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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급격히 성장하며 어느덧 세계 2위 패권국이 되었다. 세계 유일 초강대국 미국을 중심으로 한 ‘팍스 아메키라나’ 시대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위협을 느낀 미국의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2018년 중국을 향해 대규모 관세를 때리며 패권 전쟁의 트리거를 당겼다. 이에 질세라 중국도 똑같은 수준의 관세 보복을 했다.

 

두 패권국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져 갔다. 세계사에 (거의) 유례없었던 30여 년 ‘평화의 시대’는 그렇게 끝났다. 이 타이밍에 러시아가 결정적 펀치를 날렸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이다. 원조 서방 사회인 유럽의 바로 앞에서 1년이 다 되도록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다시금 도래한 어지러운 시대다. 지난 몇 년간 국제 정세는 하루가 멀다하고 가파르게 변했다. ‘신냉전(러시아는 열전 중이지만 아직 지엽적이기에)’이라 불리는 이 미·중(+러시아) 패권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세계 각국은 이 패권 세력으로부터 “나의 동료가 돼라”며 강요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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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재는 작금의 상황에서, (우리는 아직도 자세히 모르지만) 이미 중요한 지역으로 부상한 아세안(동남아시아)은 어떤 국제적 상황을 맞이하고 있으며,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다양한 각도에서 디벼본다.

 

지난 편에선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링크)’에 대해 다뤘다. 이번 편에선 ‘말레이시아와 베트남’을 다룰 것이다. 지난 편을 보지 못한 독자들도 있을 터이니 아세안(동남아시아 국가 연합)의 두 가지 기본 원칙만 간단히 짚고, 본 내용으로 넘어가겠다(가능하면 지난 편부터 봐주시는 게 가장 좋다). 

 

1. 아세안에는 다수결의 원칙이 통용되지 않는다. 뭐든지 아세안이 공식적으로 결정하는 사안은 ‘만장일치’로 통과되어야 한다. 이런 아세안의 방식을 ‘아세안 웨이(ASEAN WAY)’라고 한다. 

 

2. 외교를 포함한 모든 문제를 헤쳐 나갈 때, 항상 아세안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 원칙이 ‘아세안 중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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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본격적으로 말레이시아와 베트남으로 들어가 보자. 

 

 

미·중 사이 아세안의 포지션

 

4. 말레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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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는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는 아세안 창립(1967년) 멤버 중 하나로, 아세안의 결정 사안에 많은 리더십을 발휘하는 국가다. 겉으로도 목소리를 내지만, 뒤에서 굉장히 많이 움직인다. 아세안 국가들의 의견을 조정하고, 한 자리에 모으는 등 아세안 국가들끼리의 소통·협력에 특히 리더십을 많이 발휘한다. 아세안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가다.

 

Q : 미·중 사이 말레이시아의 포지션은?

 

상당수 아세안 국가는 비슷한 포지션이다. 미·중 사이 균형을 유지한다. 말레이시아도 전통적으로 중립 외교를 추구하는 국가다.

 

냉전 시기였던 1971년, 아세안 - 당시는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5개 아세안 창립국만 회원국이었음 - 은 미국과 소련의 군사기지 해체를 주목적으로 ‘동남아 평화·자유·중립 지역선언(ZOPFAN)’을 발표했는데, 이는 중립 노선이었던 말레이시아의 제안이었다. 

 

하지만 현재 말레이시아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의 직접 당사국 중 하나이고, 남중국해에서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만큼, 안보 면에선 미국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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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지역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 지역에서 미국 외에도 중국을 견제하며 안보에 영향을 끼치는 외국 세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영국, 호주, 뉴질랜드는 FPDA(Five Power Defense Arrangements, 5개국 방위 협정)를 맺고 있다. 이들은 모두 한때는 영국의 식민지였으며 현재는 영연방 회원국이다. FPDA는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가 독립하고, 영국이 동남아시아에서 떠날 때 만든 협정이다. 

 

우리와 미국의 동맹처럼 동맹국이 공격받았을 때 즉시 개입하는 건 아니지만, 안보 위협이 있을 때 회원국들에게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는 FPDA를 이용해서 미국 외 국가들과도 함께 중국으로부터의 안보 위협을 견제하고 있다. 경제는 역시 중국과 많이 연결되어 있다.

