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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 19. 월요일

블루칼라


 



 




 


데브리(Debris)


 


3장. 히트맨(Hit Man)


 


콜린 스나이더가 처음 살인을 한 것은 열다섯 살 때였다. 아스팔트가 녹아내릴 것처럼 무더운 여름날의 오후, 스나이더는 브룩클린 뒷골목에서 젊은 노숙자 한 명의 머리를 벽돌로 내리찍어 최초의 살인을 저질렀다. 하지만 카뮈의 소설 속 주인공처럼 뜨거운 태양 때문에 살인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자는 몇 달이나 씻지 않은 몸으로 악취를 풍겼고 끈질기게 스나이더를 뒤따라오며 1달러를 요구했으며 심지어 그 더러운 손으로 스나이더의 팔을 움켜잡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것이 스나이더가 노숙자를 죽인 이유는 아니었다. 스나이더는 살인을 저지르기 며칠 전부터 그 노숙자를 자신의 첫 살인 대상으로 점찍어 뒀던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실험이었다. 스나이더는 자신에게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스나이더는 집에서 한 시간 거리의 슬럼가를 헤매며 자신의 실험에 적합한 대상과 장소를 물색했고 그 결과 선택된 것이 이십대의 젊고 건장한 노숙자였다. 스나이더가 며칠 동안 지켜본 바에 의하면 그자는 자신보다 약해 보이는 행인에게 적선을 강요했으며 자신의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따라붙는 집요함이 있었다. 모두 스나이더가 찾던 조건이었다.


 


실험 당일, 스나이더는 일부러 자신의 체구를 더 왜소하게 보이도록 구부정한 자세로 젊은 노숙자의 앞을 지나쳤다. 예상대로 그자는 자신보다 체구도 작고 어린 스나이더를 따라오며 적선을 요구했다. 그자를 백 미터쯤 떨어진 인적 없는 골목까지 유인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스나이더는 자신이 점찍어둔 장소에 도착하자 지갑을 꺼내는 척 가방에서 벽돌을 꺼내 들었다. 목표물이 비명을 지르지 못하게 하려면 첫 공격에서 충분한 타격을 줘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는 온힘을 다해 젊은 노숙자의 안면을 강타했다. 노숙자는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한 채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스나이더는 미리 봐둔 하수구 뚜껑을 열고 그자를 하수구 밑으로 떨어뜨렸다. 노숙자의 행방불명 따위는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고 이 슬럼가의 하수구에서 시체를 발견하기까지는 빨라도 몇 달, 혹은 몇 년이 시간이 걸릴 터였다. 뒤따라 하수구로 내려간 스나이더는 의식을 잃은 젊은 노숙자의 광대뼈와 이마가 함몰될 때까지 몇 번이고 벽돌로 내리찍었다.


 



 


스나이더가 살인의 도구로 칼을 선택하지 않은 것은 타인이 죽어가는 순간을 좀 더 오래 경험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살인의 순간에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스스로 예상했듯이, 벽돌로 상대의 얼굴을 셀 수 없이 내리찍으면서도 그는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


 


자신의 인생을 허비하며 타인에게 기생하는 젊은 노숙자를 죽여서가 아니었다. 아무런 죄가 없는 어린 소녀를 죽였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스나이더는 타인의 감정이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이 결핍된 인간이었던 것이다.


 


스나이더가 살인 실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최초의 살인을 통해 그는 폭력이라는 재능에 눈을 떴으며 그것만이 자신의 삶에서 흥미를 느낄만한 것임을 깨달았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뿐이었다. 하나는 연쇄살인범이 되는 것이었는데 평생 경찰의 추격을 받으며 언젠가 결국 전기의자에 앉게 되는 것은 그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감정적으로 결핍된 부분이 있다고는 해도 열다섯 살의 스나이더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길은 하나뿐. 스나이더는 제도권의 틀 안에서 자신이 가진 살인의 욕구를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몇 년 뒤 미 해군 네이비 씰(Navy SEALs)에 입대했고 그곳에서 자신이 가진 폭력의 재능을 체계적으로 갈고 닦았다. 그리고 실질적인 살인의 기술을 익힌 것은 전역 후 CIA 소속의 암살 전담 요원이 되고 나서였다. 스나이더는 열다섯 살에 첫 살인을 저지른 후로 자신이 계획한 대로 국가의 지원을 받는 살인자가 됐다.


