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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EFA 챔피언스리그나 월드컵 같은 큰 무대의 결승전은 힘 빠진 경기가 제법 많다.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리는 선수들은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팀은 수비적으로 내려앉거나 모험을 자제한다. 자연히 종종 ‘루즈한 결승전’이 펼쳐지곤 하는데, 사실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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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걸, 아르헨티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스칼로니 감독의 가장 큰 장점은 두려움 없는 유연성이다. 빠르고 콤팩트한 역습을 무기로 쓰는 네덜란드를 상대로는 스리백 전술을 썼고, 중원의 힘으로 경기를 진흙탕 싸움으로 끌고 가는 크로아티아를 상대로는 4-5명의 미드필더를 기용했다. 결승전에서도 그의 과감한 선택은 빛난다. 디마리아의 왼쪽 기용이었다.

 

양측 감독의 수읽기는 음바페와 메시에서 시작되었다. 프랑스는 음바페 쪽의 수비 가담이 부족한 편인데, 스칼로니는 그래서 메시를 중앙이 아닌 오른쪽에 기용한다. 메시의 존재감과 음바페의 수비 가담이 부족한 상황에서 메시를 견제하기 위해 프랑스의 미드필더와 풀백이 메시에게 달라붙었다. 즉, 프랑스의 무게 중심이 오른쪽으로 기운 것이다. 그 결과는, 온더볼(on the ball, 공을 소유한 상황에서의 움직임)의 스페셜리스트 디마리아가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왼쪽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아르헨티나의 2번째 골은 감독의 전술과 아르헨티나의 훈련과정이 여실히 드러난 완벽한 작품이었다. 수비에 성공한 선수들은 메시를 찾고, 전방에 있는 선수들은 메시를 믿고 뛰어나간다. 메시는 여지없이 미친 패스를 성공하고, 오른쪽으로 쏠린 프랑스의 중심은 왼쪽의 디마리아에게 공이 가는 것을 놓친다. 그 결과는 아름다운 골이었다. 이 엄청난 트랜지션(공수 전환) 속도와 최고의 선수들이 뿌리는 아름다운 패스는 그야말로 마스터피스였다.

 

사실 경기 끝난 줄 알았다. 프랑스의 움직임은 너무나 무뎠고, 절박함으로 똘똘 뭉친 아르헨티나에 비해 자만하는 듯한 모습까지 보였다. 그런데 프랑스의 힘이 후반에 빛난다. 세계 최고의 뎁스를 가진 스쿼드가 빛을 뿜기 시작한 것이다. 대회를 이끌어오던 지루와 뎀벨레를 무려 전반전에 교체 아웃하고, 중원을 생략한 롱볼로 아르헨티나의 체력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거기에 음바페가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결승전 최고 선수는 메시가 아니라 음바페였다. 너무 압도적인 플레이를 보면 그저 말이 안 나온다. 메시가 수비수 6~7명을 제치고 골을 넣던 때처럼, 아르헨티나의 수비진이 추풍낙엽이 되던 음바페의 돌파는 입을 다물게 했다.

 

 

연장전, 메시의 추가골과 다시 균형을 맞추는 음바페의 추가골.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축구 종합선물세트가 펼쳐졌다. 양 팀의 확실한 에이스와 에이스를 둘러싼 서사, 현대 축구의 흐름을 정확히 짚고 있는 감독들의 전술, 에이스의 증명과 빛나는 조연, 포기하지 않는 집념과 투혼,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승부, 그리고 역사상 최고 선수의 증명까지. 축구라는 콘텐츠의 모든 것을 보여준 월드컵 결승 경기였다.

