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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4. 03. 화요일
취재팀장 죽지않는돌고래


 



 


1.


3월 25일 일요일 밤 11시. 그레고리력으로 84번째에 해당하는 이 날은 영국에서는, 그 누구지, 왓포드 FC구단주였는데, 여튼 축구도 하고 노래도 제법 하는 사람이 태어났고 (엘튼 존입니다 - 편집자 주) 한국에서도 뭐가 있긴 있을 텐데 찾기 귀찮으니 생략한다. 중요한 건 트친들과 함께 우리 존재가 어디까지 화이팅할 수 있는지에 관한 논쟁 중이었다는 거다.


 


제법 중차대한 때라 나조차 진지해지지 않을 수 없던 그때, 옥상땐스(@okddan)'본가에 들렀다 여러가지 희귀템을 가져왔다!'라며 끼어들기를 시도했다. 그는 우리 존재의 화이팅이 인류역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모르는 듯했다. 아니면 판을 흔들어 논쟁의 주도권을 잡으려 했던 걸까. 총수님이 월급을 제때 준다는 것만큼이나 어이없는 멘션에 분노한 나는 얼마나 잘난 걸 들고왔는지 그의 멘션을 확인했다.


 



<2012년 현재, 옥상땐스 소장>


 


내게 책사가 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장군, 형광등 99개가 박근혜에게 덤비고 있는 형세입니다'


 


인물과 사상은 기본 가라꾸에, 말지 창간호까지 보유한 나에게 이런 깔대기를 들이미는 건 기본적으로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생각했다. 내가 알던 옥상땐스가 아니라고. 옥상땐스는 이렇게 추잡하게 놀지 않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를 천연암반수가 흐르는 지하에 묻어 깨끗하고 맑고 자신있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하여,


 



<2012년 현재, 죽지 않는 돌고래 소장>


 


너부리 대장이 고우영 선생님께 삼고초려를 하면서 완수해낸 '고우영 삼국지 무삭제 완전 복원판 CD', 그리고 지금은 찾기 힘든 '썬데이 딴지'를 찍어 올렸다. 타임라인에 모인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모니터 너머로 맥주캔을 짓이기며 우르부르 떨고 있는 옥상땐스가 보였다. 그는 ‘푸코의 추’ 초판을 가져오겠다느니, 본가에서 희귀템을 잔뜩 들고 오겠다느니 이상한 소리를 중얼대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옥상땐스 빈소 : 인천 앞바다, 발인 : 3월 25일.>


 


나는 옥상땐스의 극랑왕생을 빌었다.


 


누구든 돌고래를 건드리면 잣되는 거야.


 


 


2.


논쟁으로 돌아가려 했던 의도와는 달리 타임라인의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보물섬 창간호를 가져와 돌고래(잘생김 - 편집자 주)를 박살내겠다느니, 간잽이 명인 이동삼 선생을 데려와 돌고래(잘생김 - 편집자 주)의 간을 맞춰 주겠다느니 하며 말이다. 하지만 다들 거창한 멘션놀림 뿐, 누구하나 나서는 이 없었다.


 


나는 본래의 의도와 달리 시끄러워진 타임라인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기세를 몰아 청와대에 사찰이나 지어볼까. 그때, 또 누군가가 나타나 밑도 끝도 없는 멘션을 던졌다. 너클볼러(@knuckleballer77)다. 


 



<너클볼러의 도전장>


 


너클볼러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부친이 직접 썼다는 가계부다. 논쟁을 무력화 시키려는 수작은 뒤로 하고라도 멘션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다. 적어도 대한의 사나이라면 승부를 걸 때는 자기 손에 피를 묻힐 각오를 해야하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가면 맞짱뜰 때 효도르를 데려와 80% 빙의된 거라고 우기거나 회사에 입사할 때는 친구 토익점수를 들고와 20%는 내 점수니 봐달라고 우기는 세상이 된다.   