 


암살자가 되기 위한 CIA의 훈련 과정을 마치고 나서 현장에 투입됐을 때 스나이더가 가장 놀란 것은 자신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임무가 주어진다는 것이었다. 한 해 동안 그가 국가의 지시를 따라 죽인 사람들의 숫자는 살인의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킬만한 수준이었다. 그는 자신의 직업을 사랑했으며 충족감을 느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끝이 있는 법. 3년 전, 그러니까 스나이더가 CIA의 암살자로 활약한지 십 년 째 되던 해 겨울에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죽인 어떤 사람과도 비교할 수 없는 거물급 인사를 암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가 암살 대상자의 사진을 보며 놀란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타깃은 7년 전 퇴임한 전직 대통령 존 오스틴이었다.


 


암살 요원에게 ‘왜?’라는 질문은 허락되지 않았다. 임무는 절대적인 것이었고 어떠한 타깃이든 실패는 용납되지 않았다. 상대가 전직 대통령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암살 지령에 첨부된 필수 옵션은 N.D(Natural Death), 자연사로 보이게 하라는 것이었다. 사실 난이도로 따지면 테러범을 처리하는 것보다 쉬운 편에 속했다. 적어도 암살 대상자의 위치를 찾으러 다니는 수고는 할 필요가 없으니까.


 


오스틴 대통령은 퇴임 후 알츠하이머를 앓기 시작하며 요양원에 입원해 있었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따른 경호원들이 배치돼 있겠지만 그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국 요인의 배신에 따른 암살의 경우 요인의 경호팀이 CIA와의 사전 약속에 따라 정해진 시간에 느슨한 경계를 하도록 스케줄이 조정되기 때문이다. 물론 현장의 경호원들 개개인은 경호가 느슨해진 것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아주 작은 변동이지만 스나이더 같은 1급 암살 요원에게는 그 정도 틈새면 충분했다.


 


새벽 3시, 스나이더는 당직 의사를 가장해 오스틴의 병실을 찾았다. 요양원 건물 곳곳에는 경호원들이 배치돼 있었으나 퇴임 직후 아내를 잃은 오스틴에게는 새벽의 침상을 지켜줄 가족이 없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졌었던 사내는 이제 늙고 병들어 자신의 정신마저 가누지 못하는 초라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었다. 오스틴은 거칠고 불규칙한 숨을 힘겹게 반복하며 꿈속에서마저 평온하지 못한 듯 했다.


 


스나이더는 준비해 온 약물을 능숙하게 링거액에 투입했다. 인위적인 심근경색으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약물이었는데 부검을 통해서도 드러나지 않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런데 약물의 투입이 거의 끝나갈 무렵, 갑자기 오스틴의 깡마른 손이 스나이더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날 죽이러 온 건가?”

 


가래가 섞인 탁한 음성이었다. 스나이더를 노려보는 오스틴의 광기어린 눈빛은 어둠 속에서도 번뜩였다.


 


스나이더는 당황하지 않았다. 약물이 투입된 이상 오스틴의 목숨은 곧 끊어질 것이었다. 하지만 늙고 병든 전직 대통령은 움켜잡은 스나이더의 손목을 더 꽉 쥐며 알 수 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큭큭큭! 그래, 내가 알고 있는 정보가 두려운 놈들이 보낸 거겠지! 이글스는 호텔 켈리포니아를 노래하면서 1969년 이후로 그런 술은 팔지 않는다고 했지만 난 2003년 이후로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있었어! 오~ 레베카! 자기 남편이 뭘 두려워했는지도 모르고 먼저 죽어버린 불쌍한 여자 같으니라고! 하지만 걱정 마! 이제 곧 나도 당신의 무덤에 뒤따라 들어갈 테니! 그럼 살아있는 자들에겐 허락되지 않은 비밀을 다 말해줄게!”


 


호쾌하게 떠들던 오스틴은 갑자기 두려움이 떠오른 눈빛으로 스나이더를 보며 말했다.


 


“그들이 곧 올 거야! 아니, 이미 그들은 이 땅에 자리를 잡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어! 바티칸에선 뭐라고 하던가? 우리들의 신은 그들에게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하던가?”


