원에 살 수 있는 물건과 대동소이해 보여 역시 신뢰가 가지 않는다. 한편 패치 하나에 1,000원 가까운 가격도 꽤나 압박이 된다.

 

또 남은 공간의 산소를 제거하는 방식이다 보니, 와인을 많이 마셔서 공기 부분이 많을 경우에는 원활한 산소 제거가 어렵다. 위의 이야기와 결합하면, ‘조금 마신 후에 쓰기 어렵고, 많이 마신 후에는 효과가 떨어지는’ 것이다.

 

어쨌든 효과 자체는 훌륭했다. 레스토랑에서 ‘하우스 와인’을 보관하는 용도로 쓰기는 힘들겠고, 주로 혼술족들이나 집에서 마실 때, 비싼 와인을 마신 후 2주 이내로 보관하는 용도로 쓰기에는 최적인 것 같다.

 

2. 전동식 와인 스토퍼 (이름 불명) - 3만 원 이하

 

pH상 2위를 차지한 것은 ‘전동식 와인 스토퍼’이다. 블라인드 테스트에서도 결과가 나쁘지 않았으나, 수치에 비해서는 좋지 않았다(4점/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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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 3.74를 기록한 전동식 와인 스토퍼

 

일반적인 ‘전동 와인 스토퍼’는 배큐빈의 펌프 기능을 전동 기계가 대신해주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후술할 ‘배큐빈’을 비롯한 다른 펌프형 제품의 경우에도 그리 힘이 필요하거나 여러 번의 펌프질이 필요한 것은 아니어서, 굳이 전동 와인 스토퍼가 필요한지 불분명한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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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물건으로는 에버랩스의 ‘에어세이버’가 있다. 마개 두 개 포함 10만 원 선.

 

반면 리뷰에 사용한 제품은 정확한 상표를 알기 힘든 중국제 전동 자동 와인 스토퍼이다. 일종의 공기를 빼내는 기계다. 이 제품을 와인 입구에 꽂아 두면 공기를 빼내고, 안에 공기가 들어간 것 같으면 스마트 센서로 이를 인식하여 공기를 자동으로 다시 빼내는 원리라고 한다. 건전지로 구동하는 전동 물건인 주제에 알리익스프레스 기준 20불이 되지 않는 가격이라 궁금함에 사 보았다.

 

실제 구동을 시켜 보니, 일정 시간마다 한 번씩 공기를 빼 내는 기계이다. 기계를 병 입구에 누르기만 하면 작동한다. 스마트 센서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고, 일정 시간마다 한 번씩 공기가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다만 기계 크기의 문제가 있어서 얼마나 힘이 좋을지, 얼마나 제대로 진공 상태에 가깝게 공기를 빼낼지는 다소 불분명하다. 테스트를 해 보면 대충 알 수 있을 것 같다. 정확한 진공과 정확한 밀봉이 되지 않는 대신, 자주 공기를 빼는 방식으로 승부하는 제품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제품은 몇 가지 문제가 있는데, 가장 큰 문제는 너무 아무런 기능이 없어서, 어떻게 하면 뺄 수 있는지 불분명하고, 현재 제대로 구동이 되고 있는지 알아볼 수도 없으며, 기계를 끌 방법도 없다. 두 번째 문제가 이와 결합하면 심각해지는데, 배터리 소모량이 생각보다 크다. 대충 2주 정도 되니 배터리가 다하여 작동을 멈추었다. 제품의 구조상 배터리가 다 소모되면 싸구려 스토퍼보다도 못한 뭉치에 불과한데, 배터리가 소모되었는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매번 새로 사용할 때마다 배터리를 갈아껴야 하는데, 매번 AA 건전지 두 개를 낀다면 유지비가 플라빈과 비슷한 수준이 된다.

 

3. 배큐빈 (VacuVin) - 펌프와 마개 두 개 세트 2만원 초반

 

이번 리뷰에서 가장 의외라고 생각했던 배큐빈이다. pH도 매우 양호했고, 무엇보다 맛 테스트에서는 최고점이었다. 와인을 마시다 보면 다음 날 와인이 더 맛있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그 정도로 생각할 만큼 맛에 거의 변화가 없었다(4.6점/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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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 3.74의 배큐빈

 

이 제품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특히 ‘하우스 와인’, ‘잔 와인’을 파는 업장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제품이다. 간단하지만 신뢰성 높은 마개, 역시 간단한 구조의 펌프, 적절한 가격이라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워낙 구조가 단순하니만큼, 사실 이렇게 좋은 성능을 보이는 것은 꽤나 의외라고 느꼈다.

