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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태국과 필리핀이 현재 미·중 사이에서 어떤 상황이며,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를 다룬다. 이전 편을 보신 분들은 기사를 쭉쭉 내려가 태국 부분부터 보시면 되겠다. 

 

이전 편을 못 보신 분들은 1편부터 차근차근 보시는 걸 추천드리지만, 바쁘디 바쁜 현대사회에서 시간이 없으실 수 있겠다. 아래 요약 내용부터 차근차근 읽어보시면 된다. 나중에 1, 2편도 읽어보시라.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시선을 통해 국제 정세를 느끼며, 좀 더 균형잡히고 폭넓게 세계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세계 상황과 동남아시아

 

평화의 시대는 끝났다. 중국이 급격히 성장하며 어느덧 세계 2위 패권국이 되었다. 세계 유일 초강대국 미국을 중심으로 한 ‘팍스 아메키라나’ 시대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위협을 느낀 미국의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2018년 중국을 향해 대규모 관세를 때리며 패권 전쟁의 트리거를 당겼다. 이에 질세라 중국도 똑같은 수준의 관세 보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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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패권국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져 갔다. 세계사에 (거의) 유례없었던 30여 년 ‘평화의 시대’는 그렇게 끝났다. 이 타이밍에 러시아가 결정적 펀치를 날렸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이다. 원조 서방 사회인 유럽의 바로 앞에서 1년이 다 되도록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다시금 도래한 어지러운 시대다. 지난 몇 년간 국제 정세는 하루가 멀다하고 가파르게 변했다. ‘신냉전(러시아는 열전 중이지만 아직 지엽적이기에)’이라 불리는 이 미·중(+러시아) 패권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세계 각국은 이 패권 세력으로부터 “나의 동료가 돼라”며 강요받고 있다.

 

본 연재는 작금의 상황에서, (우리는 아직도 자세히 모르지만) 이미 중요한 지역으로 부상한 아세안(동남아시아)은 어떤 국제적 상황을 맞이하고 있으며,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다양한 각도에서 디벼본다. 국제현실을 똑바로 직시하고, 미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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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1편에선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링크)’에 대해 다뤘고, 2편에선 ‘말레이시아, 베트남(링크)’을 다뤘다. 이번 편에선 '태국과 필리핀'을 다룰 것이다. 이전 편을 보지 못한 독자들도 있을 터이니 아세안(동남아시아 국가 연합)의 두 가지 기본 원칙만 간단히 짚고, 본 내용으로 넘어가겠다(가능하면 지난 편부터 봐주시는 게 가장 좋다). 

 

1. 아세안에는 다수결의 원칙이 통용되지 않는다. 뭐든지 아세안이 공식적으로 결정하는 사안은 ‘만장일치’로 통과되어야 한다. 이런 아세안의 방식을 ‘아세안 웨이(ASEAN WAY)’라고 한다. 

 

2. 외교를 포함한 모든 문제를 헤쳐 나갈 때, 항상 아세안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 원칙이 ‘아세안 중심성’이다.  

 

본격적으로 태국과 필리핀으로 들어가 보자. 

 

미·중 사이 아세안의 포지션

 

6. 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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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는 '방콕'

 

Q : 미·중 사이 태국의 포지션은?

 

태국은 냉전 시절부터 미국과 오랜 군사동맹 관계다. 안보에선 미국과 함께 간다. 다른 아세안 국가와 마찬가지로, 경제는 역시 중국과 엄청나게 얽혀있다. 하지만 태국에선 중국보다 더 경제적 영향력이 큰 국가가 있다. ‘일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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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11월 17일 방콕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 앞서

악수하는 기시다 일본 총리와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

출처-<뉴스1>

 

일본은 1960년대 후반부터 동남아시아를 핵심 경제전략 요지로 인식하고 인프라 투자를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대규모로 인프라 투자를 했다.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일본 엔화 가치가 급격히 상승하며 넘치게 되자, 그 엔화들이 동남아로 밀물처럼 들어간 것이다. 동남아에 대한 일본의 투자는 지금도 여전하다. 

