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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기자가 인도의 적이 되었다  

 

2015년 5월 말, 약 3년간의 뉴델리 근무를 마치고 워싱턴으로 돌아가는 뉴욕타임스 서남아시아 담당 기자의 글 한 편이 뉴욕타임스에 실렸다. 기사 내용은 이렇다. 

 

2012년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뉴델리에 부임한 가디너 해리스(Gardiner Harris)는 인도에 도착한 지 몇 달 만에 여덟 살짜리 아들이 호흡곤란을 포함, 다양한 증상을 겪었다. 결국 폐 기능이 절반 가까이 손상되어 정기적으로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아야만 했다. 그는 아들이 천식 발작까지 겪기 시작하자 가족의 건강까지 희생하며 뉴델리에 계속 거주해야 할지 엄청나게 고심하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인도에서 조금 더 살아보기로 하고 3년을 살았다. 그러나 그로 인하여 인도 고생담만 더 늘어났다. 

 

끊이지 않고 주민들 건강을 위협하는 뎅기열, 길거리에서 끈질기게 사람들을 쫓아다니는 거지 떼들, 거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널려있는 짐승과 사람의 분뇨, 더불어 집에서 빠져나가는 하수와 집으로 들어오는 수돗물이 뒤섞일 정도로 자기 집이 엉터리로 지어졌다는 것도 발견한다. 그제야 그는 더 이상 뉴델리에 살아선 안 되겠다고 결심한다. 그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기사는 가디언·BBC를 포함한 세계 유수 언론뿐만 아니라 인도 내 신문에도 대부분 게재되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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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KBS2 영상 갈무리>

 

그의 글이 다소 공격적이기는 했다. 3년간 지긋지긋한 인도 생활을 끝내고 떠나는 사람에게 무슨 애정이 남아있겠는가? 공기오염과 수질오염 그리고 숨길 수 없이 매일 마주쳐야 하는 빈곤의 현실까지. 안 좋았던 기억을 몽땅 소환해서 한바탕 한풀이하듯이 키보드 위에 쏟아부은 그의 글을 읽고 어떤 인도인도 기분이 좋았을 리 없었을 터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글이 없는 사실을 지어낸 것은 아니었다. 인도에 관해서 조금이라도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경험적으로 익히 알고 사실을 지면에 옮겨 놓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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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세프 노상 배변 방지 캠페인

"노상 배변에 당신의 목소리를 높이세요"

유니세프 인디아에 따르면 인도의 노상 배변 규모가

매일 6만 5천 톤에 달한다고 한다.

출처-<유니세프>

 

그의 글에 기분이 상한 인도인들은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달려가 비난을 쏟아냈다. 그들은 인도의 공기와 수질 오염에 관해서는 제대로 반박하지 않았다. 뜬금없이 ‘음식과 문화를 포함해서 인도에 훌륭한 게 얼마나 많은데 무슨 불만이 그리 많냐'는 비난부터 ‘인종차별주의적 글이다’라는 비난까지 논점을 흐리는 다양하고 장황한 글이 즐비했다.2) 결국 인도 네티즌들이 인격 살인에 가까운 수준으로 가디너 해리스 글을 깎아내리고 나서야 이 사태는 잠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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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세계 야외 배변 비율

출처-<한겨레>

 

2. 이런 도시에 사람이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간 후 인도의 공기 오염 상황은 나아졌을까? 그렇지 않다. 수십 년간 지속해서 악화한 대기질에 너무나도 무력해진 인도 정부와 인도 시민들은 딱히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러자 미세먼지 지수(air quality index, AQI)가 815까지 치솟아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웠던 2017년 11월의 어느 날 인도의 저명한 의사들이 인도 대통령 관저 앞에 모였다. 그들은 거기서

 

"그 누구도 이러한 공기를 마시며 살아서는 안 된다"

 

라고 목소리를 높였다.3) 공기 오염이 델리에 사는 청소년 10명 중 4명에게 폐 기능 장애를 유발했다는 조사 결과4)를 포함한 과학적 연구 결과 수십 건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개선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인도 정부와 시민사회에 경고 메시지를 던지고자 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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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10일 뉴델리 AQI

 1,290을 기록했다

 

의학계가 "이런 대기질 속에서 마라톤 경기에 참여하는 것은 자살행위이다"라고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뉴델리 하프 마라톤 대회는 대기질이 가장 안 좋은 겨울에 꿋꿋하게 열린다.5) 겨울마다 인도에서 열리는 국가 대항 크리켓 대회에 초대받은 외국 선수들은 한 해도 빠지지 않고 경기 중에 토하고 있다. 공기오염이 너무 심해 숨이 막혔기 때문이다. 인도 선수들과 관중들은 그저

 

‘나쁜 공기는 인도 홈그라운드의 이점이다’

 

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고 있다.6) 대기 오염에 대한 인도 일반 대중의 인식은 이렇게 안타까운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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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공기오염이 극심했던 델리에서 열린

크리켓 경기에서 스리랑카 대표팀 선수가 토하고 있다.