 

FPDA  출처 싱가포르 국방부.jpg

2019년에 열린 FPDA 국방참모총장회의에서

(왼쪽부터) 호주,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뉴질랜드, 영국의 군 인사들

출처-<싱가포르 국방부>

 

Q : 중국의 일대일로를 거부한 말레이시아. 끌려다니지 않는 자기중심적 정치(외교)를 한다?  

 

시진핑 정권이 들어서며, 중국은 일대일로를 추진했다. 중국의 영향력 확대와 중국 내 과잉생산 문제 해결에 주목적이 있었다. 이를 위해 중국이 세계 곳곳에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를 구축하고 있는 건 유명하다. 

 

동남아시아에 만들려는 일대일로 중요 거점 중엔 말레이시아도 있다. 중국은 육상 실크로드의 한 부분으로 운남성(중국)에서 라오스로, 라오스에서 태국으로, 태국에서 말레이시아로, 말레이시아에서 싱가포르로 이어지는 철도 라인을 개설하려 한다(관련 기사). 중국-라오스 철도는 1년 전에 개통됐다. 

 

동남아 철도 출처명보.png

출처-<명보>

 

일대일로  서울신문.jpg

사진 클릭하면 확대

2018년 상황이므로 사진 오른쪽 프로젝트 정보는

현 시점에서 다를 수 있다 

출처-<서울신문>

 

말레이시아는 해상 실크로드의 거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중국은 이 요충지인 말레이시아에 대규모 투자를 하려 했다. 철도 등 여러 가지 각종 인프라를 건설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말레이시아는 중국에 많은 빚을 지게 될 것이었다.

 

중국이 적극적으로 말레이시아에 들이대기 시작할 당시, 말레이시아 총리는 ‘나집(재임 2009-2017)’이란 인물이었다. 말레이시아 2대 총리의 아들로 20대에 정계에 입문한 정치 엘리트다(말레이시아는 입헌군주제). 나집은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명목으로 일대일로에 참여하며 중국으로부터 대규모 자본을 유입했다. 그러나 나집의 친중국 행보는 지속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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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나집과 시진핑

출처-<AP>

 

2018년 정권이 교체된 것이다. 그 유명한 ‘마하티르’가 다시 총리가 되었다. 마하티르는 중국의 일대일로 행보에 제동을 걸었다. 여러 건설 계획들을 취소하며 중국의 일대일로를 거절했다. 과격하게 한 건 아니고, 소프트하게 거절했다. 

 

마하티르가 일대일로를 거절했던 건, 말레이시아의 국내 사정 때문이었다. 나집 집권 당시, 상당수 말레이계 국민들은 나집의 친중국 행보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말레이시아 내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면, 말레이계 기득권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마하티르는 이러한 말레이계의 정서를 인지하여 정책을 수정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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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중국, 말레이시아는 딸꾹질 후

대규모 '일대일로' 프로젝트 재개한다

출처-<REUTERS> 링크

 

그러나 이후, 말레이시아는 스스로 필요성을 느낌에 따라 중국과 재협상을 통해 조건을 더 유리하게 바꾸고, 규모를 축소하여 철도 건설을 재개했다. 

 

(철도는 말레이반도 동부 해안을 따라 내려오게 된다. 말레이반도 동부는 서부에 비해 발전이 별로 안 된 곳이다. 때문에 국내적으로 동부 지역 개발 요구가 많았다. 원래부터 존재했던 이런 동부 발전 필요성으로 인해 내용과 규모를 조정, 철도 건설을 재추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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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로 이어지는 것과 다른 루트의 철도(빨간선).

이 철도가 완성되면, 중국은 미군기지가 있는 싱가포르를

거치지 않고도 중동 원유를 수송할 통로를

확보할 수 있다.

즉, 말라카 해협을 지나지 않아도 된다.

출처-<riedrich-Ebert-Stift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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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중국의 원유 수송로

출처-<한겨레>

 

현재 다시 추진 중이긴 하지만, 일대일로 추진 과정에서 볼 수 있는 건, 말레이시아는 상대가 강대국이며 자신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는 국가라 할지라도, 끌려다니기보다 자기중심적인 실용 정치(외교)를 하는 국가라는 점이다. 

