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들어가며

 

대학강의.jpg

 

저는 14년간 미국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청각학을 배우는 학생들과 예비 이비인후과 전문의 선생님들에게 음향학을 가르쳤습니다. 소리를 가르치는 선생이라는 뜻으로 필명도 ‘소리쌤’으로 정했지요. 학계에 있기 전에는 5년간 인공와우 회사에서 나름 핵심 기술에 대한 연구 개발을 했습니다. 

 

본 시리즈를 연재하며, 소리에 대해 여러 가지 각도로 재미있게 썰을 풀고 싶습니다. 음향학에는,

 

“물리적인 현상으로서의 소리(물리 음향), 소리의 분석, 재생, 가공(전자공학(신호처리)에서 다루는 음향), 음악을 음향학적으로 설명하기(음악 음향), 우리가 소리를 듣고 인지하는 과정을 다루는 심리음향, 소음 진동 제어 기술 등” 

 

많은 상세분야가 있습니다. 제가 음향학의 모든 분야에 대해 전문가라고 주장할 수는 없지만, 일반인을 대상으로 썰을 풀 정도는 됩니다. 전 나름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는데요. 

 

기계공학(학사), 전자공학(석사), 청각학(박사). 전공 분야가 다 다르지요. 박사과정 때는 언어학, 심리학, 박사학위 후에는 인지과학, 의공학에 대해서도 공부했습니다. (물론 수박 겉핥기입니다, 그저 다른 전문가님들과 대화할 수 있을 정도) 

 

지금은 학계를 떠나서 음향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 알고리즘 설계도 하고 임베디드 시스템 개발도 하면서 먹고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무척 화려한, 아니 난잡한 과거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데, 그건 아닙니다. 겉으로는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저는 음향, 소리에 대해서는 평생 정조를 지켜왔습니다. 또한, 음향 분야는 매우 다양한 분야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사실 이렇게 너저분하게(?) 공부하고 경험한 것이, 한 분야만 공부한 것보다 더 유리해 보입니다. 제 소개는 이쯤에서 각설하고, 소리 이야기를 시작해 보죠. 

 

소리 이미지.jpg

 

소리 중에서도 음성은 특별해서 썰을 풀 게 더 많네요. 아참, 여기에 더해 청각 및 청각 손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봐야겠습니다. 이런 썰을 푸는 와중에 과학의 영역을 살짝 벗어나는 이야기도 해보고자 합니다. 차근차근 풀어나가겠습니다. 단, 어디까지 과학이고 어디부턴 아니라는 건 확실히 하겠습니다. 사기꾼이 될 순 없으니깐. 

 

 

알고 보면, 재미있는 ‘소리’

 

“소리”는 매력적인 대상입니다. 음파, 즉 파동으로서의 소리는 물리적인 현상으로 관찰, 분석이 가능한데, 그것이 귀에 들어오고 우리 두뇌에 인지되면서, 물리적 영역을 뛰어넘어 정신세계로 들어오게 됩니다. 정신세계로 들어오게 되면 과학적으로 접근하긴 힘들겠지요. 

 

하지만 두뇌에 들어오기 직전까지 과정을 들여다보면, 과학적으로 따져볼 수 있는 문제가 많습니다. 바이올린 소리를 예로 들어 봅시다. 

 

왜 몇천만 원짜리와 몇십만 원짜리의 음질에 차이가 나는가? 물리적으로 분석해보면 당연히 차이가 나지요. 더 중요한 질문은, 도대체 그런 물리적 차이가 왜 이건 좋고 저건 나쁘다는 심리적인 선호도의 차이로 나타나게 되느냐입니다. 

 

반대의 예로, 음악 파일 포맷을 볼까요, 

 

MP3 같은 손실압축으로 변환, 저장된 음악은 물리적인 측정을 해보면 원본과 많은 차이가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차이를 모릅니다. (물론 압축 정도와 방식에 따라 음질 차이의 정도가 달라지기도 하는데, 그에 대해 차차 얘기하도록 하고 일단 넘어가죠) 

 

이뿐인가요? 개인의 소리에 대한 반응이나 음향 선호도에 대해서, 때때로 과학이란 것이 보기 좋게 무시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아들이 싸구려 악기로 더듬더듬 연주하는 음악이 유명연주자가 수천만 원짜리 악기로 연주하는 음악보다 내 귀에 더 좋게 들리는 것은 과학으로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인간이 음성신호를 귀로 듣고 인지하고 의미를 파악하는 과정을 우리는 아직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학인 듯, 과학이 아닌 듯한 부분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인공와우.JPG

인공와우 착용 모습.

 

청각장애인이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는 인공와우(cochlear implants)라는 장치가 있습니다. 현재 임상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청각 보조 기구인데, 이 안에도 신비로운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기술적인 부분은 과학, 공학 배경지식이 있으면 이해할 수 있는데, 그것이 도대체 어떤 과정을 통해서 두뇌에서 음성으로 인식되는지에 대한 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합니다. 

 

 

어떻게 소프라노는 와인잔을 깰 수 있었을까

 

이런 장면 직접 보았거나, 최소한 상상할 수 있죠. 

 

소프라노 성악가가 현란한 고음을 낸다. 바로 앞에 있는 와인잔이 깨진다. 주위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최고의 발성, 목소리에 에너지를 완전히 끌어 담아서 노래하는구나”

 

비슷한 예로, 어디 헤비메탈 그룹 공연하는데, 소리 에너지가 하도 커서, 주변 건물들의 유리창이 다 깨졌다는 전설도 살다 보면서 한두 번 들어 봤음직 합니다. 

