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나에겐 잊을 만하면 안부를 전하며 지내는 선배가 있다. 그는 존재만으로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압박감을 주기에 충분한 덩치를 가지고 있었는데, 실은 겉보기와는 달리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공격형 외모 덕분에 터프하고 와일드할 것이라는 오해와 편견 속에 살아왔지만, 가죽점퍼 속에 스누피 티셔츠를 받쳐 입은 사람이라고 할까. 잔정도 많고 부드럽고 촉촉하고 여리여리한 감성을 가진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중년에 접어들자 우울하다, 외롭다, 쓸쓸하다, 나는 누군가, 뭔가 재미있는 일 없냐는 등의 울증 비스무리한 타령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다 느닷없이 국가고시에 패스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합격률이 평균 3%에도 못 미친다는 극악의 국가고시. 2종 소형 운전면허를 취득한 것이다. 그에게 무슨 바람이 불었던 걸까.

 

바이크맨, 각성하다

 

흔히 오토바이라고 부르는 이륜차가 자기 인생에 들어올 것이라고는 단 한순간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남자였다. 몸 전체가 노출된 상태로 달리는 것이 무섭고 그러다 넘어지면 많이 아플 것 같았기 때문. 왠지 모를 불량스러움과 바이크맨이 받는 눈총과 시선은 줄곧 사회의 모범생으로 사랑받고 살아온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러던 그가 오토바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 계기는 약 3년 전 친구와 함께 했던 제주도 여행에서였다. 그 나이에도 무려 ‘싱글’로, 홀로 ‘제주에서 1년 살아보기’를 하러 내려가 있던 친구가 너무너무 심심했던 나머지 사흘 간격으로 그를 호출하기에 이른다.

 

싱글과 유부의 삶은 다르다며 처음엔 콧방귀를 날렸지만, 이내 그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 말았다. 여차저차 집에 허락받고 회사에 휴가 낸 후 제주도로 날아갔고, 그때 그곳에서 선배는 잠자던 라이더의 본능을 깨우고 말았다.

 

남자끼리의 색다른 모험을 해보자며 스쿠터를 타고 제주도 이곳저곳을 여행했다는데, 당시 느꼈던 설렘은 잊을 수가 없더란다. 친구, 여행, 제주도, 햇살, 바람, … 모든 것이 맞아떨어진 이유도 있겠지만, 그날 느꼈던 해방감은 선배의 선입견을 180도 돌려놓기에 충분했단다. 오도방에 배어있던 불량스러운 선입견조차도 뭔가 자신이 세상에 고분고분 고개를 숙이지 않는 반항아가 된 것만 같은 묘한 쾌감으로 변했다고 했다.

 

IMG_5266.JPG

 

그날 이후, 선배는 경제성과 편리함이라는 논리로 자신을 설득하며 조용히 돈을 모으기 시작했고 울프라는 이름의 125cc의 대만제 수동 오도방으로 바이크의 세계에 홀홀 입문했다.

 

그 역시 대부분의 바이크 입문자가 흔히 겪는 주변의 엄중한 반대와 따가운 시선에 부닥쳤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본인조차도 여행자의 자유로운 느낌이 옅어지고 살랑거렸던 마음도 다시 가라앉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어차피 인생 한 번인데 수천만 원짜리 비싼 바이크도 아니고 해보고 싶은 것 ‘못’해보면 나중에 죽을 때 너무 아쉽지 않겠냐’던 형수의 말에 큰 힘을 얻었다고 한다.(보고 있나, 여보?)

 

헝그리 라이더와 크고 아름다운 고배기 바이크

 

재미있는 것은 그가 바이크에 관심을 가지게 된 무렵, 주변에 이미 바이크를 시작했거나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하나 둘 정체를 드러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자주 가는 카센터 사장님은 실은 자기도 라이더라며 함께 중고 바이크를 물색해 주기도 하고 자신이 쓰던 장비도 흔쾌히 지원해 주면서 선배의 바이크 입문을 격려하고 격렬하게 뽐뿌질 해줬다고 한다. 같은 취미를 가지게 된 것만으로 도와주고 나누며 함께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난생처음 신선하고 따뜻한 ‘동지애’ 같은 느낌을 느꼈다고 했다.

 

선배와 함께 바이크에 입문한 부랄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둘은 사고 내지 말고 조심히 타다가 나중에 은퇴하면 중앙아시아 횡단 바이크 여행을 함께 하자고 굳은 약속을 했었다고 한다. 다만, 두 사람의 이륜차 라이프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어 선배는 125cc로 작게 시작한 반면, 그 친구는 적극적이고 과감한 투자를 감행, 2종 소형 면허를 새로 따고 고배기량 바이크로 직행했다.