 

(추가로 말하자면, 마하티르는 1981-2003에 걸쳐 장기간 총리를 지냈다. 현대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많은 영향력을 끼친 정치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93세였던 2018년 다시 총리가 되며 부활하는 듯했지만, 97세로 출마했던 지난 11월 총선에서 낙마하며 사실상 정치 생활을 마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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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뉴스1> 링크

 

Q : 말레이계는 왜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자신들의 기득권과 연관 지어 걱정했나?

 

말레이시아는 이슬람을 국교로 삼으며, 약 3,300만여 명의 인구를 가진 다종족 국가이다. 우선 제일 비율이 많은 종족은 말레이계로 약 55%다. 원래 말레이 땅에서 살던 원주민, 소수 종족까지 포함하면 약 69%다. 이 69%는 ‘부미뿌뜨라’(땅의 자식)로 불리며, 교육, 보건, 공무원 임용, 사업, 부동산, 주식투자 등 여러 분야에 걸쳐 특혜를 받으며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다. 중국계가 23%, 인도계가 7% 정도를 차지한다.

 

그리고 말레이시아는 아세안에서 유일하게 종족 기반 정당이 존재하는 국가다. 다른 아세안 국가에선 정서상 존재할 수 없는 중국계, 인도계 정당이 존재한다. 영국이 말레이시아를 떠나기 전 ‘종족 정치’를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를 식민 지배하던 영국은 도시, 항만 등 여러 인프라 건설을 위해 중국과 인도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을 말레이시아 지역에 정착시켰다. 동남아시아에 뜬금없이 중국계 국민이 대다수인 싱가포르란 국가가 탄생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영국은 떠나기 전, 자신들로 인해 한 국가 내에 다양한 종족이 존재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고민했다. 그 결과로 ‘종족 정치’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런 이유로 말레이시아는 출발부터가 종족 정치를 한 국가가 되었다.    

 

종족 정치를 한다고 해서 말레이계 정당끼리만 뭉치고, 중국계 정당끼리만 뭉치지는 않는다.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말레이계와 중국계 정당이 연합하여 다른 말레이계, 중국계 정당과 맞붙기도 한다. 

 

다시 부미뿌뜨라(땅의 자식)로 돌아가 보자. 전술했듯 부미뿌뜨라는 일상에서 엄청난 혜택을 받는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면 말레이시아 내 중국계의 영향력이 같이 커질 수 있다. 동시에 부미뿌뜨라가 누리고 있는 기득권의 크기가 줄어드는 건 당연하다. 이것이 많은 부미뿌뜨라, 즉 말레이계 사람들이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하는 큰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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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부미뿌뜨라 우대 정책 완화에

반대 시위하는 말레이계 시민들

출처-<New Straits Times>

 

말레이시아가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중국의 경제력이 큰 만큼, 경제에서 중국과 어느 정도 가까울 순 있겠지만, 그 이상의 관계로 갈 수 있느냐를 고민할 때는 전술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국제 정치는 각국의 국내 사정에 따라 결정되는 법이다. 말레이시아에서 정치인들이 가장 많은 표를 차지하는 말레이계의 목소리를 외면하기는 쉽지 않다. 

 

5.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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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는 ‘하노이’

 

중국이 개혁개방을 실시한지 9년 뒤인 1986년, 베트남도 개혁·개방을 진행했다. 그것이 유명한 ‘도이모이(Doi-Moi)’다. 이후 베트남 경제는 가파르게 성장했다. 

 

베트남은 아세안 창립국은 아니지만, 지난 30여 년간 성장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아세안 내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아세안 관련 사안에 굉장히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많은 노력을 한다. 이런 노력을 다른 아세안 국가들도 인정한다. 

 

또한 캄보디아, 라오스 같은 국가를 아우르며 동남아시아 대륙부 북쪽 지역에서 맏형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Q : 미·중 사이 베트남의 포지션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이라 할 수 있다. 전술한 국가들이 대체로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과 더 가까운 면이 있었지만, 베트남의 경우 중국과 지리적으로 더 가까운만큼 더 확실하게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베트남은 최근 우리나라와의 관계도 급속도로 커졌지만, 역시 베트남에서 경제적으로 제일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는 중국이다. 베트남이 이렇게 성장하기까지 대략 3분의 2 정도는 (직간접적으로) 중국의 힘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다. 최근 중국에서 빠져나가는 공장들 상당수는 베트남으로 가면서 그 특혜를 톡톡히 볼 것이라는 전망이 있지만, 중국에서 여러 공장들이 빠져나가기 전부터 이미 베트남은 중국의 경제성장 덕을 굉장히 많이 봤다(베트남 경제에는 일본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이에 관한 건 후속기사에서 다루겠다). 

