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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 불량삐삐야. 잘 지내지? 며칠 전엔 비가 겁나 오더니 이제는 비가 안 오는 환한 낮에도 바람이 많이 불어 추워. 다들 따뜻한 거 많이 먹고 따뜻하게 입고 다니길 바라. 다들 삐삐가 궁금했어? 난 잘 지내. 요즘도 덤벙대고 허허거리고 잘 부딪히고 맹하고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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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73년생 동갑을 불러 만든 <세월호를 위한 73년생 모임>에서 나왔어. 좀 웃기긴 하지? 내가 만들고 내가 나오고. 다 내 잘못이야. 좋은 일을 하기 위해 모인 이들이라 아무 생각 없이 둬도 된다고 생각했나봐. 실제로 그렇게 모임이 굴러가기도 했고. 그런데 말이야 둘만 모여도 ‘사회’라는 걸 이루잖아. 갈등과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라 그것들을 잘 직시하고 해결하는 게 관건인데, 그건 내 능력 밖이더라. 난 문제가 닥치리라 생각도 못했고 닥치니 허우적거렸고 ‘직시’하기도 버거웠으니까. 아무튼 그래서 내가 모임을 나왔어. 난 나왔지만 그 모임에 있는 73년생 동갑들은 여전히 열심히 광화문에서, <이웃>에서 활동하고 있어. 다만 내가 함께 하지 않는 것뿐.


그동안 안산에 매주 나갔기에 그 일은 계속하게 되더라. '가로나'와 함께, 매주 금요일 치유공간 <이웃>도, 유가족자녀들을 위한 공간인 <우리함께>도, 분향소에 스스로 만든 <엄마공방>도 가고 있어. 처음엔 가로나가 엄니들께 아로마 마사지를 해드리면 난 그 옆에서 수다를 떨고 손을 만져드리고 필요한 거 눈치껏 보조해 주고 그랬는데, 올 봄부터는 가로나에게 <엄마공방>과 <우리함께>에 오시는 유가족 엄니들께 천연화장품 강좌를 해줄 것을 요청했어. 그래서 재료비 지원 하에 금요일 마다 낮에는 공방에서 밤에는 <우리함께>에서 엄니들과 열심히 뭔가를 만들었지.


예쁜 비누도, 로션도, 스킨도, 향수도 만들고 하다가 여름에는 자외선 차단제를 만들어 피켓 들거나 광화문 가시는 엄니들께 나눠드리기도 했어. 요즘 같이 찬바람 불 때에는 립밤이나 비염연고를 만들어 드리곤 해. 역시 가로나는 재주가 많아. 엄니들도 정말 좋아하셔. 늘 그렇듯 난 옆에서 수다 떨고 재료 준비해주지. 매주하는 데도 익숙하지 않아 가로나가 구박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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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73년생 모여라]모임 참석자 보고 (3))


많은 엄니들과 이웃들을 만나 웃음을 주고 받고 말을 섞어도, 내 맘에 더 끌리는 엄니나 이웃이 있기 마련이더라. 많은 사람을 만나도 나와 잘 맞는 사람이 있듯이 말이야. 그래서 좀 더 친하게 지내고 있지. 뭐 그래봐야 문자나 전화 한 통 카톡 메시지 하나 더 보내드리는 정도이지만 말이야.


이 일을 하면서 참 신기한 일도 많이 겪었는데 말이야. 작년 엄니 아부지들이 국회에서 농성하고 단식도 하실 때 기억나? 난 집이 근처라, 그리고 명색이 서울사람인데 안산에서 온 손님들에게 그런 대접을 하면 안 된다 느꼈더랬어. 참 웃기지? 내가 뭐라고. 아무튼 그 때 버스타고 국회에 가서 엄니들 계시는 농성장 기둥에 앉아 있곤 했어. 더 이상 다가갈 수는 없더라.


며칠을 그렇게 멀리서, 거리만 가깝게 앉아 있던 어느 날, 집에 갈 시간인데 뭐라도 하고 싶더라고. 내가 끼고 있는 mp3 아이패드를 가까이 있는 기둥에 앉아서 쉬고 계시는 엄니께 주고 싶어 다가갔어. 그리고 어렵게 말을 꺼냈더랬지. 그랬더니 내가 mp3를 주고 싶은 엄니 옆에 계시는 엄니가 대답을 해주셨어. 그래서 가로나가 만들어 준 모기향과 로션과 오일을 그 엄니께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었지.