 

오래도록 누적된 투자로 인해, 일본은 동남아 국가들에 굉장한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중 태국에서 특히 영향력이 크다. 플라자 합의 이후 동남아로 엔화가 들어갈 때, 특히 태국으로 많이 들어간 덕분이다. 일본이 태국에 막강한 경제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결정적 순간이다(태국과 일본의 관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후속기사에서 다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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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태국 국가별 외국인직접투자 현황 (BOI 승인기준)

(단위: 건, % 백만 밧)

출처-<대외경제정책연구원>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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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대외경제정책연구원> 링크

 

물론, 중국도 만만치 않다. 투자 면에선 아직 일본이 1위지만, 무역 면에선 중국이 일본을 넘어섰다(출처 링크). 게다가 일대일로 등을 추진하며 더욱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말레이시아 편에서 전술했듯, 태국도 일대일로에 포함된 국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태국에 미치는 경제적 영향력에서 미국은, 중국과 일본에 상대가 안 된다.  

 

Q : 최근 미국과 소원한 태국?

 

동맹을 유지하며 여러 군사훈련도 같이 하지만, 근 10년 사이 태국과 미국의 관계는 좀 소원해졌다. 

 

태국은 (전제)왕정을 무너뜨린 1932년 입헌혁명(군부 쿠데타) 이후 지금까지, 일부 기간을 뺀 대부분 기간을 군부가 정권을 장악했다. 중간에 문민정권이 들어서도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무너뜨리고 다시 정권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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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6월 24일 성명서를 읽는

입헌혁명(군부 쿠데타) 지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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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방콕 거리를 점령한 쿠데타군

출처-<위키피디아>

 

밀레니엄 시대에 들어선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2006년 탁신 총리 때 쿠데타가 일어났고, 2014년 니왓탐롱 총리 때도 그랬다. 2014년에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이가 현재까지도 총리를 하고 있는 쁘라윳 총리다. 2014 쿠데타가 1932년 입헌혁명 이후 일어난 19번째 쿠데타다.

 

(태국엔 왜 이렇게 쿠데타가 자주 일어나고 쿠데타가 정치적으로 어떤 묘한(?)일을 하는지 궁금하다면 다음 기사를 참고하자. '[완전분석]터키의 쿠데타 방정식: 단지 선악으로 판단할 수 없다(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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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22일 쿠데타가 일어났을 당시

도시를 점령한 쿠데타군

출처-<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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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군의 수장이었던

쁘라윳(현재 총리) 육군참모총장의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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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에 반대하는 태국 시민들

출처-<Khaosod English>

 

쿠데타 반대 시위를 집압하러 가는 쿠데타군.PNG

쿠데타 반대 시위를 진압하러 가는 쿠데타군

출처-<AP>

 

군부 정권은 자신들을 비판하며 일어난 민주화 시위도 꾸준히 진압했다. 최근에 일어났던 대규모 시위로는 2020년 2월에 일어난 ‘태국 민주화 시위(운동)’가 있었다. 2021년 10월까지 이어졌지만, 결국 군부 정권이 진압했다. 이런 모습 때문에 미국과 충돌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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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021 태국 민주화 운동

 

미국은 대외적으로 민주주의, 인권 등을 주장하는 국가다. 미국은 태국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반민주적인 쿠데타’와 ‘민주화 시위의 무차별 진압’에 대해 예전부터 쓴소리를 했다. 그런데 민주주의 및 인권의 국제적 기준이 높아진 최근에 와서도, 태국에서 (군부에 의한) 쿠데타가 일어났고, 반민주적이며 반인권적인 정치가 시행되고 있다. 미국은 더욱 비판 목소리를 높였다. 

