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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2002년생이다.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대입이 당연한 사회에서 응원 없이 성인이 되었다. 나뿐만이 아니다. 어려운 형편 때문에 또는 필요를 느끼지 못해 대학에 가지 않은 자들도 사회로부터 공식적인 격려나 응원받지 않은 채 성인기에 진입한다. 수능을 보지 않아서이다.

 

수험생은 사회의 응원과 축하를 받는다. 수험생을 응원하고자 플래카드를 들고 교문 앞에 선다. 어린 동생이 수능을 마치고 나오는 오빠를 맞이하려고 종종걸음으로 달려간다. 부모는 예수가 죄인을 끌어안듯이 자식을 껴안고서 눈물을 흘린다. 들이는 수고로 볼 때 수능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일처럼 보인다. 수험생을 응원한다며 정치인들이 여야 할 것 없이 SNS에 글을 올린다. 길을 헤매는 수험생에게 경찰차가 무임택시로 변한다.

 

영어 듣기 시험에 방해가 된다며 비행기가 뜨지 않고 군대가 군사훈련을 중단한다. 순국선열을 기리려고 국기를 게양하거나 잠시 묵념할 때 이리 수고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대한민국에서 수능은 하늘이 열리거나 외세로부터 독립하거나 정부를 수립하는 일만큼 위상을 지닌다.

 

수능 시험은 대학 수학능력을 평가하는 것을 넘어 신분을 결정하는 시험이다. 신분은 체계적으로 나뉜다. 2년제와 4년제, 인서울과 지방대를 가른다. 지방대는 '지거국'과 '지잡대'를 나눈다. 문과와 이과를 나누고 문과는 상경 계열과 '문사철'을 나눈다. 이과도 의예과와 순수과학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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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간판으로 철저하게 나눈 신분에 따라 차별이 존재한다. 낮은 서열의 대학에 가거나 대학에 가지 못한 자는 임금과 노동환경에서 차별받는다. 학력에 따른 노동시장 내 차별이 어떻게 존재하는지 알아보자.

 

1. 학력에 따른 임금 격차

 

대한민국 노동시장에서는 학력에 따른 임금 격차가 뚜렷하다. 대졸자 임금을 100으로 가정할 때 고졸자 임금은 63.3에 불과하다. 월급으로 환산하면 대졸이 300만 원을 받을 때 고졸은 189만 9,000원을 받는 것이다. 100~299인 규모 사업장에서는 더 심각하다. 대졸 대비 고졸의 임금수준이 59.2%까지 떨어진다. 고졸은 대졸보다 임금이 적고 노동시간은 길다.

 

고졸 노동자 초과근로시간은 월평균 26.2시간이다. 대졸 이상은 4.2시간이다. 고졸이 대졸보다 한 달에 22시간을 더 일하며 1년으로 환산하면 264시간을 더 일하는 것이다. 주 5일-8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1년에 한 달 반 더 일하는 터이다. 이것은 초과근무가 잦은 생산직에 고졸 노동자가 집중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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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겨레>

 

더 오래 일하고도 더 적은 임금을 받는 고졸 노동자는 저소득층이 될 확률이 높다. 저소득층에 속하는 만 19세 이상 가구원 학력을 보면 44.8%가 '고등학교 졸업 및 중퇴'이다. '대학교 졸업 및 중퇴'는 17.2%에 불과하다. 저소득층을 구성하는 비율이 학력에 따라 2.6배나 차이 나는 것이다.

 

고졸 이하 저소득층에게 희망이 사치일지 모른다. 소득 하위 20%에 속하는 저소득층은 식비·주거비·교통비를 합친 필수 생계비로 전체 가처분 소득 79%를 지출한다. 주로 병원비로 구성하는 보건 지출까지 더하면 97.1%이다. 생존을 위한 최소 생계에 전체 가처분 소득 79%를 지출하면서 어떻게 내일이 있는 삶을 꿈꿀 터인가. 운이 나빠 아픈 곳이라도 있다면 한 달에 벌어들이는 돈을 거의 다 써야 한다.

 

대한민국 고졸은 더 오래 일하고 더 적은 임금을 받으며 받은 것조차도 생계유지에 거개 써야 한다. 더불어 목숨을 잃기 쉬운 환경에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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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링크>

 

2. SPC 노동자의 부치지 못한 편지

 

대한민국은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루어냈다. 고국을 식민 지배했던 일본의 1인당 국민 소득을 곧 뛰어넘는다. 할아버지들은 보릿고개에서 아사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면 지금 우리는 불러버린 배를 집어넣고자 안간힘을 쓴다.

 

대한민국은 갤럭시를 만들고 제네시스를 만들어 낸다. 갤럭시는 세계 최고 수준 스마트폰이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이며 세계 1위 기업인 애플의 아이폰을 뛰어넘는다. 현대차는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3위 판매량을 기록했다. 조선소도 없던 나라가 배를 만들더니 세계 최고 조선업 강국이 되었다. 이북에 침공당했을 때 탱크 하나 없던 나라가 이제 미사일과 자주포를 수출한다.

