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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9일. 이태원의 그날로부터 56일이 지났다. 그동안 늘어나는 건 희생자 숫자뿐이었다. 159명. 지난 두 달여, 이 거대한 사회적 참사를 정부는 어떻게 수습해왔나. 우리는, 유가족들에게 어떤 이웃이었나. 돌아보자.

 

여당의 54일

 

11월 24일. <10.29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국회에 꾸려졌다. 첫 현장 조사는 그로부터 한 달이 더 걸렸다. 출범 초기에 특위 소속 여당 의원 전원이 불참해 파행을 겪었기 때문이다. 유가족들이 가족을 잃은 지 54일 만의 일이다.

 

54일. 죽음의 원인을 밝히는 데 쓴 시간이 아니다. 고작 조사가 시작되는 데에 걸린 시간이다. 그동안 그들은, 위패와 영정이 없는 빈소에 앉아 대통령의 공허한 조문을 받으며 월드컵 응원 소리를 들었다. 보안 사항으로 감춰둔 희생자 명단으로 유가족끼리마저도 서로 단절된 채. 지난 54일은 유가족들에게 그런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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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위 복귀 선언하는 10.29 참사 국조특위 국민의 힘 위원들

<출처 - 연합뉴스>

 

파행으로 까먹은 조사 기간은 이제 단 3주가 남았다. 그 기간 안에 현장 조사, 기관 보고, 불참했던 여당과 다시 참고인 협의, 자료 요청, 청문회까지 완수해 참사 원인을 밝혀야 한다.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하지만 여당은 이미, 국조특위 연장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예산안 통과를 핑계로 유가족과 면담을 피했다. 국조특위에 참석하지 않으면서 시간을 지체했다. 늦어서 죄송하다며 뒤늦게 유가족을 찾았지만, 그땐 이미 그들이 원하던 바를 이룬 뒤였다. 이것이 집권 여당 국민의힘이 이번 사회적 참사를 다룬 여정이다.

 

그리고 그 여정은 참사 발생 두 달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계속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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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MBC>

 

대통령의 54일

 

10.29 참사 이후, 윤석열 정부는 끊임없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첫 시작은 예상대로, 윤석열 대통령 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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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YTN>

 

10.29 참사 이후, 정부와 대통령은 매일 같이 성실하게 참사를 키웠다.

 

1. 유가족과 국민이 슬퍼할 시간을 국가에서 일주일로 지정

 

2. 정부 공문에 '희생자'를 '사망자'로, '피해자'를 '부상자'로 용어 통일 지시

 

3. 영정 사진과 위패 없는 분향소 설치

 

4. 참사 이튿날 검사가 희생자 마약 부검 요청

 

5. 희생자 유류품 마약 성분 검사

 

6. 사고 초기, 참사에 관련한 시민사회 동향을 감시

 

7. 서울시에서 유가족 대응 지침을 만들어 유가족 간 연락 차단

 

8. 10.29 참사 국정조사를 내년 예산안 통과 교환 카드로 취급

 

9. 유가족 간담회에 끝까지 나타나지 않은 일

 

10. 그리고 여전히, 유가족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않은 일

 

유가족이 바라는 건, 대통령의 사과와 조사를 통해 참사 원인을 밝히고 책임자를 규명하는 것. 이 두 가지다. 전혀 어렵지 않은 요구다. 상식적인 바람이다. 상식적인 사회에서는. 

 

그런데 언젠가 대한민국에서 그 상식은 통용되지 않고 있다. 국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줘도 모자랄 그들을, 무릎 꿇고 빌게 만든다. 우리 사회의 상식은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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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1일 국회에서 열린 국조특위 유가족 간담회 현장

<출처 - 연합뉴스>

 

11월 7일에 있었던 국가 안전 시스템 점검 회의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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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YTN>

 

그날 대통령은, 경찰청장을 강하게 질타했다. 사고 친 학생을 혼내는 선생님처럼, 혹은 잡범을 다루는 취조실의 검사처럼.  

 

"이 정도 (인파가) 되면 주도로를 당연히 차단했어야죠. 아니, 그걸 왜 안 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사람들이 무지 많이 몰릴 거라는 걸, 경찰이 몰랐다고 하는 것은 저는 상식 밖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술이 덜 깬 표정으로 현장에 나타난 첫날과는 달리, 조금은 사태 파악이 되었나 싶은 모습. 하지만 질책이 끝날 때쯤, 이 회의의 목적이 드러났다.

 

"모든 국가 위험 컨트롤 타워는 대통령이에요. 그런데 이것을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보고하거나 신속하게 하는 것은 (니들 역할이다)"

 

이날 '국가 안전 시스템 점검 회의'는, '대통령 책임 없음 확인 회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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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YTN>

 

"안전사고를 예방해야 하는 책임은 경찰에게 있어요."

 

"위험 상황 관리가 안 되어 대규모 사고가 났다면 그건 경찰 소관이죠. 이걸 자꾸 섞지 말라고."

 

"엄연히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사람에게 딱딱 물어야 하는 거지, 막연하게 다 책임지라 하는 건 현대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이 천하무적 논리의 끝엔, '대통령 행안부 장관 책임 없음'이 있다. 막무가내 책임 회피보다 더 놀라운 것. 대통령은 정말 진심으로 화가 나 있었다는 것이다. 회의 결과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대통령이 이 참사를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지. 그는 이 상황이 버거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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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YTN>

 

이런 사고 체계를 가진 그에게, 10.29 참사는 완결 사안이다. 용산구청장 박희영의 말처럼,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희생자 49재가 있던 날, 술잔을 사면서 농담하고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에서 활짝 웃어 보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업무 리스트에서 10.29 이태원은 이미 해결된 해프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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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뉴스>

 

우리를 기억해주세요

 

12월16일 금요일. 대통령이 영부인과 연말 분위기를 즐기고 있던 그 무렵, 시민들은 녹사평역에서 황망하게 떠난 영혼들을 위로하고 있었다. 본지, 그 현장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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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녹사평역 분향소 풍경은 10월 31일에 설치된 서울광장 앞 합동 분향소와 달랐다. 참사 발생 49일 만에 희생자의 얼굴과 이름이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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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당시 희생자 158명 중 76명의 희생자 영정 사진이 안치됐다. 분향소에는 중년층이 눈에 띄게 많았고, 각 종교계에서 단체로 이곳을 찾았다.

