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누군가 범죄를 저지른다.

 


crime.jpg




시작은 평범(?)하다. 어느 교도소든, 수감자의 사연이 시작되는 지점은 비슷하다. 범죄라는 사건 발생.

 

그렇다. 오늘은 교도소 수감되기까지의 과정을 얘기하려고 한다. 내가 근무하는 정신병원 교도소에 수감되는 환자들 역시 거의 같은 과정을 밟는다. 다만, 이곳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일반 교도소와 달리 수감자의 상태와 그 상태가 의미하는 바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

 

법과 절차에 관한 얘기를 쓰려고 할 때 실은 조금 걱정했다. 법이나 절차 따위의 말은 멀쩡한 뇌에도 두통을 가져다주지 않나.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꽤 쉬운 얘기가 될 것도 같다. 특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여러 명의 구치소 수감 과정을 온 국민이 생생히 보았으니까.

 

다시 범죄를 저지른 시점으로 돌아가자.

 


arrest.jpg

 


그리고, 체포된다. 그 후에는, 이제는 너무 유명해진 서울구치소에 수감될 차례다.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은 사람, 형량이 낮은 잡범들이나 경범죄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구치소에 수감된다. 구치소에 수감된, 그러니까 범인으로 추정되는 피의자에 대한 증언과 증거, 그리고 조서 등을 토대로 검사는 법정에 혐의를 제기하고 기소한다.

 

잠깐, 여기서 피의자와 피고인의 다른 점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피의자는 죄를 범한 혐의로 수사기관의 수사대상이 되어 있으나 아직 공소가 제기되지 않은 자를 말하고 피고인은 검사에 의하여 공소가 제기된 자를 말한다. 우리의 박근혜 현재 대통령이 아닌 분께서는 현재 피의자 신분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법률 대리인은 대통령이 ‘피고인’의 신분이 아니기 때문에 법적 조사를 거부할 권리를 주장한 것으로 기억한다(왜 이런 말장난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박근혜_대면조사_거부.jpg



이런 말장난을 하는 독특한 법률대리인이 없는 경우, 대부분은 이러한 법적 절차를 통해 검사가 범죄 사건의 범인으로 피의자를 기소하고, 피의자는 검사의 공소제기로 인해서 피고인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기소되면 피고인을 변호할 사람이 필요하다. 이것은 피고인의 권리이기 때문에 변호사를 선임할 경제적 여건이 안 되는 사람들도 국가에서 지정한 관선 변호인에게 변호를 받을 수 있다.  


 

그분도 알아야 할, 피고인의 권리

 

권리 얘기가 나온 김에 피고인 꿈나무 그분을 포함해 피고인들이 알아야 할 중요한 법적 권리를 짚고 가자. 미드에서 수사물을 봤다면 갓 잡은(?) 범인에게 경찰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로 시작되는 그 말도 피고인의 권리에 포함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피고인은 변호인의 변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법정에 관한 모든 과정에서 변호사를 통해 보호받을 권리가 있음을 말한다. 그 권리를 지키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할 능력이 없는 피고에게도 관선 변호인을 제공해 피고를 대신하여 발언하도록 한다. 또한, 피고인은 항변하기 전에 변호사와 상의할 수도 있다.

 

두 번째는 항변을 제출할 권리다. 피고인은 자신이 최선이라고 결정한 대로 항변할 권리가 있다. 이때 변호인의 조언과 충고를 참고하는 것이 좋다. 변호인이 피고를 대신해 법정에서 발언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결정은 피고 스스로 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재판에 관한 권리다. 피고가 배심원 재판을 받을 권리는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동시에 피고에게는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는데, 이것은 법원 심리가 있은 지 10일 이내에 예심을 받을 권리다. 피고가 원할 경우 재판에서 증언할 권리가 있고, 진술이 본인에게 불리하다고 판단했을 경우에는 진술을 거부할 권리도 있다. 또한, 자신의 변론을 위한 증인의 진술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네 번째는 묵비권 행사 권리다. 피고인은 변호사 없이 경찰의 질문에 답변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항목이다.

