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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주

 

"정치적으로 가장 성공한, 베를린 올림픽" 연재 기사 중

히틀러의 참나무 관련 부분은 이선 교수의

<손기정 월계관 기념수에 대한 소고> 논문을 참조했으나 

출처 없이 사용했습니다. 저의 잘못입니다.

 

원 저자인 이선 교수님께 즉시 사과를 드렸고,

교수님도 흔쾌히 사과를 받아 주셨습니다.

 

추후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재삼재사 주의하겠습니다.

참고자료도 더욱 확실히 표기하겠습니다.

 

 

 

0.

2017년 作 영화 『원더우먼』을 보면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바로 루덴도르프(Erich Friedrich Wilhelm Ludendorff)의 등장 때문이었다. 당시 제작진은 루덴도르프를 ‘제1차 대전의 히틀러’ 느낌으로 만들려 했던 것 같다(실제로 그런 의도란 게 화면 가득 느껴진다).

 

역사, 특히나 제1차 세계대전의 역사를 조금만 더듬어 보면 루덴도르프가 ‘제1차 대전의 히틀러‘가 되기에는 아주 많이 부족하다는 걸 알 수 있을 거다.

 

(물론, 전쟁이 끝난 뒤 히틀러와 함께 뮌헨 폭동을 연출하긴 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그는 독일 장교의 명예를 믿었고, 자신은 쿠데타에 동참하지 않았다면서 변명을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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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덴도르프와 히틀러

 

그가 제1차 세계대전 막바지, 독일을 실질적으로 지배했고, 독일을 총력전 체제로 끌고 간 인물이란 건 맞다. 그러나 명목상으로 독일을 지배했던 것도 아니고, 지배 기간도 짧았다. 

 

루덴도르프가 독일제국의 군부 실세로 부상한 건 그의 상관이었던 힌덴부르크(훗날 바이마르 공화국의 대통령이 된다)가 독일 육군 참모총장이 되면서부터다. 탄넨베르크 회전에서 힌덴부르크와 손발을 맞춰서 대승리를 거둔 다음 그는 독일의 영웅이 됐다.

 

(탄넨베르크 회전의 실질적인 주역은 작전을 입안한 막스 호프만 중령과 참모장이었던 루덴도르프라 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힌덴부르크가 아무 일도 안 했다는 건 아니다. 지휘관이 참모들을 인선하고, 참모들이 입안한 작전을 인정하고, 이를 실행한다는 것. 그리고 이걸 책임지고 밀어준다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1916년. 삽질을 했던 에리히 폰 팔켄하인(Erich von Falkenhayn) 참모총장이 물러나고 그 빈자리를 힌덴부르크가 차지하게 된다. 이때 그와 함께 했던 참모장 루덴도르프도 참모차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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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덴부르크(좌)와 빌헬름 2세(우)

 

 

1.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게 당시 황제였던 빌헬름 2세는 제대로 능력을 보여주지 못해 권력에서 비켜난 상황이었고, 힌덴부르크는 나이가 너무 많았다. 결국 독일의 권력은 자연스럽게 루덴도르프에게 몰리게 됐다. 

 

루덴도르프는 전형적인 ‘군인’의 입장에서 전쟁을 바라봤다. 그의 생각을 단적으로 말하자면,

 

“전쟁은 국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다.”

 

그는 전형적인 독일 장군이었고, 총력전을 펼쳐서 독일을 승리하게 만들겠다는 결의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기 위해 독일 국민들에게 ‘인내’를 말하며, 마지막 한 방 싸움에 모든 걸 걸고 상황을 뒤집어 버리겠다는 일념에 가득 차 있었다.