 

단순 비판뿐 아니라 실질적인 제약을 가하기도 했다. 미국은 반민주주의, 반인권적 국가라 판단되는 국가에는 무기 판매를 제한한다. 그래서 2014년 군부 쿠데타 이후 태국에 군사 지원을 중단하고, 무기 판매를 금지하기도 했다. 이 조치에 태국 군부 정권은 굉장히 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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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쿠데타 이후, 미국은 태국에 군사 지원 중단하다

출처-<INSIDER>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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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합뉴스> 링크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며 2017년 무기 판매가 재개되었으나 이미 마음은 상했고, 갈수록 높아지는 미국의 비판이 듣기 싫다. 비판을 수용할 수도 없다. 정치를 틀어쥐고 있는 군부는 지금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내려놓을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최근 두 국가는 소원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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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뒤, 무기 판매 재개

출처-<연합뉴스> 링크

 

미국과 멀어지며 태국은 지난 몇 년간 중국과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과 멀어지는 상황에서 다른 패권국인 중국과도 거리를 두는 건 무모한 일이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기 십상이다. 태국 군부정권은, 

 

“절대 기득권을 계속 누리고 싶은데, 이러면 미국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것에 제약이 있단 말이지... 그럼 중국과 협력을 강화해서 중국으로부터 지원받자.” 

 

이렇게 생각했다. 그리하여 태국은 중국으로부터 탱크, 잠수함 등을 수입했고, 합동군사훈련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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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합뉴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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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합뉴스> 링크

 

그러나 여전히 안보동맹 국가는 미국이다. 태국은 현재 미국과 중국 중 누구와 더 가깝냐 묻는다면, 태국의 안보는 여전히 미국과 더 가깝다. 베트남 편에서 전술했듯, 태국은 미국과 소원한 상태에서도, 가끔씩 합동훈련을 한 중국과는 다르게 미국과 정기적으로 합동훈련을 했다. 오랜 동맹 관계는 잠깐 겉으로 소원해진 모습만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

 

Q : 대외적인 활동을 하기 힘든 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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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신 친나왓 전 총리 (재임: 2001.06-2006.09)

 

태국은 2006년 쿠데타로 탁신 전 총리가 쫓겨난 이후 지금까지 국내 정치가 거의 모든 에너지를 빨아먹고 있다. 

 

2006년 이후 계속되는 국내 정치적 분란, 2014년 쿠데타, 2019년 선거에서 쿠데타 세력이 다시 집권에 성공하며 일어나는 민주화 운동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국내 문제를 다루기에도 벅찬 상태다. 대외적인 활동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대외적인 활동, 즉 외교를 활발히 하기 위해선 국내적 정통성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국내적 정통성이라 해서 고도의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든지 그런 거창한 걸 말하는 건 아니다. 국내적으로 논란이 크지 않고, 국민들로부터 최소한 어느 정도 이상의 지지를 받고 있는다든가 하는 기본적인 걸 말하는 거다. 그 국가의 국민들이 그 정권을 자신들을 대표한다고 인정해주는 최소한의 기준 말이다. 

 

이런 기본조차 충족되지 않으면, 다른 국가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한다. 국내외적으로 태국이 지금 그런 상황이다. 이로 인해, 태국의 영향력은 과거보다 약해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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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라윳 짠오차 현 총리

출처-<EPA 연합뉴스>

 

7. 필리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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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는 '마닐라'

 

Q : 미·중 사이 필리핀의 포지션은?

 

“미국 쪽으로 향하고 있다.”

 

라고 말할 수 있다. 필리핀은 미국과 오랜 동맹 관계다. 친한 관계를 유지해왔었다. 2016년 대통령이 된 ‘두테르테’가 친중 노선을 택하며 관계가 금 가는 듯했지만, 지난 6월 ‘봉봉 마르코스’가 새 대통령이 되며 미국과 다시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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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합뉴스> 링크

 

9월에는 마르코스가 뉴욕을 방문해 바이든과 정상회담도 했다. 원래 필리핀의 안보 정책 핵심이 미국과 동맹이기도 했고, 갈수록 중국의 안보 위협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두테르테의 친중 외교가 필리핀 외교 역사에서 예외적인 경우라 볼 수 있다. 

