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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 16. 금요일


산하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후보인 정진후 전 전교조 위원장에 대한 말들이 무성하다. 그가 전교조 위원장으로서 조직 내에서 일어났던 성폭행 사건의 처리 와중에서 행한 일들 때문이다. 무심했던 나는 이번 소동으로 전교조 내에서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을 되짚는 기회를 가졌다. 이런 기회를 주신 정진후 비례대표 후보와 이정희 대표에게 감사드린다. 진심이다.

 




정진후


 


조직의 수장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집까지 제공했던 여성 조합원을 그 조직의 조직국장이란 녀석이 성폭행하려던 사건이 일어났다. 이를 수습하는 와중에서 정진화 (헛갈리지 말자 정진후는 아니다) 전교조 위원장 이하 간부들이 사건의 정치적 파장을 우려하며 피해자의 사법적 행동을 만류하고 사건을 조직적인 ‘은폐를 조장’하려는 행위를 했다는 주장이 있었다. 정진화 위원장의 말을 들어보자.


 



“...... 고소에 대한 부분은 피해자가 평범한 여성이 아니라 총체적인 탄압을 받고 있는 전교조의 조합원이기 때문에 공안 당국에 의해 최대한 정치적으로 활용 당하는 과정에서 피해자 자신이 힘들어질 수 있음을 걱정했을 뿐입니다. (이처럼 고소 후 피해자가 처할 수 있는 상황과 그로 인한 어려움을 말해주는 것은 일반 상담기관에서도 흔히 있는 일입니다)



 


정진화 전 위원장은 김보은 김진관 사건 때 전교조 대표로도 참여한 적이 있으며 스스로 성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하지 않다고 자부한다고 썼는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그 자부심의 정체를 의심할 수 밖에 없다. 제대로 된 ‘감수성’을 가진 이라면 성폭력의 피해자는 “전교조의 조합원에 앞서 평범한 여성일 뿐입니다.”라고 표현해야 옳을 것이다. 성폭력의 피해를 입은 여성에게 “총체적인 탄압을 받고 있는 전교조의 조합원”임을 상기시켜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성폭력을 당한 여성, 조직의 수장을 보위하기 위해 자신의 집 한 켠을 내 주었던 여성에게 ‘공안당국에게 정치적으로 활용’당할 위협을 고지하는 것이 얼마나 황당한 행동이었는지를 정진화는 윗글을 올릴 때까지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부족하지 않다고 자부하시는 그 감수성, 수우미양가로 치면 양이다. 이런 상담을 일반 상담기관에서 한다고? 상담 기관들이 명예훼손을 걸 일이다.


 


 더 가관인 것은 “전교조가 현 정권의 총체적인 탄압의 표적이 되고 있는 정세의 절박함 속에서 위원장으로서 조직이 입을 타격과 전교조 조합원인 피해자의 피해사실이 왜곡될 것을 동시에 염려”하신 위원장님이 하사하신 염려의 내용이다. 정진화 위원장은 스스로 ‘두 번째 만남’에서는 고소하시라고 말했다지만 첫 번째 만남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이건 피해자의 말을 들어보자. “정 전 위원장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오랜 시간동안 고통 속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그래서 고소를 할까 한다'는 말에 위원장의 첫마디는'고소는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정진화


 


이 첫 마디에서 벌써 정진화는 중대한 과오를 저질렀다. 전국 교직원 노동조합 위원장이 조직에 충실하다가 성폭력의 피해자가 된 이에게 ‘고소하지 말라’는 말을 했다는 자체는 이미 ‘은폐 시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내 딸이 학교에서 성폭력을 당했는데 교장이 “꼭 고소하셔야겠습니까?”라고 하면 그 교장은 치아 임플란트를 통째로 하거나 최소한 다리가 부러질 것이다. 그런데 그 짓을 전교조 위원장이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의 증언은 설상가상이다.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과 당신을 내연의 관계인 것처럼 몰아가는 (언론)보도가 준비되고 있다고 시민단체 관계자에게 들었다. 이것 봐라. 고소하면 선생님이 힘들어진다.” 이쯤 되면 또 하나의 협박이고 명백한 2차 가해에 해당한다. 조중동이나 보수 언론이 그런 기획 기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해도, 전교조 위원장이 할 일은 그걸 피해자에게 고해 바치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좋다. 피해자의 증언일 뿐이며,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느냐며 부인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정진화 전 위원장은 자신도 이런 말을 했다고 고백한다.


 


 



“‘검찰에 고소하고 싶으면 하셔라, 다만 민주노총에서 징계 절차를 밟기 시작했고 투쟁이 한창 중이니 고소 시점만 좀 고려해 주시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



 


투쟁이 한창인 것하고 고소 시점과는 아무런 함수 관계가 없으며, 민주노총의 징계와 사법 처리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도대체 왜 성폭력의 피해자가 조직의 절차를 고민하고 투쟁의 한창을 고려해야 한단 말인가. 그 따위 투쟁 해서 뭐하고, 그런 조직 무엇 때문에 필요한가. 성폭력 사건을 두고 사회에서 횡행하는 “집안 망신” “조직 망신” 운운의 프레임 그대로를 본뜨고 앉았고, 성폭력 피해자에게 투쟁의 고담준론을 펼치는 그런 조직이 어떻게 진보를 자처한단 말인가. 나는 그런 진보 필요 없고, 안할 거고, 반대한다.


