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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시대는 끝났다. 

 

지금으로부터 약 80년 전, 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세계는 미국과 소련 두 패권국의 전쟁터가 되었다.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 등과 같은 전쟁이 있긴 했으나, 미국과 소련이 전면적으로 부딪히는 대규모 ‘열전’이 일어난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은 수준으로 경쟁을 벌였다. 우리는 이 시기를 ‘냉전 시대’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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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CNN>

 

냉전 시대는 1991년 작별을 고했다. 소련이 붕괴했다. 그렇게 한 챕터의 역사가 또 넘어갔다. 새 챕터는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군림하는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였다. 미국만이 세계 패권국으로서 위치했고, 세상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었다. 

 

세계 어느 국가와도 거래가 가능해졌고, 외교가 가능해졌다. 어느 곳이든 여행 갈 수 있었고, 투자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We are the world’ 즉, ‘세계화 시대’였다. 세계화는 우리에게 많은 혜택을 가져다주었다. 

 

우리는 물건의 재료를 가장 싸게 공급받을 수 있었고, 가장 싸게 제품을 생산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의 위협에서도 상당히 벗어날 수 있었다. 세계사에서 (거의) 유례없는 평화의 시대였다.  

 

그러나 이 세상 무엇도 영원한 건 없는 법이다. 평화로웠던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도 서서히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금이 가기 시작한 건 2018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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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Financial Times>

 

2018년 7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향해 보란 듯이 트리거를 당겼다. 340억 달러 규모의 중국 수입품 818종에 25% 대규모 관세를 부과한 것이다. 이에 질세라 중국도 똑같이 340억 달러 규모의 미국 수입품에 25% 보복관세를 부과했다. 이것이 미·중 간 무역전쟁의 시작으로, 미·중 패권전쟁이 표면화되는 순간이었다. 평화의 시대는 그렇게 30여 년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과 2001년 WTO 가입을 거치며 가파르게 성장했다. 눈 깜짝할 새 명실상부 세계 2위 패권국이 되었다. 미국과 비교하면 아직 뒤떨어지는 부분이 많지만, 충분히 미국이 위협을 느낄 수준이 되었다. 그리고 미국을 꺾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 중국의 목표는 과거 일부 아시아 지역에만 국한되었던 ‘중화 시대’를 전 세계로 확장 실현하는 것이다. 일명 ‘중국몽’이다. 미국 입장에선 이 건방진(?) 도전자를 두고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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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AP>

 

이 타이밍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원조 서방 사회인 유럽의 바로 앞에서 1년이 다 되도록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변화는 이뿐 아니다. 지난 몇 년간 중동에서도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질서가 많이 변했고, 세계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유럽에선 극우세력이 대두되고 있다. 러·우 전쟁으로 인해 독일은 재무장을 시작했다. 

 

우리 근처에서는 홍콩이 50년 시한부 인생도 마저 채우지 못하고 끝났다. 일본은 올해 개헌 의석이 확보됐고, 미국의 지지를 받으며 전후 처음으로 '반격 능력 보유'를 공식화했다. 이로써 대규모 군비 확장을 통한 전쟁 수행 능력을 갖게 되었다. 이 외에도 지난 30년간 우리가 교과서에서 꾸준히 배워오던 세계의 모습에서 달라진 부분은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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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17일 MBC 뉴스데스크

 

세상은 더욱 어지럽게 되었다. 편안한 자세로 착석하여 책이나 영화 등으로만 경험했던 100여 년 전의 세계, 즉 고종이 마주했던 냉혹한 국제 싸움판 한 가운데 있는 듯한 서늘한 느낌이 드는 시기다.      

 

신냉전(러시아는 열전 중이지만 아직 지엽적이기에)’이라고 불리는 미·중(+러시아) 패권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며, 세계 각국은 각 패권 세력으로부터 “나의 동료가 돼라”며 강요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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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AP>

 

본 연재는 위와 같은 작금의 상황에서, (우리는 아직도 자세히 모르지만) 이미 중요한 지역으로 부상한 아세안(동남아시아)은 어떤 국제적 상황을 맞이하고 있으며,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다양한 각도에서 디벼보는 기사다. (엄격하게 말하면 ‘아세안=동남아시아 국가 연합’이나 가독성을 위해 본 기사에선 ‘아세안=동남아시아’로 혼용해서 사용하겠다) 

 

국제현실을 똑바로 직시하고, 미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바쁘디 바쁜 현대사회에서 서론이 길었다. 