 

다음은 고소장에 관한 권리인데 피고는 고소장의 사본을 요구하여 받을 권리가 있다.

 

마지막은 선택을 할 권리다. 피고인에게는 변호인과 동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경찰의 심문에 답변하지 않을 선택의 권리, 그리고 피고인 스스로 본인의 유무죄에 관한 선택을 하여 항변할 권리가 있다. 이것 역시 변호인의 조언을 참고하는 것이 현명하다.

 


부러진화살.jpg



이외에도 피고인 스스로 변호인의 역할을 맡을 권리가 있다. 이런 경우도 있나 싶겠지만,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안성기 씨가 연기한 김경호 교수 역할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이때 피고인은 변호인을 선임 받을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자신의 변호를 할 권리를 선택하는 것이다. 피고인이 이런 선택을 할 경우 판사가 승인하는 것이 관례이나, 피고 스스로 변호를 하는 것은 본인에게 불이익을 줄 경우가 있으니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이런 권리 안에서 법적 절차가 진행되어 관계자들이 법정에 들어서면, 마침내 재판이 시작된다.

 

 

법정에서 만날 사람들

 

그렇다면 법정에는 대체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자. Law and Order 같은 드라마를 많이 시청한 덕에 반 법조인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판사, 검사, 변호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실제 재판은 셋만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2.jpg

출처 - 온타리오주 법무부

(기사 본문에 소개된 법정과 비슷한 구성의 법정 구성으로, 이해를 돕기 위해 한국어로 바꿨습니다)

 


법정의 가장 앞쪽, 가운데 높은 자리에는 판사가 있다. 판사는 법정에서 최고의 권위가 있는 사람으로, 피고인이 재판에 참여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을 판단한다. 스포츠 경기의 심판과 같은 위치에 있기 때문에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립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판사는 재판을 진행하며 증거 채택 여부를 결정한다. 배심원단이 없는 재판에서는 피고인이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결정하고, 배심원단이 있는 재판에서는 배심원단의 판단에 따라 유죄 무죄의 판결문을 읽으며 법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 피고의 형량을 결정한다. 법 해석을 하고 피고인의 가석방 여부를 결정하는 것 역시 판사다. 이외에 판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헌법에 따라 피고인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다. 판사가 앉아 있는 자리를 ‘The Bench’라고 부르는데 배심원 없이 진행되는 재판을 ‘Bench Trial’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판사의 바로 앞쪽 아래에 앉아 타이핑하는 사람은 법원 속기사다. 속기사는 법정에서 나온 모든 발언을 빠짐없이 기록하는데, 이것은 법정 기록으로 영구적으로 남게 된다. 여기에 사용되는 타이프라이터는 일반 타이프라이터와는 사뭇 다른데, 빈번하게 사용되는 언어들을 하나의 키로 구성해서 타이핑 시간을 단축시킨다. 이 타이프라이터를 Stenograph라고 하는데 그래서 법원 속기사를 Court Reporter 또는 Stenographer라고 부른다.

 

판사 옆에는 또 다른 사람이 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이 사람은 법원 서기로, 판사의 비서 역할을 한다. 서기는 서류를 정리하고 증인과 배심원들에게 선서를 시킨다. 판결 내용을 기록하고 법정 수수료와 벌금을 받는 역할도 한다. 서기가 있는 반대쪽 판사 바로 옆자리에 증인석이 있다.

 

원활한 재판 진행을 위해 법원 경찰관도 꼭 필요한 역할이다. 법정에서 소란을 피우거나 적절치 못한 행동을 할 경우에 이를 통제하면서 법정 내의 치안과 질서를 유지하는 일을 한다. 보통 피고를 법정 안팎으로 호송하고, 법정 안에서 피고에게 착석할 위치를 알려주는 일도 한다. 이 밖에 판사, 배심원, 피고를 경호하면서 증거물을 판사에게 건네는 역할을 한다.

