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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상당히 수위가 높은 성적인 행위를 묘사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 문장들을 불쾌하게 생각하는 분들은 읽지 말아 주시길 부탁합니다. *)




시작은 이 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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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뉴스1>


"당시 A씨와 연인관계였던 B씨는 얼굴도 마주하기 싫어 등을 돌리고 누웠지만 B씨로부터 계속 성관계를 요구당했다." 라는 구절에서 A와 B를 혼동한 탓에 문장의 뜻도 이상해지는 저급한 실수가 담기기도 했고, 사건 자체는 그리 놀라운 얘기는 아닌 수준의 기사였다.


하지만 보통 사건의 내용만 대충 전하고 "한 편 네티즌들은" 이라는 관용어로 마무리하는 수준을 넘어 나름대로 전문적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주장을 인용하여 배치한 기사였기도 하다.


언제부터인가 전문의 멘트 하나 안 따고 통신사에 나온 기사 그대로 베껴 쓰며 기자의 의견은 네티즌의 반응이라는 허울 좋은 거짓말 속에 묻어 올려 버리는 무성의한 기사들만 보다 보니 이런 평이한 수준의 기사가 반갑기까지 하다. 비참한 일이다. 그건 그렇고..


문제는 "강간"이다. 과연 무엇이 강간이고, 우리 사회의 사법 시스템은 강간이라는 형사범죄를 어떤 식으로 다루고 있으며 그 재판 과정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가, 그리고 사람들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들이 연이어 꼬리를 물고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시작한다.


과연 "강간"은 무엇이고, 어떻게 처벌해야 할까? 나아가,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강간의 정의


일단 내 마음대로 정의하자면 이렇다.


강간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며 벌인 성행위”이다. 더 쉽게 말하자면, 상대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하는 성행위를 의미한다. 이 간단한 정의에서도 논란의 여지는 많이 있다. 과연 성적 자기결정권은 무엇인가에서 시작해서 그 성적 자기결정권은 언제 침해되었다고 볼 수 있는가, 성행위는 또 무엇인가 하는 것까지 말이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나름 간단한다. 자신의 성적인 행동을 결정함에 있어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적 관행이나 타인의 의지에 따라 강요받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건 넓은 의미의 인권에 포함되며, 모든 인간이 천부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이기도 하다. 위안부 문제나 박정희 정권이 설치한 미군 대상의 접대부 시설 등은 국가권력이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돈을 미끼로 침해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심지어 준다고 한 돈도 제대로 안 주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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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sbs> '그것이 알고싶다'


그러나 국가권력같이 막강하고 위압적이며 폭력적인 권력이 아닌 경우, 즉 개인 간의 권력 문제가 되면 이야기는 복잡해진다. 어느 선까지가 “동의”이고 어느 선까지가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인지 구분하기가 힘들어진다. 이 부분은 뒤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하자.


그렇다면 성행위는 또 무엇인가? 성적인 행동을 모두 동일하게 성행위의 범주로 넣고 분류하면 편하기는 하겠지만 그 폭이 너무나 넓어진다. 성적인 제안을 내포한 플러팅에서 시작해서 실질적인 성교까지를 모두 성행위로 넣을 수는 없다. 또 그 각각의 행위에 대해 처벌의 강도 역시 달라져야 한다.


현행법에서는 “강간”의 의미를 별도로 특정하지는 않지만, 형법 제32장 297조에서 299조까지 3개 조에 걸쳐 분류하고 있다. 형법 조항을 살펴보기로 하자.




형법 제 32장 강간과 추행의 죄


제297조(강간)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개정 2012.12.18.>


제297조의2(유사강간)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구강, 항문 등 신체(성기는 제외한다)의 내부에 성기를 넣거나 성기, 항문에 손가락 등 신체(성기는 제외한다)의 일부 또는 도구를 넣는 행위를 한 사람은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본조신설 2012.12.18.]


