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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히틀러의 인생을 찬찬히 더듬어 보다 보면, 반에서 겉도는 중학교 2~3학년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사람들은 히틀러가 뭔가 특별한 성격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5천만 명 이상의 사람을 죽인 사람이다. 뭔가 달라도 다를 것이다.”

 

라고 섣불리 판단한다. 그러나 히틀러와 그 주변인들의 역사를 더듬다 보면, 

 

“악의 평범성”

 

(한나 아렌트의 이 표현을 쓰고 싶지는 않지만, 딱히 떠오르는 표현이 없다)

 

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예상외로 평범함과 더불어 비슷한 패턴(다들 하나씩 큰 ‘약점’들이 있다)을 확인할 수 있다. 

 

유년시절 히틀러 가운데.jpg

유년 시절의 히틀러(가운데)

 

특히나 히틀러의 사고방식과 행동은 반에서 겉도는 중학교 2학년의 모습이 확실하게 그려진다. 잘 어울리진 못하지만,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그렇고 그런 중학교 2학년, 인정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예술을 선택한 평범한 학생, 자신의 있을 곳, 소속감을 찾은 남자의 안도감 등등 스테레오 타입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히틀러는 결코 특이한 사람이 아니다.”

 

물론, 역사의 변곡점을 만들고 특별한 결과를 만들어낸(?) 사람이긴 하다. 다만, 그의 유년 시절, 성장기, 청년 시절의 모습을 보면 특별함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가 권력을 얻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그 후의 ‘전략적 판단’에 있어서만은 분명 인정할 부분이 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살아남은 많은 독일군 장군들이 자신들의 실수를 덮기 위해 모든 잘못을 히틀러에게 떠넘긴 부분도 분명 생각해 봐야 한다. 히틀러가 일정 부분 ‘성과’를 보인 부분이 분명 있다. 그의 전략적 판단이 빛을 발한 부분도 있다. 물론, 실수가 있고 잘못된 판단을 내린 부분도 있다. 그러나 그가 오로지 ‘실수’만 했다면, 1945년까지 독일이 버틸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봐야 한다)

 

이런 표현이 맞을지 모르지만, 

 

“우리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보통의 사람에게 악을 주입해 괴물을 만들어 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거다. 히틀러는 그런 존재였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말이다. 

 

 

2.

히틀러를 말할 때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그의 불우한(?) 유년 시절과 폭력적인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다. 히틀러의 아버지, 알로이스 히틀러. 그의 가계도는 복잡다단했다. 

 

1837년 6월 7일. 소작농 집에서 일하는 ‘결혼하지 않은 하녀’ 마리아 안나 시클그루버가 한 아이를  낳았다. 바로 알로이스 시클그루버(히틀러의 아버지)이다. 이 알로이스의 아버지에 대한 설은 여러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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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아버지, 알로이스 히틀러. 시클그루버란 성은 후에 히틀러로 바꾸었다.

 

방앗간 견습공인 요한 게오르크 히틀러인지, 아니면 그의 동생인 요한 네포무크 히틀러인지 모른다. 아마도 이 둘 다가 알로이스 시클그루버의 아버지일 수 있다. 여기에 그라츠 출신의 유대인 프랑켄베르거가 알로이스의 아버지 후보군으로 떠오른다. 

 

아돌프 히틀러의 할아버지가 유대인일 수도 있는 가능성이 제기된 거였다. 이건 훗날 히틀러에게 커다란 압박으로 작용했는데, 그가 권력의 한가운데로 달려가던 1930년 히틀러에게 한 통의 편지가 발송됐다. 

 

(그의 친척들이 히틀러가 성공한 걸 보고 협박 편지를 보낸 거다)

 

히틀러는 자신의 법률 자문인 한스 프랑크(Hans Michael Frank)에게 몰래 밀명을 내린다. 

 

“내 혈통을 믿을 수 없네. 이걸 좀 알아봐 줘.”

 

프랑크는 프랑켄베르거가 히틀러의 조상일 확률에 대해서 면밀히 조사했다. 그리고 한 가지 결론을 내린다.

 

“안심해도 됩니다.”

 

이 조사는 1942년 하인리히 힘러에 의해 다시 한번 반복된다. 이번에는 게쉬타포까지 동원해 히틀러의 가계도를 샅샅이 뒤졌지만, 히틀러의 핏속에 유대인의 피가 섞였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의 성이 ‘히틀러’가 됐다는 것일 거다. 

 

(이 대목은 꽤 중요한데, 히틀러가 권력을 잡고 난 뒤 외신에선 그를 비꼬기 위해 ‘하일 시클그루버!’라고 한팔을 들고 경례하는 만평들을 게재하기 시작했다. 만약 그의 아버지가 ‘히틀러’란 성을 물려받지 않았다면, SS들과 독일 국민들은 ‘하일 시클그루버!’라고 외쳐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긴 이 덕분에 독일에서 흔한 성씨 중 하나였던 ‘히틀러’란 성씨가 아예 사라지게 됐으니, 시클그루버라고 쓰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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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할머니, 마리아 안나 시클그루버

 

1842년 5월 10일 공식적으로 마리아 안나 시클그루버는 요한 게오르크 히틀러와 결혼하게 됐다. 이때까지 알로이스(히틀러의 아버지)는 시클그루버란 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1877년 1월 알로이스 시클그루버는 알로이스 히틀러라 불리게 된다. 아마도 이건 그의 성공에 기인한 것 같다. 

 

그는 기계처럼 성실하게 일했다. 덕분에 유능하고, 정직한 공무원으로 인정받았다. 다만, 그의 사생활이 문제였다. 알로이스 히틀러는 3번 결혼했다.

