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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 A 의원은 이달 초 의원실에 근무하던 보좌진 9명 중 6명에게 “이달까지만 일하고 짐을 싸라”며 면직 의사를 통보했다. 행정과 수행 등을 담당하던 일부 6~9급 비서관(옛 비서)을 제외한 나머지 전원을 한꺼번에 해고하기로 한 것이다.

 

A 의원실은 한 달 뒤 기존 보좌진이 빠져나간 빈자리를 청와대 행정관 출신 등으로 채우기로 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정권교체로 다음달 9일이면 직장을 잃게 될 청와대 근무자들이 돌아갈 자리를 확보하라는 지침이 (당에서) 암묵적으로 내려왔다”며 “당내 입지가 약한 초선 의원실이 주로 이런 요구를 많이 받는다”고 전했다.

 

한국경제 2022.04.08 <"의원실에 靑출신 자리 만들라"..민주당 보좌관 '실직 쓰나미'>

 

언제나 느끼지만, 정치의 본질은 밥그릇 싸움이다.

 

밥그릇 싸움이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의 실적이 자신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넓은 의미도 있지만, 진짜로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는 사람들도 있다. 다름 아닌 국회 보좌진.

 

사실 저 위의 사례는 극히 드문 사례다.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 저런 뉴스에 마음이 철렁하는 분위기인 것은 맞다. 보좌진이란 선거 결과에 밥줄이 달려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직업으로서 보좌관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

 

보좌진이라는 직업을 가진 이후 자주 받는 질문이다. 누군가를 ‘보좌’하는 직업은, 지속할 수 없는 잠시 거쳐가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서일까. 마음이 복잡해지지만 사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딱히 대답할 수 있는 게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대충 눙치는 말로 이 정도.

 

“노후대책 없다”

 

그런데, 이것저것 따지고 보면 요즘 세상에 뾰족한 대책을 가지고 직장 생활을 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싶다. 미래가 불투명하고 불안한 것은 보통의 직장인들도 마찬가지 일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는 것은 아마도, 영원하거나 확실한 것 따위는 1도 없는 정치의 속성에 대해 모두 암묵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여의도에서 경험한 정치 역시 그 변화의 진폭은 너무도 컸다. 짬밥을 꽤나 먹은 지금도 잘 적응이 안 된다. 때론 매우 당혹스럽다. 5년 전에 누군가 ‘윤석열 평검사가 5년 후 대한민국 보수정당의 대통령이 될 것이다'라는 말을 말했다면, 미친놈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뿐인가, 상대방 조롱 ‘원툴’로 종편 프로그램을 전전하던 ‘보따리장수’ 이준석은 지금 무려 여당의 당 대표다.

 

이 바닥에 몸을 담고 있는 한 누구도 자신의 미래를 보장받거나 약속받을 수 없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안철수를 보라). 뚝심 있게 뿌리박고 묵묵히 주어진 과업을 해내는 선후배 보좌직원들을 만나면 자연스레 존경심이 생긴다.

 

하지만 이들도 사람이다. 불안으로부터 멀어지고 안정된 것을 쫓는 것은 아주 오래된 인간의 본능 아닌가. 보좌진이 안정을 추구하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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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진의 이직 루트 1 : 정치인 데뷔

 

국회 보좌진의 가장 전통적이고 이상적인 이직 코스는 정치인이다. '이직 코스'보다는 국회 보좌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가슴에 품어보는 ‘다음 코스’가 어쩌면 좀 더 적확한 표현일 수도 있겠다. 실제로 보좌관 출신의 정치인은 매우 많다.

 

유시민 작가(이해찬 국회의원 보좌관)

김무성 전 대표(김영삼 대통령 비서관)

유은혜 현 교육부장관(김근태 의장 보좌관)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신계륜 의원 보좌관)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장관(김영삼 대통령 비서관)

윤건영 국회의원(문재인 국회의원 보좌관)

이철희 정무수석(김한길 국회의원 보좌관)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보좌관 출신들이 정치로 진출했다.

 

보좌진들은 그 어떤 직업군보다 정치인으로 데뷔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만, 2,700여 명이 되는 국회 보좌진들이 모두가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일을 하다 보면, 정치인보다 보좌하는 일이 더 적성에 맞고 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경우도 많다. 자신이 모시는 국회의원의 보살핌 아래 광역의원 혹은 지방의원 자리를 노려보는 야망 있는 자들도 있겠지만, 체감상 전자의 경우가 더 많았다.