 


너클볼러(이하 쌩양아치)를 가만히 놔두면 비겁함이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이 될 거라고 생각하니 가만 있을 수 없었다. 그래 띄우자. 동백나무로 짠 관에 너클볼러를 고이 접어 요단강에 띄우자. 인간된 도리는 지켜야 하니 요단강에 건널 배삯은 주자. 그거쉬 월 4백11원으로 경험해 본 분들은 다시 찾는 돌고래 상조의 도리다.


 


나는 아주 의기가 양양해져서는 그에게 요단강 티켓을 건넸다.


 



<2012년 현재, 작품명 : 요단강 티켓, 죽지 않는 돌고래 소장>


 


멘션을 날린 순간, 요단강 아래서 지축의 변동이 일어났다. 대운하 공사라도 한 것일까. 해수면이 일렁이고 - 강인데 왜 해수면이 일렁이는지는 모르겠지만 - 어쨌든 일렁이고, 관짝을 부수고 있는 쌩양兒 너클볼러가 보였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아, 삽질했다.'


 


내가 삽질을 많이 봐서 아는데 이건 삽질이다. 연식이 위라고 이길 수 있는 승부가 아니다. 희귀템이라고 무조건 먹고 들어가는 판이 아니다. 트윗계의 승부는 모두 팔로워들의 호응에 의해 결정된다는 불문율을 망각한 것이다. 특정 장소에서만 군생활을 해야 알 수 있는 물건을 내보인 나는 내 세계에 빠져 우물 안 돌고래가 됐음을 깨달았다.


 


사람들의 반응은 차갑게 식기 시작하더니 그 수증기는 근두운이 되어 나를 안드로메다로 데려갔다. 산소가 희박해진다. 헤모글라빈 수치가 내려간다.  파토형이 외계인을 해부하고 있다 - 뭐, 이건 중요한 거 아니고- 여튼 잔혹한 멘션들.


 


@gaxxxxx ‘뭐임? ’


 


@kaxxxxxx ‘베어그릴스 삼겹살 구워 먹는 이질감’


 


@gurolxxxx '안 그래도 미국 유학 중에 스트레스 쌓이는데

이제 이런 알 수 없는 멘션 짜증날라 그런다... 이제 돌고래와 맞팔 끝..... 너와 나는 AND....'


 


@bunexxxx ‘80%는 허경영 정부가 한 것’


 


@kimchangkyu ‘그래도 돌고래 졸 잘생겼잖아. 시크 미남. 쩔어.’


 


@anidaxxxxx ‘NIGAGARA, YODANGANG’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환호하던 팔로워들은 잔혹한 싸다구 멘션을 날리기 시작했다. 나의 멈칫거림을 너클볼러가 알아챈 걸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려 했던 너클볼러는 뽀빠이 시금치를 먹고 돌아왔다.


 



<너클볼러의 반격기>


 


그가 꺼낸 멘션으로 타임라인은 술렁대기 시작했다. 깨달았다. 너클볼러가 희대의 전략가란 사실을. 일기배틀로 날 몰아넣기 위해 쌩양兒 코스프레를 하며 때를 기다렸단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 이건 희귀템의 승부지, 일기배틀이 아니라고. 빨리 생산적 논쟁을 재개함이 옳다고. 하지만 잔혹한 팔로워들은 싸움구경을 하기위해 좋다고 모여들기 시작했고 마이 페이스는 모래 위의 구멍 뚫린 수조마냥 흔들리고 있었다. 기상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밤은 깊어간다.


 


내일도 지각하면 너부리 대장이 빠타를 칠 것이다. 선관위 때문에 빡친 근래의 흐름으로 봐선 풀스윙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허둥지둥 책장의 맨 아래칸 서랍을 열어 미친 돌고래처럼 초딩 때 일기장을 꺼냈다.


 


그래, 너클, 이왕 이렇게 된 거 끝장을 보자.


 



 


찍었지만 올릴 수 없었다. 충효일기로는 이길 수 없을 게 뻔하니까. 물론 내 일기에 충과 효가 없는 건 아니지만, 누가 봐도 새모습 생활일기가 위다. 나는 정신을 막 일도하고 하사도 받고 불성도 드리고 뭐, 그러면서 혼잣말을 되뇌었다.


