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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할을 친다, 라는 것 

 

타율 250과 타율 300인 선수는 팀에서 완전히 대우가 다르다. 선수가 받는 연봉만 봐도 확실히 알 수 있다. 평균 타율이 300이 넘는 김현수는 2017년 4년 총액 115억 원(계약금 65억 원, 연봉 50억 원)에 LG와 계약했다. 작년 타율 0.306를 기록한 최주환 선수는 2020시즌 종료 후 SK와이번스와 4년 최대 42억 원에 계약했다.

 

반면, 각 구단에 타율 0.250 정도의 선수들은 아마도 연봉이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수비수로써 가치가 높은 선수가 아니라면 대부분 백업선수일 가능성이 높다.

 

이렇듯 시즌 타율 0.300을 기록한다는 건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기록한다면 엄청난 부를 가져다준다. 선수들이 마지막 게임에서 0.300 이 깨질 위험이 있으면 타율 유지를 위해 게임 출전을 하고 싶지 않아 할 정도다.

 

같은 이유로 250 타율에 머물고 있는 선수들은 300 타율에 도달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한다. 코치들은 선수의 목표 달성을 도와주기 위해 부단히 고민하고 도와준다. 300 타율은 그만큼 힘든 고지다.

 

요즘은 선수를 평가하는 너무나 많은 데이터가 있다. 타율만으로 선수를 평가하는 시대가 아니다. 이 글에서는 그저 타율의 차이에 대해서만 얘기해보자.

 

0.75개를 더 치기 위해 필요한 것 

 

2019년 한화 김태균 선수의 기록이다. 500타석, 433타수 132안타, 54볼넷, 94삼진. SK와이번스의 한동민(한유섬) 선수는 같은 해 502타석 427타수 113안타 56볼넷, 100삼진을 기록했다. 김태균 선수의 타율은 0.305이고 한동민(한유섬)선수는 타율 0.265였다. 타석, 타수, 볼넷, 삼진 등의 대부분의 조건이 비슷하였는데 타율에서 4푼 정도의 차이가 났다.

 

타율 0.265를 기록한 선수는 다음 시즌 3할의 타율을 기록하기 위해 겨울 내내 부단한 노력을 할 것이다. 타격 폼을 수정할 수도 있고, 연습을 아주 많이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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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합>

 

선수가 나에게 타격 성적 스트레스에 대한 면담을 요청하면 이렇게 반문할 때가 있다.

 

마음 제대로 먹고 몸 관리 잘하고, 게임할 때 컨디션 관리를 좀 더 잘한다면 1주일에 안타 1개를 더 칠 수 있는가?

 

그러면 대부분의 선수들은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한다.

 

다시 2019년 김태균 선수와 한동민(한유섬) 선수의 기록을 보자. 안타수 18개의 차이가 난다. 4푼의 차이가 18개의 안타수의 차이인 것이다. 18개 안타를 더 치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다. 이 차이를 조금 나눠서 살펴보면, 시즌이 대략 6개월 동안 치러지므로, 안타 18개 차이는 한 달에 3개 차이인 셈이다. 단순 계산으로도 1주일에 1개 미만의 안타만 추가하면 3할 타자가 되는 것이다. 안타 18개를 더 치겠냐고 물어보면 힘들다고 하는 선수들이 1주일에 0.75개 더 칠 수 있냐고 하면 칠 수 있다고 한다. 생각을 조금만 다르게 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1주일 동안 안타 1개도 안되는 안타를 추가하기 위해 게임이 끝나고 자정이 넘도록 야간 특별 타격훈련을 하고, 타격폼 수정을 고민한다. 이런 방법을 쓰는 선수들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선수들은 잘 치기 위해서 이런 노력을 하지만 난 이런 부분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안타를 1주일에 0.75개 치기 쉬운 방법은 잘 먹고 잘 쉬고, 타구 스피드를 빠르게 하는 것이다. 몸 컨디션을 좋게 하여 게임에서 집중력을 향상시켜서 안타 1주일에 0.75개 치는 게 훨씬 효율적이고 부상의 위험도 없으며 확률이 더 높은 방법이다.

 

250 타자들이여. 300을 치고 싶다면 야간에 훈련하지 말고 집에 가서 잘 먹고 잘 자라! 그게 정답이다.

