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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집단면역의 밀알이 되었다. 2차접종, 그것도 교차접종을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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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접종자는 1따봉 2차는 2따봉

 

1차접종은 5월 말, 아스트라 제네카(이하 AZ)였다. 8주~9주가 지나야 2차접종을 받을 수 있는 AZ를 맞은 이답게 2차접종 날짜는 8월 12일이 되었더랬다(1차 받으면 2차는 자동예약).

 

그런데 나 같은 애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1차를 AZ로 맞은 젊은이(나름)들이 꽤 부작용을 겪었는지 "AZ는 50세 이상만 접종 가능"으로 백신 정책(?)이 바뀌었다. 이에 따라 50세가 되기엔 충분히 모자른 나는 자연스레 교차접종 대상자가 되었다.

 

였는데, 다시 30세 이상이면 AZ 잔여백신을 맞을 수 있게 변경되었다. 바로 앞에서 안된다고 해놓고 말 바꾸는 저는 아마 양아치는 아닐 겁니다.

 

 

밀릴 수도 있는 2차접종

 

2차접종 시간은 1차 때 정해주긴 하지만, 경우에 따라 제 시간에 할 수도, 밀릴 수도, 당겨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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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2일 오후 3시로 2차접종 날짜를 받았다. 예약 전날까지 병원으로부터 아무 연락이 없고 나도 날짜를 바꿀 필요가 없다면 이대로 2차접종을 받으러 가면 된다. (해당 날짜에 2차접종을 받지 못할 사정이 생기면 COOV 어플을 통해 날짜를 바꿀 수 있다)

 

그러나 내가 2차접종을 받을 때는 'AZ는 50대 이상 접종'이 원칙이었다. 누구는 일주일 전에 'AZ에서 화이자로 변경되었다'는 내용의 문자를 받았다고 하던데, 나에게는 3일 전까지도 연락이 없었다.

 

아무도 2차접종의 행방을 모르던 차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날짜는 똑같은데 같은 날 오후 12시에 올 수 있냐는 말이었다. 이미 휴가를 냈는데 12시고 3시고 뭐가 중요할까. 한국인의 미덕을 담아 바로 'ㅇㅋ'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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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변경이 생기는 건 보통 해당 병원의 수급 문제로, 늦어지면 늦어졌지 제 시간에 맞거나 당겨지는 경우는 잘 없다는 것 같다. 뭐, 이건 어디까지나 교차접종이 한참 이뤄지던 8월 중순까지의 사정이니 지금과 다를 수 있다.

 

 

주사를 맞으러 갑시다

 

12시 접종이었으므로 11시 45분에 병원에 도착했다. 예약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이유는 개중 주사를 빨리 맞기 위한 나름의 꼼수였다.

 

1차접종 때 서울 중심지(충정로)에서 서울 변두리(우리 동네)까지 40분 만에 도착한 쾌거를 이룬 나는, 접종 시간이었던 3시까지 말 그대로 '겨우' 도착했다. 당연히 3시 접종 예약자 중 순서는 말번 중 말번이 되었다.

 

보통 3시 접종자가 10명이라고 하면, 백신 상온 노출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10명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백신 뚜껑을 딴다. 그리고 도착한 순서대로(병원 접수 순서대로) 한 명씩 진료실에 들어가 백신을 놔준다. 한 사람에 많이 걸려봤자 5분, 빠르면 1-2분이면 끝나지만, 내가 말번일 경우 3시에 접종을 시작한다 해도 최소 20분은 사람 북적이는 그 병원에서 앉아있지도 못하고(거리두기+사람 많아서 앉을 자리가 없음) 기다려야 한다.

 

1차접종 때 나는 제 시간에 도착하기 위해 파워워킹과 약간의 달리기를 했더랬다. 그다지 덥지 않은 계절이었음에도 땀투성이였고, 아침에 비가 왔던 터라 장화도 신고 있었다. 그 상태로 작은 개인병원에서 20분을 서있는다? 아니지, 주사를 맞고 15분은 대기해야 하니 근 1시간이다. 나부터 내 자신이 찝찝한데 땀냄새가 나지 않을까 걱정을 한 시간 가까이 해야 하는 것이다.