 

단군 이래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는 세계 10위 경제 대국이자 세계 6위 군사 강국 대한민국에서는 매일 노동자 6명이 일하다가 죽는다. 떨어져서 죽고 깔려서 죽고 기계에 끼어서 죽는다. 2020년에는 2,062명이 그렇게 죽었다. 가진 자가 위험을 외주화하고 가지지 못하고 배우지 못한 자는 굶주린 배를 채우고자 외주화된 위험이 도사리는 현장으로 향한다.

 

위험을 외주화하는 이유는 '비용 절감' 때문이다. 비용 절감이란 자본가들이 이미 불러버린 배를 더 불리고자 노동자 안전에 써야 할 돈마저 쓰지 않는 것을 말한다. 공사 현장에서 떨어져서 죽는 노동자들은 기업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비계가 부실해서 죽는다. 비계를 벽에 튼튼히 고정만 하면 되는데도 떨어져서 죽는다. 최첨단 반도체를 만들어내는 나라에서 이를 해결할 기술과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푼돈마저 아끼려는 자들에 의해 죽는다.

 

두 달 전 평택 SPC 제빵 공장 노동자가 죽었다. 밤샘 근무 후 새벽 6시 그는 소스 배합 기계에 상반신이 끼어서 즉사했다. 2인 1조로 근무해야 한다는 안전 수칙을 사측이 무시해서다. 20대였고 고졸 노동자였다. 이틀 뒤 남자친구와 부산 여행을 계획했었다고 한다. 남자친구는 직장동료였다. 남자친구가 먼저 퇴근한 공장에서 홀로 사망했다.

 

"무슨 일 있어? 카톡 왜 안 받아?" 그가 카톡에 답장하지 않자 남자친구는 연신 그를 찾았다. 안전 수칙이 지켜지기만 했다면 죽지 않았을 그는 젊은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부치지 못한 편지가 소스 배합 기계에 끼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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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사고 사망자와 연인의 사고일 카톡 내용

출처-<CBS 노컷뉴스 보도화면 캡쳐>

 

산재 사망자 대부분이 블루칼라(blue-collar, 육체노동자)다. 사망자 51.9%가 건설업에서 발생한다. 뒤를 제조업이 잇는다.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잦은 초과근무에 노동환경도 열악하다. 사람들의 차별적인 인식은 덤이다.

 

술에 취한 의대생이 한강에서 사망한 일이 있었다. 굴지의 대기업에 다니는 부모는 같이 있던 친구를 의심했다. 정부가 사건을 은폐하려고 한다는 말까지 했다. 언론은 대서특필했다. 죄 없는 친구는 순식간에 혐의자로 변모한다. 한강 실종 의대생, 그 가족과 어떠한 인연도 없던 사람들이 학부모라는 이름으로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언론의 분노는 선택적이다. 술에 취해 객사한 의대생에게는 가슴 아파하지만 공장에 다니던 고졸 딸의 죽음에는 무심하다. 학부모들 시위로 의대생이 객사한 한강공원은 음주 금지가 검토되었다. 하루짜리 기삿거리였던 고졸 딸이 죽은 곳은 또다시 누군가 죽을 곳으로 상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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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이 나라는 학력으로 신분을 결정한다. 낮은 신분에 속하는 사람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노동 환경에 노출한 채 일한다. 신분에 따른 차별이 목숨까지 위협하는 대한민국에서는 그 신분이 대물림되고 있다.

 

3. 세습 신분 국가 대한민국

 

만인의 평등을 천명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는 신분이 세습된다. 부모 학력을 자녀 학력으로 대물림한다. 소득 격차가 교육과 학력 격차를 낳는다. 격차가 격차를 낳는 굴레에 빠진 것이다. 고학력, 즉 높은 신분은 높은 소득을 보장받는다. 가구주가 4년제 이상 대학을 졸업한 가구 79.6%가 소득 상위 40%에 속한다. 이 중에서 48.5%는 소득 상위 20%에 속한다. 10명 중 8명이 소득 상위 40%에 속하며 그 8명 중 4명이 소득 상위 20%에 속하는 것이다.

 

부모 소득격차에 따른 자녀 교육격차는 사교육비 지출 차이를 보면 알 수 있다. 소득 하위 20%는 사교육비로 월 10만 8,000원을 지출한다. 반면 상위 20%는 월 87만 2,000원을 사용한다. 소득에 따른 사교육비 지출이 8배 이상 차이 나는 터이다. 이렇게 큰 사교육비 격차가 다시 자녀 학력 격차로 이어진다. SKY 의대 신입생 10명 중 7명이 고소득층이다. 대한민국 최고 의대라고 불리는 서울대 의대는 신입생 84.5%가 고소득층이다.