 

바로 본론으로 드가자. 

 

 

아세안의 두 가지 기본 원칙

 

아세안에 가입한 국가는 총 10개국이다.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베트남, 태국, 필리핀,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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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 아세안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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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업데이트된 소식으로는 늦어도 내후년(2024년)까지 동티모르도 아세안에 가입할 것이라고 한다. 동티모르와 갈등 관계에 있던 인도네시아가 마음을 거두며, 아세안과 동티모르 사이 많은 부분이 이미 합의됐다. 가입은 시간문제인 상황이라고 한다. 본 기사에선 현재 아세안에 가입한 10개국에 대해서만 디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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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 수도는 ‘딜리’

 

그러나, 잠깐!

 

각 국가를 디벼보기 전에 알고 가야 할 아세안의 특징이 있다. 아세안이 어떤 원칙으로 굴러가는지 그 시스템을 우선 이해해야 한다. 

 

아세안에는 정상회의, 국방장관 회의, 외무장관 회의, 조정회의 등 여러 협의체가 있지만, EU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 EU는 소속 국가들과 독립적으로 EU (상임)집행위원장, 정상의회 상임의장 등이 존재하는 등 EU라는 조직이 따로 존재하지만, 아세안은 그렇지 않다. 그냥 10개국이 같이 모여있는 것이다. 그리고 각국이 돌아가며 의장을 맡는다. 

 

이런 면에서 아세안에는 다수결의 원칙이 통용되지 않는다. 뭐든지 아세안 공식적으로 결정되는 사안은 ‘만장일치’로 통과되어야 한다. 이런 아세안의 방식을 ‘아세안 웨이(ASEAN WAY)’라고 한다. 

 

한 가지가 더 있다. ‘아세안 중심성’이란 원칙이다. 외교를 포함한 모든 문제를 헤쳐 나갈 때, 항상 아세안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아세안의 국가들은 각각 외교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로 아세안으로 뭉쳐서 다른 국가들과 외교를 하는데, 이 2가지가 아세안의 외교 핵심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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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태국 방콕의 호텔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

출처-<Bangkok Post>

 

 

미·중 사이 아세안의 포지션

               

아세안에는 미국과 동맹 국가도 있고, 완전한 친중 국가도 있다. 중립 노선 국가도 있다. 미·중 사이 입장이 다른 국가들이 있기 때문에, 아세안은 두 패권국 사이 공식적인 입장을 취할 수 없다. 만장일치제인 ‘아세안 웨이’ 때문이다. 이렇게 부딪치는 문제는 뒤로 제껴둔다. 결정을 미룬다는 것이다. 때문에 현재 크게 이쪽에 가깝지도, 저쪽에 가깝지도 않은 어정쩡한(?) 상태다. 

 

“미·중 사이 균형을 유지하면서, 우리끼리 흩어지지 말고 단결하자” 

 

이 정도가 현재로선 미·중 사이 아세안의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세안 주요 리더들의 발언들이라든지 각종 조사를 보면, 상당수 국가들의 인식은 다음과 같았다.

 

“경제 때문에 중국의 영향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지만, 그로 인해 중국이 압도적으로 아세안에 영향을 미치는 작금의 상황은 굉장히 우려스럽다. 이를 상쇄하고 균형을 맞출 세력은 미국밖에 없지 않겠나”

 

이런 인식을 보여주듯, 미국 주도의 IPEF(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에 명실상부 친중 국가인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를 제외하고 7개의 아세안 국가가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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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EF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 주도로 탄생한

인도-태평양 지역의 경제 안보 플랫폼 및 국제기구다

출처-<산업통상자원부>

 

