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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고,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온갖 사고와 논란으로 정국이 매일 같이 어지럽지만, 그건 우리네 사정일 뿐. 재무부 장관 옐런의 계획대로, 미국은 IRA 시행을 앞두고 있고 내년 3월, IRA 세부지침을 발표할 예정이다.

 

다만 조금 다행인 것은, 정·재계에서 딴지를 면밀히 모니터링 하고 계신 건지, IRA에 대한 우리 움직임도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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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일, 일본자동차산업협회와 화상 교류 중인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

<출처 - KAMA>

 

한국 자동차 산업 협회(KAMA)는 유럽, 일본, 미국 자동차 산업 협회와 함께 한목소리를 냈다. IRA 세부 지침 마련을 위한 의견 수렴 과정에서, 각국의 전기차와 관련 부품에 대해, FTA에 따른 동일한 대우를 요구했다.

 

국내 기업들의 미국 투자 계획 수립도 속도를 높이고 있다. 현대차는 SK온과 협력해, 미국에 배터리 생산 공장을 함께 짓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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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미국 조지아주에서 열린 현대 전기차 전용 신공장 기공식 현장

<출처 - 현대차그룹>

 

한국 정부도 미국 정부와 의회 설득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는 한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국회의원들이 미국을 방문해 의원들과 행정부를 설득하는 작업을 했다."

 

는 내용의 뉴스가 나오는 걸 보면, 뭔가 하고는 있는데, 빈손으로 돌아온 건 이전과 비슷해 보인다. 거기다 민주당이 지난 중간 선거에서 상원의 주도권을 잡았으니, 설득은 더 의미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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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4일, IRA 보조금 협의를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는 한국 대표(왼쪽부터 최형두, 윤관석, 안덕근)

<출처 - 세계일보>

 

그렇다면 유럽은, IRA에 대해 어떤 반응일까?

 

유럽은 참지않긔 

 

유럽은, 설득을 선택한 우리와 다른 반응을 보였다. 기업이 불만을 표출하고, 정부가 중재에 나서는 수준이 아니다. 기업과 정부 모두 뿔이 난 상태로, 사실상 보복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인다.

 

지난 10월, 로이터 통신이 주최한 오토모티브 US 콘퍼런스에서, 유럽계 자동차 회사 경영자들은 IRA에 대한 격정을 토로했다.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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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퍼런스에 참석한 폭스바겐 북미법인 CEO 파블로 디시

<출처 - 로이터통신>

 

"우리는 세계의 다양한 지역에서 공급자를 찾고 있지만, (IRA에) 그렇게 빨리 대응할 수 없다."

 

"콩고, 중국 등에서 가져오는 광물(배터리 원자재)을 2~3년 이내에 다른 곳으로 바꾸기는 어렵다."

 

-폭스바겐 북미법인 CEO, 파블로 디 시(Pablo Di 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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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 회장, 올리버 집세

<출처 - BMW group>

 

"미국은 현실적인 규제를 할 필요가 있다."

 

"새 법(IRA)이 (미국 내) 투자를 억제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BMW 회장, 올리버 집세(Oliver Zipse)

 

이 말을 들은 업계 사람들 대부분, 속 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고렇지! 욕을 아주 교양 있게 하시는구먼."

 

기업은 원자재 공급가를 한 푼이라도 낮추기 위해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이상의 장기 계약을 체결한다. 이 상황에서 기존 거래를 파기하고 새로운 공급 계약을 체결한다면, 기업 입장에서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공급처를 찾기도 쉽지 않거니와 계약 중도 파기에 대한 위약금도 내야 한다. 두 임원은, 자동차 업계가 마주한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독일 자동차 회사 임원들의 발언이 있고 나서, 공교롭게도, 독일 정부 차원의 비판 성명이 이어졌다. 로베르트 하백 경제 장관은 브리핑을 통해

 

"양국(독일과 미국) 경제 간의 공평한 경쟁의 장을 파괴해선 안 된다."

 

"유럽 차원의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며 '강력한 대응'까지 언급했다.

 

실제로 유럽은 '유럽 차원의 강력한 대응'을 준비 중이다. 지난 9월, 제정이 공식화된 유럽 핵심 원자재법(RMA)이 그 주인공이다.

 

유럽판 인플레이션 감축법, RMA(핵심원자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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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연례 연설 중인 우르줄라 EU 집행위원장

<출처 - abc news>

 

EU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은 연례 연설을 통해 RMA를 공식화했다. RMA는 리튬, 희토류 등 주요 광물에 대한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유럽 및 동맹국 내 생산을 지원하는 법안이다. 미국 또는 FTA 체결국 내에서 채굴, 가공된 광물 비율을 충족해야 하는 미국의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와 유사하다.

 

아직 구체적으로 공개된 내용은 없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반도체, 전기모터, 배터리 등 전기차 필수 부품에 대해, 관련 규제를 적용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와 별개로 2026년부터는, 유럽에서 생산, 판매하는 전기차의 배터리 원재료 출처를 공개하는 '배터리 여권제'도 추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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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겨레>

 

IRA와 RMA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중국의 CATL 등 주요 경쟁사들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더불어, 한국 배터리 업계도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중국은 오랫동안 배터리 원자재 제련 분야에서 1위를 지켜왔다. 배터리 업계 전반이 '탈 중국' 하는 게 말처럼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한국은, 배터리 핵심 원자재 수입에 있어서 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다. 한국 무역 협회에 따르면, 그 비중이 리튬의 경우 64%, 코발트 81%에 달한다.

 

독일과 프랑스는 독자적인 법 제정까지 준비하고 있다. IRA가 예정대로 발효되고 의미 있는 개정이 없으면, '바이 아메리칸' 정책을 딴 '유럽산 우선 구매법'을 만들어 대응하는 방안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자, 이쯤에서 딴지 독자들은 궁금한 게 생겼을 거다.

 

그래서 한국 정부는 RMA를 포함한 유럽의 움직임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우린 여전히 노력 중입니다

 

모두가 예상한 대로,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다는 게 국감에서 확인됐다. IRA 늑장 대응 논란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충격은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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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에 열린 산업통상자원부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홍정민 의원의

 

"RMA에 대한 우리 대응은 뭔가요?"라는 질문에 이창양 장관의 대답.

 

"법안 초안이 공개되어야 대응 방안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유럽 통상 조직, 외교 조직에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생중계를 보다가 욕이 나왔다. 초안이 나오지 않았으면, 오히려 그 전에, 우리 이익을 반영할 수 있도록 움직이는 게 상식이다. 정부의 반복적인 뒷북으로 국가 경제 피해가 예상되는 현 상황에서, 법이 나온 뒤에 대응하겠다는 장관의 말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노동자, 장애인 그리고 무고한 시민에게는 쓸데없이 엄격한 모습을 보이는 윤석열 정부. 자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외교, 무역 전쟁터에서는 넋 놓고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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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조 멘친 상원의원

<출처 - 뉴시스(해당기사 링크)>

 

내년부터 시행되는 상용차 세액 공제와 관련해, 한국 정부는 미국에 상용차 범주 확대를 요청했다. 그나마 IRA 발효로 인한 한국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수단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방만한 태도, 해외국의 아웃오브안중으로 귀결된다. 위 요청에 대해, 미국은 묵묵부답. 깔끔하게 무시당했다.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무역으로 먹고사는 우리에게, 개방된 자유 무역은 꼭 필요한 조치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도 강력한 한 방을 보여줘야 할 필요성이 있다. 유럽처럼 못하겠다면, 적어도 대책 없이 멍하니 있다, 눈 뜨고 코 베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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