 

이렇게 해서 기획된 게 ‘힌덴부르크 라인’을 구축해 영국과 프랑스군의 출혈을 강요하며, 독일군의 전력을 보충하고, 뒤이어 모아놓은 전력으로 그 유명한 ‘춘계 대공세’를 펼치는 것이었다. 춘계 대공세의 또 다른 이름이 ‘루덴도르프 공세’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객관적인 전력이나 상황을 살펴보면, 독일이 유럽을 제패할 수 있었던 ‘기회’는 제2차 세계대전보다는 제1차 세계대전 때 그 확률이 더 높았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일본, 미국 등등과 4년을 넘게 싸웠다. 더 대단한 건 거의 이길 뻔했던 기억도 있다는 거다)

 

 

2.

이렇게 장황하게 루덴도르프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한 가지 질문을 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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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사람을 아는가?”

 

전 세계를 배경으로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 전쟁을 일으킨 사람이 누구인지를 모른다. 혹자는 이를 두고, 

 

“그 누구도 먼저 공격을 하지 않은 전쟁.”

 

혹은,

 

“침략자가 없는 전쟁.”

 

이라고까지 말한다. 전쟁을 일으킨 주체가 불명확하다는 거다. 그냥 단순하게, 

 

“독일이 일으킨 것 아냐?”

 

“독일제국의 빌헬름 2세가 일으킨 거 아냐?”

 

라고 말할 수도 있을 거다. 그러나 이건 ‘일부 의견’일 뿐 모두의 동의를 얻지는 못한다. 제1차 세계대전은 그 누구도 일으키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 전쟁을 피하기 위한 각국 외교관과 황제, 왕들의 노력도 있었지만, 결국 전쟁을 피할 순 없었다. 통신과 기차의 발달로 사람들은 서로를 더욱 믿을 수 없게 됐고, 한 번 발동된 전쟁 계획은 되돌릴 수가 없게 됐다. 

 

유증기로 가득 찬 방안에 누군가 담뱃불을 던진 거라고 해야 할까? 우발적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극도로 긴장된 상태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했던 평화의 끈이 끊어진 것과 같았다. 특이한 전쟁이었다. 또한, 이해하기 힘든 전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제2차 세계대전은 명쾌하다.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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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 명제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개인적으로 내가 히틀러란 이름을 알게 된 건 9살 때였다. 퍼스트 건담. 그러니까 『기동전사 건담』에서 데긴 공왕이 자기 아들인 기렌 자비를 ‘돌려 까기’ 하면서,

 

“넌 히틀러의 꼬리 같아.”

 

라고 대놓고 비아냥거린 거였다. 어쩌면 비슷한 캐릭터일 수 있겠다. 스페이스 콜로니를 떨어뜨려 인류의 절반 이상을 죽이고, 나중에는 아버지까지 미끼로 던져놓고 솔라 레이로 다 태워 버리는 냉혹한 인간이 기렌 자비가 아닌가? 

 

기렌 자비는 히틀러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인물일지도 모른다(지온군과 연방군 구도 자체가 그러니).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하는 게 바로 ‘히틀러’다. 

 

우리는 히틀러를 악마로 바라본다. 인류 역사상 최대, 최악의 전쟁이라 말할 수 있는 제2차 세계대전의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이며, 유대인 6백여 만 명을 처단한 인물. 잘못된 신념이 얼마나 큰 폐해를 만들어 내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인물. 그게 히틀러였다. 

 

우리가 주목해 봐야 하는 건 아돌프 히틀러란 인물을 연구한 연구서만 수천 편이 넘게 나왔고, 그를 연구한 논문만 수십만 편이 나왔다는 점이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말할 때 그를 빼놓고 이야기가 가능할까? 그러나 이 당연한 결과를 거꾸로 놓고 바라보면, 

 

“히틀러가 없었다면, 제2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이 가지는 의미를 한번 곱씹어 보라. 

 

우리가 위인전에서 살펴본 수많은 영웅, 위인들을 보면 그 자체로 존재의의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시대정신의 산물이다. 한마디로 그 시대가 원했고, 그 시대가 찾던 인물이 그 자리를 차지해 그 시대가 맡긴 역할을 하고 퇴장을 한다.