 

참사가 벌어진 이태원역 앞 대로에서는 49재 시민 추모제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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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참사 49재 시민 추모제의 주제,

 

 '우리를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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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112 신고 전화가 들어온 6시 34분에 맞춰 추모제를 시작했다. 무대 위 큰 화면에 희생자 이름, 얼굴, 나이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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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직후, 시민들은 국가가 정한 일주일의 애도 기간, 국화꽃만 놓인 분향소에서 희생자를 기려야 했다. 내가 추모하는 희생자가 누구인지 궁금해할 수 없었다. 희생자 명단 공개는 패륜이고, 괴물이 되는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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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을, 아이를 기억해달라는 유가족의 말에, 시민들은 희생자 이름을 한 명, 한 명 불렀다. 마음은 찢어질 듯 아픈데, 현실감 없이 두루뭉술했던 기억들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희생자 이름을 부르는 시민들의 외침엔 울음과 절규가 섞였다.

 

세상 온갖 곳을 담아내는 기자들이지만, 차오르는 감정에 들고 있던 카메라 뒤로 눈물을 훔치는 이, 여럿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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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10도의 추운 날씨, 추모제에 참석하는 시민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다. 참사가 발생한 골목에 들어서기 전, 시민들은 묵념했다. 그 자리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고 흐느끼는 시민도 있었다. 

 

골목의 벽돌 벽면에는 꽃다발과 함께

 

못다 핀 꽃송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라는 글과

 

한순간에 빛나는 별이 된 언니, 오빠들에게.

 

라고 적힌 짧은 편지가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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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제를 마치고 유가족은 용산 집무실 방향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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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도 가지 못해, 경찰이 무리를 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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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 저지당하는 유가족들

<출처 - 유튜브 빨간아재>

 

기시감이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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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5월 청와대 입구에서 밤샘 노숙을 하고 

아들 오영석(단원고) 군의 영정사진을 끌어안고

잠들어있는 권미화 씨와 오병환 씨

 

<출처 - 오마이뉴스(기사 링크)>

 

오는 12월 30일, 이태원역에서 열릴 제2차 추모제에 대해 안내한다. 돌아가는 시민들에게 유가족들은 그날도 함께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부탁하는 사람도 돌아가는 사람도 발길을 쉽게 떼지 못한다. 그날도, 이날처럼 대통령실로 행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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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전, 조계종에서 열린 49재 추도식에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참석했다. 그 시각, 윈·윈터 페스티벌에 참석한 대통령은 카메라 앞에서 농담을 던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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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좋아해서 술잔 샀다고 그러겠네."

 

씁쓸함이 밀려온다. 지하철을 타러 이태원역사 안으로 들어섰다. 추위에 파삭하게 마른 국화 꽃잎과 그 주변을 지키는 경찰의 모습이 보인다. 차갑고 어수선한 공간을 뒤로하고, 안전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유가족의 울부짖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귀에 맴돌았다.

 

"제발, 우리를 잊지 말아 주세요."

 

열아홉 번째 토요일

 

다음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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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삼각지역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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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한 12월 전국 집중 촛불 집회'가 열릴 시청까지 행진에 동참하는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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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은 전날보다 더 떨어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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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그 어느 집회보다 격양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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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분노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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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침통해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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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비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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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도 어제 추모제를 지켜봤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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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진 행렬은 그 어느 때보다 두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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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도착한 시민들이 대열에 합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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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집중 촛불'이라는 집회 이름이 걸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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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렬이 도심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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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집회 취재 때 카메라에 담은 행렬과 비교할 수 없는 길이. 실로 대장관.

 

지난 두 달, 주말마다 각 지역의 광장을 채웠던 전국 촛불 시민들의 염원이 헛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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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행렬이 시청 앞 대로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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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든든하게 자리를 지키고 선 딴지 자봉단원들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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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와 인도에 사람들이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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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끓는점에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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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시작되는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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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집회는 딴지 단독 보도가 아니다. 다행이다. 역시 사람은 많이 모이고 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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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회에 맞춰 시청 본 행사에 합류하는 인파가 급속하게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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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의 날씨는 더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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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묵념으로 본 집회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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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이 흐르는 시청 앞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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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념이 끝날 때쯤, 도로 한쪽을 통제하던 경찰이 나머지 차선마저 집회 영역으로 텄다. 이때부터 밤늦게까지 시청 앞 대로에는 촛불과 사람들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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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세종대로에는 15만 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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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박근혜 퇴진 집회 인원 1차 5만, 2차 30만, 3차 100만. 그리고 여섯 번째 집회 232만. 정부 수립 이래 사상 최대 규모였다. 2022년의 집회는 1차와 2차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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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그 겨울. 우리가 인류의 민주주의사에 가장 위대한 시민이 될 수 있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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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모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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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는 것과 원하는 것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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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누구라도 외면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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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에게 일어난 일은 곧 우리에게 일어날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이웃인가. 어떤 시민인가.

 

이번 겨울에도, 거리가 우리에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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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 금성무스케잌, 근육병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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