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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주 

 

본 기사는 10.29 참사로 친구를 잃은 필자가 그의 시신을 찾기 위해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기록입니다.

 

유가족 분들이 당시 현장 상황을 파악하시는데 미력하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0월 29일 밤

 

휴대 전화를 뒤적이다 한 영상을 접했다. 어림잡아 사람 수십 명이 누워있고 그 곁에 수십 명이 CPR하는 광경이다. 업로드한 사람은 실제상황이라고 했지만 그럴 리가. 핼러윈의 기괴한 퍼포먼스일 거라 여겼다.

 

10월 30일 오전

 

1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SNS에는 서로의 생존 신고가 오간다. 내 주변에는 저기 갈 만한 사람이 없다. 그렇게 믿었다.

 

5시

부재중에 전화 두 통이 와 있었다. 착신 기록이 한 시간 전이다. 불안한 마음에 전화를 건다.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린다.

 

"J가 이태원에 있었대. 신분증도 휴대 전화도 없어서 찾을 수가 없어"

 

손에 집히는 대로 옷을 입었다. 혹시 모르니 신분증·명함도 챙긴다. 택시를 타고 체육관으로 향했다. 택시 모니터에 속보 자막이 흘러나온다. 모니터를 껐다. 기사는 이태원 일 때문에 가는 거냐고 묻는다. 창문 좀 열겠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자꾸 헛구역질이 나온다. J는 인파에 휩쓸리다 어딘가로 빠져나가 안정을 찾고 있을 거라고, 그래야 한다고 읊조리듯 혼잣말을 했다.

 

5시 20분

체육관 앞은 이미 통제 중이다. 건너편에 내리뛰었다. 차단 띠로도 모자라 경찰들이 인간 바리케이드로 서 있다. 체육관 주변에는 굳은 표정 아래 불안한 시선들이 오간다. 묘하게 조용한 체육관에서 구급차가 한 대씩 출발한다.

 

지인 S를 어렵지 않게 찾았다. 그는 포스트잇에 J의 인상착의와 본인의 전화번호를 적어 나에게 준다. 다시 같은 내용을 적는다. 몇 개째일까. 몇 개나 전달했고 제대로 읽은 사람은 몇일까.

 

휴대 전화를 뒤져 이 사태를 그나마 알만한 사람에게 전화를 건다. 하지만 그들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어떤 기자가 다가와 현재 사망자와 부상자가 이송된 병원 정보라며 휴대 전화 사진을 보여준다. 사진을 찍어 하나씩 전화를 걸어보기로 한다. 기계음 안내가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진다. 겨우 연결된 병원들은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시신이 도착했으나 신원을 모른다, 직접 와도 확인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본인 소관이 아니라는 이야기까지 똑같다.

 

체육관 주변 기자들이 준 병원명단 (4).jpg

체육관 주변 기자들이 알려준 병원명단

 

J의 인상착의를 알려주고 한 번만 들어가서 봐줄 수 없느냐고 묻는다. 곤란하다고 한다. 설득할 시간이 없다. 다른 병원에 건다. 다른 병원은 연결조차 안 된다. 또 다른 기자가 또 다른 병원 명단을 보여준다. 명단이 아까와 다르다. 기자는 명단을 준 대가를 받겠다는 듯이 인터뷰를 시도한다.

 

아무것도 명확하지 않다. J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 외에.

 

친구들이랑 주고 받은 카톡-이름 지우기 2.jpg

 

그 사이 체육관에서 시신이 한 구씩 나온다. 그때마다 J를 찾는다. 하지만 경찰들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천을 덮어 놓은 터라 성별조차 구분할 수 없다. 경찰들 옆에는 사복을 입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어떤 사람 질문에 그들이 유가족이라고 소개한다. 시신이 실려 나오는 동안 한 치의 미동도 없이, 자그만 신음도 없이 경찰 옆에 얌전히 서 있기만 한 유가족은 없다. 유가족일까, 의문이 스친다.

 

나중에 들어보니 같이 체육관에 있던 다른 친구들에게는 공무원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토요일 새벽에 긴급 연락망을 돌려 내린 첫 지시가 실종자 가족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었던 터다.