 

즉, 대체가 가능하다는 거다. 

 

 

4.

앞에서 언급한 1차 세계대전과 비교해 보자. 

 

당시 유럽은 유증기가 꽉 찬 방안이었다. 창문은 다 막혀 있었고, 작은 불꽃 하나만 일면 바로 폭발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페르디난트 황태자가 암살당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 일어날 전쟁이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을 말할 때 ‘히틀러’란 인물을 빼놓고는 역사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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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가 1차 대전 당시 가스 공격으로 죽었다면? 맥주홀 폭동과 뒤이은 거리 행진 때 히틀러 옆에 있던 막스 에르빈 폰 쇼이브너리히터(Max Erwin von ScheubnerRichter)가 아니라 히틀러가 총을 맞았다면? 2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만약 히틀러가 1938년에 암살을 당했다면 역사는 그를 어떻게 평가할까? 모르긴 몰라도 지금과 같은 평가는 아니었을 거다. 적어도 독일 내에서는 역사상 최고의 정치가 중 한 명으로 기록할지도 모른다. ‘최소한’ 논란의 여지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독일을 사랑한 민족주의 지도자 정도로 포장했을지도 모른다.  

 

인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게 작용하는 힘은 뭘까? 

 

개인의 노력? 재능? 히틀러의 인생을 반추해 보면 ‘운’이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다. 히틀러가 스스로를 ‘선택받은 운명’이라고 말한다 해도 여기에 반론을 제기할 수 없을 거다. 그의 삶은 그 자체로 ‘선택받은 운명’이었다(나 역시 이를 거부했지만, 결국 그의 인생을 쫓아가다 보면 이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20세기는 그의 시대였다. 20세기의 인물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었으며, 인류에게 가장 깊고 넓은 영향을 끼쳤다. 수천만 명의 생명이 그의 망상 때문에 죽었고, 그 몇 배나 되는 인물들이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놀라운 건 그가 대체 불가능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이다. 그가 있었기에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의 인생은 운명이었다. 

 

히틀러의 운명은 그가 사랑했던 오페라 <리엔치>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바그너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인 이 작품은 14세기 중엽, 동로마 제국의 집정관인 리엔치가 주인공인 이야기다. 

 

그는 민중을 억압하는 부패 귀족을 추방하고 고대 로마의 영광을 재현하려 했다. 그러나 정작 권력을 잡은 뒤에는 권력에 취해 오만해졌고, 독재를 하게 된다. 결국 그의 독재에 환멸을 느낀 민중들에 의해 불타는 의사당에 갇혀 죽는다.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리엔치를 이렇게 평가했다. 

 

“리엔치야말로 바그너의 전반적 특징일 뿐 아니라 파시즘의 실존이다."

 

<계속>

 

 

 

참고자료

 

(1) 아돌프 히틀러 결정판 1, 2/ 페이퍼 로드/ 존 톨렌드 저 민국홍 역

(2) 히틀러 평전 1, 2/ 푸른숲/ 요아힘 C. 페스트 저 안인희 역

(3) CEO 히틀러와 처칠 리더십의 비밀/ 휴먼 앤 북스/ 앤드류 로버츠 저 이은정 역

(4) 나의 투쟁/ 범우사/ 아돌프 히틀러 저 서석연 역

(5) 히틀러는 왜 세계 정복에 실패했는가/ 홍익출판사/ 베빈 알렉산더 저 함규진 역

(6) 히틀러 최고사령부/ 플래닛 미디어/ 제프리 메가기 저 김홍래 역

(7) 히틀러가 바꾼 세계/ 플래닛 미디어/ 메튜 휴즈 저 박수민 역 

(8) 히틀러 최후의 14일/ 교양인/ 요아힘 C. 페스트 저 안인희 역 

(9) 제2차 세계대전사/ 청어람미디어/ 존 키건 저 류한수 역

(10) 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 페이퍼로드/ A. J. P 테일러 저 유영수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