 

사용 영상

 

사용법은 간단하다. 와인이 남은 병에 마개를 꽂고, 펌프를 댄 뒤 손으로 펌프질을 해 준다. 그다지 많은 힘이 필요하지 않다. 몇 번 하다 보면 ‘딸깍 딸깍’소리가 나는데, 그러면 공기 대부분이 제거되었다는 소리다. 이 상태로 보관하다 생각이 나면 이따금씩 밸브를 대고 펌프질을 한두 번씩 해 주면 되고, 딸 때는 마개 윗부분에 튀어나온 부분을 살짝 밀면 공기가 들어가면서 마개가 빠진다. 간단한 원리이지만 여러모로 어설픈 부분이 없고 견고하며, 디자인도 훌륭하고 고장 날 부분도 거의 없다. 마개는 사용한 뒤 다른 와인에 거의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솔직히 업장처럼 자주 사용해야 하는 곳에서는 무조건 최적의 방식이라 생각한다. 가장 싸고, 자주 사용할 수 있으며, 관리할 때 신경을 덜 써도 되는데, 효과가 좋다.

 

다만 생각해야 할 것은, 이번 테스트가 와인의 2/3 정도를 마신 후에 진행한 테스트라는 점이다. 화학적으로 공기 중 산소를 제거하는 제품들은 당연히 공기가 조금 남아 있을수록 그 효과가 좋을 것이다. 반면 진공을 만드는 방식은 공기가 많이 남아 있건 조금 남아 있건 펌프로 빼면 되니 효과가 거의 동일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번 테스트에서 화학적 제거 와인 마개들의 성적이 좋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4. 리푸어(Repour) - 개당 5,000원 선

 

4위는 리푸어(Repour)이다. 화학적 방식으로 산소를 제거하는 와인세이버의 장을 연 것이 플라빈이라면, 이를 대중화시켜서 많이 사용되는 제품이다. pH상에서는 대단한 차이가 있지 않았는데, 맛에서는 불가사리와 아내 모두 최악이라 평가했다(3점/4점). 마개를 닫지 않고 보관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지만(이번에 비교하지는 않았지만 경험상), 다른 마개들에 비해 확연히 맛이 많이 변질되었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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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 3.73의 리푸어

 

원리는 플라빈과 동일하게 탈산소제를 이용한 것인데, 탈산소제를 매다는 등의 번거로움을 피하고 마개 안에 탈산소제를 넣어서, 그냥 마개를 꽂기만 하면 산소가 제거된다는 제품이다. 실제 사용이 엄청나게 쉽고(그냥 꽂기만 하면 된다!), 몇 번 사용할 수 있다면 가격도 나쁘지 않다. 모양도 세련된 편이기도 해서, 처음에는 킥스타터로 시작된 제품이지만 지금은 엔간한 와인샵 등에서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대중화되었다. 처음 사용시 마개 하단의 씰을 제거하면, 5번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라고 한다.

 

문제는 역시 신뢰도이다. 마개의 크기를 보고 손에서 느껴지는 무게를 보면, 탈산소제의 양이 과연 플라빈 패치 2회 정도의 양이나 될지 의심스럽다. 그리고 구조상 플라빈처럼 공기 아래에 탈산소제가 직접 내려가 있는 것이 아닌 만큼, 공기 중 산소를 효율적으로 제거할 수 있을지도 다소 의심스럽다. 실제 테스트에서 처참한 점수를 받은 것을 보면, 이 걱정이 어느 정도는 사실인 것 같다. 게다가 새 제품을 막 따서 테스트했는데 이 정도의 결과라면, 횟수를 늘려 가면 더 효과가 떨어지지 않을까. 다만 전술한 바와 같이, 와인을 많이 비운 상태여서 상대적으로 효과가 적었을 가능성도 있다.

 

한편 가격 역시 싸지 않다. 플라빈만큼 번거롭지는 않지만, 5,000원 정도 하는 마개로 5번을 사용할 수 있다면 1번에 1,000원 정도라 플라빈 패치 가격과 거의 비슷하다. 솔직히 편리하게 와인을 보관하고 싶다면 배큐빈이 훨씬 더 나은 선택으로 생각하고, 제대로 보관하고 싶다면 플라빈이 더 나은 선택이라 생각한다.