출처-<ABP News>

 

인도 전체 사망자 100명 중 18명에 해당하는 167만 명이 매년 공기 오염으로 사망한다. 공기 오염으로 조기 사망과 질병으로 발생하는 피해액만 연간 368억 불에 달한다고 추산한다.7) 인도 전체 GDP의 약 1.4%에 이르는 규모이다. 인도의 최근 30년간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5.8% 수준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공기 오염이 인도 경제성장의  장애 요소이다.

 

3. 인도 공기를 오염시키는 요인

 

다른 도시 공기를 오염시키는 요인들이 인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자동차 배기가스, 각종 경제활동에서 발생하는 오염 물질들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찾기 어려운 인도 특유의 고질적인 문제점들이 대기 오염을 악화한다.

 

1) 북인도 지역에서 성행하는 화전농업

인도 북서부 곡창지대인 펀잡 및 하리아나 지역에서는 여름에는 쌀농사를 겨울에는 밀 농사를 짓는다. 10월을 전후하여 벼 추수가 끝나고 11월에 밀을 파종할 때까지 약 2주 시간이 남는다. 이때 쌀 추수 이후 남겨진 볏짚을 빠르고 값싸게 제거하려고 불태워버린다. 볏짚을 태워버리면 이모작에 필요한 천연 비료를 공급하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3,500만 톤에 달하는 볏짚이 불타오르면서 발생하는 각종 오염물질은 펀잡부터 하리아나 뉴델리와 우타르 프라데시를 포함한 북인도 전체를 시커멓게 뒤덮는 ‘죽음의 카펫'이 된다.8) 심한 경우 AQI가 네 자릿수까지 치솟는다. 인도 북쪽에 높이 솟은 히말라야산맥은 이러한 오염물질을 가두는 장벽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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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30일 뉴델리 대기 오염 

 

2) 날씨가 선선해진 겨울에 더욱더 활발해지는 산업 활동과 그에 따른 미세먼지 발생

뉴델리를 포함한 인도 대도시는 수년간 끊임없이 개발 중이다. 곳곳에서 건물을 짓고 도로를 포장하는 공사 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무더운 여름을 피해서 겨울에 본격적으로 진행하는 각종 건설과 토목공사에서 발생하는 비산(飛散) 먼지들은 이제 인도 대도시 겨울을 상징하는 현상이 되어버렸다. 각종 건설 현장과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산업 쓰레기도 점점 양이 증가하며 공기와 물을 오염케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3) 10월 말 또는 11월에 있는 인도 최대의 명절인 디왈리

인도인은 집안 전체를 밝게 빛나는 전구나 촛불로 장식하고 엄청난 양의 폭죽을 터뜨리며 명절을 쇤다. 집 안을 밝히면 풍요의 신인 락슈미(Lakṣmi)가 찾아온다는 믿음 때문이다. 대도시의 경우 대부분 전구가 촛불을 대체했다. 그러나 조금만 시골로 내려가도 온 동네에 그을음이 가득 찰 정도로 촛불이 밝혀져 있기 마련이다.

 

2017년부터 뉴델리 정부는 폭죽을 금지하고 대기 오염 물질 발생을 막으려 노력하고 있지만 많은 인도 주민은 이를 무시하고 밤새 폭죽을 터뜨린다. 현재 뉴델리 주 정부를 장악하고 있는 AAP당(Aam Aadmi Party, 보통 사람들의 당)은 ‘시민들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자신들의 최우선 과제’라며 폭죽 금지 조치를 고수 중이다. 그런데 인도인민당(BJP)은 AAP당과 날을 세우며 폭죽 금지 조치가 ‘힌두교를 탄압하는 조치’라는 정치 공세를 펴고 있다.9) 힌두 근본주의자 표를 모아보자는 심산이다. 자당 득표에 유리하다면 시민 건강이야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무책임한 행태다.

 

4) 인도는 실외뿐만 아니라 실내 공기 질도 상당히 낮은 편

시골에서는 제대로 환기시설도 갖추지 않은 열악한 주거 환경 속에서 요리나 난방을 위해 말린 소똥과 같은 동물의 배설물과 나뭇가지 등을 태운 연기가 실내에 그대로 머문다.10) 인도 전체 인구 약 70%가 시골에 거주하고 있어서 공기오염 문제는 시골에서부터 해결해 나가야 하나, 그나마 가뭄에 콩 나듯 발표되는 인도 정부의 대기오염 저감 정책은 대부분 대도시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11) 그러다 보니 수백 년 동안 매캐한 연기에 뒤덮여 살던 게 일상이던 인도 시골 주민들은 어제와 변함없이 오염된 실내공기를 마시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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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거실 공기청정기를 틀면 실내에서도 