제298조(강제추행)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1995.12.29.>


제299조(준강간, 준강제추행)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 또는 추행을 한 자는 제297조, 제297조의2 및 제298조의 예에 의한다. <개정 2012.12.18.>


제300조(미수범) 제297조, 제297조의2, 제298조 및 제299조의 미수범은 처벌한다. <개정 2012.12.18.>


제301조(강간 등 상해·치상) 제297조, 제297조의2 및 제298조부터 제300조까지의 죄를 범한 자가 사람을 상해하거나 상해에 이르게 한 때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개정 2012.12.18.>[전문개정 1995.12.29.]


제301조의2(강간등 살인·치사) 제297조, 제297조의2 및 제298조부터 제300조까지의 죄를 범한 자가 사람을 살해한 때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한다. 사망에 이르게 한 때에는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개정 2012.12.18.>[본조신설 1995.12.29.]


제302조(미성년자 등에 대한 간음) 미성년자 또는 심신미약자에 대하여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간음 또는 추행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제303조(업무상위력 등에 의한 간음) ① 업무, 고용 기타 관계로 인하여 자기의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하여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간음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1995.12.29., 2012.12.18.>


②법률에 의하여 구금된 사람을 감호하는 자가 그 사람을 간음한 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개정 2012.12.18.>


제304조 삭제 <2012 .12.18.>


제305조(미성년자에 대한 간음, 추행) 13세 미만의 사람에 대하여 간음 또는 추행을 한 자는 제297조, 제297조의2, 제298조, 제301조 또는 제301조의2의 예에 의한다. <개정 1995.12.29., 2012.12.18.>


제305조의2(상습범) 상습으로 제297조, 제297조의2, 제298조부터 제300조까지, 제302조, 제303조 또는 제305조의 죄를 범한 자는 그 죄에 정한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한다. <개정 2012.12.18.>


[본조신설 2010.4.15.]





일단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하면 297조에 의해 강간죄를 짓게 된다. 그런데 강간은 뭘까? 법조문은 강간에 대한 직접적인 정의를 하지 않지만 이어지는 조항에서 유사강간, 추행, 준강간 등을 설명하면서 자연스럽게 구분을 해주고 있다.


297조의 2항에 의하면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구강이나 항문 등 신체의 내부(성기는 제외)에 성기를 넣는 것, 그리고 성기와 항문에 성기 이외의 신체, 그러니까 손가락 등을 넣는 것은 “유사강간”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 유사강간은 최근에 신설된 조항이다.


이 문장을 자세히 분석하면, 강간은 이성 간에만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즉 남성이 여성을 강간하거나, 여성이 남성을 강간하는 경우만 강간이다. 상호 간의 성기의 결합만을 강간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성끼리의 강간은 현행법상 유사강간으로 간주된다. 여성끼리, 남성끼리는 신체구조의 물리적 특성상 성기 결합이 불가능하니까 말이다. 이건 좀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남성끼리의 강간범죄가 군대나 교도소 등에서 꽤 많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상대의 구강이나 항문 등 몸 안에 성기를 넣거나, 상대의 성기나 항문에 손가락이나 도구를 넣는 행위보다 수준이 낮은 성행위는 모두 “강제추행”으로 분류된다.

 

즉, 법이 처벌하는 성적 행위는 세 단계, 강간, 유사강간, 강제추행으로 구분된다는 뜻이다. 모두 폭행 또는 협박이 동반되어야 한다.


폭행 또는 협박이 동반되지 않는 범죄는 “준”이 붙는다. 즉 심신상실,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 혹은 추행을 하는 것은 준강간, 준유사강간, 준강제추행으로 분류가 된다.


이번 소라넷 사건에서 사람들을 놀라게 한 그 사진들, 즉 술취한 여성의 성기에 이런 저런 물건들(심지어 칼 손잡이까지..)을 삽입하고 사진을 찍은 행위는 준유사강간을 스스로 인증한 행위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사진 중에는 실제 강간을 하는 광경을 찍은 사진도 있으니 준강간도 된다.


