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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라는 나라의 모순



코로나 사태 동안, 미국에서는 몇가지 신비한 일이 벌어졌다. 어쩌면 미국 이라는 나라의 모순이 특이점에서 드러난 것 일지도 모르겠다.

 

1. 확진자 동선 추적, 자가격리 등의 초기 대응에는 완전히 실패하였으나, 백신 개발 및 보급에는 가장 먼저 성공했다.

 

2. 백신을 빠르게 확보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정작 국민들이 백신을 접종하게 하는 데는 실패했다. (백신 접종률이 50%를 달성한 이후로, 줄곧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3. 이로 인해 코로나 확진자가 10만 명을 넘겼지만, 경제는 오히려 성장세다.

 

대부분의 모순들은,

 

(1) 사회적합의가 부재한다는 것

 

(2) 각각의 기업이나 단체들은 효율적이라는 것

 

으로 나눠서 생각하면 거진 이해할 수 있다.

 

중앙정부는 느슨한 스탠스를 취함으로써 개인의 권리나 이익을 침해하지 않으려 하고, 이로 인해 생겨난 틈은 각각의 기업이나 단체들은 알아서 메우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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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이 없는게 규정 : 마스크 없는 롤러코스터

 

미국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명확한 방역 규정이 없다. 실내에서는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고, 거리 두기를 유지하라는 CDC 가이드라인이 존재하긴 한다. 대부분의 가게나 매장에서는 이를 채택하여, 지금도 매장 입구에는 마스크를 쓰라는 문구와 거리 유지를 위한 스티커가 바닥에 붙어있다.

 

그러나 CDC에서는, 백신 접종자에 한해서 실내에서 굳이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개정안을 발표했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거리 유지도 더 이상 지켜지지 않는다. 델타 변이가 확산된 이후에 다시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는 것으로 규정을 바꿨지만 강제성은 없다. 일부 주에서는 다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는 규정을 시행했지만, 이는 마스크 착용과 같은 아주 기초적인 부분에서조차 많은 논란이 따른다는 것을 보여준다. CDC에서조차, 백신 접종자들이 경제활동 및 사회활동 복귀를 권장하는 등,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경각심이 전반적으로 누그러뜨려졌다.

 

미국에서 ‘백신 접종자’는 상당히 애매한 문제이다. 거의 모든 방역규정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외견만 봐서는 누가 백신을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를 알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본인이 직접 백신을 안 맞았다고 고백하거나 (실제로 부부동반 여행 도중에 한 명이 ‘나 백신 안 맞았는데’라고 커밍아웃을 해서 친구들끼리 의절했다는 에피소드도 종종 들었다), 백신 접종증을 까서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이 모든 혼돈과 카오스가 집약된 곳이 놀이동산이다. 30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 거의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다닥다닥 붙어서 줄을 서고, 파도 풀에서 다 함께 파도를 탄다. 현재 미국의 백신 접종 비율 (50%대에서 석 달째 정체 중)을 고려할 때 절반가량은 아마 백신을 안 맞았을 것이다. 게다가, 아이들은 아직 백신을 맞을 수 없기 때문에 100% 백신 비접종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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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아스트랄한 것은, 이렇게 놀이동산에서 마스크 없이 놀고 나서 근처 식당에 갈 때면 (특히 고급 식당에 갈 때는), 다시 주섬주섬 마스크를 꺼내 쓴다. 그게 예의니깐. 마스크가 최근에는 시간과 장소에 맞는 패션 아이템이 된 것 같다.

 

고백하자면,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놀이동산에 간다. 애가 좋아하니까. 집에서만 애를 키우기가 너무 힘드니까. 백신을 접종하고 처음 놀이동산에 갔을 때는 겁이 나기도 하고, 내가 집안에만 처박혀있는 동안에 밖에서 사람들은 이러고 놀았다는 게 좀 경악스러웠다. 그런데, 한두 번 가고 나니, 감각이 점점 무뎌진다. 나도 코로나 시국에 밖에서 노는 사람 중 하나가 되어간다. 누군가 만나자고 하면, 이러한 나의 과거 행적 (주말에 놀이동산 다녀왔습니다)을 먼저 고백하고 상대방이 얼마나 조심해왔는지를 먼저 확인하는것까지가 최선이다. 그 외 동선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식당 옆자리에 앉은 모르는 사람들에까지 어떻게 양해를 구해야 할지 모르겠다(마음 같아서는, 옷 색깔로 코로나바이러스 노출도 이에 따라서 구분이라도 하고 싶다. 나 이번 주에 놀다 왔어요 -> 빨강, 나 그동안 외출 안 했어요 -> 초록 이런 식으로..).