이들이 참여한 이유는 ①(중국 견제를 위해) 트럼프 정권 이후 동남아 지역 내 약화된 미국의 영향력 회복하고, ②미국과 경제협력을 확대함으로써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도 아세안 국가들을 참여시키기 위해 많은 외교적 노력을 했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참여는 아니다. 특히 경제에 있어 중국으로부터 막강한 영향력을 받는 아세안 국가들이 중국을 배제하긴 힘들다. 이들은 앞으로 IPEF에서 논의되고 있는 4개 분야(①무역 ②공급망 ③청정경제 ④공정경제) 중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맞는 특정 분야에 관해서만 최종 참여하는 실리적 선택을 할 것이다. 지금 미·중 사이에서 엄청나게 계산기를 뚜드리고 있는 중이다. IPEF에 참여하긴 했지만, 앞으로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공식적으로 현재 아세안이 자신들의 지역 내에서 미·중의 균형을 맞추려고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런 전략을 유지하긴 힘들 것이다. 그리스 철학자 투키디데스가 말한 것(투키디데스의 함정)처럼 역사적으로 신흥 강대국이 부상하면 반드시 패권전쟁은 일어났었고, 한쪽이 패배할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미·중의 패권전쟁은 계속될 것이고 더욱 심화될 것이다. 언젠가는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과연 아세안은 그때 어떤 선택을 할까. 지금처럼 각국이 뭉쳐서 공식적인 노선을 정할까, 아니면 냉전 때처럼 서로 다른 노선을 갈까? 예측을 위해선 과거와 현재를 정확히 파악해야 하고, 그를 위해선 많은 정보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함 알아보자. 미·중 사이에서 아세안 각국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상황인지.

 

1.인도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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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는 ‘자카르타’

 

인도네시아는 (굳이 순위를 매기자면) 아세안의 맏형격 국가라 볼 수 있다. 아세안 국가들이 맏형이라고 공식 인정하는 건 아니지만, 아세안 창립(1967년) 멤버 중 하나이기도 하고 국가의 경제력, 규모 등 영향력도 제일 크다. 

 

G20에 속해있을 정도로 큰 국가이며, 아세안사무국도 인도네시아의 수도인 자카르타에 있다. 때문에 아세안 목소리를 대외적으로 발신하는 스피커 역할도 많이 한다. (아세안 내에서 각 국가의 역할, 서로의 관계 등은 후속 기사에서 더욱 자세하게 다룰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인도네시아가 아세안의 맏형격이라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기도 하지만, 이들도 ‘아세안에서 발언권이 강하다’ 혹은 ‘인도네시아의 말을 다른 국가들이 무시할 수 없다’라는 의견엔 이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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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국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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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국가들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인구, 무역, 경제, 탄소 배출의 비중

출처-<G20 Studies Centre, The Lowy Institute & The Global Carbon Atlas>

 

Q : 미·중 사이 인도네시아의 포지션은?

 

인도네시아는 미·중 사이에서 중립 노선을 걷고 있다. 안보적인 면에서는 미국과 더 친하고, 경제적인 면에서는 아세안 모든 국가가 그러듯 중국과 더 관계를 맺고 있다. 최근에는 안보적으로 미국과 좀 더 가까워졌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함이다. 

 

중국은 국력을 날로 키우며 남중국해에서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직접적인 영유권 분쟁 당사국은 아니지만, 갈등을 겪는 부분이 있다. 인도네시아가 자국의 나토나 제도 근처에 설정한 배타적 경제수역(EEZ)이 있는데, 그곳에 중국이 ‘구단선’이라는 자위적인 경계선을 그어 관할권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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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점선이 ‘구단선’이다

출처-<UNCLOS, C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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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YTN> 링크

 

중국 어선들이 그곳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조업하자 인도네시아 당국이 어선들을 나포하거나 폭파하는 강경 조처를 취하기도 했다. 이렇게 중국과 안보적인 긴장이 증가하고 있다 보니, 안보적 측면에서 미국과 좀 더 가까워진 상황이다. 

  

Q : 한국과 비슷해 보이나, 상당한 차이가 있다. 비동맹 외교?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한국과 비슷해 보이지만, 차이가 있다.

 

인도네시아 외교의 중요 특징은 ‘비동맹 외교’다. 어느 국가와도 동맹을 맺지 않는다. 인도네시아는 오랫동안 비동맹 외교를 지향해왔다. 인도네시아가 자랑하는 것 중 하나다. 비동맹 외교라는 건 이쪽에도 끼지 않고, 저쪽에도 끼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이쪽과도 관계를 맺고, 저쪽과도 관계를 맺으며 자유롭게 외교 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외교가 더 세부적이고 변화무쌍하다. 예를 들어,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과 가깝게 지내긴 하지만, 안보 분야라 할지라도 사안에 따라 미국과 협력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한다. 경제에서 중국과도 마찬가지다. 어떤 분야에서 특정 국가와 좀 더 협력할 수는 있지만, 그 분야를 통째로 특정 국가와 협력하는 경우는 없다. 모든 건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안보에서 미국과 많은 협력을 한다 하여, (미국과 동맹인) 우리처럼 전면적인 안보 협력을 하는 게 아니다.