 

야망 있는 보좌관에게 지방선거는 정치계 입문의 등용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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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의회 / 출처 - 링크

 

지방선거에서 보좌관 출신이 좋은 카드가 되는 이유는 따로 있는데, 지방의회에서 일할만한 양질의 후보를 찾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군의원, 구의원, 시의원, 도의원 등은 대기업과 비교해서 많은 연봉을 받는 것도 아니고 지역구 행사마다 얼굴을 비추며 지역 주민들과 완전 밀착해서 민원을 듣고 해결해야 하며 그 지역 국회의원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자리다. 한마디로 단가가 맞지 않다. 그러니 머리 좋고 젊은 정치 지망생들이 지방의원에 도전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지역구 지방의회에 자신의 사람을 심어놓고 싶은 국회의원들은 자기 보좌진으로 자연스럽게 눈길이 가기 마련이다. 보좌진은 국회에서 사실상 의정 활동을 직접적으로 하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고, 국가 예산과 정책을 다뤄본 경험이 있는 나름 전문직이다. 지방의회에 가서도 비교적 훌륭히 의원직을 수행하는 편이다(물론 케바케).

 

보좌진의 이직루트 2 : 대기업 혹은 협회

 

국회에는 국회의원, 보좌진, 언론인, 공무원 외에도 활발히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일반 대기업이나 각종 협회 직원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부분이다. 대체 이들은 국회에서 뭘 하는 걸까. 그건 바로,

 

‘로비’

 

아주 당연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입법이라는 건 다 ‘돈’으로 연결 가능하다. 가까운 예를 들어보자.

 

2020년 3월에 국회에서 ‘타다 금지법’이 통과됐다. 이법에 따라 10~20분가량의 중단거리 이동을 위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차를 부르는 ‘타다’는 불법이 됐다. 이 법안이 좋은 법이냐 나쁜 법이냐에 대한 판단은 뒤로 미루고 국회에서 벌어진 일을 말하자면, 이 법안이 발의되고 심사되고 통과될 때까지 택시협회와 타다측 로비스트들이 국회 문턱이 닳도록 돌아다녔다. 그들의 먹고사는 문제, ‘돈’이 달려있기 때문이었다.

 

2017년 박용진 의원이 현대기아차의 내수 차별 문제, 급발진 사고 은폐 문제 등을 국토부 장관 등에게 질문하면서 해당 사건이 크게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이런 문제가 국회에서 다뤄지면 현대기아차 경영에 치명적인 사안이 된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필사적으로 막아야 하는 미션이 발생하는 거다.

 

그러니 각 기업의 대관업무를 맡은 자들은 평소에도 국회의원이나 보좌진들을 만나서 어떤 아이템들을 준비하는지 어떤 문제에 관심이 많은지 계속해서 레이다망을 돌리고 있다. 그리고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감지되면, 빠르게 접근해서 미리 설명하고 해명하는 등의 작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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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의 로비는 가능하면 국회의원에게 직접 하고 싶어 한다. 결국 의사결정권을 가진 사람은 의원이니까. 하지만, 유능한 로비스트들은 보좌진에게 많은 공을 들인다. 보좌진과 미리 두루 가깝게 지내두면 국회에서 떠도는 이야기를 취합하고 분석해 새로운 정보를 얻어내는 데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의원이 신뢰하는 보좌관이라면 그들의 집중 공략 대상이 된다. 의원의 결정에 신뢰하는 보좌진의 의견은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기업 혹은 각종 협회 직원들은 국회를 돌아다니면서 보좌진들과 같이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애를 쓴다. 대기업의 국회 로비 문제를 여기서 다 말하자면 지면이 터져나갈 것이므로 추후 다루도록 하고, 오늘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바로 여기서 보좌진의 이직루트가 발생한다. 대기업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이런 대관업무를 맡기려면 어떤 자가 적임이겠는가? 바로 보좌진 출신이다.

 

1) 국회의 업무 프로세스를 잘 알고

2) 국회 내부 인맥을 활용한 정보 수집에 용이하고

3) 향후 정치판을 읽는 눈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결코 손해 보는 짓을 하지 않는다. 1명의 보좌관을 스카웃해서 연 매출 100억의 영향을 미치는 규제 법안을 막아냈다면, 그 사람에게 연봉을 얼마를 주든 아깝지 않은 거다.

 

최근에 쿠팡, 카카오, 네이버 등 플랫폼 회사들과 넷플릭스, 왓챠, 디즈니플러스 등 OTT회사들이 국회의 문제 제기 혹은 입법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몇 개월 전부터 카카오에서 보좌진 출신을 싹쓸이하듯 스카웃 해가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대관 파트에 대거 인력 보충이 되었다는 말은, 회사에 그들이 해결해야 할 일이 생겼다는 뜻이다. 최근 카카오 독점 등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그 시작점이었을 것이다. 여론의 관심이 쏠리면 국회는 당연히 관심을 갖는다. 국회의원들은 아주 사소한 여론에도 크게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다. 정치는 그렇게 움직인다.

 

보좌진이 대기업으로 이직을 성공했다고 해서 불확실한 미래를 떨쳐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업 입장에서 국회 내부에 인맥도 많고 정보도 많은 유능한 보좌진은 돈을 얼마든지 주고서라도 스카웃해오고 싶은 자원이지만, 문제는 그 유능함의 유효기간이 매우 짧다는 거다. 선거 때마다 국회의원과 보좌인력은 대거 교체되고 재편성된다. 대관 파트에 스카웃된 보좌진의 사용가치는 4년을 넘기지 못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기업은 결코 손해 보지 않는다. 기업이 대관업무를 맡기기 위해 채용하는 보좌진은 그래서 계약직이 많다.