 

직장 풍경 : 울고싶은 인사팀

 

사생활에서 일상에 복귀한 것과 달리, 아직까지 회사에는 출근하지 않고 있다. 아직도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출근한 게 작년 3월 초니까, 무려 일 년 반 동안 재택근무를 해왔다.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안전 문제(직장 내 코로나바이러스 유입 및 그에 대한 소송으로부터의 안전)에 있어서는 보수적으로 접근하려 한다. 다시 말하지만, 미국 정부는 주로 방관자적 역할을 취하지만, 각 기업은 열심히 머리를 굴려서 각자 살길을 찾는다.

 

미국 회사들도 원래는 올 9월부터 출근하는 것을 계획해왔다. 다들 외식도 하고 잘 놀러 다니는데, 회사는 왜 못 나오냐는 것이다. 오랜 기간 재택근무를 해오면서, 이제 일상적인 업무는 잘 돌아간다. 왜 개고생을 하면서 그동안 출퇴근을 해왔는지를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도 회사들이 직원들의 출근을 독려하는 이유는, 협업 부재와 높은 이직률 때문인 것 같다.

 

재택근무에서도 이제 원래 하던 일은 똑같이 잘 된다. 다만 재택근무하면서부터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는 쉽지 않다. 나부터가 기존 업무 외에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의욕을 찾고 있지 못하고 있다. 보통 아이디어라는 것은 다른 사람과의 잡담에서 나오기 마련인데, 모두가 재택근무 중일 때는 별 용건이 없는 상태에서 동료에게 말을 걸기도 애매하다. 그래서 협업이나 새로운 프로젝트가 잘 시작되지 않는 것 같다.

 

높은 이직률도 큰 문제이다. 재택근무를 오래 하면 근무 만족도가 올라갈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회사에 있을 때는 누가 바쁘고 누가 짱박혀있는지가 파악되기 때문에, 업무가 알아서 분산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재택근무체제에서는 에이스들에게 일감이 집중되는 것 같다. 에이스들은 별다른 업무지시를 안 해도 알아서 척척해내니까. 일 잘하는 실무자는 어디서나 괴롭다.아 괴로워

 

미국에서도, 바쁜 프로젝트가 끝나면 불러서 고기도 먹이고 술도 먹이는 문화가 있다. 한국 회식이랑 다른 점은, 관리자들이 직원들을 접대한다는 의식이 강하다는 것이다. 취향이나 모든 것이 철저하게 직원들에게 맞춰져있다. 이직이 워낙 쉽기 때문에, 일 잘하는 실무자가 갑이다. 그래서 회식 때도,

 

"네가 우리 팀의 기둥이다, 몇 년만 고생하면 쭉쭉 승진할 거다”

 

라는 식으로 다독여서, 에이스들을 가능한 오랫동안 묶어두려 한다. 그런데 재택근무로 이런 이벤트들이 사라지면서, 에이스들은 인정욕구나 소속감을 채우기가 어려워졌다. 아무리 개 같아도, 몇 년만 참으면 저 꼰대보다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줄어들었다. 많은 기업들이 서둘러서 사원급 직원들의 출근을 독려하려는 이면에는, 대면접촉을 늘려 이직률을 낮춰보자는 생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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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AP>

 

그리고 델타 바이러스 변이가 확산되었다. 어느덧 일일 감염자가 다시 십만 명을 넘겼다. 이로 인해 미국 기업들의 직장 복귀 계획도 다시 미뤄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다만, 일부 기업들에서는 다소 강경한 입장 변화가 눈에 띈다. 은행들을 예로 들면, 직장 복귀 시점을 한 달 뒤로 미룬 대신, 백신 접종 기록을 의무적으로 제출하라고 한다. 일부 기업들은 한 발짝 나아가서, 백신 미접종자는 출근을 금지시키고 사실상 무단이탈자로 분류할 것이라고 한다.