 

이런 인도네시아의 외교를 말하기 위해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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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G20 정상회의

 

지난 11월 중순에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G20 정상회의가 열렸다. 개최국인 인도네시아는 여기에 러시아를 초청했다(동시에 우크라이나도 초청했다). 원래 러시아가 G20에 속해있긴 하지만, 전쟁을 일으킨 관계로 미국과 첨예한 대척점에 서 있다. 때문에 미국은 러시아가 참석하는 걸 굉장히 반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는 러시아를 초대했다. 하지만 동시에 바로 두 달 전(9월 8-9일)에 미국에서 열렸던 미국 주도의 IPEF 장관회의에 참여하여 여러 논의에 활발하게 임할 만큼 미국과 협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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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G20 정상회의에서 악수하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좌)과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우) 

출처-<TASS>

 

지난 6월에는 독일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 인도네시아가 초청받아 참석했는데, 회의를 마친 다음 날 인도네시아 대통령 조코 위도도는 우크라이나를 방문해서 젤렌스키를 만났다. 그다음 날엔 러시아를 방문하여 푸틴을 만났다. 우리나라의 노무현 정권(2006년) 때도 당시 인도네시아 대통령이던 유도요노는 북한을 방문한 뒤, 바로 한국을 방문해 노무현 대통령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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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키이우에서 젤렌스키와 만난 조코 위도도

출처-<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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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0일 모스크바에서 푸틴과 만난 조코 위도도

출처-<AFPBBNews>

 

철저하게 비동맹 노선을 지키며, 세계 어느 한 쪽 세력과 유독 친하게 혹은 안 좋게 지내는 걸 굉장히 경계한다. 그리고 자유로운 외교를 한다. 경제에서 협력하는 나라가 있다 할지라도, 정치에서 기분 나쁘면 싸울 수 있고, 사회문화적으로 거부할 수도 있고 또 다른 차원에서는 협력할 수도 있다.  

        

Q : 어느 한 쪽 세력에 서는 것이 아니라 모든 걸 자기중심적으로 외교 하려는 것에서 패권국의 모습이 보인다?

 

맞다. 인도네시아는 패권국이 아님에도 패권국처럼 외교 한다. 그게 인도네시아의 ‘비동맹 외교’이고, 자신들의 외교적 독립성을 지키는 방법이다. 한국 사람 중엔 인도네시아를 우습게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인도네시아는 자신들이 세계 외교무대에서 ‘비동맹 노선’을 갖는 중추적인 국가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볼 때는, 

 

“무슨 인도네시아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한국과 북한을 화해를 시킨다고 양쪽을 다 방문하면서 메시지를 내냐”

 

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인도네시아는 자신들이 세계 중추적인 국가로서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 인도네시아가 이런 외교를 하는 게 가능한 이유?

 

오랫동안 ‘비동맹 외교’를 유지해온 점이 크다. 인도네시아가 큰 나라라는 점도 영향이 있다. 인구가 많고, 영토도 무지 넓다. 자원도 많다. 지난 20년간 경제성장도 많이 했다. 세계 강국의 요소를 많이 갖고 있다. 때문에 인도네시아는 어느 한쪽에 붙지 않고 중립적 입장을 지속해서 취해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문제가 없었다. 미국이나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큰 나라이며 아세안 내 영향력도 상당한 인도네시아는 포섭의 대상이지, 어느 한쪽을 강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지리적으로도 미국, 중국으로부터 떨어져 있어서 직접적인 위협에는 직면하지 않기 때문에 명백한 입장을 취할 필요가 크지 않다는 것도 인도네시아의 외교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다.

 

2. 싱가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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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가 ‘싱가포르’ 국가 자체다

 

규모와 인구는 작지만, 뉴욕과 런던에 이어 세계 3위 금융 허브(홍콩을 제치며 아시아 1위)로서 자리한 금융 강국이며, 태평양 항로와 유럽 항로를 연계하는 세계적인 환적 허브로 역할 하는 물류 강국이다. 관광 강국이기도 하다. 이를 바탕으로 1인당 GDP 세계 5위에 랭크될 정도로 높은 국민 소득을 자랑하는 국가다. 

 

싱가포르 금융허브.PNG

출처-<FORTUNE KOREA> 링크

 

Q : 미·중 사이 싱가포르의 포지션은?

