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2017.9.15)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는 자진 사퇴의사를 밝혔다. 사퇴의 변은 아래와 같다.
“청문회를 통해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서의 이념과 신앙 검증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문성 부족을 명분으로 부적절 채택을 한 국회의 결정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납득이 어려울 만도 하다. 사실, 박성진 박사(포항공대 교수)가 처음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되었을 때부터 여론을 뜨겁게 달궜던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이념과 신앙에 관한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정통 과학자로서 비과학적 지식 산출의 대표격인 창조과학회와 같은 단체에 이사직으로 있었다는 것, 특히 지구의 나이를 6,000년이라고 믿는 그의 신앙관이 핵심이었다.
현재 지구의 나이는 45억년 정도로 이는 운석의 방사능 연대 측정을 기반으로 연구된 결과이다. 물론, 오차범위가 ± 0.5억년으로 그 수치 또한 정확하진 않다. 물론 수학자들 중에서는 오차 범위가 5천만년이라는 부분에서 지구의 나이가 45억년이라는 데에 회의감을 갖는 이들도 있다. 어쨌든, 지구의 나이가 6000년 보다는 훨씬 더 오래되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모든 과학자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그렇다면, 박성진 후보자는 왜 지구의 나이를 6000년이라고 했을까? 실제로 청문회 당시 박 후보자가 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보자.
질문자: 후보자 입장에서 보기에 지구의 나이는 어떻게 되나요?
박 후보자: 창조 신앙을 믿는 입장에서는, 교회에서는, (지구의 나이를) 6000년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과학자들이 근거를 해서, 여러 가지 탄소동위원소나 이런 부분에 대해서...
질문자: 창조과학자들은 과학적인 근거를 갖고 지구의 나이를 6000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부분에 동의 하시나요?
박 후보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신앙적으로 믿고 있습니다.
https://youtu.be/chkM3ONdEvw
이게 무슨 말일까? 창조과학회에서 주장하는 지구 나이 6,000년은 신앙적으로는 믿지만 과학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어떻게 들으면 말이 되는 것 같으면서도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동의하지 않지만’ (신앙적으로는) ‘믿고있다’는 말은 모순이기 때문이다. 동의가 안 되는데 어떻게 믿을 수는 있겠는가. 박 후보자의 대답은 그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에 애초부터 이해가 불가능한 답변이었다. 그렇다면, 왜, 철저하게 과학 ‘통’인 그가 “신앙적으로는 지구의 나이를 6000년이라 믿는다.”고 답했던 걸까. 왜, 이와 같은 ‘모순’된 주장을 할 수 밖에 없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성경에 대한 그릇된 종교심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는 오늘날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
313년 밀라노 칙령에 의해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지정이 되면서 교세는 점점 확장되기 시작했다. 특히 중세로 들어서면서 기독교는 서양의 주요 종교가 되었고 국가는 교회에 의해 운영되기 시작했다. 기독교회가 서구의 정치, 문화, 사회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 교회는, ‘정경화’(正經化, Canonization) 과정을 거쳐 확립된 성경을 근거로, 신이 만든 최상의 피조물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이 발을 딛고 있는 곳,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 여겼다. 중세를 거치면서 천동설이 정설로서 굳건하게 자리매김 한 것도 이와 같은 사상적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실 ‘프톨레마이어스’(영문:Claudius Ptolemy / 헬라:Klaúdios Ptolemaîos)의 천문학 체계는 지나치게 지구중심적이었기 때문에 학문적 반론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모든 세력의 핵심이었던 교회가 동의한 천동설은 성경을 통한 신앙적 동의까지 겸비하여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진리’가 되었다.
이렇듯, 천동설은 단순히 천문학적인 관측 결과에 의해서 도출된 이론이 아니었다. 물론, 숱한 과학자들의 연구와 논의가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는 하나 당시에 추구하는 사상과 철학이 깊숙하게 투영된 이론이었음은 분명했다. 그렇게, 지금 같으면 ‘미쳤다’라는 소리나 들을 법한,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과 우주가 돌고 있다는 얘기를 유럽인들의 대부분이 1500년이나 믿고 있었던 것이다. 우주의 구조까지도 기독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답을 정했던 것.
코페르니쿠스가 처음 지동설을 주장하기 위해 논문을 발표했을 때도, 몇몇 학자들로부터는 환영을 받긴 했지만, 정작 코페르티쿠스 자신은 교회로부터 탄압을 받게 될 것을 우려해 논문 출판을 10년 넘게 미루었다고 한다. 코페르니쿠스의 논문 출판을 담당한 루터교 출신의 ‘안드레아스 오시안더’(Andreas Osiander)가 “이 가설을 읽는 독자에게”라는 제목으로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이 단순 가설이라는 내용의 논문 초록을 임의 삽입한 사례 역시 기독교의 영향력을 실감케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세계관을 지배한 기독교 덕분이었을까. 종교개혁자로 널리 알려진 마르틴 루터도 성경의 여호수아 10장 12절을 인용하여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반박했다고 알려져 있다. 루터는 이스라엘과 아모리 민족의 전투에서 “태양아, 기브온 위에 머물러라! 달아, 아얄론 골짜기에 머물러라!”(새번역)라고 했던 여호수아의 기도 내용을 바탕으로, 분명히 하나님께서 태양과 달을 멈추셨지 지구를 멈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코페르트쿠스의 지동설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었다. 루터가 종교개혁자로서 혁혁한 공이 있는 인물로 존경받고 있지만, 천문학 연구 논문을 성경의 일화로 반박하려고 했던 것은 성경에 대한 잘못된 이해, 오용한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나마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여 루터와 그 이전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 이해는 가능하다. 종교개혁 당시 성경은 눈으로 직접 보기조차 힘든 책이었다.(루터 조차도 교회에서 봉직을 하기 전까지 성경을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다고 했으니 말 다했다) 현재 시가로 치자면 권당 4-5억원에 달했던 성경은 그 가격만큼이나 가치도, 위상도 남달랐다. 아무리 신자라 하더라도 교회에나 가야 몇몇 구절을 겨우 들을 수 있을 정도. 물론 유럽 전체 인구의 약 2%만 읽을 수 있다는 라틴어 성경은 일반인들은 봐도, 들어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미사를 집도하는 성직자들이 성경을 쉬운 말(자국어)로 짧게나마 설명이라도 해 주면 그나마 다행이었던 시대였다.