 

S에게 문자가 온다. S가 수없이 뿌려 대던 쪽지, 태반이 받을 수 없다고 거절했던 쪽지를 받은 한 공무원이 보낸 문자다. 한남동 주민센터에서 실종자 접수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곳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한남동으로 향하기로 한다. 간신히 택시를 잡았다. 

 

체육관에서 준 쪽지보고 문자 준 공무원.jpg

 

 6시경

주민센터 앞에 내린다. 도로를 통제하고 있는 경찰, 반쯤 지워진 분장과 코스프레 차림으로 비치적대는 사람들, 통제에 차를 돌리며 욕지거리하는 운전자, 우리까지 모두 뒤섞이어 있다.

 

먼저 접수를 마친 친구들과 만나 대기실로 들어왔다. 실종자 가족들은 몇 명 보이지 않는데 기자들이 분주히 촬영 장비를 설치한다. 

 

토요일 저녁 J와 있던 일행에게 전후 사정을 듣는다. 밥을 먹고 지나가는 길에 어쩌다 보니 사람에 밀려 그 골목에 들어갔고 서로 붙어있지 못할 정도로 인파에 휘둘리다 J와 떨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바닥에 떨어진 J의 휴대 전화를 간신히 주워 왔다. 비밀번호가 걸려있어 J의 가족들에게 연락할 수가 없다. J의 SNS를 샅샅이 뒤진다. 어머니가 장사한다는 시장을 알아내어 네이버 지도에서 검색한다. 전화번호가 등록된 모든 상점에 연락을 취한다.

 

"나 왜 J 가족들 번호도 몰라?" S의 떨리는 목소리에 손을 잡아준다. 

 

대기실에는 담요와 물이 조용히 채워진다. 내가 실종자의 지인이라는 걸 실감한다. 그 사이 실종자 가족들이 더 도착한다. 그보다 더 많은 공무원이 보인다. 그중 우리에게 현황을 알려주는 이는 없다. 우리와 그들 사이에 투명한 벽이 있는 듯하다. 가까이 오지 않은 채 피해자 가족과 지인들을 지켜본다. 

 

평소라면 선뜻 연락하지 않았을 경찰과 기자에게 전화를 건다.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청한다. 그들은 시스템이 잘 되어있으니 지문 조회로 금방 신원과 위치 파악이 될 거라고 한다. 최대한 알아보겠다는 말에 약간 안도감을 느낀다.

 

J의 친구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는지 가까운 병원에라도 가보겠다며 다시 자리를 떠난다. 또 다른 친구는 조용히 울음을 터뜨린다. 기자들은 우리에게 한마디라도 들으려 주변을 빙빙 맴돈다. 사방이 적막하다. 기자들이 타이핑 하는 소리와 리포트를 녹음하는 소리만이 들린다.

 

친구들이랑 주고 받은 카톡-이름 지우기 3.jpg

 

7시경

J의 가족과 연락이 닿았다. 서울로 온다고 한다. 이제 그들에게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이다. S가 말한다. 밤에 첫 연락을 받았을 때 현장에서 사망 판정을 들었는데 정신이 없어서 이제야 기억이 났다고 한다. 그 아비규환에서 내린 판정이 확실할 수 있겠냐 말했다. S가 동의한다.

 

살아있기만 하라고, 그러면 다 괜찮다고 뇐다. 나중에 J가 괜찮아지면 나는 실컷 놀려대야지, 생각한다. 젊은 사람들 노는데 뭐 하러 가서 그 고생을 했냐고,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이제 그러지 말라고 해야지.

 

'오빠랑 저랑 차이 크게 나거든요?' 어이없어 할 J의 표정이 떠오른다. 