 

보좌진의 이직루트 3 : 부처 개방직 공무원 혹은 각종위원회

 

잘 알려지지 않은 정부 산하 무슨 무슨 위원회 이런 거 되게 많다. 행정기관 위원회는 정부가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전문성이 떨어지거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경우에 주로 설치된다. 예를 들면,

 

2050탄소중립위원회

최저임금위원회

납세자보호위원회

중앙소음대책심의위원회

청년정책조정위원회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이런 것들.

 

이런 정부 산하 위원회에 보좌진들이 가는 경우가 있는데,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다. 이유는 우선 위원회에서는 보좌진보다 더 전문성이 있는 학계 출신을 선호하고 보좌진들도 자신들에게 좋은 자리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구한 날 행정부의 꼬투리나 잡는 국회 보좌진보다 특정 주제에 대해 깊이 논의하고 사회적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에 뜻이 있고 적성에 맞는 보좌진들은 위원회로 이직하기도 한다.

 

보좌진의 이직루트 4 : 연구소, 창업

 

이도 저도 아닐 때 창업으로 승부수를 띄우는 보좌진들도 있다. 여의도 주변에 식당을 창업해서 운영 중인 보좌관 출신 사장님도 있다. 여의도 주변 상권이나 시세, 정치권 니즈 등을 잘 파악하고 있을 테니 어쩌면 제대로 전문성을 살렸다고 볼 수 있다.

 

보좌관 출신들이 주로 하는 창업은 주로 '무슨 무슨 연구소'를 차리는 것이다. 연구소의 주력 사업은 정치 컨설팅. 보좌관 출신 이철희 현 정무수석도 한때 여의도 주변에 ‘두문정치전략연구소’라는걸 만들어 활동했다. 손혜원 전 의원 김성회 보좌관도 의원실을 나가서 씽크와이 연구소라는 걸 만들었다. 이런 경우는 보통 자신의 추후 정치적 행보를 위해 그럴듯한 직함이 필요해서 만드는 경우가 많고, 그 직함을 활용해서 대부분 티비 시사 패널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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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우 말고 진정한 의미의 창업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정치권에서 일했던 경험과 선거판을 뛰어본 보좌진의 경험을 살려서 선거컨설턴트, 이미지메이킹, 기획사 등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있다. 안타깝지만, 보좌진 출신이라고 특별히 더 우수한 퍼포먼스를 보이는 회사가 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보좌관은 창업하면 망한다"라는 말을 훨씬 더 많이 들었다. 보좌진은 직업적으로 갑의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아 회사를 창업하고 허리를 숙이거나 아쉬운 소리를 하는 일이 서툴러서 그렇다고 하더라. 정말 그런지는 나도 모르겠다.

 

보좌진의 이직루트 5 : 대모험

 

어딜 가나 비범한 사람들이 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뚫기를 좋아하는 변태같은 난 사람들. 보좌관 생활을 하면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아 정교수로 임용된 지독한 인간을 본 적이 있다. 국회에는 국회 도서관이 있고 정부 부처의 수많은 데이터는 자료 요구를 통해 받아볼 수 있다. 정보나 지식에 접근하기 용이하다는 뜻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보좌진 생활을 하면서 논문을 쓴다는 건 특별히 혜택받은 의원실이 아니고서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야 가능한 일이다.

 

지금까지 내가 봤던 특별한 이직 사례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드라마 작가’로 데뷔한 경우다. 노동운동을 하고 기자로 활동하다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10년을 일한 경력으로 정현민 작가는 이런 드라마들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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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진도 보좌진이지만, 몇백 억씩 해 먹은 박덕흠 의원 같은 분들 아니고서야 국회의원들도 다들 노후를 두고 많은 고민을 한다. 국회의원은 하루만 근무해도 평생 연금을 받는다는 오해가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선출직인 국회의원도 ‘국민연금’을 적용받는다. 그들도 노후대책을 고민하는 생활인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21대 국회가 개원하던 시기에 정의당 추혜선 전 국회의원이 LG유플러스 비상임 자문직을 맡았다는 뉴스가 난 적이 있다. 관련 상임위에서 활동하던 국회의원이 관련 대기업에 재취업하는 것에 대해 많은 이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냈었다. 결국 추혜선 전 의원은 직을 사임했다. 그런데, 추혜선 의원은 좀 억울한 측면이 있었다. 총선에서 낙선하거나 출마를 포기한 전직 국회의원들 중 대기업으로 재취업한 사례는 사실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미래통합당 장석춘, 김규환 전 의원은 엘지전자 비상근 자문으로,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에서 원내부대표를 지낸 강효상 전 의원은 법무법인 대륙아주의 고문으로, 미래통합당 중앙여성위원장 출신 송희경 전 의원은 엘지경제연구원으로 재취업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