 

바이크에 입문하면 꼭 거치게 된다는 업글병이라는 것이 있다. (휴대폰을 사면 생기는 기변병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친구는 선배에게 ‘얼른 소형면허 따서 함께 여행 가자!’는 노래를 불러댔지만, 선배는 ‘유부와 싱글의 삶은 다르다, 나는 이놈으로 중앙아시아를 가련다.’며 작은 바이크를 고집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는 열심히 타고 돌아다니던 바이크를 처분하고 갑자기 바접(바이크 접기)을 선언했다. 우연히 건물 유리에 비친 바이크 탄 자신의 모습에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바이크가 좀 작은 줄은 알고 있었지만, 비쥬얼이 그토록 참혹할 줄은 몰랐다는 것이었다. (아니다, 바이크가 작은 것이 아니라 그가 너무 큰 거다. 그냥 안 맞는 바이크를 선택한 것일 뿐이다.) 왜 진작 얘기해주지 않았냐며 사람들에게 화를 냈다. 허허.

 

그렇게 선배의 바이크 라이프는 막을 내리는 듯했다. 그런데, 라이프 이즈 언익스팩터블이라고 했던가. 바이크에 함께 입문한 그 친구가 외국으로 발령받아 나가게 되면서, ‘너의 바접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배신이자 무효’라며 선배에게 바이크를 넘겨버린 것이었다. 생일이 지난 지도 한참인데, 대충 생일 선물이라고 끼워 맞춰 핑계를 대면서 명의 이전을 강요한 것이었다.

 

바이크 명의 변경이라는 게 반나절 정도는 너끈히 잡아먹는 귀찮은 일인데다가 덥석 그 비싼 바이크를 받기가 미안스럽기도 하고, 혹여 나중에 신장이라든가 간을 달라는 것은 아닐까 고민하느라 차일 피일 미루고 또 미뤘다고 한다. 그러다 결국, 출국 하루 전에야 무상으로 넘기는 조건임을 확약 받고 중앙아시아 횡단 여행을 담보로, 명의 이전을 받았다고 한다. (친구는 잘 두고 볼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선배에게는 2종 소형 면허가 없어서 이 크고 아름다운 고배기 바이크를 1미터도 움직일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바이크 커버를 곱게 씌워서 지하 주차장 한구석에 보관하고 잘 있나 가끔 열어보는 것뿐이었다.

 

IMG_6766.JPG

 

선배로부터 2종 소형 면허를 땄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나서였다.

 

2종 소형면허, 최고 난이도의 국가고시

 

선배의 사무실은 서부면허시험장에서 꽤 가까운 거리에 있다. 처음엔 그냥 경험 삼아 시험이나 한 번 보자는 심산이었다고 했다. 면허시험장 앞을 지나가다가 ‘문득’ 주차장에서 외롭게 울고 있을 오도방이 생각이 났을 뿐이라고 했다. (순 뻥쟁이. 머릿속에 온통 그 크고 아름다운 고배기 바이크뿐이었겠지.)

 

호기심 반, 혹시나 하는 마음 반으로 시험장을 찾았을 뿐인데, 정신 차려보니 응시원서를 들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아무도 몰래 혼자서 투닥투닥 자격증을 갖추는, 스스로 알아서 잘 하는 멋진 기능인으로 거듭나고 싶은 마음이 빼꼼히 고개를 들었다고 한다. 기존 운전면허 소지자는 코스 기능 시험만 통과하면 2종 소형 면허를 취득할 수 있다는데, 어느 누가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있겠냐며 볼멘소리를 했다.

 

2종 소형 기능 시험은 전장 2m가량의 수동 바이크를 타고 폭 1m의 굴절, S자, 좁은 길, 장애물 등 총 4가지 코스를 통과해야 하는데, 100점 만점에 90점 이상을 받아야 합격할 수 있다. 코스를 이탈하거나 땅에 발을 딛게 되면 각각 10점씩 감점이 되는 구조로, 한 번 이상 실수하면 바로 탈락이다. 특히 굴절 코스는 발을 땅에 딛지 않고, 또 금을 밟지 않고 90도 좌회전과 우회전을 연거푸 통과해야하는 극악의 난이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굴절 코스는 네 가지 시험 코스 중 응시자들이 제일 처음 만나는 첫 번째 관문으로,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라 할 수 있는 오토바이 퀵 서비스 아저씨들에게까지도 광탈의 고배를 선사하는 마의 구간이요, 응시자들의 무덤이라고 한다.