 

흡연구역 한쪽에서 중년 남자 목소리가 들린다. 매뉴얼이라도 챙겨주지, 그런 거 하나 없이 기자들 앞에 서셨다가 어쩌려고 그랬느냐고 질책하는 남자 앞에 다른 남자 둘이 쭈뼛대며 서 있다. 누군가 높은 사람을 보좌하는 사람들이리라. 결국 우려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는지, 표정은 어둡지 않다. 슬며시 미소 짓던 그들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약속이라도 한 듯 대화를 멈춘다. 실종자 가족을 자극하지 말라는 지침이라도 내려온 건지. 지침이 있기는 한 건지. 사람 구분이 쉽다. 눈을 피하면 공무원, 눈을 맞추려 애쓰면 기자, 나 따위 안중에 없는 사람들은 가족을 잃은 이들이다.

 

답답한 마음에 실종자 접수처에라도 올라가 본다. 이상하다.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못해도 배 이상의 가족들과 지인들이 있을 터인데 접수처와 대기실이 한산하다. 신원확인도 늦어지니 더 많은 사람이 모여야 정상인데 대기실에 준비된 좌석의 반도 채워지지 않는다. 실종자 접수할 수 있다는 게 전달되지 않은 걸까. 내가 그런 정보가 담긴 재난 문자를 받았나.

 

9시경

가족들이 도착했다. 미리 사놓은 청심환을 드린다. S가 사망 판정은 뺀 채 정황을 설명해 드리고 J의 오빠를 데리고 잠시 나간다. 그 사이 친구들이 어머니 주변에 모인다. S가 들어오자 어머니는 솔직히 이야기해달라고 한다. 잠시 망설이는 사이 S와 함께 들어온 오빠분이 화제를 돌린다. 그동안 나는 다시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진행 상황에 관해 아는 것이 있는지 묻는다. 황망함도 슬픔도 침착함도 냉정함도 우리의 몫이다.

 

사고가 나고 10시간이 지났는데 자리에 있던 공직자 누구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다. 어딘가에서 울부짖는 소리와 뜻을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뒤섞인 채 들린다. 굳이 나가보려 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의 주변은 이미 카메라와 기자들로 가득 찼으리라. 

 

정복을 입은 경찰이 어슬렁거리며 대기실을 기웃거린다.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누군가가 드디어 무언가 얘기해주려고 온 걸까. 하지만 그는 대기실에는 들어오지 않고 대충 주변을 쓱 둘러보고 이내 사라진다. 

 

누군가 TV를 설치해달라 요청한 모양이다. 아무것도 입력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출력하지 않던 공무원들이 이제야 분주하다. 업무지시하는 누군가의 큰 목소리가 적막을 깬다. 흐느끼던 또는 기도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그를 바라본다. 이내 그 남자가 현황을 이야기한다. 신원확인이 예상보다 길어지니 양해해달라고 한다. S는 왜 이렇게 TV 설치가 늦어지는지, 대기하는 사람들을 위해 휴대 전화 충전기를 달라고 했는데 왜 아직 준비되지 않는지를 묻는다. 공직자는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지만, 귀에 들어오는 말은 아니다. 

 

시종일관 모호한 말에 S는 서울시에서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와서 브리핑해달라고 한다. 지금 오는 중이라면서도, 신원이 확인되면 가족들 연락처로 연락할 테니 집에 가서 쉬면서 기다려도 된다고 한다. 집에 가서 쉬라니. 이들은 사람 마음을 헤아릴 생각이 안중에 없다. 

 

그 공간에 모인 공무원들의 시선을 이제 이해한다. 그들은 스스로와 우리와의 인종(人種)을 나눴다. 그들에게 우리는 도움을 주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입장이 얼마든지 바뀔 수도 있었을 사람이 아니라, 어쩌다 떠안은 주말 업무 대상이다. 그리고 그 업무를 잘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느꼈다.

 

10시경

병원에 갔던 친구들이 돌아왔다. 대기하던 전체 가족들에게 큰 목소리로 전화번호 하나를 알려준다. 그쪽으로 전화를 걸어 신상정보를 알려주면 현재까지 파악한 피해자 위치를 알려준다는 소식을 전한다. 조용하던 대기실이 소란스러워진다. 공무원 몇 명이 듣고는 종이와 펜을 준비해 전화번호를 적어 벽에 부착한다. 