 

카타르 결산 1 : 중동 월드컵

 

카타르 월드컵만큼 온갖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대회가 없었다. 제프 브래터 회장이 5선 연임에 성공하면서도 카타르 월드컵 유치 과정에서의 비리 문제로 1주일 만에 사임했다. 피파의 유구한 부패 문제가 절정에 달한 순간이었다. (그 후임으로 들어온 안판티노도 딱히 공정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러 가지 돈 문제도 있었지만, 정치적으로도 그랬다. 카타르 왕세자-프랑스 대통령-유럽축구연맹 회장이 피파 회장과 함께 만난 뒤, 유럽에서 4장의 지지표가 카타르로 향했다. 6개월 후, 카타르는 프랑스 전투기를 구입한다. 월드컵 유치 과정에서 이러한 외교술은 늘 있어 오긴 했다. 그런데 카타르 월드컵 내내 관종짓을 일삼던 마크롱의 행보는 후안무치 그 잡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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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은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도 이어졌다. 무려 50도가 넘는 고온의 현장에서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가 혹사당했다. 특히, 남아시아 출신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보호와 대우도 받지 못한 채 마치 ‘노예처럼’ 부려졌고, 그 결과 적지 않은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보 공개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 진상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이 안타까움 위에서 축제를 즐길 수 있는가.’ 이러한 도덕적 딜레마를 남긴 것만으로도 카타르 월드컵은 앞으로도 비판받아야 한다.

 

그렇지만 겨울 월드컵의 선례를 남긴 건 긍정적이다. 중동과 아프리카도 여건만 정당하게 갖추면 월드컵을 개최할 자격이 있다. 다만, 첫 겨울 월드컵이라 유럽 선수들의 부상도 많았고, 리그 일정에 영향을 준 것도 사실이다. 한국은 익숙한 중동 기후와 춘추제 리그 덕분에 덕을 봤다고도 할 수 있다. 이렇듯 세계인의 축제가 유럽 중심으로만 돌아갈 수 없다는 점에서, 겨울 월드컵은 긍정적인 가능성을 남겼다.

 

카타르 결산 2 : 새로운 기술과 극장 승부

 

이번 월드컵에서는 새로 도입된 여러 룰과 기술이 있었다. 그중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먼저 반자동 오프사이드 판독기다. 오심의 중심에 있었던 오프사이드를 완벽하게 판정함으로써, 이제 억울하게 월드컵에서 떨어지는 사례는 남지 않게 되었다. 무엇보다 선수들이 판독 기술에 대한 신뢰를 보인다는 점이 의미 있다. 판정 논란으로 인해 멘탈이 터져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곤 하는데, 선수들에겐 기술을 믿고 자신들의 플레이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사우디는 어려운 오프사이드 라인 컨트롤을 적절히 사용하면서 아르헨을 잡았다. 만약 판독기가 없었다면, 사우디는 그렇게 대담한 승부를 펼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기술로 인해 앞으로의 수비 전술은 보다 정교해질 것이다. 때로는 텐백(ten back, 10명이 전부 가담하는 극단적인 수비 전술) 축구보다 라인을 올린 축구가 더 수비적일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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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추가시간의 증가다. 그동안 순전히 심판의 재량에 의해 부과되던 추가시간이 경기가 중단되는 시간을 기계적으로 점검하여 부여됐다. 그 결과 14분, 13분, 10분가량의 추가시간이 부여되면서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장면들을 연출했다. 이러한 룰이 보편화된다면, 한국이 늘 고생하던 중동의 ‘눕방 축구’는 힘을 잃을 것이다. 후반 추가시간의 공격이 훨씬 긴장되고 매서운 법이다. 선수들은 더 효율적으로 뛰고, 더 공정하게 플레이해야만 한다.