 

이 수모(?)를 겪었던 바, 이번엔 12시 접종자 중 1번이 되자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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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랑 똑같은 문진표

 

나름 2차라고 익숙하게 접수를 하고 체온도 재고 자리에 앉아있었다. 55분이 되어도 사람이 많지 않아서 '설마 백신 거부자들?' 물음표를 띄우고 있으니 12시 정각에 사람이 우루루 들어왔다(단체 아님). 보아하니 2~30대였다. 1차접종 AZ 때와는 전혀 다른 인원구성에, 병원에서 하루의 화이자 교차접종자+1차접종자를 한 타임에 모아서 접종하는가 보다 합리적인 의심을 했다. 내가 이렇게 똑똑하다.

 

15분이나 이른 도착 덕분에 두 번째로 주사를 맞을 수 있었고(나보다 더한 사람이 한 명 있었다), 1차 때와 같이 15분의 대기 후,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집에 갈 수 있었다. 저번엔 모든 과정에 1시간은 걸렸던 것 같은데 이번엔 30분 만에 끝났다. 그러니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일찍 가는 걸 추천한다(다만 같은 시간에 맞는 사람들이 늦게 도착하면 도루묵). 특히 밥 시간에 걸리면 배가 고파서 주사 맞은 뒤 15분 앉아있는 게 고역처럼 느껴진다. 주변에 꼬르륵 소리 나지 않게 주사 맞은 팔이 아닌 배를 움켜쥐어야 한다.

 

 

접종 그 후

 

사실 크게 아플 거라고 생각은 안 했다. 1차접종 때 AZ를 맞고 힘들었기 때문에 설마 두 번이나 힘들겠냐 하는 이상한 믿음과 주변에 화이자 맞은 사람의 증언을 토대로 낸 결과였다.

 

주변 혹은 인터넷에서 본 화이자(1, 2차 전부) 후기는 모두 같은 말을 했다.

 

"맞은 팔은 되게 아픈데, 열이 난다거나 오한이 든다거나 하진 않는다"

 

1차접종 때 오한, 발열, 근육통, 두통의 콜라보레이션을 겪었던 나라서, 정말인지 의심이 들었지만 세 명이면 없는 호랑이도 만든다고 했다. 다수가 똑같은 말을 하는데도 신뢰할 수 없다고 하면 이렇게 글을 쓸 게 아니라 판검사를 해야 한다.

 

 

1) 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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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파서 손이 떨릴 지경이라 집에 도착해 후다닥 밥부터 먹으니 1시가 조금 넘어있었다. 1차접종 때 당일은 아무렇지도 않았던 게 생각나 타이레놀도 안 먹고 할 일(=게임)을 했다.

 

라는 건 딱 두세 시간 정도.

 

10시간은 지나야 아팠던 AZ의 기억이 내가 백신 맞았다는 걸 망각하게 만든 게 분명하다. 2~3시간이 지나자 어깨가 아파왔다. 누가 방망이로 어깨에서 목 뒤를 때린 건 아닐까 싶은 정도였다. 체중의 2/3은 될 법한 사람이 위에 올라와있는 느낌일 수도 있겠다. 무겁고 뻐근한 게 세상 그렇게 불편하고 아플 수 없었다.

 

도저히 앉아있을 수가 없어서 침대에 누웠고, 누웠을 뿐인데 두 시간 정도가 지나있었다. 잠들었던 것이다. 일어난 후에도 미열이 있었지만, 잠들기 전보단 나았다. 타이레놀을 먹고 할 일(=게임)을 하고 잠깐 누워있다가 또 뭣 좀 주워먹었다. 이렇게 어영부영 하루를 보냈다. 백신은 하루를 이렇게 순식간에 없앤다.

 

맞은 팔이 아프다고 했지 1차 때처럼 아프다고는 아무도 말 안 했는데...! 역시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는 게 이렇게 밝혀진 첫 날이었다.

 

결론: 2~3시간 만에 찾아온 열과 통증에 게임하다 말고 잠만 잠.

 

 

2) 이튿날

 

누가 인간 사회는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졌다고 하지 않았던가. 역시 사람 말을 덮어놓고 의심하는 건 좋지 않다.