 

아직 J의 상태나 위치는 확인이 안 된다고 한다. 사망자 우선으로 확인이 된다고 하니 오히려 안도감을 느낀다.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자 주변 기자들이 알려줬다고 한다. 우습게도, 열댓 명의 공무원보다 기자들이 더 도움이 된다. 

 

뒤이어 서울시 관계자가 들어와 상황을 알린다. 이야기는 전과 딱히 다를 것이 없다. 현재 대부분 신원을 파악하여 명단이 서울시에 있고, 한 시간 안에 안내해주겠다고 한다. 부상자 현황은 어떻게 알 수 있는지 물었다. 확답을 주지 않는다. 왜 이미 존재하는 명단이 여기까지 오는 데 한 시간이나 걸리는지 물었다. 개인정보 때문이라고 한다. 헛웃음이 나온다. 광화문 한복판에 사진과 이름과 신상정보를 내걸어 찾을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사람들 앞에서 그들은 개인정보 보호법을 이야기한다. 전화번호와 이름 일부를 지우고 안내하면 될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얼버무린다. 

 

그가 자리를 뜨기 무섭게 우리 앞에 앉아있던 부부가 울음을 터뜨린다. 주저앉아 오열하는 사람들, 조용히 서둘러 자리를 뜨는 사람들이 이어진다. 그들 목소리에 일그러진 얼굴에 눈물이 흐르면서도 마음속으로는 크게 외쳤다. J는 아닐 거라고. 죄송하지만 우리는 머지않아 J와 함께 앉아 오늘을 기억하고 얘기할 거라고.

 

11시경

S는 공무원들에게 기자들이 촬영할 수 없도록 대기실 문을 닫아달라고 요청한다. 요청받은 공무원들이 문을 닫는다. 현장이 고요해지고, 사망자 명단에 J가 없다는 소식에 긴장이 풀린다. 그제야 친구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다리는 새까맣게 멍이 들었고 옷은 군데군데 알 수 없는 흔적들로 더럽혀져 있다. 그중 한 명은 삼선슬리퍼를 신고 있다.

 

"현장에서 신발을 잃어버렸어."

 

친구가 머쓱하게 웃는다. 잠시 망설이다 꼭 병원에 가봐야 한다고 뻔한 말을 건넸다.

 

10월 30일 오후

 

12시경

중간관리자로 보이는 공무원이 휴대 전화를 들고 우리에게 찾아왔다. 명단을 확보했는데 J는 없다고 한다. 14명 정도가 확인이 안 됐는데 대부분 외국인이거나 미성년자라고 한다. 잠시 후 다시 명단을 받아 확인해주겠다고 한다. 

 

J가 명단에 들어가 있을 확률은 거의 없다. 이제 부상 정도가 걱정이다. 머리를 다쳐서 생활이 어려우면 어쩌지.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니까 팔은 괜찮았으면 좋겠다. 혹시 다리가 불편하다면 차타고 같이 단풍 구경도 가고 눈 구경도 가자고 생각했다.

 

13시경

아까 그 공무원이 대기실로 들어온다. 한 명씩 3층에서 사망자 명단에 있는지를 확인해주겠다고 한다. 이제 보니 대기실 인원 열댓 명 중 8명이 J의 가족과 지인이다. 다 올라갈 수는 없어서 J의 오빠와 S만 올라가서 확인하기로 한다. 마른 손을 비비며 어서 내려오기를 바랐다. 방금 대기실에 들어온 한 분이 떨리는 목소리로 어떻게 확인하면 되는지 묻는다. 방법을 설명해드리고 다시 닫힌 문을 바라본다. 두 번째 가족이 올라가 있는 동안에도 두 명은 내려오지 않는다. 몇 분이 지났을까. 문을 열고 S가 들어온다.

 

"언니가 명단에 있어"

 

울부짖는 S에게 “있다고? 명단에 있다고?'”라는 말을 반복한다. 다문 입술 사이로 신음과 눈물이 흘러나왔지만 마냥 울고 있을 수 없다. J에게 가야 한다. 몸도 성치 못한 친구들이 눈물을 쏟으면서도 어머니를 추스른다. 