 

지금도 베트남 경제에서 무역, 투자, 제조업, 관광(코로나로 주춤) 등의 분야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나다(중국 자본이 투자될 때는 주로 싱가포르를 우회해서 들어간다). 베트남은 절대 중국을 무시하거나 멀리하기 힘들다.

 

한국경제.PNG

출처-<한국경제> 링크

 

투자 자료.PNG

출처-<대외경제정책연구원> 링크

(KOTRA 자료 링크 / 제약산업정보포털 자료 링크)

 

하지만, 역시 안보 면에서는 또 다르다.     

 

베트남 전쟁 당시 중국의 도움을 받았지만, 역사적으로 베트남이 중국에 갖는 감정이 좋지 않은데다 1979년엔 중국-베트남 전쟁이 일어나는 등 부딪치는 사건들이 발생, 감정이 상당히 좋지 않다. 안보적으로는 ‘앙숙’이라 할 수 있다. 최고의 갈등 사안은 뭐니 뭐니 해도 남중국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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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로 중국과 가장 대립하는 국가 중 하나다. 베트남 전쟁 전에 베트남이 가지고 있던 스프래틀리 군도(난사 군도) 영토와 파라셀 군도(시사 군도) 영토를 베트남 전쟁 기간에 중국이 빼앗았다. 그래서 현재 스프래틀리 군도(난사 군도) 일부와 파라셀 군도(시사 군도) 전체가 중국 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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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남중국해 군사기지(2016년)

 

그 외에도 중국은 차곡차곡 남중국해 곳곳에 인공섬을 건설했다. 실제로 보면 대단하다. 작은 산호초에 불과했던 것들이 많은 배들이 정착할 수 있는 항구, 비행기가 이륙할 수 있는 비행장까지 갖춰진 인공섬이 되었다. 이런 조치를 바탕으로, 중국은 남중국해에 있는 유전 등에서 나오는 자원도 다 자기들 것이라면서 마음대로 개발하고 있다. 베트남은 갈수록 열받고 있다. 남중국해 갈등는 갈수록 고조되고 있으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존재하고 있다. 

 

(참고로, 당연하겠지만 베트남은 남중국해라 칭하지 않는다. 우리의 경우처럼 ‘동해’라 부른다. 한국에서 ‘남중국해’라는 표현으로 가장 흔하게 쓰기 때문에,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본 기사에선 ‘남중국해’라는 용어를 썼다. 그러지 않으면, 동남아 국가마다 해당 지역을 칭하는 용어가 조금씩 다르므로 내용이 굉장히 헷갈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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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국해 암초에 중국이 건설한 인공섬.

작은 암초가 1년도 되지 않아

축구 경기장 14배에 해당하는 크기로 변했다. 

출처-영국 군사전문지<Jane's Defence Week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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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지어지면 이렇다

 

베트남은 미국의 힘을 빌려 이 상황을 견제하려 한다. 미국도 중국과 베트남의 갈등을 이용해 해당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중국을 견제하길 원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래서 현재 베트남과 미국은 굉장히 친한 상태다. 미국과 오랜 동맹국인 태국과 필리핀보다도 더 친하게 느껴진다(태국과 필리핀이 미국과 약간 소원해지기도 했다). 

 

Q : 베트남의 투 트랙 외교?

 

이런 상황에서 베트남 공산당 정부는 투 트랙 외교를 진행한다. 예를 들어 보겠다. 베트남 국민들은 반중 정서가 깊다. 베트남 공산당 정부는 이런 국민적 반중 정서와 실질적인 안보 위협을 고려하여, 영유권 문제 등 안보 면에서 중국에게 굉장히 강하게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국가 경제가 돌아가는 문제에 있어 중국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투자와 무역 등 경제 다방면에 있어 중국의 영향력 하에 있다. 때문에 지금 상태의 교류를 깨뜨릴만한 행동은 조심한다. 