그 뒤로 간간히 도보를 하거나 전체 행사를 할 때 오일 드린 엄니를 뵈었는데 말이야. 어느 순간, 내가 드리고 싶은 mp3를 그 옆 엄니께 드렸다. 원래 다가가려고 맘먹은 그 엄니 말이야.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로 꽉꽉 채워서 전해 드렸어. (욕 들어 있는 앨범도 있는데, 그, 그건 실수로) 그리고 내 생각이지만 각별하게 지내.


또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 내 첫 글 기억나? 생존학생에게 책을 주고 싶다고 했잖아. 그것도 전해줬어. 작년 생존학생들이 증언하러 법정에 갈 때 법원 앞에서 피켓을 들려고 딸과 안산에 갔었거든. 혹시나 해서 챙겨간 조반니노 과레스키의 책 <까칠한 가족>을 가방에 넣고 갔어. 그 때 먼발치에서 생존학생들이 증언을 하고 버스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기자 한 명이 찾아와 사연을 묻더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자한테 생존학생을 만나면 전해달라고 책을 줬어. 나중에는 아버님도 뵙고 말씀을 들었는데 그 책을 바로 받았다는 거야. 기자에게 책을 줬을 때도 계셨던 거지. 신기하지? 그렇게 빨리 이루어질 줄 몰랐는데 말이야.


어느 날은 분향소 공방에서 가로나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어. 가로나는 재료를 준비해야 해서 좀 늦게 오는 편이었거든. 난 책을 읽고 있는데 옆에 계시던 엄니 중 한 분이 느닷없이 “선생님 해외여행 해보셨어요?” 물어보시더라. 그래서 ‘해본 적은 있다’고 대답을 했거든. 그니까 엄니가 또 “혹시 산티아고를 가보셨냐”고 물으시더라. 난 한 번도 엄니들과 산티아고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거든. 엄니도 그냥 사람들 만날 때 마다 물으신 건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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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산티아고야.


아무튼 난 그 말을 듣는데 눈이 휘둥그레졌어. 내 스스로 꺼내지 않으면 들어본 적이 없는 이야기를 엄니께서 먼저 하셨으니 말이야. 그래서 “안다.”고 말씀드리니, 엄니가 아들이 산티아고를 가려고 하는데 준비물이 뭔지 잘 모르겠으니까 적어달라고 하시더라. 난 메모의 앞뒤가 빽빽하게 적어드렸어. 나름 예전 기억을 되새기면서 말이야. 그러고 있는 내가 너무 좋더라. 첨으로 뭔가 뿌듯하기도 하고 말이야. 나중에 엄니께 ‘아들에게 산티아고 길에 있는 레온이란 도시에서 레오니란 사자 인형을 사오라’고 말하라고 할 정도로 친해졌어. 나중에 어떻게 되었게? 우리 집에 레오니 있어.


매주 안산을 가면 좋아. 엄니들 만나도 좋고, 가로나를 만나서도 좋고, 화장품을 만들 때 수다 떨며 애기 같이 좋아하는 모습도 좋고. 그냥 옆집 아줌마들이셔. 저번에는 가로나랑 중앙역에서 커피 한 잔 먹으러 가고 있는데 아까 공방에서 뵌 엄니 한 분이 피켓 든 엄니들 곁에서 멍하니 계시더라.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이야. 그래서 “엄니 왜 그러세요?” 물으니 엄니가 “저기 저 서점에 딸하고 갔던 기억이 나.”라고 하고는 우시는 거야. 평소에는 의연하고 잘 웃는 엄니가 말이야. 그래서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옆에 가서 안아드렸지. 먹먹하더라.


좋은 것과는 별개로 몸과 마음이 지친다는 걸 느낀 건 여름 이후였던 거 같아. 이제는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시도 때도 없이 울던 울음도 잦아들었는데 말이야. 힘을 내서 생활을 해야 하는 데도 내 아이들에게 뭔지 모르는 울분과 화를 내고 있더라고.


전에도 그런 적은 있었지만 내가 잘 해내리라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는데, 지금은 지금이 아니면 애들에게, 나에게 안 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 그리고 책도, 일도 놓고 내 속으로 침잠을 해야겠다는 막연한 감정이 계속 쌓이고 있어. 내 성향 때문도 있겠지. 오래 두고 계속 하지 못하고 생각한 즉시 끝내는 걸 잘하는 내 성향 말이야. 그리고 물론 지쳐서겠지. 몸도 마음도. 그래서 난 그러려고.