 

중국으로부터 받는 가장 큰 위협은 역시나 남중국해 영토 분쟁이다. 필리핀이 현재 느끼는 위협감은 굉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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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도 안보 충돌이 있었다. 지난 11월, 중국이 우주발사체를 발사했는데, 그 잔해가 파가사 섬 인근에 떨어졌다. 파가사 섬(티투 섬)은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중국명: 난사 군도)의 한 섬으로 필리핀이 관할하고 있는 섬이다. 필리핀 영해에 떨어졌다보니, 필리핀 해군은 그 잔해를 회수하러 갔다. 그런데 갑자기 중국 군함이 필리핀 영해로 밀고 들어와 잔해를 빼앗아 갔다. 이후 필리핀은 당연히 외교적으로 항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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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합뉴스> 링크

 

이런 중국의 무법적 행보와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에서의 영유권 분쟁은 점점 고조되고 있다. 필리핀이 느끼는 위협은 커져간다. 이로 인해, 필리핀은 미국과 원래의 관계를 회복해 중국을 견제하려 한다. 

 

이런 움직임 중 가장 최근 일은, 지난 11월에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필리핀을 방문한 일이다. 해리스는 스프래틀리 군도에서 제일 가까운 필리핀 영토 ‘팔라완 섬’에 방문했다. 그녀는 필리핀 경비함에 올라 중국 견제의 목소리를 냈다. 중국이 잔해를 강탈(?)해간 바로 다음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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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VOA> 링크

 

그렇다고 해서 이제 중국이랑 관계가 틀어졌다는 건 아니다. 한 번씩 안보 충돌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두테르테 정부 때와 큰 차이 없다. 현 상황을 정리하자면, 겉으로 중국과 틀어지는 모습이 보이진 않지만, 두테르테 때 멀어진 미국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슬슬 미국 쪽으로 노선을 더 가깝게 하려는 상태라 할 수 있겠다.   

 

경제적 영향력은 단연 중국이 미국보다 훨씬 크다. 다만, 필리핀이 다시 미국과 가까워짐에 따라 중국이 약속했던 경제적 지원, 투자는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만큼은 아니나 일본의 경제적 영향력도 만만치 않다.  

 

Q : 두테르테는 왜 친중 노선을 택했었나?

 

크게 두 가지 이유로 볼 수 있다. 

 

1. 범죄와의 전쟁

2. 미국의 무기 수출 제한 

 

두테르테가 대통령이 된 것은 ‘범죄(특히 마약)와의 전쟁’ 덕이 크다. 두테르테가 다바오시 시장일 당시, 그는 다바오시 내 부정부패를 뿌리 뽑겠다며 강경한 조치를 취했다. 민심은 두테르테에 호응했고, 흐름을 탄 그는 결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두테르테는 대선후보일 당시 주요 공약으로 ‘범죄와의 전쟁’을 내걸었다. 다바오시를 넘어 전국의 부정부패를 뿌리 뽑겠다고 했다. 특히 마약 범죄를 해결하겠다고 했다. 두테르테의 구호는 당시 필리핀의 시대정신과 맞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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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 유세 중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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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아직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인 당선인 시절, 

‘범죄와의 전쟁’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는 두테르테  

출처-<YTN>

 

대통령이 된 두테르테는 자신의 공약대로 전국적으로 범죄(특히 마약) 소탕을 위한 강경한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조치가 너무 강경했다. 경찰에게는 범죄자 즉결처형권이 부여됐고, 마약밀거래상을 죽인 자에게는 포상금이 주어졌다. 일반 시민에게도 범죄자 처형 동참을 촉구했다. 이 외에도 더 있지만, 대략 이런 정도로 강경한 조치가 취해졌다. 당연히 인권이 무시되는 부분이 상당했다.

 