 

세 번째, 5+1 교체다. 유럽에서는 5명 교체 카드가 서서히 도입되고 있으며, K리그에서도 22살 이하 선수를 포함했을 시 5장 교체가 가능한 룰이 적용되고 있다. 이로써 팀들은 선수들을 더 보호할 수 있고, 더 다양한 전술을 적용할 수 있다. 즉, 축구에 임하는 팀의 전략이 다양해진다. 실제로도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멋진 극장골이 많이 나왔다. 후반 추가시간 연속골로 승리를 따낸 이란, 극장골로 16강에 진출한 한국, 연장 전반에 실점하고서도 후반 12분에 동점골을 만들고 브라질을 잡은 크로아티아, 후반 36분에 동점골을 성공시킨 모로코, 그리고 연장에 나란히 한 골씩을 주고받은 결승전까지. 추가시간의 증가와 더불어 5명의 교체 카드는 축구를 더 긴박하게 만들었다. 이제 주전 선수만 주구장창 돌리는 팀은 장기적인 성공을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스쿼드의 질과 양, 그리고 상황에 따른 적절한 대응을 갖춘 팀이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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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결산 3 : 상향 평준화

 

마지막이다. 유럽과 남미는 언제나 축구의 중심이었다. 유럽이 자본과 전술로 축구 트렌드를 선도한다면, 남미는 입이 떡 벌어지는 재능으로 멋진 플레이를 펼쳤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여러 북미팀은 이른바 ‘월드컵 관광객’ 정도로 취급당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이변의 연속이었다. 사우디가 아르헨을 잡고, 일본이 독일과 스페인을 잡았으며, 모로코가 스페인을 잡고, 한국이 우루과이와 비기고 포르투갈을 잡았다. 강팀들이 2군을 내보냈다, 일정이 문제가 있었다, 해도 결국 남는 건 결과다. 이번 월드컵의 16강은 유럽과 남미팀 위주로 채워졌던 이전과 달랐다. 일본·한국·호주·모로코·세네갈·미국 등 5개 국가가 아시아·아프리카·북중미에서 나왔다. 게다가 운도 아니었다. 모로코는 실력으로 아프리카 최초 4강 진출에 성공했다. 한국과 일본 또한 자신들이 준비한 축구를 펼친 끝에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미국은 차기 대회의 주최국으로 성과를 기대할 만한 결과를 거뒀다.

 

이렇듯 축구의 상향 평준화가 이뤄지고 있다. 왜일까? 결국, 정보의 확산이다. 이제 축구 선수를 양성할 때, 특정 코치의 직감과 경험보다 데이터가 우선된다. 한 선수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인지, 그 선수가 어떤 롤을 수행할 때 어떤 수치들이 나오는지, 어떤 데이터를 끌어올리기 위해 어떤 훈련법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연구와 기술이 끊임없이 축적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흐름을 선도하는 곳은 여전히 유럽이다. 모로코, 일본, 한국, 미국 등 16강에 진출한 언더독은 대부분 유럽리그에서 뛰는 선수들로 코어를 이뤘다. 그렇게 배출된 선수들이 대표팀으로 돌아와 높은 수준의 축구를 펼쳤다. 코칭스태프들 또한 그러한 과정을 거치고 자국으로 돌아와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다. 덕분에 변방에서도 중심을 꿈꿀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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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술 트렌드를 파악하는 건 생각보다 쉽다. 그거야 축구를 많이 보고 관련된 텍스트를 자주 읽으면 익힐 수 있으니까. 그런데 전술을 구현하기 위한 바탕, 예컨대 훈련법, 데이터 추출, 심리지도, 스포츠 과학, 최고 수준의 기술적인 코칭 시스템을 알아내기는 어렵다. 여전히 그것은 최상위 팀들의 대외비이며, 최고급 과정의 지도자 아카데미에서나 알 수 있다. 비록 많은 유럽팀이 월드컵에서 죽 쒔지만, 여전히 이길 확률은 유럽이 훨씬 높다. 그들이 세운 정교한 시스템, 그것은 항상 유럽 축구를 탄탄하게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더 많은 선수, 더 많은 지도자를 유럽으로 보내야 하는 이유는 그것에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 대표팀

 