가로나에게는 이미 말을 했지만, 오픈마켓 이후에는 가로나 혼자 안산에 가게 될 거야. 모임을 만들 때 난 모임이 언제 깨질지 모른다고 내 마음을 다잡았어. 그 친구들을 만날 때에도 그랬었지. 오히려 그러니까 순간순간 힘을 다하게 되더라. 매순간이 고맙고. ‘영원히’라고 묻는 이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 대답을 안 하길 잘 했다 싶다. 난 진심으로 내가 하는 말들에 책임을 지고 싶었거든. 그래서 영원히는 아니었던 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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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는 여기까지.


이번 주에 안산 화랑분향소 근처에서 오픈마켓을 열거야. 토요일 하고 일요일에. 많은 먹을거리가 있더라. 츄러스도 있는 거 내가 봤어. 엄니들이 직접 만드신 많은 글씨와 파우치 비누 등이 있을 거야. 아부지들은 목공소에서 목공을 배우시는데 그 제품도 있을 거야.


오픈마켓 : 2015년 10월 31일~11월 1일 12시~6시
장소 : (분향소가 있는) 화랑유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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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린)


가로나와 난 (사실 내가 한 건 암 것도 없지만) 그동안 천연 화장품 만든 걸 바탕으로 여러 가지 아로마 천연화장품을 팔려고 해. 재밌는 것도 많아. 


1) 노인을 위한 세트: 울 아부지가 내 아들, 즉, 손자에게 “할아버지 냄새 나.”란 소리를 듣고 속상해 하신 이야기 듣더니 가로나가 아이디어를 냈어.


2) 클렌징 세트: 여자들,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


3) 여드름 세트: <우리함께>에 오는 유가족들이 여드름 때문에 많이 고민이라 천연화장품을 만들어줬는데, 효과가 좋았어.


4) 수험생 세트: 집중력과 편안한 잠을 위해 필요하지. 엄니 아부지들을 첨에 뵀을 때 잠을 못 주무신다는 이야기 듣고 몇 개 만들어 드렸는데 효과가 괜찮다 하시더라.


5) 반려동물 세트: 반려동물이 손님 보고 짖거나 피부병 났을 때, 혹은 집안에 동물 냄새를 줄여주는 거야.


6) 생리 세트: 이건 생리 즈음이 배가 아프고 혹은 생리혈로 인한 냄새를 줄여주는 세트야.


세트 말고 단품으로는,


1) 비염연고: 이건 비염이 심한 엄니가 만들어 달래서 만들어 드렸는데, 너무너무 좋아하셔서 이번에도 만들었어.


2) 숙성비누: 그냥 비누보다 숙성비누가 더 비싸고 만들기도 까다롭대. 한 달 이상을 숙성을 시킨다고 숙성비누라나 뭐라나.


3) 에센셜 오일: 향초나 석고방향제에 떨어뜨릴 수 있는 오일이야.


4) 페이셜 오일: 두말할 것도 없이 내가 강추하는 아이템. 너무너무 좋더라. 스킨로션 안 바르고 난 이것만 발라. 엄니들께도 “비싼 거니 많이 갖고 가시라.”라고 속삭이는 거야.


참 오픈마켓에서 제품을 판 순수익금의 10%는 세월호를 위한 유가족 대책위에 기부할 예정이야. 난 가로나가 대박이 났으면 좋겠어. 그녀가 돈 많이 벌면 그 친구가 산 빌딩에 작업실 하나 얻어서 눌러앉아 볼라고. 언제가 될지는 모르쥐.


딴지스들, 늘 고맙고 미안하다 그랬잖아. 그럼 많이많이 놀러오고 많이많이 사줘. 알겠지?


서툰 글 읽어줘서 고마워. 잘 살고, 끼니 잘 챙겨먹고, 따뜻하고 즐겁게 지내라~ ^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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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린)




불량삐삐의 맨땅에 헤딩


유족 분들과 같이 걸은 도보순례 그 첫 날 (7월 23일)

요즘 근황 ~10월 22일 히^^*

10월21일 안산분향소 1박2일 캠프_벅지씀

안산 치유센터 '이웃'간다. 아니 자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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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불명 독투 비안(불량삐삐)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