 

백신 접종 강제 자체가 민감한 정치적 사항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백신을 맞아야 된다는 기본적인 부분에 대해서조차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개인의 백신 접종 기록 수집은 상당히 이례적인 조치이다. 더 이상 직원들이 알아서 백신을 접종하고, 사회에서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안정되기를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뜻밖의 실험 : 기본소득 베타테스트

 

이처럼 사회적 합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미국을 흔히 개인주의가 팽배한 사회라고 한다. 이는 반만 맞는 말이다. 일단 사고 단위가 개인이 아니라 가족이다. 미국 공포영화에서는 가족이 해체되거나 살해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가족을 제외하면 그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다는 두려움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앞서 미국 기업들이 “9월” 업무복귀를 추진했던 가장 큰 원인도 개학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9월부터 새 학년이 시작된다. 백신 보급이 가능해지자,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9월 학기부터 전면 등교를 추진하려고 했다. 미국 기업들도 이 시기에 맞추어 회사 출근을 추진했다가, 델타 변이로 등교가 미뤄질 것 같으니까 출근도 미뤄진 것이다. 해고가 일상화되고 고용 유연화가 극에 달한 미국 기업이라지만, 직원들이 자녀들을 양육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또 지원해 줘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미국 정치권 또한 코로나 기간 동안 자녀당 양육수당을 최대 연간 360만 원 지급하는데 합의하였다.

 

돈 얘기가 나온 김에 코로나 재난지원금 문제를 해보자.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지난 트럼프 행정부 때 현금으로 개인에게 1200불을 지급한 것이다. 이러한 직접 지원금은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유지되어, 추가로 최대 2000불이 지급되었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것은, 실업 급여 제도 문제이다. 기존에는 실업보험에 가입된 근로자만 실업 급여를 받을 수 있었는데, 최대 수령 가능액은 주당 378불 그러니까 월 약 150만 원 수준이었다. 그나마도, 실업보험이 가입되지 않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해고를 당해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었다.

 

정치권은 코로나바이러스 기간 동안 실업급여 제도를 대폭 개선했다. 일단, 실업보험이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실업급여를 지급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추가로 주당 300불 (한시적으로 600불가량 늘어났으나, 현재는 300불로 줄어들었다)이 생활보조금 명목으로 추가되었다. 다시 말해, 코로나 기간 내내 일을 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노동자가 월 2-300만 원에 달하는 실업급여를 받게 된 것이다.

 

나는 이러한 실업 급여의 확대가, 재난 기간 동안 내 기본소득 제도의 베타테스트가 아닌가 한다. 지금까지 드러난 결과는 상당히 흥미롭다. 우려와는 달리, 실업급여 수령자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인플레이션과 같은 심각한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최근 나타난 인플레이션은 자동차 및 사치품에 의한 인플레이션이지, 생필품에 대한 인플레이션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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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

 

실업급여액이 늘었음에도, 실업자가 감소한 가장 큰 이유는 저숙련노동자가 수령하는 급여가 그만큼 늘어났기 때문이다. 미국 주별 최저임금은 대부분 7-10불 사이에서 유지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시급을 법정 최저임금의 두 배가량으로 올렸다. 20불 시급 지급을 내건 패스트푸드나 스쿨버스 운전수 모집 광고가 대폭 늘었다. 실업급여 수령자를 직장으로 복귀시키기 위해, 그만큼 시급을 향상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다만, 사실상 최저임금이 상승하는 동안 다른 저소득직군 (예를 들어, 농부나 교사)의 급여는 그대로이기 때문에 이들이 느끼는 상대적 빈곤감은 증가하였다.

 

재난지원금과 실업급여 문제는 다음에 별도로 좀 더 자세히 다루기로 하자. 여기서는 미국 정치권이 아무런 합의도 못 이뤄내고, 무능해 보여도 의외로 생존과 자녀 양육 문제에 대해서는 확실히 신경을 쓰고 있다는 예시로 만 언급하고자 한다. 여러모로 미국은 모순이 많은 사회이다.



<계속>

 

추신

 

딴지스 여러분 덕분에, 『재무제표가 만만해지는 회계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이전에 쓴 딴지 연재물을 확장하여, 이때다 싶어 열쒸미 공부, 정리하여 낸 책입니다. 아마, 현직 회계사 중, 저만큼 회계공부를 싫어했던 회계사는 거의 없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저만큼도 공부를 안 했다면 못 붙으셨을 테니까요). 회계 공부를 싫어했던 사람이 저와 비슷한 독자분들을 위해서 쓴 책이다 보니 재밌습니다(아마도...). 그동안 회계 공부가 하기 싫었다거나, 회계에 관심이 없었던 독자분들(사실상 전원)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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