태국에서 전술한 것과 같이, 자신들의 실상은 어떻든 미국이란 국가는 대외적으로 민주주의, 인권 등의 가치를 주장한다. 두테르테의 강경한 조치에 미국은 비판했다. 계속 쓴소리를 했다. 하지만 두테르테 입장에선 미국이 뭐라 한들, 멈출 수 없었다. 마약을 뿌리 뽑겠다는 건 정치인으로서 그의 소명이었고, 당시 필리핀의 시대적 과제였다. 인권이 무시되는 한이 있더라도 마약 문제를 뿌리 뽑아야 했다. 초강경 대책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러설 수 없는 두테르테. 반인권적인 상황을 두고 볼 수 없는 미국. 양보할 수 없는 평행선을 달리다 두테르테도 맞받아치며 미국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미국과 소원해지는 와중 결정적인 사건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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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SBS> 링크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섬에는 무슬림 자치구 지역이 있다. 거기엔 ‘마라위’라는 도시가 있다. 이 도시가 필리핀 내 이슬람 반군에 의해 점령당한 적이 있다. IS도 일부 관여한 사건이다. 이들을 진압해야 했다. 두테르테 정부는 오랜 안보동맹 국가인 미국에게 무기 수출을 요청했다. 그러나 미국은 거절했다. 수많은 반인권적 문제가 터지는 국가에 무기를 수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두테르테가 미국과 확실하게 소원해진 결정적 사건이었다. 두테르테는 자주 외교(Independent foreign policy)를 추구했는데, 이전부터 계속된 미국의 참견에 열받아 하며, 

 

“왜 우리가 강대국이라고 미국에게 끌려다녀야 하는가! 자주적인 외교를 하겠다.”

 

라는 메시지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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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뉴스타운> 링크

 

이후, 두테르테는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무기를 수입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적성국의 무기를 수입한 동맹국 필리핀이 더 안 좋게 보였고, 두 국가 사이 갈등은 더 깊어갔다. 

 

새롭게 대통령이 된 봉봉 마르코스는 이런 부분에서 활동의 폭이 자유롭다. 그는 미국과 갈등한 적이 없다. 갈등이 있던 건 두테르테다. 두테르테의 정책 상당수를 이어간다고는 했지만 좀 더 유연하게 이어간다고 했다.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니 미국 입장에서도 마르코스를 밀어낼 이유가 없고, 관계가 회복되고 있는 것이다. 

 

Q : 미국과 갈등. 필리핀 내 미군을 철수하라고 한 두테르테? 그 이후, 미군은 어떻게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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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KBS1>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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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합뉴스> 링크

 

두테르테 정권 시절, 한국에서 이런 류의 기사가 꽤 보도됐다. 두테르테가 미군을 철수하라는 뉘앙스의 메시지를 냈던 건 맞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좀 다르다. 우리나라에는 주한미군이 있기 때문에, 이런 기사를 접한 한국 사람들은 필리핀에도 우리 같이 주필미군이 주둔하고 있고, 두테르테가 그 미군을 철수하라고 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필리핀에는 주필미군이 없다. 필리핀 내로 들어오는 미군이 있긴 하나 주한미군처럼 영구적으로 주둔하며 미군 마음대로 군사기지를 운영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니다. 필리핀 내 미군의 경우, 순환 주둔 형식으로 필요한 경우에 필리핀 정부의 승인을 받고 필리핀에 들어와서 필리핀군에 의해 소유, 통제되는 지역과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출처 링크).

 

냉전 시기에는 영구 주둔 형태의 주필미군이 있었으나 1992년에 철수했다. 클라크 공군기지, 수빅 해군기지 모두 철수했다. 이후 새로운 방위 조약을 맺었다. 1998년 체결한 VFA(Visiting Forces Agreement)와 이를 보완하기 위해 2014년 체결한 EDCA(Enhanced Defense Cooperation Agreement)이다. 우리말로 하면 ‘방문군협정’ ‘방위협력확대협정’ 되시겠다. 상호방위조약은 그대로인데, 조약의 형태가 바뀐 거다. 이 두 조약이 필리핀과 미군 간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방위 조약이다.

 

두테르테는 두 협정을 모두 건드렸었다. 우선 2016년에 ‘방문군협정(VFA)’을 건드렸다. 방문군협정은 훈련 등으로 미군이 필리핀 내에 들어오는 것이 필요할 때, 일시적으로 미군이 필리핀 내 특정 군사 기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조약이다. 두테르테는 이걸 폐기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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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20일까지는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었다

 

다음 해인 2017년엔 방위협력확대협정(EDCA) 폐기를 언급했다. 방위협력확대협정은 미군이 필리핀에 방문했을 때, 어디를 특별 군사기지로 사용할 수 있고, 어떤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고, 이곳에서 군사 작전을 이행할 때 필리핀군과 미군의 관계는 어떻다는 등 필리핀에서 미군의 권한 범위를 설정한 조약이다(지난 11월 해리스 부통령이 필리핀을 방문했을 때 마르코스 대통령과 만나, 미군이 쓸 수 있는 기지를 추가 건설하여 미군이 사용할 수 있는 지역 범위를 넓히자는 내용으로 ‘방위협력확대협정’ 강화를 합의했다). 

