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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크기에 속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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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가 급정거하면서 브레이크 걸린 타이어 소리가 귀를 때립니다. 끼이~~~잌! 신호등 앞에서 기다리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됩니다. 포수가 투수의 투구를 펑펑~ 소리를 내면서 잡아냅니다. 소리만 들어도 강속구의 위력이 느껴집니다. 여자가 남자의 뺨을 때리는데, 짜~악, 소리가 참 찰지게도 납니다. 되게 아프겠는걸. 

 

귀에 들리는 소리의 크기가 실제 임팩트에서 생긴 물리적인 자극의 세기를 제대로 알려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꽤 자주 들리는 소리의 세기만 갖고 상황의 경중을 판단하고 단정해버립니다. 

 

투수 공 좀 받아본 분들은 무슨 말인지 알 겁니다. 포구 시에 펑펑 울리는 소리의 크기는 구속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고, 미트의 특정한 부분으로 정확하게 공이 들어오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시속 80km의 투구도 정확한 포인트로 잡으면 경쾌하고 큰 펑~ 소리가 나면서 공이 더 위력적으로 보이게 하기도 합니다. 시속 140km 투구도 잘못 잡으면 퍽~ 둔탁하고 뭔가 김빠진 듯한 소리가 납니다(그리고 손도 더럽게 아픕니다).

 

끼이~잌! 타이어 소리를 내면서 간신히 감속을 했지만 불행히도 앞에 서 있던 차의 범퍼를 살짝 받았습니다. 대미지가 경미해 보이지만, 근처에 있던 목격자는 타이어 소리가 워낙 컸기에 이건 아무래도 큰 사고라고 여기게 되고 그에 맞춰서 증언을 하게 됩니다. 

 

만약 타이어 소리가 그렇게 크게 나지 않고 추돌했다면 사고의 충격은 더 컸을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브레이크를 전혀 밟지 않고 추돌하면서 차들이 전손 처리될 정도 사고 났을 경우, 실제 임팩트 시에 발생하는 소리가 언제나 그렇게 큰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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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안 그러겠지만, 제가 학교 다니던 시절 반 전체가 엉덩이에 빠따를 맞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어떤 아이들은 맞을 때 소리가 펑펑 크게 납니다. 그래서 더 공포 분위기가 만들어집니다. 어떤 애들은 소리는 별로 안 나는데, 맞고 나서 아파서 죽으려고 합니다. 

 

저놈들 엄살 부리나? 내가 일단 맞아보면 그 진실을 알게 됩니다. 맞을 때 나는 소리의 크기와 실제 내가 느끼는 아픔의 정도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을. 내가 맞을 때 소리가 작았다고 저놈은 약하게 맞았다 개소리하지 마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소리의 크기로 사태의 심각성을 재단하고 그에 맞게 우리의 느낌이나 목격한 것을 재구성하게 됩니다.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크지만, 목격자의 진술이 중요한 상황에서 (예를 들어 법정에서) 그러한 주관적인 판단이 객관적인 자료처럼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매우 안타깝습니다. 

 

여자가 따귀 때리는 걸 맞을 때 진짜로 얼굴이 얼얼하게 아픈 게 아니죠. 그 고주파의 경쾌한 따귀 소리가 나면서 상처를 낸 것은 남자의 자존심이죠. 그러니까 볼륨이 큰 소리가 대미지를 크게 낸다는 말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닙니다. 물리적으로 아니고 심리적으로 말이죠. 

 

아, 소리 크기와 사태의 심각성이 상당히 비례하지 않는 아주 좋은 사례가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방귀 소리. 소리가 크게 난 방귀 소리는 별로 겁나지 않습니다. 진짜 치명적인 것은 소리 안 나게 뀌는 것... 여러분 다 아시죠? (영어로 silent but deadly라고 합니다)

 

 

가짜가 진짜처럼, 진짜가 가짜처럼 느껴지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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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이 푱푱 사방에서 날아다니고 전후좌우에서 폭탄이 터지는데 우리 주인공 아자씨는 요리조리 잘도 피해 다닙니다. 사실적이고 현장감 넘치는 음향에 '이 영화 참 잘 만들었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관객은 모르실 겁니다. 

 

배우의 대사를 제외하면, 영화에 나오는 소리 대부분은 가짜라는 것을. 격투씬에서 서로 치고받으면서 퍼~억, 파~악, 추~욱하며 나오는 소리들, 상당히 인위적인 소리입니다. 실제 싸울 때 그런 소리는 잘 나오지 않습니다. 

 

낙엽 위를 걸을 때 사박사박 나오는 소리,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 자물쇠를 열면서 나는 찰칵 소리 등 그런 소리를 실제로 녹음해서 영화에 쓰는 경우 거의 없고, 스튜디오에서 음향 효과 담당자들(foley artist라 불리는 사람들입니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영화에 삽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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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에서 음향 효과 작업 중인 foley artist

 

실제 그런 소리를 녹음해 사용하기에는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생각하는 것만큼 사실적인 느낌이 잘 안 납니다. 재미있죠? 가짜가 더 진짜처럼 느껴지고, 진짜가 어색하게 느껴진다는 겁니다.

 

(성인 영화의 농도 깊은 씬에서 여배우가 내는 거친 숨소리, 그거 실제 그 유명 여배우가 낸 소리가 아니고, 그걸 전문적으로 하는 배우들이 따로 녹음한 것을 적당히 사용한다는 것 정도는 이미 다들 아시지요?)