 


jury verdict.jpg

출처 - MESOWATCH



판사의 왼쪽으로 두 단 정도의, 교회 성가대 느낌을 주는 긴 의자들이 있는데 이곳에 앉은 12명의 사람이 배심원단이다. 배심원단은 해당 범죄가 발생한 주에서 무작위로 선발된 미국 시민권자로 구성된다. 이들은 판사의 지시에 따라 증거를 참고해 피고가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결정하는데, 이때 만장일치로 결론을 내야 한다. 만장일치에 실패하면 배심원단 대표가 판사에게 이를 알리고, 판사는 미결정 심리를 공표하는데 이것을 ‘Hung-jury’ 라고 부른다. 이 경우 피고인은 무죄 판결을 받지 않는다. 배심원들의 의견이 엇갈려 판단을 내리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이때는 기소를 다시 해서 처음부터 재판이 진행되거나 죄질 협상을 통해 재판 없이 판결이 내려진다.

 

법정의 주요 인물 중 하나는 피고 측 변호사다. 판사 앞에는 두 개의 긴 책상이 약간 거리를 두고 있는데, 그중 어느 책상이 되었든 변호사가 안쪽으로 앉고 피고가 바깥쪽으로 앉는다. 변호사의 주된 역할은 법정에서 피고인을 대변하고 법적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다. 또한 비밀 보장의 의무가 있기 때문에 피고가 말한 것을 비밀로 지키며 다른 사람에게 누설해선 안 된다. 변호사는 검사와 함께 피고인의 죄질을 협상하며 피고를 대신하여 법원에 각종 신청서 및 법원 서류를 제출한다. 피고가 최선의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법률 자문을 제공하며 재판에서 유죄 증거에 대해 반박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피고가 최저 형량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지방검사 또는 검사는 나머지 책상의 안쪽, 그러니까 다른 쪽 책상의 변호사와 가까이 앉으며 검사의 옆에는 일반적으로 목격자들이 앉는다. 검사는 법정에서 피해자와 그 주(state)를 대표한다. 피고인을 어떤 죄목으로 기소할지 결정하며 피고의 유죄를 증명할 증거를 입수하고 재판 시 피고의 유죄를 입증하는 역할을 한다. 죄질 협상을 피고 측에 제안할지 결정하고, 죄질 협상을 하게 될 경우엔 어느 정도 감형을 제안할지 결정하는 일도 검사의 몫이다. 마지막으로 판사에게 피고인의 형량을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법정의 주인공인 피고가 있다. 피고는 법이 보장하는 자신의 권리, 본인의 기소 죄목과 혐의 내용, 그리고 유죄 판결이 날 경우 어느 정도 형량이 주어질지 이해해야 한다. 자신에게 어떤 항변의 선택이 있는지 이해해야 하며, 변호사와 정직하게 소통해야 한다. 변호사의 자문을 주의 깊게 듣고 법정에서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것도 피고가 지켜야 할 항목이다.

 

재판과정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피의자가 체포되어 구금된다. 이때 보석금을 내고 풀려나거나 모든 재판 과정에 협조하겠다는 서약 하에 보석금 없이 가석방되는 경우도 있다. 이후에 검사는 형법에 따라 법원에 피의자를 기소하는데, 기소된 피고는 법정에 출두하여 자신의 기소 혐의 또는 죄상에 대하여 듣는다.

 

죄질 협상은 이다음, 사전 예심에서 이뤄진다. 예심에서는 검사가 제시한 증거를 두고 판사가 재판을 진행할 만큼 충분한지 판단한다. 판사의 판단에 따라 재판 전에 예비 공판이 열린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 판사, 검사, 변호사가 모여 재판 시 어떤 증거가 채택될지에 대해 토론한다. 영화에서 많이 본 장면이다.

 

이 과정 이후에 배심원을 선발한다. 배심원 후보들이 법정에 출두하여 질문을 받고 그중 12명이 선발되고 나면 재판이 열린다. 증거가 제시되고 배심원이나 판사가 피고의 유죄 또는 무죄를 결정한다. 마지막 단계가 판사의 선고인데 유죄로 판결이 나면 판사가 법에 따라 형을 선고한다.