 

2020년 2월에는 다시 방문군협정(VFA)를 건드렸는데, 이번엔 단순히 언급만 한 게 아니라 협정 폐기를 미국에 통지했다. 미국 정부가 두테르테 정부하에서 ‘범죄와의 전쟁’을 지휘했던 전 경찰청장이자 당시 상원의원이었던 로날드 델라 로사의 미국 입국 비자를 취소한 것에 대한 보복조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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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테르테로부터 방문군협정(VFA) 폐기 통지를 받은 후,

트럼프의 반응

출처-<VOA> 링크

 

그러나 대통령으로서 대내외적으로 강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쇼맨십)과 실제로 그렇게 실행하는 것은 다르다. 두테르테의 협박(?)은 이후 번복됐다. 2020년 2월 미국에 폐기를 통지한 방문군협정(VFA)도 잘 유지되고 있다. 미군이 필리핀을 방문하여 이뤄지는 교류 및 합동 훈련도 규모가 축소된 적은 있으나, 하나도 빠짐없이 다 실시됐다. 

 

두테르테는 앞에서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뒤에 가서 대화하고 수습하는 경우가 많았다. 즉, 대통령끼리 싸우는 모습은 종종 보였지만, 이 이상의 선은 넘지 않는다는 마지노선이 존재했던 것이다. 베트남 편에서 전술했듯, 대통령이나 총리 수준에서 미국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 혹은 감정적 발언이 나올 순 있어도 오랜 기간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며 다듬은 협력이란 틀은 무시할 수 없는 법이다.

 

Q : 임기 말, 외교 노선을 다시 돌려놓은 두테르테? 이유는?

 

임기 내내 친중 행보를 했던 두테르테는 임기 말에는 중국과 거리를 뒀다. 두테르테가 중국과 친하게 지냈지만, 영토 문제는 지속적으로 일어났다. 중국과 좋았던 시절에도 안보 위협은 고조됐다. 또한 필리핀 국민들은 반중감정이 상당히 크다. 이런 국민들의 감정을 무시하긴 힘들다. 

 

이런 이유로 임기 말에 두테르테는 자신이 바꿔놓은 필리핀의 외교 노선을 다시 정상적으로(?) 돌려놓았다고 볼 수 있다. 다음 정권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의도도 있을 수 있다.

 

이 시기 두테르테는 그동안 언급을 자제했던 중국과 영토 분쟁 문제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냈다. 원래 그는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의도적으로 이에 관한 언급을 자제했었다. 어느 정도였냐. 2016년 7월 필리핀이 중국과의 영토 분쟁에 관해 국제상설중재재판소에서 승소한 일이 있었는데, 이것도 언급하지 않고 활용하지 않겠다는 발언까지 했었다. 그런데 임기 말, 두테르테는 UN에서 영상 연설을 하며, 이 승소 사실과 함께 중국과의 영토 문제를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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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국경제> 링크

 

두테르테에 대해 여러 비판이 있지만, 그는 최대한 국익을 위한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을 대통령으로까지 밀어준 국민들이 원하는 시대적 사명인 ‘범죄와의 전쟁’을 수행하는 데 있어 미국은 방해 요소였다. 국내 범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미국과 사이가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미국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없으니, 반대편에 있는 중국과 친목을 도모하는 것을 택했다. 태국에서 전술했듯, 두 국가와 모두 척지고는 국제 사회에서 살아남기 힘든 일이다. 그렇게 두테르테는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임기 말, 외교 노선을 다시 바꿔놓고 퇴임했다.  