 

이런 걸 다 따져 생각하고 영화를 보면, 사실 영화 보는 재미가 떨어집니다. 실제 말을 타고 다니다 보면 말발굽 소리가 그렇게 일정하고 규칙적인 패턴으로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지면이 포장도로냐 (그것도 아스팔트냐 시멘트냐) 비포장도로냐, 풀밭이냐, 또는 자갈밭이냐에 따라 실제 발생하는 소리는 매우 달라지고, 그것도 같은 아스팔트 길이라 하더라도 노면의 상태에 따라 소리가 많이 달라집니다. 영화 관객의 입장에서 이런 소리의 다양성을 그대로 느낄 필요가 있을까, 사실 없을 것입니다. 

 

주제와 큰 관계가 없다면, 오히려 영화에 몰입하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감독은 그냥 스튜디오에서 일정하게 달그락거리면서 만들어진 소리를 사용합니다, 잘 정제된 소리이고, 믹싱이나 편집하기도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이게 사기는 아니고, 그저 하나의 영화 기법일 뿐입니다. 예술, 특히 공연이나 이벤트 예술의 경우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연극배우들이 무대에 설 때 하는 분장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이목구비를 또렷하게 강조하기도 합니다. 관객석에서 바라보는 배우의 얼굴은 지근거리에서 보이는 얼굴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 짙게 분장한 얼굴이 실제 배우의 얼굴이라고 믿는 관객은 없겠지요. 음향은 비슷한 듯 또 다른 것 같습니다. 음향에 대해서는 극장이나 TV 화면에 나오는 것이 마치 진짜인 걸로 믿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좀 연수가 지난 이야기이지만, 고 최진실 씨가 89년에 찍었던 삼성VTR 광고 카피 '남편 퇴근 시간은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는 대한민국을 휘감을 정도로 떠들썩했던 광고였는데, 그 광고의 목소리가 실제 최진실 씨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는 것을, 아직도 모르는 분들 꽤 많은 것 같습니다. (카피 문구가 불편한 분들은 이 광고가 30년 전 광고임을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이게 영화의 효과음향과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냐, 이야기가 약간 삼천포로 빠진 듯하지만, 포인트는 청각에 대해서는 이상할 정도로 우리의 감각을 과신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각적인 착각에 대해서는 꽤 관대한데 말이죠. 

 

그러니까 쌩얼과 화장 후 달라진 얼굴을 보면서, 그래 이 정도로 달라질 수 있어, 그냥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이렇게 말하는데, 소리에 대해서는 내 귀에 이게 이렇게 들렸다 하면 그게 마치 진짜인 것으로 믿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깜찍하고 앙증맞은 최진실 씨의 얼굴에 맞는 목소리는 이렇게 구슬이 굴러가는 것처럼 청아하고 발랄하면서도 애교 넘쳐야 할 것이다라는 것을 머릿 속에 놓고 우리의 감각과 인식을 거기에 고정해버립니다. 그래서 나중에, ‘사실 그게 진짜 최진실 씨 목소리가 아니었다’고 하면 엄청나게 실망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영화는 종합예술이니 많은 사람들의 협업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가재는 게 편이라고) 저는 음지에서 일하고 있는 음향 관련 스태프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습니다. 특히 foley artist(촬영이 끝난 필름의 효과음 녹음기술자)에게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은 사실 우리의 박수를 받으면 안 돼요. 이들의 존재는 드러나선 안 됩니다. 

 

주인공이 악당의 뼈를 뚜둑! 부러뜨리면서 끝나는 마지막 전투신, 참 통쾌하죠. 그런데 그 뼈 부러뜨리는 장면이 나올 때, foley artist의 작업을 보여주면서 셀러리를 뚝뚝 부러뜨린다. 만약 그걸 우리가 보게 된다면, 김이 팍 새버리겠죠. 참 아이러니하지요. 

 

 

덧) 한국 효과음향계의 전설, 김벌래 씨에 대한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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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foley artist하면 이분을 빼놓을 수 없다. 고 김벌래 씨이다. 

 

난 70년대 로봇태권브이 같은 국산만화영화에서 효과음향에 김벌래라는 엔딩 크레딧을 보면서 친구들과 키득키득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그분에 대해서는 이미 익히 알고 있었다. 92년인가 93년인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한국 음향학회 추계학술대회에 김벌래씨를 초청하고 특별 공로상 같은 것을 수여 한 적이 있었다. 

 

잠깐 수락 연설 같은 것을 하셨는데, 참 말씀을 못 하시더라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아마 원래 조용하고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것을 즐기시는 성격인 듯하다. 아니면, 현장에서 잔뼈 굵은 이런 양반이 박사, 교수들이 득실거리는 학술대회에서 이 사람들이 괜히 친절한 척하며 말을 걸어오는데 어찌해야 할 지 몰라 슬금슬금 뒤로 피한 것일 수도.

 

난 당시 석사과정 학생이라 내가 감히 어떤 행동을 주도적으로 하지 못하고, 초대받은 손님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는 그분을 보면서 그냥 안타까워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나 싶다. 남 눈치 볼 것 없이 그냥 그분에게 들이대면서 살갑게 굴어드렸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그 자리에서 제일 막내 뻘이었던 내가 말을 걸고 이것저것 물어봤으면 더 편하게 받아주셨을 듯도 하다.

 

이런 분들하고 계급장 떼고 친구 하고 싶다. 그런데 내가 계급장을 떼고 내려놓는 동안 이분은 돌아가셨다. 슬프다.

 

 

소리는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