 


'쌀을 주고 벼를 친다.

시시껄렁한 겉표지가 아니라 내용으로 카운터를 노린다'


 


그때,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


 


‘짹짹’

(새 멘션이 왔을 때 들리는 소리)


 


일기장 더미 안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던 나는 책상 위의 모니터를 쳐다봤고 거기에는 근조화환을 든 너클볼러가 향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분명 향냄새를 좋아하긴 하지만 장소가 병풍 뒤였다. 꿈인가. 얼른 정신을 차리고 그의 멘션을 확인했다.


 



<2012년 현재, 너클볼러 소장, 작품명 : 니가 가라 요단강,

너클볼러가 초딩 때 쓴 일기로 추정>


 


막다른 골목길에 처한 13명의 내 자아가 외쳐대기 시작했다.


 


‘제1의돌고해가무섭다고그리오’


 


두 번째 자아가 외쳤다.


 


‘제2의돌고해가무섭다고그리오.’


 


세 번째 자아가 외쳤다.


 


‘제3의돌고해가무섭다고그리오.’


 


네 번째 자아가 외쳤다.


 


‘제4의돌고해가무섭다그리오’


 


다섯 번째 자아가 외쳤다.


 


‘쫄지마 이 새끼야’


 


여섯 번째 자아가 외쳤다.


 


‘시끄러 이 새끼야’


 


나의 자아들은 서로 싸우기 시작했고 너클볼러가 최후통첩장을 날렸다.


 


‘포기하라. 돌고래’


 


사람들은 열광했다. 돌고래 쫄았다. 돌고래 뒈졌다. 근데 너클볼러 새싹 깍뚜기다.


 


말로만 듣던 후달림. 왼쪽 무릎에서 시작한 후달림은 내 몸 전체를 지배해 적혈구와 백혈구까지 송해 손 잡고(손에 손잡고 아니다)나를 막다른 절벽으로 밀어넣었다.


 


되뇌었다. 여기서 죽으면 이름이 아깝다. 역전극을 펼치자. 대반전의 서사시를 쓰자. 너클볼러를 외로운 옥상땐스의 곁으로 보내자.


 


그때다. 힘들 때마다 나의 대화상대가 되어준 책상 옆의 오바마오가 말을 건넨다. 환청이었을까. 아니,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또 다른 나의 자아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분명 그 음성을 기억한다.


 



 


'돌고래, 지금 멘션을 날리면 넌 두 번 다시 트윗을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오늘은 여기서 물러나라.'


 


극심한 쫄림와 후달림 때문에 겪는 환청. 하지만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오바마오. 당신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오바마오는 말이 없었다.


 


'한미FTA 비준 동의안이 한국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때였나요?'


 


여전히 말이 없는 오바마오에게 말했다.


 


'나는 지금입니다.'


 


정체모를 자신감이 온 몸을 휘감았다. '이길 수 있다'라는 확신을 한 순간, 멘션이 날아왔다. 


 


‘이것으로 저의 승리를 확정 짓겠습니다.’


 


<2012년 현재, 너클볼러 소장, 너클볼러가 초딩 때 쓴 일기장>


 


나의 팔로워가 멘션으로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초딩으로 돌아가 닥치는 대로 후려 패는 것입니다." 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또 “내 소원은 초딩으로 돌아가 닥치는 대로 후려 패는 것입니다"라고 말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고 세 번째 물어도 더욱 소리를 높여 "내 소원은 초딩으로 돌아가 닥치는 대로 후려 패고 새모습 생활일기장에 완전하고 자주적인 나의 일기를 쓰는 것이입니다" 라고 대답할 것이다.


 




추신 : 심재원, 이진희 씨에게 오늘의 기사를 바친다. 

 



 


취재팀장 죽지 않는 돌고래
@kimchangkyu
Profile
딴지일보 편집장. 홍석동 납치사건, 김규열 선장사건, 도박 묵시록 등을 취재했습니다. 밤낮없이 시달린 필진들에게 밤길 조심하라는 말을 듣습니다. 가족과 함께 북극(혹은 남극)에 사는 것이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