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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전에서 승패를 가르는 핵심은?

 

지상전의 왕자라 불리는 탱크. 이 탱크를 몰아서 진격하는 영상들은 보는 이들의 피를 끓게 만든다. 육군도 자신들의 핵심 장비 중 하나로 치켜세우는 것이 탱크고, 그 자체로 ‘공격무기’라는 걸 증명해주는 게 바로 탱크다.

 

대한민국 육군도 최신 탱크들과 기계화 장비들을 한군데 몰아넣어 제7기동군단을 만들었다. 이 부대는 대한민국 육군의 전략부대인데, 전쟁이 터지면 그냥 북한으로 밀고 들어가는 게 임무다. 방어 작전 같은 건 거의 없고, 훈련의 대부분도 기동전에 치중돼 있다. 여기에 배치된 탱크만 800여대가 넘어간다(여담이지만 공관병 갑질로 유명한 박찬주 前 대장도 이 제7 기동군단 군단장 출신이다. 스스로 기갑전의 대가이고, 미군들도 존경과 경외를 담아 동의를 했다고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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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매일경제>

 

이 대목에서 궁금한 게 전차들끼리의 교전에서 그 성패를 가르는 게 무엇이냐는 거다. 전차전 하면 흙먼지 휘날리며 수백, 수천 대의 탱크들이 회전을 벌이는 상황은 거의 벌어지지 않는다. 당장 수백 대의 탱크가 한데 어우러져 싸울 장소를 찾는 것부터가 일이다.

 

한국 전쟁 당시 탱크들 간의 교전을 보면 거의 소대 단위의 전투가 다였다. 즉, 몇 대 정도가 어우러진 게 고작이다. 전차들이 회전을 벌이고 싶어 해도 툭하면 산이고, 강이며 좀 달릴 만하면 논밭이다. 논은 탱크의 기동성을 제약하는 지형이다.

 

그럼 탱크들은 어떻게 싸울까?

 

오래된 자료이긴 하지만, 한 번쯤 참고해 볼만한 자료를 가져와 봤다.

 

1945년 봄 미 육군 탄도학 연구소(US. Army's Balistics Research Lab)는 한 가지 고민을 하게 된다.

 

"독일군이 전격전이니 뭐니 하면서 기갑부대를 가지고 쏠쏠하게 장사 잘했는데, 도대체 전차전의 승패를 결정짓는 게 뭘까?"

"양 앞에 장사 없다니까 그러네."

"그렇게 따지면 소련군은 어떻게 설명할래?"

"이, 이기고 있잖아!"

"진 거 같이 이기니까 문제지! 분명 이긴 거 같은데, 전사자 숫자나 피해 정도를 보면 독일군이 이긴 거 같으니까 그렇지!"

 

탄도학 연구소는 전차전의 승패 요인을 가리기 위해 실전 데이터를 가지고 분석에 들어가게 된다. 이때 표본이 됐던 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부대 중에서 가장 많은 전차전을 치렀던 미군 제3기갑사단과 제4기갑사단이었다. 이들은 1944년 8월부터 12월까지 양 사단이 치른 131회의 전차전을 가지고 분석에 들어갔다. 그리고 놀라운 결과를 도출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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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퓨리> M4 셔먼 탱크

 

"탱크끼리 맞붙었을 때 승패를 결정짓는 건 먼저 쏘는 거야."

"에? 그게 무슨 소리야?"

"탱크를 먼저 발견한 다음, 먼저 발사한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해. 적 전차가 이동 중일 때 매복하고 있던 전차가 먼저 적을 발견하고, 발사하는...이미 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봐야지."

"결국 방어하는 쪽, 매복한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거네?"

"그렇지. 지형에 익숙한 부대가 충분히 은폐엄폐를 한 상황에서 공격하면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당할 수밖에 없어. 총 교전 횟수를 100%로 봤을 때 방어하는 쪽에서 먼저 공격한 게 84%였는데, 이때 교환비는 1대 4.3이야."

"그 반대는 없어?"

"있지. 우리 기갑사단이 선공을 했던 전투도 있었는데, 이때 교환비는 1대 3.4였어."

"방어하는 입장이든, 공격하는 입장이든 먼저 쏘는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거네?"

"그렇지."

 

여기서 주목해 봐야 하는 게 전차란 물건에는 무한궤도가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적이 먼저 공격해서 아군을 압도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아군은 전투를 계속 이어 나가는 게 곧 패배의 지름길이란 판단을 내리고 전차를 뒤로 물리게 돼 있다. 괜히 버티다가 전멸 당하느니 후퇴해서 남은 병력을 수습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이었다. 그렇기에 초반에 공격받아 일정 수준 이상 피해를 본 쪽은 후퇴하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 됐다.

 

탱크 간의 기술적 격차는 전차전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이 당시 독일군의 주력 전차였던 5호 전차 판터와 미군의 M4 셔먼의 경우, 미 육군 탄도학 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전투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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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5호 전차 판터

출처 - <위키피디아>

 

"기본적으로 달릴 거 달려있고,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면 전차의 성능보다 전투의 상황이 더 중요하다. 먼저 발견하고 쏘는 게 중요하다. 이런 전술적 이점을 확보하려면, 전차 승무원들의 자질이 중요하다."

 

요즘 같은 경우 2세대 전차와 3세대 전차의 차이(3세대를 넘어 3.5세대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지만)라면 전차의 성능이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겠지만, 이 당시 탄도학 연구소에서는 이런 판단을 하지는 않았다.

 

오늘날도 그렇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전차대 전차만 맞붙는 순수한 전차전은 드물었다. 전차가 달려가면 기본적으로 보병지원이 있었고, 공중 지원이 끼어드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분위기는 계속 이어져 왔다(실제로 더 강화됐다고 보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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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M4A4 셔먼 탱크 생산 장면

사진출처-<위키피디아>

 

걸프전 이후에는 전차가 전장에서 적의 위치를 파악하면, 그대로 공중지원과 화력 유도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순수한 전차 대 전차의 싸움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겠지만(영화 <퓨리>에서처럼), 의외로 그런 경우는 드물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

 

60톤이 넘어가는 거대한 탱크들이 떼 지어 움직이는데, 요즘 같은 시절에 하늘에서 불벼락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 게 아닐까? 아니, 그렇다는 건 제공권을 잃었다는 소리이고, 제공권을 잃었다는 건 전쟁이 상당히 어렵게 돌아가고 있다는 반증이니까... 전쟁은 이미 지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앞으로도 순수하게 전차와 전차가 붙는 모습을 보기는 어려울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