AQI가 300을 가뿐하게 넘어서기도 한다

(2021. 11. 5)

 

4. 좋아질 기미가 없는 인도 대기질

 

사람들 건강과 목숨을 위협하는 인도 공기 질은 앞으로 나아질까? 나아진다면 언제부터 나아질까? 매우 안타깝지만 짧은 기간 안에 인도의 공기 질이 나아지리라고 예상하기는 어렵다. 1인당 GDP가 2,400불에 불과한 인도 입장에서는 하루라도 더 부지런히 물건을 만들고 더 좋은 집을 짓고 더 많이 도로를 깔아서 경제를 발전케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더 많은 전력을 생산해야 하고 더 많은 생활 쓰레기와 산업폐기물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더 많은 오염물질이 배출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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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델리는 끔찍한 가스실···

출처-<ThePrint 영상 갈무리>

 

실제로 인도 전력부 장관은 2022년 9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30년까지 석탄화력발전을 늘리겠다고 발언했다. 인도는 2070년까지 탄소중립을 목표한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음에도 증가하는 전기 수요를 맞추기 위해서는 싼값에 생산할 수 있는 석탄화력발전을 확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이다.12) 현재 세계 제3위 탄소 배출국인 인도가 앞으로 상당 기간 석탄화력발전을 더 확대할 것이며, 여기서 발생한 값싼 전기를 사용하는 각종 산업활동도 더 활발해질 것이고 결국 대기 오염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뉴델리의 운동장과 거리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뛰어노는 인도 청소년들에게 안타깝고 슬픈 소식이다.

 

자, 가디너 해리스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인도의 공기 오염에 관한 무수한 신문 기사와 논문이 발표되었지만 왜 유독 인도인들은 해리스의 기사에 감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일까? 해리스는 자기 가족이 겪은 이야기를 통해 좀 더 생동감 넘치고 인간적인 글을 쓰고 싶었을 터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글의 진실성을 높이고 독자의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 작가들이 쓰는 기본적인 테크닉이다. 이를 통해 숫자와 통계로만 접해오던 인도의 공기 오염 문제가 개개인의 삶과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라는 점을 ‘피부에 와닿게’ 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글을 읽는 인도인 중 상당수는 공기 오염 문제를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거나, 생각해봤다 하더라도 얼마나 심각한지를 깨닫지 못했거나, 심각하다는 것을 알더라도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불가피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터이다. 그런데 그들도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어머니이며 집 안팎에서 뛰어노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일 것이다. 가디너 해리스에게는 오염이 심각한 나라를 떠날 기회가 있지만 대부분 인도인에게는 그러한 기회조차 없다. 자기 세대뿐만 아니라 자기 자식 세대마저 ‘독가스실’이나 다름없는 끔찍한 도시에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떠나가는 사람이 지적했을 때, 그들은 불편했고, 부끄러웠고, 화가 났다. 애써 외면하던 아픈 부분을 들켰을 때, 사람들이 크게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대응방식이 있다. 

 

바로, 메신저를 쏴 죽이는 것이다. 

 

 


1) ‘'Living dangerously' in polluted Delhi’, ‘15. 6. 5 BBC 기사

2) ‘Why an opinion article on Delhi's air pollution upset many Indians‘, ’15. 6. 5 TheGuardian 기사

3) ‘No one should be living in this city: Delhi doctors’, ‘17. 11. 11 The Times of India 기사

4) ‘Deadly air: 40% children in Delhi have weak lungs, finds survey’, ‘15. 1. 4 The Hindustan Times 기사 

5) ‘Elite runners brave Delhi half-marathon dubbed ‘suicidal’’, ‘20. 11. 29 Al Jazeera 기사

6) ‘India vs Sri Lanka: Delhi Smog Causes Sri Lanka Players to Vomit on Field’, ‘17. 12. 5 New18.com 기사

7) Anamika Pandey외 지음, ‘Health and economic impact of air pollution in the states of India: the Global Burden of Disease Study 2019’, The Lancet, 2021. 1. 1. Vol. 5, Issue 1 참조

8) ‘Top 8 main causes for air pollution in Delhi’. ‘17. 11. 15 Times of India 기사

9) ‘Cracker ban: AAP ‘anti-Hindu’, claims BJP; Rai says saving lives their priority’, ‘22. 10.24 The Indian Express 기사

10) Gautam, S. K., Suresh, R., Sharma, V. P., & Sehgal, M. (2013). Indoor air quality in therural India. Management of Environmental Quality: An International Journal, 24(2), 244–255. https://doi.org/10.1108/14777831311303119 참조

11) ‘Air pollution in rural India: Ignored but not absent’, ‘21. 2. 3자 DownToEarth의 기사

12) ‘India May Boost Coal Power Fleet 25% by 2030 Amid Rising Demand’, ‘22. 9. 23일 Bloomberg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