 

사람들 말마따나 다음날부터는 꽤 멀쩡했다. 1차접종 때 새벽에 엄청 고생했던 걸 생각하면, 첫째 날에서 둘째 날로 넘어가는 밤이 매우 힘들 거라고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잘잤다. 다만 후기처럼 주사 맞은 팔은 아팠다. 실수로 주사 맞은 팔을 밑으로 하고 옆으로 누웠을 때란... 자신의 특이한 성취향이나 고통의 역치를 알고 싶다면 주사를 맞은 팔에 자극을 주도록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이레놀은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약을 안 먹으면 열이 오를 거라는 불안감이 있기도 했고, 미열이 있었으며(대수롭지 않은 정도), 주사 맞은 부위가 뜨끈뜨끈한 것 같은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건강하다'라는 신념 하에 약을 참는 바보짓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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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자 후기1.

내 왼팔은 없는 거다

 

 

3) 3일,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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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종 후 3일이 지나면 국민비서에서 문자를 보내온다. 1차 접종 후에도 했던 '건강상태 이상 확인 보고'를 하라는 연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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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때와 마찬가지로 빅데이터를 위해 건강상태에 대해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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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보고한 내용에 따라 보건소에서 연락이 오는 경우가 있다. 나는 점점 괜찮아지고 있는데, 보고한 '이상'도 하루이틀 정도 아팠던 것 뿐인데, 며칠 뒤에 보건소에서 연락이 오면 민망한 상황이 펼쳐진다.

 

보건소: 접종 이후 이상이 있다고 남겨주셔서 전화드렸어요.

나: 아... 예... 지금은 괜찮고... 뭐... 괜찮아요...

 

토익학원 빼먹고 그 다음 시간에 선생님이 '저번에 왜 안 왔어요' 하는데 어설픈 변명만 하는 못난 어른의 모습 같았다. 의외로 저는 부끄럼을 많이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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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자 후기2.

팔 치고 가면 10년 원수 예약

 

3일 이후의 상태에 대해 말해보면, 생각보다 팔의 통증은 오래 간다. 건드리기만 해도 아프다. 팔 자체가 움직이기 힘든 건 하루이틀이면 끝나지만, 잔잔한 아픔은 일주일까지도 간다.

 

4일 정도까지 미열도 있어서 주사 맞고 4일까진 운동을 하지 않았다. 나 같은 운동쓰레기(운동을 안 하면 어딘가 좀이 쑤시는 타입인데 그렇다고 잘하는 건 아님)들은 뭔가 뻐근해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일 텐데, 스트레칭한다고 팔로 이자세 저자세 하다보면 삼각근, 상완근, 삼두근 등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알 수 있다. 그 때마다 색다른 고통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역시 아픈 걸 좋아하는 취향이 아니라면 그만두는 게 좋겠다.

 

결론: 팔만 아픈데 그렇다고 만만하게 보면 새로운 즐거움(?) 혹은 고통에 눈 뜰 수 있음

 

 

 

AZ는 1차가, 화이자는 2차가 아프다고 하던데, 얘는 1차 AZ, 2차 화이자 접종자다. 이 말에 2차접종 맞기 전에 쫄, 뻔 했지만 나름 생각이란 걸 했다. 내가 2차접종에 화이자를 맞는다고 해도 정작 화이자를 맞는 건 처음 아닌가? 그래서인지 딱 화이자 맞은 남들처럼만 아팠다. 기본적으로 화이자가 젊은 세대에게 더 잘 맞는지, (팔 빼고) 아프다고 한 사람을 별로 못 봤다.

 

듣자하니 AZ와 화이자의 교차접종이 가장 효과가 좋다고 하던데, 사실 이것에 대해 느끼는 건 없다. 느껴보려면 일단 코로나에 걸려야 하니까... 옛말에 모르는 게 약이라고 했다. 결과를 알기 위해 극단적 선택을 하느니 그냥 모르고 살겠다. 아, 하나 좋은 점은 교차접종자라고 하면 주변 사람들이 부러워한다. 돈을 주는 건 아니니 큰 도움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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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가 '다수를 위해, 백신을 안 맞겠다는 소수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말라'고 '소신' 발언을 했다던데(근데 예약은 했다고 함), 백신은 자신을 위해 맞는 건데요... 접종률이 러시아 투표율처럼 140%를 넘지 않는 이상 소신 같은 건 접어두는 게 좋겠다. 코로나 예방효과에 중증화 확률까지 낮아지는데 안 할 이유 무엇? 그러니까 얼른 백신을 맞아 자신의 면역과 집단면역의 밀알이 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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