 

IMG_6816.JPG

마의 굴절 코스

 

인터넷에는 2종 소형 면허 취득이 얼마나 어려운지 절절한 경험담이 수두룩했지만,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2종 소형 필승 공식’이라는 유튜브 영상만 반복해서 돌려봤단다. 심지어 그는 125cc 오도방을 줄곧 타왔던 터라 ‘잘하면’ 한 번에 합격할지도 모른다는 발랄한 생각도 해봤노라고 덧붙였다.(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봐야 아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에는 용가리 통뼈도 없고,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약 50여 명의 응시자들 중 그는 8번째 차례였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고 했다. 먼저 시험 본 7명 중 한 명이 무사히 모든 코스를 통과해 합격했고, 대기하던 응시자들 모두 자기 일인 듯 손뼉 치며 환호했다고 한다. 그를 보면서 선배도 잠시 후 축하받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고 한다.

 

‘출발하세요.’

 

감독관의 안내에 따라 신중하게 첫 번째 굴절 코스로 진입했지만, 속도가 너무 느렸는지 ‘우쓰!’ 하는 찰나 중심이 기울어 저도 모르게 발을 내렸고 앞바퀴는 금을 밟아버렸다.

 

‘발터치 감점입니다.’

 

‘탈선입니다.’

 

안내방송이 연속으로 들려왔다. 세상의 모든 소리는 아련히 멀어졌고, 꿈인지 생시인지 시간이 멈춰 서서 눈앞엔 금 밟은 앞바퀴의 모습만 크게 확대된 정지 화면으로 펼쳐졌다.

 

‘내리세요!’

 

언제 달려왔는지 보조 감독관이 핸들을 뺏으며 하는 말에 번쩍 정신이 났다. 돌아보니 그가 진행한 거리는 출발점에서 5미터도 되지 않았더란다. 그저 경험 삼아 해보는 것일 뿐이었다며 애써 담담한 척했지만, 얼굴은 울그락 불그락. 현장을 구경하던 다른 응시자들의 안타까운 탄식에 위로보다는 격렬한 부끄러움을 느껴 도망치듯 시험장을 빠져나왔다고 한다.

 

‘원서 받아 가세요.’

 

주홍글씨같은 빨간색 <불합격>도장이 찍힌 응시원서를 받아들었을 때, 그는 그제서야 뭘 어떻게 해볼 새도 없이 탈락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크게 아쉬웠다. 분함도 느꼈다고 했다.

 

‘한 판 더?’

 

왠지 눈뜨고 코 베인 느낌에 본전 생각이 났다고 한다. 그대로 물러서기는 너무 아쉬웠다고 한다. 돌아오자마자 그는 면허시험장 홈페이지에 다시 접속했고, 1주일 후 재 시험을 등록했다. 재시험에서는 꼭 설욕하고 싶었단다. 기필코 합격해서 2종 소형 면허증을 손에 쥐고 아내 앞에 ‘짜잔~’하고 개선하리라 마음먹었다고 한다.

 

성공하는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그는 성공하는 사람이고 싶었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다음 시험을 대비해서 연습을 하고 싶었지만 연습할 수 있는 공간도 없었고, 가진 바이크도 이미 팔고 없었다. 학원에서 면허를 취득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것은 다른 길이었다. 학원은 정해진 연수 시간을 채우고 시험까지 보는 패키지 과정을 운영하고 있어 단기간 속성으로 배울 수 있는 방법 같은 것은 없었다.

 

균형감각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그는, 아쉬운 대로 자전거를 타고 강변으로 나가 그날의 울분을 곱씹으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전거와 바이크는 바퀴가 두 개라는 것 외에는 시트 높이나 중량감, 핸들 조작감 등 어느 모로 보나 근본적으로 전혀 다른 탈 것이었다.

 

다급해진 그는 인터넷을 뒤져 속칭 ‘야매’라고 하는 사설 강습 선생님을 찾아 시험 일정에 맞춰 두 시간 정도 개인 교습을 받기로 했다. 단기 속성으로 감을 익힌 뒤, 감 떨어지기 전에 바로 시험을 보는 나름 영리한(?) 방법을 택한 것이었다.

 

‘이 오토바이는 말하자면 진검입니다. 자칫하면 선생님이 다칠 수 있는 위험한 물건이지만, 뜻한 바 있으시다 하니, 지금부터 선생님께 이 진검을 내어 드릴 겁니다. 저의 가르침대로 잘 따라와만 주신다면 무사히 훈련을 마치고  분명 뜻한 바를 이루실 겁니다. 허나, 만일 제 말을 따르지 못한다면 가차 없이 이 검을 다시 회수하겠습니다. 동의하십니까?’