이렇게 분류를 하고 보면, 우리 사회는 남녀 사이, 혹은 동성 사이에 벌어지는 광의의 “강간” 즉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모든 성행위에 대해 적절한 처벌기준을 마련해 놓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판결은 정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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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언급한 기사의 제목은 “’싫다’ 말해도 폭행 없으면 강간 무죄” 였다. 이거, 싫다고 말했는데 성행위를 당했다면 성적 자기결정권은 침해된 것이다. 그런데 왜 무죄? 판결이 잘못된 거 아닌가?


이 부분에 대해 법원 측은 폭행 또는 협박이 없었다면 강간을 구성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피해자의 반항을 억압하거나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이 없으면 강간죄를 인정하지 않는 우리 법원의 일관된 기준 때문이다.”



라고 기사에 나오는 것, 애석하지만 사실이다. 이건 사실상 여성에게 “목숨을 걸고 저항하라”고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과거에는 그렇게 목숨을 걸고 저항하지 않는 여성의 정조는 법이 보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사회 일반의 인식이었기도 하다. 이거 부정해봐야 없어지지 않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성적 자기결정권? 그런 얘기 나온 것도 최근의 일이다. 거기다가 저런 “목숨을 건 저항”을 요구하는 주류 남성들의 심리의 바닥에는 모든 여자는 자기도 원하면서 겉으로는 아니라고 거짓말을 한다, 즉 내숭을 떤다고 자기 혼자 생각하는 잘못된 인식이 깔려 있기도 하다. 내숭을 떠는 경우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단지 지엽적인 문제라고 얘기하는 것일 뿐이다.


법 현실에서 더 심각한 것은 실제로 여성이 애매한 태도를 취해놓고 나중에 자신이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강간당했다고 신고하는 “무고”의 경우가 그리 드물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 말하는 꽃뱀의 경우다. 이런 경우를 다루느라 검사고 판사고 모두 애를 먹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피해자는 물론이고 말이다. 다행히 요즘에는 그런 무고에 대한 처벌도 강화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성적 자기결정권 측면에서 “No”라고 말하면 거기서 멈춰야 한다는 종전의 기준을 넘어서, 확실하게 “YES”의 의사를 표현하지 않으면 멈춰야 한다는 쪽으로 기준이 변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실이기도 하다. “노”는 당연히 안되고 “애매한 표현”도 당연히 안되고, 확실하고 진지하게 동의를 표하거나 먼저 요구하는 상황 아니면 진도를 나가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난 여기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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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가치 기준의 변화를 법적으로 구현하여 사법 체계상에서 작동되게 하는 것은 또 다른 어려운 문제가 된다.


보시다시피 강간의 대상이 “부녀”에서 “사람”으로 바뀐 것 자체가 겨우 2012년 말에 와서야 벌어진 변화라는 것이 우리의 사법체계의 수준이라는 점, 잊지 말자.


거기에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 303조 문제일 수도 있다.



권력에 의한 강간


간음과 강간은 어떻게 구분될까? 강간은 폭행이나 협박을 동반한다. 그러나 간음은 그저 혼인관계에 있지 않은 남녀가 성행위를 하는 것을 말할 뿐이다. 어감이 훨씬 약하고 범죄의 정도가 한참 낮아 보인다.


심지어 미혼 남녀가 서로 합의하에 성행위를 하는 것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간음에 포함된다. 특히 유교적 가치를 주장하는 어르신(이라 쓰고 꼰대라 읽는다.)들이나, 보수적 기독교(라고 쓰고 개독이라 읽는다.) 목회자들은 간음을 무척이나 나쁜 죄악이라고 얘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면 서울 시내에 있는 그 수많은 모텔은 뭘까? 서울이 소돔과 고모라인가? 간음의 왕국인가? 뭐 맞는 얘기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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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간음이라는 어휘는 그 자체가 좀 고루하고 보수적인 느낌을 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법조문에는 업무상 위력이나 위계를 동원하면 강간도 아니고 간음이라고 표현이 되고 있다.