 

법대도 다르지 않다. 21개 로스쿨 신입생 출신 대학을 보면 SKY 출신이 48.7%이다. 서울대 로스쿨은 신입생 92.1%가 SKY 출신이다. 연세대 로스쿨 86.4%, 고려대 로스쿨 79%가 SKY 출신이다. 전국 25개 로스쿨에 입학한 신입생 51%가 고소득층이며, SKY 로스쿨은 58.3%가 고소득층이다. 대한민국에서 명문대 의대와 로스쿨은 가진 자들의 전유물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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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KBS>

 

소득에 따른 학력 격차는 명문대 의대와 법대뿐만 아니라 ‘일반대’라고 불리는 4년제 종합대학에서도 나타난다. 일반대 국가장학금 신청자를 보면 차상위 계층 비중이 2020년 기준 7.5%에 불과하다. 2017년에는 9.2%였으나 꾸준히 감소하였다. 그다음으로 가구소득이 적은 1~3구간 비중도 19.7%이다. 1~3구간 같은 경우도 2017년에는 29.5%를 차지하였지만 매년 감소하였다. 반면 고소득층인 8~10구간은 일반대 국가장학금 신청자 중 42.5%를 차지한다. 2017년에는 28.2%였다. 같은 기간 저소득층 비중은 줄고 고소득층 비중이 늘었다. 해가 갈수록 격차가 심해진다.

 

나열한 것을 보면 신분이 세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학력으로 신분이 결정되고 정해진 신분에 따라 임금과 노동 환경에서 큰 차가 나타난다. 가진 자는 경제력으로 자녀에게 신분을 물려준다. 가지지 못하고 배우지 못한 자는 물려줄 자산이 없다. 학벌로 신분 상승할 수 있는 사회에서 어떻게든 자식을 명문 대학에 보내려고 한다. 모두가 높은 신분을 차지하려고 경쟁을 벌이다 보니 살인적인 경쟁이 생겼는데, 이 속에서 청소년들은 병들어 간다.

 

4. 청소년 자살과 우울증

 

살인적인 경쟁 속에서 청소년들은 우울하다. ‘우울한 청소년’이 한편으로 가능한지는 모르겠으나 대한민국에서는 가능하다. 중고등학생 4명 중 1명이 우울감을 느낀 경험이 있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우울감이란 '2주 내내 일상생활을 중단할 정도로 슬프거나 절망감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우울감을 느끼는 학생 중 51.4%가 경쟁과 대학입시 때문이다. 많은 청소년이 경쟁과 대학입시 때문에 우울한 것이다. 청소년 자살률도 높다. 청소년 사망자 중 50.1%가 자살로 사망한다. 대한민국에서 사망한 청소년 2명 중 1명은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여 죽은 것이다.

 

또 큰 문제는 낮은 우울증 치료율이다.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1위다. 우울증 유병률 또한 1위다. 그런데 우울증 치료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인구 대비 항우울제 처방량도 세계 최저이다. OECD 국가 중 인구 대비 가장 많은 사람이 우울증에 걸린다면 그만큼 치료와 처방이 이루어져야 할 터인데 그렇지 않다. 정신과 치료에 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정신과 치료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문화 속에서 청소년들은 학업 스트레스로 우울감을 느끼지만 치료받기를 망설인다. 아무리 우울하더라도 정신과 진료를 꺼리는데 이는 미래에 있을 진학과 취업을 걱정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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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JTBC 영상 캡쳐>

 

이것은 필자 경험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우울감을 느꼈고 교내에 설치된 Wee 클래스에 방문하여 도움을 받았다. 상담 선생님과 얘기를 나누고 우리 집의 형편을 고려하여 지원이 이루어졌다. 정신과 치료를 지원 받았다. 집에서 멀지 않은 정신과에서 치료받았는데 전부 비보험으로 받았다. 어머니의 걱정 때문이었다. 정신과 치료 기록이 혹여나 미래의 대학 진학이나 취업에 있어서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까 염려한 것이다.

 

학력으로 신분을 나누고 신분에 따라 임금과 노동 현장 안전까지 격차가 또렷하다. 학력은 소득 격차를 낳고 소득 격차는 교육과 학력 격차를 불러온다. 우리는 세습과 격차의 굴레에 갇혔다. 학력으로 신분이 정해지기에 십상이니 모두 학력을 높이고자 경쟁을 벌인다. 경쟁은 살인적이다. 개인이 지닌 흥미와 적성, 재능이 무시된다. 오로지 더 높은 신분을 얻고자 10대를 보낸다. 더 높은 신분을 두고서 벌이는 쟁탈전 속에서 청소년들은 병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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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이재명 의원·정원오 성동구청장

SNS에서 영감을 얻었음을 밝힙니다

 

한 해가 저편을 건너가려고 한다. 겨울이 또 찾아왔고 살이 에이는 바람이 분다. 수능을 마치고 대학 갈 준비하는 청소년도 있을 것이고 재수를 준비하는 청소년도 있을 것이다. 대학과는 무관하게 성년기를 맞이하는 청소년도 있을 것이다. 모두 20살을 맞이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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