한국이 가야 할 길은 자명하다. 바로 시스템을 더 합리적이고 정교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미 벤투와 이별하기로 결정이 난 만큼, 결과적으로 다른 스타일의 감독이 올 수밖에 없다. 모든 감독은 자신만의 색깔이 있다. 다만, 팬들이 국내파 감독을 염려하는 건, 국내파 감독의 수준보다 축협의 시스템을 더 불신하기 때문이다. 이건 이미 추측의 영역이 아니다. 해외 리그를 경험한 선수들이 국대에 와서 ‘아쉽다’라는 얘기를 직간접적으로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단순히 감독의 역량뿐만 아니라, 축협의 경기 준비 과정이나 의료팀의 문제까지를 망라한 이야기다.

 

예컨대, 이스타TV에서 김환 기자에 의하면,

 

“외국인 지도자의 국내 초빙 강습료가 내 해설 비용보다도 적다.”

 

“강습료 상한선이 있다.”

 

라는 말을 했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 지역 축구협회/지역 축구인들 수십 명이 협회의 지원을 받고 카타르에 왔다고도 말했다. 한편, 한 트레이너의 SNS로부터 제기된 의료팀 문제도 시끌시끌했다. 이런 사소한 부분들에 대한 지적은 왜 계속 나오는 걸까?

 

축구협회의 가장 큰 문제는 시스템의 부재다. 여러 위원회가 있긴 하지만, 도대체 누가 키를 이끌어가고, 어떠한 시스템으로 일을 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껍데기만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매번 감독 선임 과정, 경기 준비 과정에서 온갖 보따리 장사가 ‘축구 협회 익명의 관계자’를 따서 말도 안 되는 기사를 쏟아낸다. 트레이너에 얽힌 논란을 살펴보면, 해당 트레이너가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선수들은 그 트레이너를 택했다. 협회에서 충분히 능력 있는 의료팀을 구축했음에도, 선수들은 그러한 선택을 했다. 왜일까?

 

모든 시스템의 목적은 어떠한 업무를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진행하면서, 적절하고 공정한 보상을 제공하여 최선의 결과를 뽑아내기 위함에 있다. 그런데 트레이너와 의료팀에 얽힌 문제는, 축협이 전문 인력에게 적절한 대우를 하지 않으면서 의료팀이 대표팀에 쏟는 시간 자체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데 있었다. 예컨대 선수들 입장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의사보다, 오랫동안 자기의 몸을 잘 아는 의료진을 원한다. 그런데 대표팀이 소집될 때마다 의료팀이 계속 바뀌니, 자기가 아는 트레이너를 데려올 수밖에 없다. 축협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것이다. 차라리 오랜 기간 필진으로서 경험한 딴지의 시스템이 축협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될 정도다. 많지 않은 인원에 항상 일손이 부족한 걸 뻔히 아는데도 나 같은 사람한테조차 꾸준히 서포트를 하고 피드백을 주고 받으며 적지 않은 고료를 주니 말이다. 그런데 국외의 전문가, 국내의 전문가를 데려와 놓고 ‘무료 봉사’를 시킨다? 얼토당토않은 일이다.

 

의료팀만이 아니다. 정말 안타깝게도, 축협의 시스템은 모든 연령별 대표팀에서 체계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그 피드백 과정마저 시원치 않다. 김판곤 위원장이 가장 잘했던 건 ‘투명한 운영과 피드백’에 있었다. 그가 떠나자마자, 축협 부회장에서부터 기술 위원장, 온갖 관계자, 의료팀 논란까지 모든 잡음이 튀어나온다. 김판곤 한 명의 유무에 따라 이렇게 큰 차이가 난다는 점에서부터 축협의 시스템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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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와 김판곤

 

그러니까 정몽규는 맨날 사비를 수십억씩 쏟아도 욕을 먹는다. 심지어 벤투가 흔들릴 때 끝까지 믿어주고 지지함으로써 찬사를 받을 수 있었음에도, 결국 내부 정리를 잘못하기 때문에 욕먹는다. 솔직히 말하면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회장이 무엇을 위해 축협을 운영하는지 모르겠다는 의미다. 진심으로 축구를 사랑하기 때문일까? 그랬다면 좋겠는데, 가끔 그게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는 돈만 내고 운영은 실무자에게 맡기겠다는 건가? 그건 나쁘지 않은 태도지만, 시스템을 점검해야 할 최종 책임자는 회장이다.