 

Q : 두테르테 시기에 경제적으로 중국에 많이 종속됐기 때문에, 새 정부가 들어선 후 미국과 가까워지는 데 부담이 있진 않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 정도 부담을 느낄 만큼 중국에 경제적으로 종속되지 않았다. 두테르테 정권 당시 중국 회사들이 필리핀에 많이 진출한 건 맞다. 특히, 게임 산업 분야 진출이 많았다. 그 관련 시설이 마닐라 인근에 많이 들어섰다. 일할 중국인들도 많이 왔다. 이 외에도 중국 정부는 두테르테 정부에게 많은 인프라 개발을 약속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루어진 건 많지 않다. 이전보다 중국과 협력이 증가한 건 맞지만, 경제가 종속될 정도로 뭐가 이루어진 건 아니다. 허울만 좋았지, 실속은 크지 않았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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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대외경제정책연구원> 링크

 

이게 두테르테의 외교 정책에 대한 비판 중 하나이기도 하다. 

 

“네가 친중 정책을 썼는데, 실제 경제지표를 보면 중국이 우리한테 해준 게 뭐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종속된 게 별로 없으니, 다시 미국으로 방향을 트는 것에 대한 부담도 크지 않다. 그나마 표면적인 도움이 꽤 드러났던 일은, 코로나 사태 때 중국이 백신 등 관련 지원을 미국보다 적극적으로 해준 일이다.

 

Q : 원래 주필미군이 영구 주둔하던 필리핀. 미군은 왜 1992년에 철수했나?

 

원래 미국과 필리핀은 군사기지협정(MBA)을 맺어서 필리핀 내 주필미군이 영구 주둔하고 있었다. 미군은 필리핀 내 군사 기지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주기적으로 연장하며 사용했다. 필리핀은 미군이 그 기지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돈도 받았다. 

 

그러던 와중 미군기지 사용 권한을 다시 연장해야 하는 1991년이 됐다. 군사기지협정(MBA)은 국제적인 조약이기 때문에 연장하려면, 의회에서 통과된 후 정부에서 최종 승인이 나야 했다. 필리핀은 당시 아키노 정부였는데, 아키노 정부는 미리 미군 주둔 연장에 찬성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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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라손 아키노 전 필리핀 대통령.

현 필리핀 대통령 '봉봉 마르코스'의 아버지인

독재자 마르코스 전 대통령을 

몰아내고 대통령이 되었다.

 

그런데 필리핀 상원에서 연장안을 부결했다. 연장안 찬성과 표 차이는 거의 안 났다. 연장안이 부결되며 미군의 군사기지 사용 권한은 만료되었고, 결국 미군은 철수했다. 상원에서 연장안을 부결한 이유로는 당시 상원의원 중 민족주의적 의식을 가진 사람이 많았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된다. 

 

하지만 상대는 미국이다. 간발의 차로 연장안이 부결된 수준이었기 때문에 미국이 마음만 먹었다면, 일부 상원 의원들을 설득하여 충분히 연장안을 통과시켰을 수 있었다. 미국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순순히(?) 철수한 데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연장안이 필리핀 의회에 상정되기 3개월 전인 1991년 6월, 필리핀의 피나투보 화산이 폭발했다. 엄청나게 큰 화산폭발이었다. 그로 인해 미군 기지의 80% 정도가 화산재에 뒤덮여 잿더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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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6월 12일, 피나투보 화산 폭발 모습

 

미군은 화산 폭발로 기지를 더 이상 제대로 활용할 수 없었고, 복구한다 하더라도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그냥 철수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3개월 뒤 필리핀 상원에서 연장안을 부결시키려는 움직임이 보여도 묵인하고 주필미군을 모두 괌으로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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괌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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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말

 

본 기사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많은 분들이 취재에 도움을 주셨습니다. 

 

김동엽 교수(부산외대), 김형종 교수(연세대 미래캠퍼스), 김형준 교수(강원대), 윤진표 교수(성신여대), 이재현 박사(아산정책연구소), 한유석 박사(전북대), 그 외 많은 분들(국제 관계 관련 분야에 계시기에 본의 아니게 불이익을 받으실 수 있어 자신을 밝히길 원치 않은 분들이 많습니다)께서 시간과 정성을 들여 도와주셨습니다.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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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