 

김종서.JPG

2006년. KBS<스펀지>에서 실험한 와인잔 깨기 영상 링크 (8분 2초부터)

 

이런 걸 보면, 소리 에너지라는 것이 아주 대단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소리가 음파로서 가지는 물리적인 에너지는 지극히 미미합니다. 보통 우리가 듣는 소리 에너지는 고막을 때릴 때 기준으로 나노 와트나 마이크로 와트 수준입니다. 이게 어느 정도 수준일까. 

 

전기 에너지와 비교해 볼까요? 백열등 기준으로 30와트, 60와트 하면 감이 잡히나요? 요즘엔 LED 전구 시대이니 백열등과 비교해서 0을 하나 빼면 대략 되니, 몇 와트 수준이면 밤에 어둠을 밝히는 에너지 정도 보면 되겠습니다. 

 

다른 물리적 에너지와 비교해보면, 우리가 보통 활동 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가 몇십 와트 수준입니다. 소리 에너지는 우리가 흔히 발생, 소모하는 물리적 에너지에 비해, 백만, 천만, 1조분의 일에 해당하는 크기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미미한 소리라는 것이 와인잔을 깨는 파괴력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 성악가에게 진정 초인적인 능력이 있다는 얘기인가요? 

 

해답은 바로 공진(resonance)에 있습니다. 그 소리 음파 자체에는 그 정도로 엄청난 에너지가 담겨 있지 않습니다. 다만 그 음파가 주변 물체에 입사되면, 그 물체가 반응을 보입니다. 같이 진동한다는 말입니다. “부화뇌동”이라는 한자성어가 사실 꽤 과학적인 표현입니다 

 

그 물체가 갖고 있는 고유주파수로 자극이 되면 진동의 전달이 잘 됩니다. 그로 인해, 조그마한 자극에도 물체는 꽤 큰 진동으로 화답하기도 합니다. 

 

공진현상1111.JPG

 

성악가의 목소리에 와인잔이 깨져버리는 이 현상은, 사실은 이 공진현상이 심화되어 생기는 일입니다. 그 목소리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주파수가 일치했을 뿐이지요. 다른 소리나 진동으로도 충분히 재현할 수 있는 현상입니다. 

 

아무 와인잔이나 이 현상을 재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 물질에는 진동 감쇠(진동을 줄이기 위한 각종 행위)의 특징도 있기 때문에, 공진이 생긴다고 그냥 깨져버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와인잔이 깨지는 현상은 이렇게 보는 것이 과학적으로 타당한 결론입니다. 

 

“이렇게 깨져버리는 와인잔은 진동 감쇠가 제대로 안 잡혀 생산된 놈이다. 이 정도 진동에 깨지는 와인잔이 불량품인 것이지, 그 목소리에는 특별한 비밀이 없다.”

 

비슷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요즘엔 모르겠는데 옛날에 군생활했던 분들, 행군 전 이런 지시를 받은 기억이 있을 겁니다. 

 

“행군하면서 교량을 지날 때는 발을 맞추지 말고 지나간다. 평상시처럼 오와 열을 똑바로, 왼발, 왼발 하듯이 발맞추지 마라.” 

 

중앙일보.JPG

출처-<중앙일보>

 

모든 군인들이 발을 맞춰가면서 진행할 때, 그 주파수가 교량의 고유 주파수와 일치해서 공진이 발생한다면 다리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다소 황당하지만 과학적으로 타당한 부분은 있지요. 

 

1831년에 실제로 영국에서 실제로 ‘브러튼 현수교(Broughton Suspension Bridge) 붕괴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1940년에는 미국에서도 워싱턴주의 타코마 다리가 공진을 제대로 잡지 못해 결국에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 다리가 무너지게 됩니다. 

 

15.Broughton-bridge.jpg

브러튼 현수교(Broughton Suspension Bridge)는 1831년 무너지며 많은 군인들이 숨졌다. 사진은 이후 1924년 같은 자리에 새로 건설된 브러튼(Broughton) 현수교이다. 

 

타코마대교.JPG

붕괴되는 타코마 대교의 모습. 

 

하지만, 이것은 구조역학이나 공진에 대해 정확한 이해와 분석이 없었던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에나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타코마 다리의 경우는 공진 문제가 매우 심각해서 평소 작은 자극에도, 그러니까 아이가 위아래로 콩콩 뛰기만 해도 몹시 심하게 흔들거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조그마한 아이가 초능력을 발휘해서 콘크리트 다리를 무너뜨릴 정도의 괴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 아이가 공진을 일으키는 주파수로 살짝 뛰기만 하면 나머지는 그 구조물 스스로가 알아서 흔들린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잘못 건설된 구조물인 것입니다.

 

누군가 “거봐 군인들이 다리를 지날 때 발을 맞추면 안 되는 거야, 그게 과학적으로 일리가 있는 말이라니까”라고 한다면, 엔지니어 입장에서는 “지금이 19세기도 아니고 요즘에는 그렇게 허술하게 구조물을 설계하지 않습니다.”고 말하고 싶지만, 군인들 입장에서는 생명이 걸린 만큼 최대한 조심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더 낫겠죠?

 

“맞습니다, 과학을 잘 아시네요”라고 받아치고 넘어가겠습니다.

 

마찬가지로, 누가 이 와인잔을 깨는 이 소프라노 성악가의 대단한 능력을 칭송하려 한다면, 전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여인의 힘은 무지막지한 압도적인 파워가 아니고, 적은 힘을 갖고 어떻게 사용해야 상대를 공략할 수 있나 그걸 잘 이해한 데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소리에 대한 여러 가지 재미있는 썰을 풀어나가 보겠습니다.

 

<계속>

 

 

소리는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