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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생활을 하던, 반장급 인부들의 세계관은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번 돈으로, 본국에서 집을 사고, 사업 종잣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에 분개했다. 그것을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한국인은 뼈 빠지게 일해도 수도권에서 아파트를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고소 작업을 할 때도 이상한 가치관이 발현됐다. 안전벨트를 매면 일이 안 된다고, 안전 장비를 거부했다. 맨바닥 급의 전문업체에서 일하면, 사람대접을 못 받는다는 자격지심 때문에, 위험한 작업을 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졌다.

 

뜬금없이,

 

"우리 딸이 학교에서 일진이라 난 행복하다."

 

고 말하는 인부도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어떤 말이라도 뱉으면, 이 답답한 마음이 풀릴 것도 같지만. 그것보다 그들과 언쟁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래서 난 표출의 한 방식으로, SNS를 선택했다. 남아시아 오지를 돌아다닐 때, 한국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던, 트위터. 나에게 산소 호흡기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왜 그 많은 채널 중에 트위터를 선택했을까.

 

이내, 무지막지하게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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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합뉴스>

 

트위터, 나랑 안 맞아

 

난 스페인과 멕시코에서 자랐다. 그래서 초등학교 입학, 졸업 기록만 있지, 6년 간 학사 기록이 한국에 없다. 학교에서 배운 제1 언어는 스페인어, 제2 언어는 영어였다. 한국어는, 집에서 보던 한글로 된 책 몇 권과 주말 학교에서 배운 게 다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한글 문장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다. 지금도 머릿속이 엉킨 상태에서 한글로 글을 쓰면, 비문과 오탈자가 꽤 많다. 내 성장 배경은, 글로써 승부를 봐야 하는 트위터에 적합하지 않았다.

 

거기다 일하는 곳은 건설 현장. 휴대폰에 정신이 팔려 사고가 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근무 중, 휴대폰 사용은 금지다. 새벽 식사 시간, 오전 9시 언저리 간식 시간, 점심시간, 그리고 오후 3시 정도 또 한 번의 간식 시간에 짧게 휴대폰 사용이 허용된다. 이 역시, 단문으로, 빠르게 설전을 주고받아야 하는 트위터에 적합하지 않다. 트위터 논쟁에 휘말리면 대책 없이 두들겨 맞기 딱 좋은 근무 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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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어기 보이시는가, 휴대폰 사용 금지라고.

 

그런데도 트위터에 접속한 이유는, 노가다 중, 앞서 말한 왜곡된 정의감,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였다. 저 인간들보다는 트위터 유저들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 열?

 

어느 순간부터, 열만 더 오르고 로그아웃하는 날이 많아졌다.

 

예멘 난민 500명이 제주도에 도착한 그날부터.

 

SNS, 공격의 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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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KBS>

 

무지하면 얼마나 쉽게 여론에 휩쓸리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속속 발생했다. 아잔(أَذَان, 이슬람 기도를 시작할 때 외치는 소리) 한 번, 들어본 적 없는 사람들이 쏟아내는, 이슬람 종교를 가진 난민들을 향한, 말도 안 되는 공격들.

 

서방 국가에 정착한 이슬람 이주민 자녀들이 정체성 혼란을 겪고, Lone wolf(외톨이 늑대, 조직에 속하지 않은 단독 테러범)가 될 위험성이 있다는 연구가 있기는 하다. 그런데 일부 사례를 근거 삼아, 난민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글이 SNS를 장악했다. 대책을 강구하지 못할망정, 혐오 가득한 말만 뱉고 있으니, 도저히 트위터를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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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본 적 없는 사람이 태반일 텐데, 그때는 모두가 이슬람 전문가였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아래 트윗을 본 건, 오후 간식 시간. 내가 아는 바와 다른 내용이, 기정사실로 되어 퍼뜨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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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다문화 센터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려면 한국어 교원 2급 이상의 자격증이 필요하다. 위 조건을 갖추지 못하면 한국어를 가르칠 수 없다. 반면, 자원봉사자는 일반 사무 지원 업무를 본다. 그러니까, 한국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자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또한 '남편이라는 작자들이 신용카드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는 말도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외국인은 카드 발급이 잘되지 않기 때문에, 한국 국적 배우자 명의로 카드를 만드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물론 본 트윗에서 우려하는 나쁜 인간이 존재하는 것도 틀림없다.

 

하지만 여기서 사실 여부는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조리돌림이 목적이었다. 개발도상국 여성을 배우자로 맞이하는 한국 남자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좋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런 잣대로 본다면, 난 아주 좋은 먹잇감이다. 왜냐?

 

나는 노가다하는, 50대 다문화 가정의 한국인 가장이기 때문이다.

 

슬퍼진다.

 

페이스북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장문의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심력을 요구한다. 고된 노동 후, 집에 돌아와 타자를 칠 힘이 없다. 무슨 에너지가 남아 글을 쓰겠나.

 

그러다 보니 결국, 인스타그램에 정착했다. 길게 코멘트를 적지 않아도 되는 공간. 끔찍하게 더운 날씨든, 뼈마디가 시린 한겨울이든, 한 장의 이미지가 훨씬 많은 것을 전달한다.

 

현장의 기록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말 못하고 속에 담아 두는 일이 없어야 한다. 노가다 일을 할 때,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해야 실수가 적다.

 

건설 현장을 둘러보면, 비포&에프터로 찍을 만한 장소가 많다. 무엇보다 사진 한두 장 찍는 걸로 뭐라 하는 사람도 없다. 일하면서 종종 사진을 찍고, 사진에 대한 설명을 노트에 기록하고 있으면, 다들

 

"공부 열심히 하네~!"

 

대단하게 생각한다.

 

"저 시끼, 사진 찍으면서 놀고 있네?"

 

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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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2미터 각 파이프와 4미터 각 파이프로 기리바리(우리말로 버팀대, 구조물이 넘어지지 않도록 지지대를 만드는 것)를 세워 놓은 것이다. 뭐 있어 보이는 사진이라고 생각해 보여드리는 건 아니다. 내 영혼의 탈곡기였던, 우리 팀 총 반장님이 나에게 처음으로

 

"자네, 수고했네."

 

칭찬을 해주셨던, 업무 현장을 기록한 사진이다.

 

사진 한 장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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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근로자 사진전-링크)

 

고용 노동부는 산하에 건설 근로자 공제회를 두고 있다. 건설 근로자들은 이 현장, 저 현장을 계속 떠돌아 다니기 때문에 퇴직금이 없다. 그래서 건설 근로자 공제회는 시공사들로부터 일 인당 6,500원을 받아, 대부분 퇴직금으로 적립해준다. 일부는 운영비로 쓰기도 한다.

 

무엇보다 매년, 공제회에서 사진전을 개최하는데, 이곳에 동료를 찍은 사진을 출품할 수도 있다. 노가다들의 사진이 뭐 대단한가 싶겠지만, 좋은 사진들도 꽤 많다. 한번 둘러보는 것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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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가 오가는 험난한 노가다 현장도, 저녁 조명이 켜지면 야경이 꽤 근사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며 가끔 스스로 위로한다.

 

무탈한 하루였다. 오늘도 잘 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