 

싱가포르는 미·중 사이에서 최대한 중립적인 포지션을 잡으려 한다. 아세안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며 여러 안보 위협이 있다 보니 안보 부분에선 미국과 좀 더 협력하는 부분 많다. 미군도 주둔하고 있다. 허나, 중국과의 관계도 잘 유지한다. 아무래도 아세안 국가이다 보니 역시 경제에서 중국과 관계가 깊다. 

 

흥미로운 점은, 싱가포르 역시 인도네시아처럼 자신들만의 독특한 외교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 아니다. 안보에서 미국과 좀 더 협력한다고 중국을 배척하지 않는다. 중국과 해군 훈련도 같이한다. 미·중 사이에 굉장히 여러 가지 보험을 들어놓은 국가다.

 

Q : 우리가 모르는 싱가포르의 리더십?

 

1인당 소득 수준은 높지만, 도시 규모 국가이기 때문에 싱가포르가 뭔 힘이 있냐며 우습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 싱가포르는 아세안에서 굉장히 중요한 국가이다. 아세안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굉장히 브레인 역할을 하는 게 싱가포르다.

 

2019년도 아세안은 ‘AOIP(ASEAN Outlook on the Indo-Pacific)’을 발표했다. 한국말로 하면 ‘아세안 인도-태평양 관점’이다. 아세안이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정리한 아주 공식적인 문건이다. 주요 내용 중엔 전술했던 미·중 사이의 균형이 있다. 이것을 만드는 데 싱가포르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 외에도 지금까지 아세안 내에서 논의된 여러 사안들을 보면 싱가포르가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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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 정상회의에서 발언하는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 (재임: 2004-현재)

출처-<리셴룽 페이스북>

 

싱가포르는 다른 아세안 국가에 비해 엘리트들이 잘 구성되어 있을 뿐 아니라 대학의 연구소와 싱크탱크도 잘 되어 있어 아세안에서 가장 정책, 전략을 잘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들이 정부에 전달되어 효율적인 피드백이 이루어진다. 그 후, 싱가포르 정부는 이런 시스템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정책, 전략을 아세안 회의에 가서 발표한다. 많은 경우, 다른 아세안 국가들은 싱가포르에 설득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싱가포르는 아세안이 움직이는 방향과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국가로 위치하고 있다.

  

Q : 할 말은 하고 사는 나라?

 

싱가포르는 대만과도 합동 군사훈련을 한다. 참 특이한 국가다. 미국, 중국, 대만 모두와 군사훈련을 같이 하는 국가이니. 경제적으로만 내세울 게 있는 나라가 아니고, 안보적으로 굉장히 스마트한 외교를 하는 국가다.

 

암튼, 대만과 합동 군사 훈련한 내용으로 돌아가 보자. 2016년 싱가포르 군대가 장갑차를 이끌고 대만에 가서 훈련하고 배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배가 홍콩 즈음 왔을 때, 이를 지켜보던 중국이 장갑차들을 압류했다. 

 

뉴시스 장갑차 억류.PNG

출처-<뉴시스> 링크

 

그때 싱가포르가 중국에 대놓고 엄청나게 항의했다. 굉장히 사납게 말이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이러~이러한 맥락에서 대만과 평화롭게 해오던 훈련을 했을 뿐인데, 너희가 뭔데 우리 장갑차를 압류하느냐? 띠발!”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중국이 아무 소리 못 하고 2주 만에 장갑차를 다시 돌려줬다. 싱가포르는 작은 국가라고 해서 참고만 있지 않는다. 목소리를 낼 땐, 결단력 있게 확실하게 내는 국가가 싱가포르다.  

 

3. 브루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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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는 ‘반다르스리브가완’

 

브루나이는 석유와 천연가스가 많이 나는 부국 중 하나로, 아세안에서 싱가포르 다음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다. 이슬람을 국교로 삼으며, 술탄(왕)이 전제정치를 하는 국가다. 아세안 국가 중 우리에게 제일 알려지지 않은 국가일 것이다. 면적은 5,765km²(서울의 약 9.5배)로 면적 728.6km²인 싱가포르보다 훨씬 크지만, 인구는 45만 명 정도로 약 600만 명의 싱가포르보다 훨씬 적다.

 

Q : 미·중 사이 싱가포르의 포지션은?