 

그는 바이크에 진심인 그 야매 선생님의 열변에 감동했고, 그가 무척 믿음직스러웠다고 한다. 연습을 마치고 시험장으로 향하는 선배에게 선생님이 연습장의 비밀을 한 가지 말해줬는데, 그것은 연습장에 그려진 코스의 폭이 시험장보다 무려 10센티미터나 더 좁게 그려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번만큼은 꼭 성공할 것만 같은 자신감이 생겨나더라고 했다.

 

그리고 두 번째 시험에서 그는 또 떨어졌다.

 

내적 갈등과 선택의 기로

 

두 번째 시험에서도 선배는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했다. 첫 번째 굴절에서 잘 통과하는 듯했지만, 중심이 무너져 발을 내려디뎠고 ‘아차, 실수!’라는 생각을 한순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서버렸다. 이번에야말로 어이없는 실수를 만회해서 꼭 붙겠다는 다짐, 그만큼 준비를 많이 했다는 부담감이 오히려 독이 된 것 같다고 변명했다.

 

돌아오는 길 내내 똑같은 아쉬움과 분함을 느꼈고, 벌려 놓은 이 일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나 계속 고민이 되었다고 했다. 다시 다음 주 시험을 등록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길을 택할 것인가. 손절할 때의 느낌이 그럴까, 안전하게 학원에 가서 처음부터 하자니 그동안 들였던 돈과 시간이 허공에 날아가는 기분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다시 시험 등록을 하자니, 연습할 방법도 마땅치 않았고, 다시 사설 교습을 받자니 또 떨어지면 그 비용도 학원 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 같더란다.

 

속상한 마음에 여기저기 이야기를 들어보니, 2종 소형 면허를 따려고 시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고민이라고 했다. 한 번의 시도를 한다고 가정했을 때, 학원을 다니지 않고 혼자서 직접 시험을 치르는 사람들의 97%는 실패한다. 반면, 학원을 다니기로 선택한 사람들의 99%는 성공한다. 두 선택지 사이의 차이는 시간과 돈이다.

 

생각과 성향에 따라 선택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일 뿐이다. 누군가는 돈과 시간이 들더라도 쉬운 길을 선택하고 또 누군가는 돈과 시간을 희생하지 않는 대신(혹은 저마다의 이유로) 낮은 확률에 배팅한다. 지름길을 선택해서 성공한다면 훨씬 더 큰 과실을 얻는 것이 당연하다. 안정적인 성공률을 선택하려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는 것 역시 당연하다.

 

단순히 경험 삼아 시작한 일이라고 해도 중간에 그만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크고 작은 실패를 경험하면서 꽤 많은 상처를 입어왔던 선배는 확률이 낮더라도 보상이 큰 쪽에 배팅하고 성취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의 판단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하고 싶었노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한 번 두 번 실패가 거듭되자 그렇게 실패의 경험이 쌓여 혹여 그나마 남아있던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마저 잃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가장 걱정스러웠다. 그렇다고 안정적인 방법으로 선회한다면, 혹여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되어 그것 역시 자존심 상하는 일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깊은 고민만 하게 되더란다. (사소한 일에 참 많은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싶었다.)

 

고민 끝에 선배는 결국 학원을 다니는 쪽으로 선회했다. 4일 동안 학원에서 10시간의 연수를 받았고 시험에 합격하여 결국 2종 소형 면허를 취득했다. 왜 처음의 생각대로 모험을 밀어붙이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선배는 썩소를 날리며 대답했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더라.’

 

그러면서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를 것이라고, 나니까 좀 더 특별하고 영리한 사람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이야말로 우매한 생각이더라. 특별히 나을 것도, 특별히 못할 것도 없는 평범한 내가,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느낌이 왔을 때 그것을 인정하고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야말로 현명하고 용기 있는 일 아니겠느냐’

 

고 덧붙이며 필자의 격렬한 감동과 동의를 기다리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

 

어느 쪽에 배팅하는가는 각자의 몫이다. 누군가는 소위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을 선호하고, 누군가는 안정적인 길을 선호한다. 때에 따라, 각자의 상황에 따라 선택은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 선택을 하기까지 치열한 고민과 나름의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고 존중받아야 할 결정일 것이다.

 

선배가 그 크고 아름다운 바이크를 타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아직 듣지 못했다. (하지만 언젠가 분명 그거 타고 나타나겠지.) 전후 사정이야 어찌 됐건 이왕 여기까지 온 거, 그 두 아저씨가 처음 바이크에 입문할 때 꿈꾸었던 중앙아시아 횡단의 꿈, 언젠가는 꼭 이룰 수 있기를 필자도 함께 응원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