 

만약 이 결혼이 법적으로 ‘정당한’ 절차를 밟았다면 그리 큰 문제가 되진 않았을 거다. 그의 3번의 결혼은 점잖게 말하자면 ‘혼외정사’, 일상적인 언어로 말하자면 ‘불륜’이었다.

 

그는 첫 번째 부인이 살아 있는 동안에 두 번째 부인을 임신시켰고, 두 번째 부인이 살아있는 동안에 세 번째 부인을 임신시켰다(이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겠다). 

 

이 세 번째 부인이 바로 클라라 푈츨이다. 알로이스 히틀러 집안의 가정부로 들어갔다가, 알로이스 히틀러와의 혼외정사로 결혼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아돌프 히틀러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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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어머니, 클라라 푈츨

 

히틀러 하나만을 낳은 건 아니다. 클라라는 총 6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은 건 아돌프 히틀러와 그의 여동생 파올라 히틀러뿐이었다. 물론, 히틀러의 이복형인 알로이스 히틀러 주니어와 이복 누나인 앙겔라 히틀러는 히틀러가 죽은 뒤까지 살아남아 있었다. 

 

여기까지가 복잡한 히틀러 가족사의 일부이다. 

 

 

3.

한때 많은 이들은 현미경보다 더 세밀하게 히틀러의 가족사, 유년 시절을 들여다보며 그의 악마성이 이때부터 발현됐고, 청년 시절에 세상에 대한 분노를 차곡차곡 쌓아갔고, 정치 활동을 시작했을 때 이미 세계를 멸망시킬 계획을 구상했다고 믿었다. 아니라면 제2차 세계 대전이란 미증유의 대참사를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히틀러는 과연 타고난 악마일까? 

 

그가 일으킨 행동과 그 결과만 놓고 보면 악마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하지만, 그는 평범한 삶을 살았던 보통 사람이었다. 그가 유년 시절 겪었던 학대나 폭력이 그를 악마로 몰아갈 만큼 대단했을까?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는 평범한 보통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인정욕구를 채우려 애썼고, 실패한 자신의 삶에 대한 자기 방어기제가 있었다. 

 

그를 병적으로 몰아가는 이들도 있지만,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잘해봐야 자아도취적 망상증 정도가 전부이다. 대단한 민족주의자도, 희대의 악마도, 위대한 지도자의 편린도 없었다. 그의 청소년 시절은 남들처럼 인정욕구에 굶주려 있었고, 자기가 가진 재능 중 그나마 가장 빛났던 ‘예술적 재능’을 가지고 인정욕구를 채우려 했다. 사춘기 시절에 있을 법한 과대망상이나 자신에 대한 미화도 빠질 순 없을 거다. 

 

그가 특이하긴 해도 이질적인 존재는 아니었다. 한 마디로 그의 어린 시절은 잘 찾아보면 어디에나 있을 법한 아이였다는 소리다. 

 

마지막.jpg

 

히틀러를 연구한 책만 수천 권이 넘어가고, 그를 주제로 한 논문은 셀 수 없이 많이 존재한다. 이를 연구하고 책으로 엮어낸 이들의 마음속에는 분명,

 

“2차 대전은 히틀러의 망상에 의해 일어났다!”

 

라는 기반이 있었을 거다. 아니더라도 최소한 히틀러가 2차 대전 발발의 원인이 됐을 거라 생각하고 있을 거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면, 히틀러가

 

“세 . 계 . 정 . 복 .”

 

을 꿈꿔왔고, 더 나아가 인류문명을 멸절시키려 했던 ‘악마성’을 어린 시절부터 키웠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밝혀진 히틀러의 유년 시절이나 청소년기는 악마성이 발현되기에는 생각보다 괜찮은 인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히틀러의 인생을 보면 악마성과는 거리가 있었고, 세계정복을 하기 위했다는 것 역시 무리가 따라 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이 나오기 전까지 전통주의적 사관에서 제2차 세계대전은 히틀러 한 사람에게 전쟁의 책임을 묻는 경우가 많았다. 그 전제는, 

 

“히틀러라는 미치광이 망상가가 세계정복을 위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라는 거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으로 시작되는 수정주의 사관에서의 히틀러는 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히틀러는 대규모 전면전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거다. 

 

어떤 주장이 맞는 건지는 히틀러 본인 이외에는 모를 거다. 다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히틀러가 악마였기에 전 세계의 유대인들 씨를 말리려 한 것도 아니며, 애초부터 거대한 전쟁을 준비했던 것도 아니란 거다.

 

<계속>

 

 

 

참고자료

 

(1) 아돌프 히틀러 결정판 1, 2/ 페이퍼 로드/ 존 톨렌드 저 민국홍 역

(2히틀러 평전 1, 2/ 푸른숲/ 요아힘 C. 페스트 저 안인희 역

(3CEO 히틀러와 처칠 리더십의 비밀/ 휴먼 앤 북스/ 앤드류 로버츠 저 이은정 역

(4나의 투쟁/ 범우사/ 아돌프 히틀러 저 서석연 역

(5히틀러는 왜 세계 정복에 실패했는가/ 홍익출판사/ 베빈 알렉산더 저 함규진 역

(6히틀러 최고사령부/ 플래닛 미디어/ 제프리 메가기 저 김홍래 역

(7히틀러가 바꾼 세계/ 플래닛 미디어/ 메튜 휴즈 저 박수민 역 

(8히틀러 최후의 14일/ 교양인/ 요아힘 C. 페스트 저 안인희 역 

(9제2차 세계대전사/ 청어람미디어/ 존 키건 저 류한수 역

(10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 페이퍼로드/ A. J. P 테일러 저 유영수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