 

미국이 베트남에 미군을 주둔시킬 수 있겠냐는 제의를 한 적 있다. 베트남이 거절했다. 캄란만 기지(항구)라는 곳이 있는데, 미군이 베트남 전쟁 당시 사용하던 군사 기지다. 아주 깊은 바다가 있는 항구로 잠수함까지 들어갈 수 있다. 베트남은 미군 함정이 캄란만에 정박하는 것까지는 허용하지만, 거기를 아예 기지로 쓰면서 주둔하는 건 허용하지 않았다.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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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란만 기지

출처-<한겨레>

 

물론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지금처럼 강경 일변도로 나가 갈등이 더욱 고조되면, 베트남은 미국에 더 의존하며 기울 수밖에 없다. 남중국해 문제는 지금도 상당히 심각한 상태여서, 언제 터져도 이상할 게 없을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건 동남아에서 남중국해 직접 분쟁국인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필리핀’도 마찬가지다. 이 문제는 해당 국가들에겐 외교·안보적 스트레스를 넘어서 사활이 걸려 있는 문제다. 

 

(추가로, 남중국해 관련해서 아세안 당사국들은 중국에 공동으로 대응하려 한다. 그래서 중국에 ‘당사국 전부 vs 중국’ 이렇게 다자간 논의를 하자고 하지만, 중국은 영토 문제만큼은 ‘1 vs 1’로 각각의 국가랑 양자간 논의만 진행하겠다고 한다) 

 

Q : 베트남이 현재 표면적으로 태국, 필리핀보다 미국과 더 친해 보이나, 주의해서 봐야 할 점?

 

동맹국이 없는 베트남과 달리 태국과 필리핀은 미국과 오랜 동맹 관계다. 최근 태국과 필리핀은 국내 문제로 인해 미국과 소원해진 부분이 있다(다음 기사에서 다룸). 베트남은 중국의 위협에 맞설 필요성에 따라 미국과 상당히 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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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국가주석 응우옌 쑤언 푹(좌)과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우)

 

하지만 겉모습만 보고, 이젠 베트남이 미국과 더 친하다고 하긴 힘들다. 오랜 동맹국가 사이에는 아무리 관계가 나빠진다 하더라도 ‘이 이상의 선은 넘지 않는다’라는 마지노선이 존재한다. 저변에 흐르는 끈끈한 상호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태국, 필리핀 정부는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미국과 잠시 멀어질 수 있어도,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오랜 동맹인 미국에 대해 가진 인식을 무시할 수 없다. 또 미군과 태국군, 미군과 필리핀군 간 협력이란 틀은 여전히 존재한다. 

 

두테르테 시기, 필리핀이 미국과 제일 멀어졌을 때도 군 간 교류, 합동 훈련 등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이루어졌다. 대통령이나 총리 수준에서 미국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 중국과 더 협력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어도 오랜 기간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며 다듬은 협력이란 틀은 여전히 강력하다.

 

하지만 베트남의 경우는 다르다. 오랜 기간 미국과 쌓아온 신뢰가 없다. 

 

“베트남은 미국을 어느 수준 이상으로 신뢰하는가? 미국과 관계가 아무리 나빠진다 하더라도 이 이상은 가지 않겠다는 마지노선이 있는가?”

 

태국이나 필리핀만큼 있다고 보기 어렵다. 만약 미국과 일정 이상의 갈등이 생기면, 베트남은 언제든지 미국과의 관계를 부술 수 있다. 지금의 베트남과 미국의 관계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서로 간 필요에 의한 전략적인 협력이지, 오랜 신뢰가 바탕이 된 관계는 아니다(자신의 이익이 최우선인 냉혹한 국제관계지만, 외교도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양 국가가 오랜 기간 신뢰를 쌓아온 세월은 무시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국가 간 관계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근저에 흐르는 모습이 다르다는 걸 주의해야 한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의미 없다는 건 아니다. 다른 국가들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 두 나라 관계를 평가하고 이에 따라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베트남과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요점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Q : 베트남이 중국으로부터 본 경제적 이익?    