 

게임이냐 연습이냐

 

2012년경 프리미어리그 아스널에 진출한 박주영 선수가 게임 출전을 못하고 벤치만 지키는 신세였다. 축구인들이나 기자들이 게임 출전하지 못하는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우려 섞인 전망을 하곤 했다. 아무리 좋은 클럽이라도 게임에 출전하지 못하면 좋지 않다는 이유였다.

 

이 얘기를 워크숍에서 자주 얘기했다. 재밌는 것은 박주영을 이야기 할 때는 게임을 뛰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같은 경우를 야구에 대입하면 이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연습이 중요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백업선수들이 주전선수들을 이기기 무척 어렵다. 감독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아서 무한한 기회를 주면 몰라도 갑자기 주전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각 팀을 보면 10년째 유망주들이 있을 것이다.

 

그 유망주들은 10년간, 우리나라 시스템에서는 엄청난 훈련을 했는데도 주전선수를 이기지 못하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한 가지가 난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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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시즌 제일 기억에 남는 팀은 롯데 자이언츠다. 프로야구에 첫 외국인 감독이 부임했고 성적도 좋았다. 13년이 지난 일이지만, 그때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가장 비판을 많이 받은 것은 2군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로이스터 감독의 설명은 이랬다.

 

2군에서 아무리 잘하는 선수라도 지금 현재 1군에서 주전으로 뛸 수가 없다면 2군에서 게임 출전을 계속하는 것이 좋다.

 

대타 한 타석, 가끔 스타팅을 나가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더그아웃에 앉아있는 것보다는 지속적인 게임 출전을 하는 게 좋은 것이다. 특히 어린 선수들에게는 게임 출전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은 2군에서 타격 컨디션이 좋은 선수를 왜 쓰지 않냐고 비판한다. 책 <인사이드 게임>의 저자 키스로는 이렇게 말한다.

 

’3할 타자란 정확히 10타석마다 안타 3개씩을 치는 타자가 아니라 1000타석에 들어오면 약 300개의 안타를 치는 타자‘

 

감독이 선수 기용 방법을 지난 몇 경기 혹은 몇 주 동안의 성적에 의존해 결정하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키스로는 가장 최근의 데이터 대신, 시즌 전체 혹은 지난 시즌까지 포함해 더 오랜 시간의 데이터를 근거로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근 성적이 좋은 선수를 기용하는 건 50년 가까이 새로운 사고방식에 저항해온 전통적 지혜로 포장되어 있지만, 사실은 최신 편향의 사례라는 것이다.

 

최근 데이터의 잡음을 제거하고 더 큰 샘플의 데이터를 중시하는 게 그의 결론이다. 우리 세대 최고의 교타자 가운데 한 명인 토니 그윈은 명예의 전당 멤버지만 505타석에서 삼진을 18번밖에 안 당하고 0.321이라는 고타율을 기록했던 1998년에 7경기에 걸쳐 19타수 무안타에 그친 적도 있다. 올해 시즌 초 말 많던 롯데 손아섭 선수의 현재 타율을 보라.

 

지금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 중 한 명인 브라이스 하퍼는 신인 당시, 최고인 990만 불을 받고 계약하였다. 엄청난 기대를 한 몸에 받은 하퍼를 곧바로 메이저리그에 콜업하라는 팬들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당시 워싱턴 내셔널스 단장은 “실패할 일을 하지 않겠다"라며 하퍼를 마이너리그에 내려보냈다. 

 

하퍼가 메이저리그에서 대타 역할을 하지 못해서 마이너리그에 보낸 것이 아니다. 마이너리그에서 충분한 게임을 하며 기량을 향상시키는 게 선수나 구단을 위해 좋은 일이라는 판단인 것이다.

 

2008년 제리 로이스터 감독의 롯데자이언츠로부터 12년이 흐른 시점인 2020년에도 거의 똑같은 내용의 기사가 같은 팀을 비판하는 걸 보면서 아직도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인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축구선수나, 야구선수가 해외로 진출하려고 할 때 대부분 첫 번째 조건이 주전이 될 수 있는 여건이다. 탑 리그에서 백업선수보다는 약간 낮은 리그에서 주전을 하는 게 선수의 미래에 훨씬 좋다는 얘기를 한다. 하지만 국내 선수들을 대할 때는 그렇지 않다. 게임을 계속 나가는 것보다는 1군에서 더그아웃이라도 있는 게 도움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런 인식이 개선되어야, 유망주들이 조금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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