 

5. 풀텍스 안티옥스 - 개당 5만원 선

 

pH테스트상 가장 낮은 점수는 ‘풀텍스 안티옥스’이다. 그러나 불가사리와 아내의 입에는 리푸어보다는 나은 맛이었다(3.5점/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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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 3.71의 안티옥스

 

이 제품을 만든 회사는 지난번 오프너 리뷰에서 등장했던, 지금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와인 오프너의 외형을 만들어낸 스페인의 회사 ‘풀텍스’에서 나온 제품이다. 이 ‘풀텍스’사는 오프너와 와인세이버 외에도 수많은 와인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데 전반적으로 평이 좋은 편이다. 이 제품의 정확한 원리는 알기 힘드나, 설명을 보면 산소 제거형과 기체 발생형의 중간쯤 되는 물건으로 보인다. 단순한 구조의 마개 위에 활성탄이 있어서, 산소를 꽤나 제거하고 산소와 결합하여 산소보다 무거운 이산화탄소를 만들어 와인 위에 깔리게 하여, 남아 있는 산소와의 접촉을 막는다는 원리의 제품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 사용해 보면 이게 정말 그런 효과가 있는지 조금 의아한 느낌이 든다. 공기를 빼 내는 어떠한 장치도 없을뿐더러, 완벽한 밀봉이 되는지도 다소 의심스럽다. 게다가 활성탄이 들어 있는 부분의 부피가 매우 적어서, 이 정도의 활성탄으로 얼마나 많은 산소를 없앨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이 제품은 5년간 사용 가능하다고 하는데 그것도 많은 의문이다.

 

그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어쨌든 리푸어보다는 맛이 나았다. 만약 위에 말한 원리가 사실이라면, 와인을 상대적으로 많이 마신 상황이기에 이산화탄소 층을 만드는 안티옥스가 단순히 산소를 제거하는 리푸어보다 나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다만 이 또한 새 제품을 따서 바로 사용한 결과라는 점에서,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는 다소 의문이 든다.

 

번외 : 코라뱅 - 정식 수입가 40만 원 선 (모델2, 캔 두 개 포함)

 

사실 진짜 리뷰하고 싶은 물건은 하지 못했다. 딴지에서 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르곤 가스를 사용한 와인스토퍼 중 가장 고급이자 완벽에 가까운 물건인 ‘코라뱅(CoraVin)'이라는 이름의 제품이다. 와인을 따는 방법 중 하나이기에, 지난번 리뷰한 와인 오프너의 종류에도 들어간다 볼 수 있다. 아르곤 가스를 연결한 가는 관을 와인 코르크에 꽂고, 관으로 와인이 나오는 만큼 아르곤 가스를 주입한다. 워낙 가는 관이기에 뽑아내면 거의 바로 코르크가 메워져 공기가 새어 들어갈 가능성이 거의 없고, 다른 가스를 채워 두었기에 코르크에 미세한 구멍이 있다 해도 산소가 들어갈 여지가 없다. 애초에 ’열었다‘고 볼 수가 없기에, 보존이라는 면에서 가장 완벽에 가깝다. 제조사에서는 2년까지는 문제없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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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품의 문제는 역으로 아무런 변화가 없기 때문에, 병을 따서 맛의 변화를 느끼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는 디캔터나 잔에 따라 두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제 가장 큰 문제는 비싼 가격이다. 기계가 40만 원에 달하고, 아르곤 가스 캔은 소모품이라 계속 바꾸어 주어야 하는데 그 가격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인지 꼭 가지고 싶었던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딴지에서 사 주지 않아 이번 리뷰에서는 빠진다. 그러나 언젠가는 꼭 뜯어내고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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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와인따개?

 

불가사리의 소비대모험을 읽어온 사람이라면, 아마 큰 의문을 간직하면서 글을 읽어왔으리라. ‘밴드 리뷰는 어디로 가고, 갑자기 와인따개?’ 외면하고 싶지만 사실이다. 사실 불가사리는 밴드 리뷰를 위해 수많은 방법을 고안했지만 마음에 차는 테스트를 하지 못했다. 그러다 모험과 자해를 통해 테스트를 완성했는데, 내가 무엇 때문에 이 짓까지 하는 것인가 자괴감이 들어서 현재 기사로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다음 시간에는 그 결과물을 펼칠 테니 기대하시라.

 

결론

 

1. 와인마개(와인 세이퍼, 와인 스토퍼)는 생각보다 효과가 좋다

 

가격이 만만치 않긴 하지만, 2주 이후에 맛의 변화가 크지 않았고, 사실 2주 더 보관해 보았는데 그 때도 그냥 따 두는 것보다는 훨씬 맛의 변화가 크지 않았다. (다시 테스트를 한다면 대조군으로 그냥 코르크 마개로 막아 두는 경우를 비교했을 것 같은데 아쉬운 부분이 있다) 혼술족이라면, 혹은 한 번에 마시는 와인 양이 적다면, 혹은 와인도 키핑해 두고 다음 데이트 때 마시고 싶다면 와인 스토퍼도 좋은 선택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2. 추천품

 

프리미엄 모델: 플라빈

 

가성비 모델: 배큐빈

 

워너비 모델: 코라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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