 

문을 열자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댄다. S와 나는 찍지 말라는 말을 되뇐다. 엘리베이터가 오지 않아 연신 버튼을 눌렀다. 모든 것이 느리게 움직이는 것 같다. 갈라지는 목소리를 애써 가다듬고 어머니를 불렀다. 택시가 기다리는 1층으로 올라간다. 방송사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힌 카메라를 들고 우리를 따라오던 남자에게 욕을 내뱉고는 이내 후회했다. 방송에서 내 행동으로 유가족 태도를 규정하지 않을까. 온전히 슬퍼할 수도 없다는 사실에 또 눈물이 났다.

 

14시 20분

같이 택시를 타고 온 친구들과 영안실로 향했다. 옷이나 간신히 몇 벌 넣을 듯한 좁디좁은 공간에 J가 누워있었다. 얼굴 절반에 참사 과정에서 생긴 멍인지 시반(屍斑)인지 모를 것을 제외하고는 내가 아는 J의 모습 그대로였다. 반나절 동안 애써 부정했던 진실이 잔인하게 몰려왔다. 모두 서럽게 울었다. 그 와중에도 J가 맞는지, J의 이름이 쓰여있는지 억지로 눈을 부릅뜨고 확인했다. 모든 것이 J가 맞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J의 이름을 부르며 J의 입을 연신 여민다. 마지막 숨이라도 붙들어 놓고 싶었을까.

 

14시 40분

가족들과 S가 장례 절차를 밟는 사이 경찰이 우리를 찾아왔다. 경찰이 사고 관련하여 이후 진행 절차를 대략 말해주었다. 우리는 J의 지인들에게 소식을 전해야 하는데 휴대 전화가 잠겨있으니 경찰에서 풀어줄 수 없는지 물었다. 조사해 봐야겠지만 사건이 아닌 이상 포렌식 등의 절차가 어렵다고 말하다가 멈춘다. 무언가 죄가 있어서 수사나 포렌식이라는 표현을 쓴 건 아니고 말버릇이라며 땀까지 흘리며 해명한다. 이해한다는 말로 경찰을 달래는데 고위직으로 보이는 누군가가 다가와 경찰에게 당부한다. 말조심해야 한다, 여기 누가 유가족이나 기자일지 모른다, 나는 들어가서 좀 쉴 테니 고생해라, 라는 이야기를 내 바로 옆에서 한다. 경찰은 안절부절못하며 내 눈치를 본다. 코미디다.

 

15시

J의 오빠와 현장에 있었던 친구 한 명이 경찰서로 간 뒤, J의 친구들이 다가와 병원에 온 김에 응급실을 가보겠다고 한다. 그 말을 꺼내기까지 죄스러움과 망설임이 느껴져 또 울컥한다. 친구들을 보내고 상주들이 잠시 몸을 누이는 공간을 빌려 모두 모여 앉았다. 어머니는 창밖을 본다. 그러다 나지막이 

 

"참···."

 

이라고 한마디를 내뱉는다. 한 글자에 담긴 수많은 감정과 의미를 아는지 다들 아무 말이 없다.

 

17시

어머니는 좀 쉬고 싶으니 다들 들어가 쉬라며 한사코 우리를 보낸다. 고생했으니 꼭 든든히 밥 먹어야 한다고 몇 번을 되뇐다. 마침 오빠가 도착해 자리를 내어드리고 병원을 나섰다.

 

20221212_150149.jpg

한 기자가 보내 준 병원 명단. 

우리가 받은 마지막 명단이다.

하지만 이 명단에서조차 친구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17시 30분

응급실에 갔던 J의 친구와 다시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조금 웃었고 조금 슬펐다. 택시를 잡아 서울로 향했다.

 

18시 20분

J가 살던 집 근처에 도착하여 밥을 먹었다. 물도 안 들어갈 것 같았는데 우리 모두 게걸스레 먹었다. 어머니는 J의 장례를 치르지 않기로 했다. 그 며칠을 감당할 자신이 없는 듯했다. 당장 내일이 발인이 되었다. 