 

카타르 월드컵에서 나타난 새로운 기술과 축구의 상향 평준화, 이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서 한국은 반드시 축협의 쇄신이 필요하다. 냉정히 말하면 자격이 부족하거나 검증 안 된 사람들이 감투 쓰고 있는 것부터 갈아내야 한다고 본다. 이영표처럼 케이리그 구단의 단장이라도 해 봤어야, 나라를 대표하는 축구 단체의 임원을 해보는 거 아닌가?

 

맨날 욕먹는데 맨날 똑같은 것도 질린다. 팬들의 기대와 내부의 사정이 다를 때, 이걸 조율할 수 있는 사람과 시스템의 부재가 참 안타깝다. 적어도 “우리가 이러이러한 내부 문제가 있습니다.”라고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실무자 및 선수의 수준은 점점 올라가는데, 헤드의 수준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 슈가대디에 의존할 때 오는 한계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축구협회가 전략적으로 선수와 지도자를 유럽에 보내고, 그들이 돌아와 협회의 시스템을 바꾸는 선순환 구조를 기대하기 어렵다. 안타깝지만, 슈가대디가 정신 차리고 검증되고 실력 있는 한 사람에게 오랫동안 힘을 실어주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결국엔 국대 축구도 축구팬 덕분에 존재하는 건데, 가끔은 협회가 그 자명한 사실을 망각하는 것 같다. 그것이 슬프다.

 

축구, 그것은 인생

 

어쨌든 축구 축제가 끝났다. 인생이 알 수 없듯, 축구도 알 수 없다. 경기장 안에서 각자의 꿈이, 서사가, 좌절이 있다. 22명의 선수가 벌이는 퍼포먼스가 있고, 또 각 팀에게 주어지는 기회의 흐름이 반드시 있다.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별안간 두 골이 터지며 결과는 미궁으로 빠진다.

 

그래서 축구를 본다. ‘결과는 아직 모른다’라는 전제 아래에서 팀의 모든 구성원이 자신의 가진 것을 모두 펼쳤을 때, 그때의 결과물이 큰 용기와 감동을 준다. 세계 최고의 선수인 메시조차도 저렇게 간절히 뛰는데, 나 같은 나부랭이가 오전 11시까지 침대에서 나오지 않고 비비적대고 있으니 이 얼마나 한심하고 반성할 일인가. ‘실패한 유망주’라고 불리던 오르시치가 월드컵에서 멋진 활약을 하는데, 내 인생에도 반전의 가능성이 1g 정도는 있지 않을까. 그 기대와 희망, 좌절과 반성이야말로 축구가 가진 최고의 콘텐츠다.

 

당신의 인생은 몇 분쯤인가. 전반전인가, 후반전인가. 카타르 월드컵의 결승전은 역대급이었고, 메시 같은 선수가 다시 나오는 것도 요원한 일이다. 하지만 또 언젠가는 나타날 것이다. 그보다 더 뛰어난 결승전이, 그보다 더 위대한 선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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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은 언제나 굴러가기 때문이다. 우리 또한, 다시금 각자의 시간에서 최선을 다해 뛰어볼 때다.

 

 

Profile
조선사 교양서를 쓰고 있는, 딴지가 배출한 또 하나의 잉여 작가
딴지의 조선사, 문화재, 불교, 축구 파트를 맡고 있슴다.
이 네 개 파트의 미래가 어둡다는 거지요.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시시콜콜 조선부동산실록』 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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