 

 

Incompetent(무능력) 그리고 Insanity(정신이상)

 

이것은 미국에서 진행되는 일반적인 재판 과정이다. 하지만 내가 일하는 정신병원 교도소의 수감자들은 이 진행 과정 초반에 한 가지 단계를 더 거친다. 이 단계는 변호사와 피고가 만난 직후에 발생하는데, 변호사가 피고에게 법정에 설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는 경우다.

 

이 경우 판사에게 이의를 제기한다. 판사가 이것을 받아들이면, 법정은 피고인에게 최소 두 사람 이상의 평가자를 보내 실제 피고의 정신 능력을 평가한다. 평가자들은 정신 건강 전문가인 정신과 의사나 심리학자들인데, 이들은 피고와 대화를 나누고 검사를 한 후 감정서를 법정에 제출한다.

 

이 감정서를 받은 판사는 피고가 현재 법정에 설 수 있는지를 판단한다. 판사가 ‘Incompetent for Trial’(혹은 Incompetence to Stand Trial, 법정에 설 수 없을 만큼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상태)라 판결 내린 피고인은 내가 일하는 정신병원 교도소로 이송되어 임시 수감된다.

 

위에서 언급한 Incompetent 한 상태, Incompetency는 현재 피고가 법정에 설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의미다. 여기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는 것은 중요한 법적 절차를 이해할 능력이 없다는 것과 항변을 위해 변호사와 협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이 상태의 피고는 본인이 어떤 죄목으로 기소됐는지, 법정은 무엇을 하는 곳인지, 그리고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등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쯤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정신이상(Insanity)’의 상태를 Incompetent for Trial 상태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Incompetency(무능력)Insanity(정신이상)는 비슷한 듯 보이겠지만 법적으로 조금 다르다.

 


인간의 행위가 범죄가 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1. 위법성이 있어야 한다. 이 행위는 반드시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행해져야 한다. 즉,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온전한’ 상태에서 행해져야 한다.

 

2. 유죄 취지가 있어야 한다. 이는 고의로 계획을 세우고, 행동의 무모함을 개의치 않고 하는 것이다. 범죄를 저질렀을 당시 약물에 취했거나 정신적인 결함이 있는 경우에는 유죄 취지가 감소된다.

 

Insanity(정신이상) 상태의 피고인은 범죄를 저지를 당시 자신의 행동이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잘못됐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다. 시간 기준은 범죄를 저지를 당시이다. 범죄를 저지르던 순간의 피고가 옳고 그름을 구별할 만큼 정신적으로 안정적이지 않은 상태였다면 법적으로 정신이상으로 인정한다.

 

Incompetency(무능력) 상태의 피고는 현재 법정에 서서 본인을 항변할 능력이나 변호사와 상의할 능력이 없다. 이유는 정신이상이 될 수도 있겠지만, 언어적 문제나 지적 능력 부족이 될 수도 있어 폭이 넓다. 이런 이유로 법정에 설 능력이 없는 것과 정신이상은 법적으로 다른 의미를 갖는다.

 


내가 근무하는 정신병원 감옥에 수감되는 이들은 현재 무능력 상태, 즉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항변들과 수감자의 권리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이다. 법과 가깝지 않은 일반인도 머리가 복잡해지는 법적 절차와 권리를 언제쯤 다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앞서 쓴 글에서 설명했듯, 이곳에서는 환자들이 법정에 설 수 있도록 돕는다. 자세히 파고들자면 준비하고 이해해야 하는 것들이 많지만, 환자들의 상태를 고려해 간단하게 이해하기 편한 형태로 교육한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들을 법정에 설 수 있는 정도의 상태로 준비시키는 기간과 내용에 대해서는 앞으로 쓸 글에서 자세히 다루려고 한다.


세 편의 글을 통해 익숙하지 않은 미국의 교도소, 그것도 무능력상태의 환자들이 수감되는 정신병원 교도소를 둘러보고 앞으로 진행될 법적 절차에 대해 미리 알아보았다. 다음에는 환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기본 항변과 그들이 재판에 참여할 능력을 갖췄는지 판단하는 교육, 그리고 환자들이 숙지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살펴보자.






지난 기사


정신 병원 감옥의 기준선

최대한의 자유가 보장된 감금






Boss

편집 : 딴지일보 인지니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