뿐만 아니라, 신자들에게 성경은 '신의 계시가 담긴 책'이었다.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던 교회의 보물 1호로서, 성경에 오류 따윈 없다고 믿었다. '성경무오설'도 그렇게 확립되기 시작했다. 성경에 기록된 것은 모두 사실이며 어떠한 오류도 없다고 믿은 것이다. 당시의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해 본다면, 성경으로 세상의 모든 이치를 파악하려 했던 사람들의 시도 자체가 납득이 되기도 한다. 성경으로 천문학까지 비판하려 했던 루터의 시도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은 중세 때와는 상황자체가 판이하다. 성경은 이미 세계 각종 언어로 번역 되어있다. 어디서든 직접 사 볼 수 있고 각종 해설서도 넘쳐난다. 누구나 성경을 연구할 수 있고, 손쉽게 관련 자료들을 찾아 볼 기회도 충분히 주어져 있다. 과거와 같이 성경 자체가 신격화 할 만한 대상이 못 된다. ‘성경무오설’도 마찬가지. 성경은 현재 원본이 존재하지 않고 사본을 근거로 정경화 되었다. 게다가 구약의 경우에는 ‘구전’(口傳)을 추후에 기록해 자료를 남긴 것이기 때문에 각종 연대부터 시대 묘사 등 각종 역사서들과 내용면에서 상이한 부분들도 많다. 이처럼 여러 면에서 그 한계성을 드러낸 성경에, 과거 중세와 같은 절대 신뢰를 갖는 처사는 이해될 수 없다.
박 후보자가 말했던, 지구 나이 6000년을 신앙적으로 믿고 있다는 대답은, 과거 천동설을 믿고 있던 중세 사람들의 신앙과 종교개혁 당시 루터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했던 반박과 다르지 않다. 이는 성경에 대한 그릇된 종교심에서 비롯된 오류이다. 그가 현대 과학자로서, 기독교 신앙인으로서 충돌되는, 모순된 답변을 마주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도 이러한 오류가 원인이 된다. 창조과학을 부정 하자니 신앙을 져 버리는 것 같고, 부정을 안 하자니 자신의 경력에 문제가 생길 것 같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이것은 분명 무언가를 잘못 믿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필자는, 박 후보자의 등장으로 창조 과학과 현대 기독교에 제기된 문제가 단순히 어느 부처 장관 후보자 개인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국교회가 그동안 가르쳐왔던 신앙과 교육의 문제이다. 시대는 지났고 모두가 동등하게 성경을 읽고 뜻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하지만, 여전히 과거에서 머물러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해 왔던, 성경에 대한 그릇된 종교심을 갖게 했던 신앙 교육은 재고 되어야 한다. 얼마나 많은 신앙인들이 박 후보자와 같은 상황 속에서 신앙의 모순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가.
결론
‘지구 나이 6000년’은 직접적으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6000년이라는 숫자는 성경 속에 있는 다양한 내용들을 취합하고 종합해서 계산한 하나의 해석에 불과하다. 가령, 창세기에는 인류의 시초인 아담으로부터 시작되는 인류의 족보가 있다. 이 족보의 연대를 측정해보면 기원전 4000년 경에 아담이 활동한 것으로 계산된다. ‘고대 창조론’, 혹은 ‘젊은 지구론’이라 불리는 이론들은 이와 같은 계산법으로 탄생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족보 연대로 지구의 나이를 측정한다는 것은 구약성경에 기록된 자료(족보)가 한 명도 빠짐 없이 모두 기록되어 있고, 틀림이 없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또한 족보로 연대 측정이 가능하다는 전제도 필요하다. 이 두 가지 전제가 성립이 가능해야만 ‘지구 나이 6000년’이란 결론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위의 두 가지 전제의 성립은 과연 가능할까.
성경에는 인간의 속죄와 구원을 비롯한,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에 관해 기록되어 있다. 영국의 성공회는 성경에 대해서, “성경은 모두 옳다.” 혹은 “무조건 오류가 없다.”고 언급하지 않는다. “인간의 구원을 향한 메시지에는 오류가 없다”고 명시한다. 기독교의 정통성을 지키되 각기 다른 분야에 있어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렇다. 성경에는 이 세상의 모든 지식과 정보가 담겨있지 않다. 지구의 나이를 측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모든 과학적 지식이 담겨있지 않은 성경을 바탕으로 정확한 지구의 나이를 측정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러한 부분에서의 성경이 가진 한계성을 인정하고 각종 과학이론을 바탕으로 밝혀진 사실들은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성경의 기록을 담당했던 건 인간이다. 불완전한 인간의 속성이 기록 안에 드러날 수밖에 없다. 성경 속에 있는 한계와 오류를 인정하는 건 인간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는 것이지 신의 오류가 있다는 것을 내포하지 않는다. 성경무오설과 같이 성경을 신격화 하는 그릇된 종교심은 신을 높인다는 명목 하에 오히려 인간이 스스로의 불완전함을 가리려는 오만함의 산물이다.
BRYAN
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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