 

밥을 먹으며 S는 아까 3층에 올라갔던 상황을 얘기한다. 파일 형태 명단과 프린트된 명단이 있었는데, 컴퓨터로는 조회가 되지 않아 안심하는 순간 프린트를 보던 공무원이 J가 S 병원 영안실에 있다고 통보했다고 한다. 1:1로 매칭된 공무원은 어디 있냐고 물으니 아직 매칭 중이라 했다고 한다. 거기까지는 어떻게 가냐고 하니 택시를 이용하라고 했다고 한다. 혹시 몰라 S가 연락처를 요구했고, 다들 쭈뼛대며 꺼리던 중 간신히 소방공무원 연락처를 받았다고 한다. 

 

가는 길이 너무 막히자 S는 전화를 걸어 고속도로가 너무 막힌다고 했다. 그러자 그쪽에서는 차를 태워줄 테니 다시 돌아오라고 했다고 한다. S는 비상등을 켜고 갈 테니 알아서 해달라고 전하고는, 기사분에게 범칙금이 나오면 연락하라고 명함을 건넸다고 한다. 기사는 버스전용차로로 이동해주었다고 한다.

 

우리 주변에 평온하게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을 무심히 둘러본다. 이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다. 순식간에 식사를 마치고 S와 친구는 J의 입관식에 필요한 물건을 챙기러 J의 집으로 갔다.

 

10월 31일 장례식날 

 

9시경

J에게 줄 꽃다발을 들고 병원으로 향한다. J에게 받은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도 꽃이었다. 내가 주는 마지막 선물도 꽃이구나 싶다. '그만. 모든 일에 과하게 의미부여 하고 있어' 혼자 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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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경

병원에 도착했다. 아직 시간 여유가 있어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기로 한다. 다들 표정이 밝다. 이런저런 농담도 한다. 몇 시간 뒤 서로의 모습을 알아서일까. 그렇게 조용히 배려한다.

 

11시경

입관식이 시작된다. 익숙한 얼굴의 J가 익숙한 옷을 입고 낯선 공간에 누워있다. 어제 S는 친구들과 어떤 옷을 챙겨올지 얘기했다. 색깔만 대충 얘기했을 뿐인데 친구들은 어떤 옷인지 단번에 맞히고는 웃었다.

 

'할머니같이 쑥색 양말 좋아하잖아'

 

그 한 문장에 J가 참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것이 그리고 여전히 그녀를 보내지 못하고 현재형으로 얘기하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고인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오열하는 S의 옆에 조용히 다가간다. 쑥색 양말로 감싸인 J의 발을 조용히 쓰다듬는다. 가라고, 그냥 가지 말고 잘 가라고 말했다.

 

12시경

입관 예배가 시작된다. J가 들으면 질색했을 것 같은 찬송가를 부른다. 그녀가 원하던 장례식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나와 친구들이 운구하기로 한다. 무언가 도움이 되는 것 같아 기쁘다. 처음 하는 일도 아닌데 몸이 무겁다.

 

장지사진 2.jpg

 

13시경

화장장에 도착했다. 급하게 치르는 장례다 보니 대기시간이 길다. J의 친구들과 뒤늦은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는다. 지난 며칠 동안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서로를 조용히 챙기던 사람들 얼굴을 그제야 자세히 본다. 

 

14시경

화장 절차가 마무리되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 웃고 이야기하던 사람이 재가 되어 담긴다. 이 비현실에 아무도 흐느끼지 않는다. 기계적이고 정중하게 J를 다시 품에 안는다. 조용하고 허무하다. 가족들과 인사를 나눈다. 준비한 꽃다발을 J의 오빠에게 건넨다. 괜한 짐을 만든 건 아닌지 마음이 쓰인다. 친구들과 함께 담배를 피우고 각자의 차에 오른다.

 

17시경

며칠 사이 엉망이 된 집을 본다. 현관에는 J가 선물한 꽃이 엉성하게 꽂혀있다. 무슨 처리를 한 건지 몇 년이 지났는데 시들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몇 년이 더 지나도 그대로일 것 같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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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를 보낸 날, 친구들은 J의 카페에 안내문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