 


스나이더는 왜 오스틴에 대한 암살 지령이 내려졌는지 알 수 있었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전직 대통령은 자신이 알고 있던 극비의 정보를 지킬 능력을 상실한 것이다. 지금 오스틴이 떠들고 있는 이야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은 국가 안보와 직결된 기밀 정보임에 틀림없었다.


 




 


“그들이 누굽니까? 그리고 2003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물어서는 안 될 질문이었다. 스나이더의 질문을 들은 오스틴은 눈을 껌벅거리며 자신이 붙잡고 떠들고 있는 사내의 얼굴을 주시했다.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떠올려냈다. 잠시 후 그의 눈빛에서 서서히 광기가 걷히기 시작했다.


 


“미안하네. 누군지 모르지만 내가 제 정신이 아닐 때 떠든 이야기는 기억에서 지워버리게. 다 헛소리고 미친 망상이 만들어낸 이야기야. 절대로 그 말을 믿지 말게. 그게 자네를 위한.....”


 


하지만 오스틴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에게 투약한 약물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오스틴은 스나이더의 손목을 움켜잡았던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쥐어뜯으며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끄윽.....끅......”


 


오스틴은 상처 입은 짐승처럼 몸을 뒤틀며 신음 소리를 냈다. 신음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스나이더는 두터운 베개로 오스틴의 얼굴을 덮어 눌렀다. 먼저 그의 심장이 멈췄고 잠시 후에 신음 소리가 사그라졌으며 결국 미약한 경련을 일으키던 몸짓마저 끝이 났다. 스나이더가 베개를 치우자, 오스틴은 고통인지 슬픔인지 모를 눈동자로 허공을 주시한 채 숨을 거둔 상태였다.


 


스나이더는 서둘러 병실을 빠져 나왔다. 사망한 오스틴의 몸에 장착된 심전도 신호는 5분 뒤에나 당직 의사에게 전달될 것이며 전직 대통령의 사인은 심근경색으로 판명될 것이었다.


 


건물을 나오면서부터 스나이더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요양원과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세워둔 자신의 차에 올라탈 때까지도 스나이더는 그 께름칙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건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 따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본능적인 위기감이었다.


 


스나이더는 운전석에 앉자마자 시동을 켠 뒤 셀룰러폰을 꺼내 들었다.


 


“작전 완료 했습니다.”


 


셀룰러폰 너머의 목소리는 잠시 침묵하더니 아무런 감정을 담지 않은 채 물었다.


 


[......타깃과 무슨 이야기를 나눴나?]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궁금해 하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오스틴과 대화를 나눈 것 자체에 대한 힐난이 담긴 목소리였다. 오스틴의 병실 어딘가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를 통해 자신의 암살 장면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대화 내용도 도청됐을 것이었다.


 


“별다른 이야긴 없었습니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늙은이의 헛소리였을 뿐입니다.”


 


[알았네. 그럼 바로 복귀하도록.]


 


전화를 끊으며 스나이더는 자신이 병원을 나올 때부터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는 곧바로 가속페달을 밟아 차를 급발진 시켰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차창을 뚫고 들어온 총탄이 스나이더의 이마를 스쳤다. CIA의 또 다른 암살 요원이 임무를 마치고 나온 스나이더를 노린 것이 분명했다. 몇 차례의 총격이 이어졌지만 스나이더는 빼곡하게 늘어선 건물들 사이로 차를 몰아 추격을 따돌릴 수 있었다.




 


그 날 이후로 스나이더는 CIA의 암살 대상 리스트에 올랐다. 살인 면허는 취소되었고 도망자 신세가 된 것이다. 스나이더는 그 길로 미국을 떠났고 얼마 후 어둠의 세계에서 히트맨으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그 날 자신이 죽어가는 전직 대통령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스나이더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그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든 다시 들출 생각이 없었다. 그는 새롭게 시작한 일이 마음에 들었으며 CIA에 소속되어 있을 때보다 훨씬 만족스럽게 살인의 욕구를 처리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더 이상 전기의자를 걱정하지 않았다. 그를 뒤쫓고 있는 CIA 암살 요원들은 그를 전기의자에 앉히는 번거로운 방법보다 더 빠른 방식을 택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2012년 11월 26일. 스나이더는 새로운 의뢰를 맡아 브라질 상파울루행 여객기에 몸을 실었다.


 


 


=다음 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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