 

붙어 있는 국가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교역 그리고 투자 등으로 인해 많은 경제적 이익을 얻었을 것이란 건 누구나 알 것이다. 그런 뻔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을 하며 경제성장을 시작하다가, 2001년 WTO에 가입하고 국제 무역 시스템에 안착하며 미친 듯이 경제성장을 했다. 베트남도 1986년 ‘도이모이’란 이름의 개혁·개방을 실시했다. 그 후로 베트남의 경제성장도 서서히 성장하며, 2000년대 초반부터 급속도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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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이 중국의 경제성장 그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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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경제성장 그래프

출처-<IMF>  

 

위 그래프를 보면, 중국과 베트남의 경제성장 그래프가 비슷하지 않나. 베트남이 이토록 경제성장을 한 건 베트남의 자체적 경제 정책인 ‘도이모이’ 덕분도 있지만, 중국과 붙어있는 이유가 크다. 

 

막대한 노동력으로 세계의 공장들을 집어삼키며 엄청난 경제성장을 한 중국은, 외국 자본에게 아주 매력적인 시장이었다. 하지만 폐쇄적이며 정치가 언제라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험이 있는 시장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많은 외국 자본이 중국에 투자했지만, 이에 대한 우려로 인해 중국과 근접해 경제적으로 얽혀있는 주변국에도 많은 투자를 했다. 중국이 경제성장이 주변국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었다. 중국 경제성장의 과실을 따 먹을 수 있으면서 정치적 위험성도 더 적으니 안성맞춤이었다.  

 

베트남이 이 덕을 많이 보았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지난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리의 경제성장도 이 덕을 많이 봤다. 그동안 외국 자본에게 한국과 베트남은 중화권 경제로 인식되어 왔다. 

 

베트남은 많은 회사가 중국을 탈출하는 ‘차이나 엑소더스’로도 혜택을 봤다. 한번 생각해보자. 왜 중국에서 탈출한 기업들이 베트남으로 갔을까. 한국의 기업들만 보더라도 베트남으로 공장을 옮겼다. 싼 노동력 때문이라면, 베트남보다 싼 국가는 널렸다. 베트남으로 간 이유는 적당히 싸면서, 지난 몇십 년간 중국에 구축된 인프라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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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 있는 삼성전자 핸드폰 공장

출처-<SSVN>

 

예를 들어, 중국에서 인도나 아프리카로 공장을 옮겼다고 해보자. 공장은 공장 하나만 있다고 운영되는 게 아니다. 도로, 전기, 하수도 등 수많은 인프라가 공장을 중심으로 갖춰져야 한다. 또한 그때그때 필요한 물품이 즉각 공급돼야 한다. 

 

삼성 갤럭시를 한창 생산하고 있는데, 파란색 갤럭시가 가장 잘 팔린다고 해보자. 그럼 다른 색깔은 생산을 줄이고 파란색 갤력시 생산량을 늘려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파란색 케이스(혹은 파란색 케이스를 만들 수 있는 재료)가 많이 생산돼서 공장에 공급되어야 한다. 

 

인도나 아프리카에 공장을 지으면, 파란색 케이스를 빨리, 그리고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는 인프라가 주변에 있을까? 없다. 베트남에 공장을 지으면, 중국 인프라를 그대로 이용할 수 있다. 중국의 경제, 인프라가 성장하며 베트남이 본 경제적 이득은 직접적인 교역, 투자뿐 아니다. 수많은 가지에 걸쳐 촘촘하게 경제 전방위적으로 퍼져있다. 

 

<다음 편(클릭) – 태국, 필리핀>

 

 

 

 

 

현지 교민에게 직접 듣는 베트남

 

1. 코로나부터 박항서까지

 

2. 체감물가, 노동환경, 인기 전공·직업, 한국어 등

 
 
베트남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추천하는 기사!
생생한 베트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감사의 말

 

본 기사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많은 분들이 취재에 도움을 주셨습니다. 

 

김동엽 교수(부산외대), 김형종 교수(연세대 미래캠퍼스), 김형준 교수(강원대), 윤진표 교수(성신여대), 이재현 박사(아산정책연구소), 한유석 박사(전북대), 그 외 많은 분들(국제 관계 관련 분야에 계시기에 본의 아니게 불이익을 받으실 수 있어 자신을 밝히길 원치 않은 분들이 많습니다)께서 시간과 정성을 들여 도와주셨습니다.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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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