 


자 여기까지 읽었으면 어떤 분은 짜증을 낼지도 모르겠다. “아 그래 정진화 나빠! 정진화가 나쁘다고! 하지만 비례대표는 정진후라고! 후!” 그렇다. 이정희 대표의 말에 따르면 "정 전 위원장은 2차 가해자로 지목받은 분이 아니었고 2차 가해자로 징계 받은 분들에 대한 재징계, 그 이후 조직 내의 문제를 다룰 때 조직위위원장“이었다. 그러니까 2차 가해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옳다. 그런데 저렇게 뻔뻔하게 성폭력 피해자를 압박했던 (물론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 압박의 느낌은 피해자의 것이다. 그게 피해자 중심주의다) 이들에게 내려진 ‘제명’ 처분이 ‘경고’로 뒤바뀌었을 때의 그 위원장이었다. 그리고 정진후 위원장과 정진화 위원장은 같은 정파 소속이었다.


 


정진후 위원장의 책임을 일단 뒤로 미루고 따져보자. 제명 처분을 경고로 격하시킨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도대체 어디 사는 누구이며, 성폭력 피해자에게 “선생님 조중동이 선생님을 이석행 첩으로 몰려고 한다는데요 어떡하죠?”라고 걱정(?)해 주는 조직의 수장, 투쟁이 한창이니 고소를 미루라고 권유하는 노동조합 위원장에게 ‘제명’이 아니라 ‘경고’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한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그들이 정녕 교사들인가. 나는 정진화고 정진후고간에 이 징계의 완화가 이 사태의 가장 큰 핵심이라고 믿는다. 이 징계 완화에 앞장선 이들이 그들의 학교에서 성폭력 사건이 벌어졌을 때 “교장 선생님 정년도 얼마 안남았는데......” 또는 “대학 입시가 코앞인데......” “결국은 너만 손해볼텐데.”라면서 성폭력 피해자들의 피눈물을 빼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말이다. 나는 적어도 이런 말을 하는 자는 교직을 내놓아야 한다고 믿으며, 그것이 ‘성폭력에 대한 감수성’이라고 확신한다. 그런데 전교조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참교육한다고 목청 높이던 집단이! 그 조직의 위원장이! 그런 일을 저지르고도 ‘경고’ 정도로 끝낼 일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이런 동네 시궁쥐도 통곡할 일이!

 



 


그때 정진화와 같은 정파에 속해 있던 교사들이 했던 막말을 다시 늘어놓지는 않겠다. 하나만 소개하면 그들은 이렇게 비아냥거렸다. “피해자 중심주의가 피해자 마음대로주의냐.” 그때 피해자의 마음이 어땠을지는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 페북을 하다가 한 통진당 지지자로 여겨지는 한 선배의 말에 그만 분통이 폭발하고 말았다. 바로 이런 식으로 매도되었으리라 이런 식으로 코웃음의 대상이 되었으리라 실감케 하는 멘트였다.


 


 



“솔직히 전교조 내 교찾사라는 조직이 정진후 후보에 대해 마타도어를 퍼뜨리며 비난하는 것 아닙니까? 정진후 후보가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겠으나 전교조 위원장 임기 마칠 때까지 이런 정도로 문제제기가 계속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특정한 목적을 갖고 문제제기를 계속하는 집단이 오히려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이 논리에 따르면 결국 피해자는 ‘교찾사’라는 조직의 마타도어의 수원지에 불과하게 된다. ‘특정한 목적을 갖고’ 비례대표 정진후에게 문제 제기하는 세력의 일원이 된다. 현재 피를 토하며 정진후 비례대표의 비례 대표 지명 철회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그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교찾사인지 무엇인지 하는 단체가 아니라 성폭력의 피해자 그녀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를 배신하고 그녀에게 상처를 안겨 준 조직의 수장들에게 솜방망이를 안겨 준 세력, 그들이야말로 날선 마타도어로 피해자를 공격했었다.


 


나는 이 사건의 내막을 전혀 몰랐다. 하지만 정진후의 이름 석 자가 들먹여지면서 내막을 알아보게 됐고, 결국은 분노에 몸을 떨며 새벽을 맞을 수 밖에 없게 됐다. 전교조에게 묻는다. 통진당에게 묻는다. 꼭 정진후 위원장을 내세워야 했는가. 이렇게 한 피해자에게 박힌 독화살의 상처를 되새기게 하고, 전교조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면서까지 그 사람을 택해야 했는가. "조직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당시 대의원들에게 '내가 스스로 위원장으로서 잘 처리를 못 했으니까 경고조치를 받겠다'고 자청했던 분" (이정희 대표)이면 면책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정진후를 무등태우고 정진화를 구원한 그 ‘부족한’ 조직의 비도덕성과 무신경함과 뻔뻔스러움은 과연 정진후 위원장과 무관할 수 있는 것인가. 수십 년 교육 운동의 역사에 사람이 그렇게도 없다면, 이건 무능의 소치인가 무책임의 결과인가 무식함의 전형인가.


 


정말로 창피하다. 당신들 이러면 진보가 아니다. 전교조에게 다시 한 번 묻는다. 통진당에게, 더 찍어 말하면 오불관언 정진후 위원장 카드를 놓지 않고 있는 이정희 대표에게 묻는다. 성폭력 피해자 여성에게 “투쟁이 한창이니 고소를 미뤄 달라”고 얘기하는 위원장 따위가 전교조에 남아 있어야 할 이유가 있었는가. 그리고 그 징계 완화 중심에 서 있었던 위원장은 정말 책임이 없는가. 꼭 그분만이 비례대표가 될 수 있다고 우길 것인가. 만약 고집스레 예스 라고 대답한다면 나는 당신들에게 화살을 재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 정진후 위원장의 인품은 훌륭하다고 들었다. 능력도 있다고 들었다. 그 아까운 재목을 찍어 내고 있는 것은 당신들이다. 당신들 그러면 정말 진보가 아니다.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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