 

싱가포르의 포지션과 같다. 브루나이는 안보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브루나이는 싱가포르를 따라간다고 볼 수 있다. 싱가포르에 많이 의지한다. 안보나 경제나 ‘1 대 1’로 매칭되어 있다. 안보적으로 싱가포르의 방위전략을 따라가며, 군사훈련도 같이 많이 한다. 싱가포르 군대가 브루나이에서 같이 훈련하기도 하고, 브루나이 군대가 싱가포르에서 같이 훈련하기도 한다. 

 

경제도 비슷하다. 브루나이의 화폐 단위는 달러인데, 이 브루나이 달러는 싱가포르 달러와 ‘1 대 1’ 등가교환이 가능하다. 싱가포르와 브루나이가 맺은 통화협정 때문이다. 원화와 각각 환율을 비교해봐도 가끔 아주 조금씩 차이가 날 때도 있지만, 대부분 싱가포르 달러와 환율이 같다. 싱가포르가 브루나이 달러를 관리해주는 것이다. 서로의 국가에서 각자의 화폐를 사용도 가능하다. 브루나이에서 싱가포르 달러를 쓸 수 있고, 싱가포르에서 브루나이 달러를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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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네이버 화면 캡처>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의 직접적인 당사국(중국, 대만,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베트남, 필리핀 6개국) 중 하나다.

 

Q : 싱가포르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다? 

 

이를 알기 위해선 말레이시아 이야기를 해야 한다. 말레이시아는 195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독립 당시 국가 이름은 ‘말라야 연방’으로, 현재 말레이시아 영토 중 말레이반도에 위치한 지역만 해당했다. 그러던 1963년 싱가포르와 사바, 사라왁이 연방에 가입하며 ‘말레이시아’로 국가명이 바뀌었다. 그러나 2년 뒤인 1965년, 싱가포르는 연방에서 반강제적인 탈퇴를 맞이했다. 

 

사라왁주 사바주.jpg

 

사실 싱가포르가 연방에 가입할 때부터 문제는 예견되었다. 말레이시아는 크게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 이렇게 세 종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독립 이후 말레이계에겐 수적 우위로 인한 말레이계의 정치 권력 확보가 핵심 국정 현안이었다. 그래서 중국계가 다수인 싱가포르의 영향력을 우려했다. 싱가포르가 연방에 가입할 때, 사바, 사라왁주를 같이 가입시킨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사바, 사라왁 주민 대부분이 비무슬림이었지만, 상대적으로 말레이와 정체성이 유사하다고 말레이계(대부분 무슬림)는 판단했다) 

 

연방에 가입 후,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 내 종족 간 평등을 요구하고 개혁을 원했지만, 말레이 기반 집권 세력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들의 갈등은 1964년 싱가포르에서 종족 간 유혈 충돌이 발생하면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결국 말레이시아 국회의 결정으로 싱가포르는 강제 독립이 되었다. 그렇게 말레이계는 말레이시아 내에서 확실한 정치적 우위를 확보했다.

 

그런데 문제는 싱가포르는 당시 자체적으로 살아나기가 막막했다. 독립을 원하지 않았다. 싱가포르는 영토도 협소하고, 인구도 100만 명 정도였으며, 1인당 국민소득은 540달러인 가난한 소국이었다. 인종, 종교, 언어도 다양하여 국가통합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리콴유 눈물.jpg

 

위 사진은 싱가포르의 독립을 발표하며 총리였던 리콴유가 눈물을 보이는 장면이다. 기쁨의 눈물이 아니다. 슬픔과 분노의 눈물이다. 이때 막막했던 싱가포르를 오일머니로 많은 돈을 벌어들인 브루나이가 많이 도와주었다. 두 국가 모두 영국 자치령이었을 과거에도 서로 협력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 정도의 깊은 신뢰가 시작된 결정적 계기는 이때였다. 

 

브루나이 왕 리셴룽.JPG

하지 하사날 볼키아 브루나이 술탄(좌)과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우)

출처-<싱가포르 총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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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말

 

본 기사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많은 분들이 취재에 도움을 주셨습니다. 

 

김동엽 교수(부산외대), 김형종 교수(연세대 미래캠퍼스), 김형준 교수(강원대), 윤진표 교수(성신여대), 이재현 박사(아산정책연구소), 한유석 박사(전북대), 그 외 많은 분들(국제 관계 관련 분야에 계시기에 본의 아니게 불이익을 받으실 수 있어 자신을 밝히길 원치 않은 분들이 많습니다)께서 시간과 정성을 들여 도와주셨습니다.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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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