이건 얼핏 보면 강도와 사기의 차이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즉, 눈 앞에서 사람을 막 두들겨 패고 죽여버린다고 협박하면서 강제로 성행위를 한 것과, 나랑 같이 자면 승진시켜 줄께, 거부하면 해고시켜 버린다, 나랑 같이 자면 월급도 많이 올려줄 텐데 왜 그래, 이런 소리 해가면서 강간을 하는 것을 우리 사회의 “법”이 다르게 보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해도 간다. 저런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내심 피해자 여성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너도 승진하고 싶어서 동의한 거잖아.. 월급 더 받고 싶고, 비싼 선물도 받고 싶어서 동의해서 함께 즐긴 거잖아. 그 상관이 유부남이라는 거 알면서도 말야. 너도 나쁜 여자야, 더러운 여자야... 이런 목소리, 완전히 부정하긴 힘들다.


그래서 강간도 아닌 간음으로 표현이 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형량도 다르다. 강간이 기본적으로 “3년 이상의 징역” 즉 미니멈 3년인 상당히 무거운 형량과는 달리, 303조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의 경우에는 5년 이하의 징역, 즉 맥시멈 5년을 넘길 수 없다는 가벼운 형량이고 심지어 천오백만 원 이하의 벌금, 즉 징역형 안 주고 벌금형만 때릴 수도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폭행이나 협박이 없는 거래라고 보는 건지도 모르겠다. 승진과 월급인상은 충분한 거래의 대가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게 사실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다. 물론 대부분 거짓이겠지만 막상 단 둘만의 공간에서 그런 제안을 받는다면 거절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기회라고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자.


이런 경우, 거의 대부분 폭행과 협박은 따라가기 마련이다. 이런 식으로 자신을 원하지도 않는 여성과 성행위를 하고 싶어하는 남자들의 보편적인 특징일 수도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지기 위해,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지 다 한다.


단순히 좋은 말로 승진시켜 주겠다고 설득만 할 것 같은가? 위협도 한다. 너 내 말 안 듣고 회사 생활 할 수 있겠어? 학비 대줘야 할 동생도 있잖아. 짤리면 어쩌려고 이래? 내가 사인 하나만 하면 넌 끝이야, 이런 소리도 함께 나온다. 그거 협박 아닌가?


폭력이 없었다고? 평소 그 남성의 행동에 의해 자연스럽게 폭력을 연상하게 될 수도 있다. 고의로 연상시킬 수도 있다. 물건을 부순다거나, 흉기를 꺼내들고 조롱할 수도 있다. 왕년에 자신이 얼마나 거친 남자였는지 자랑하는 말도 여기에 포함된다.


최초 기사에도 언급되었듯이, "평소 친분관계가 있었다면 피해자는 가해자의 눈빛·행동만 봐도 이후 폭력이 일어날 상황을 알 수 있어 친분관계가 없었던 경우보다 피해자의 의사가 더 쉽게 억압되기 때문"에라도 폭력은 쉽게 예고된다.


특히나 그렇게 폭력적인 행동이 발생했을 때 제지할 힘이 없고 도움을 청할 주변의 누군가가 아무도 없는 둘만의 공간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 우리는 과연 어떤 판단을 내릴 수가 있을까?


이게 과연 간음이나 혹은 합의에 의한 화간으로 규정될 수 있는 일일까? 아니면 폭력과 협박을 동반한 강간일까?


법원의 판사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현실은 아직 멀었다


우리의 현실은 아직 멀었다. 물론 상황은 호전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악화되고 있기도 하다. 법조문이 그나마 양성평등에 입각해서 조금씩 조금씩 느리게 고쳐지고 있는 것, 상황이 호전되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지금 당장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 느려터진 변화가 희망고문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더 심각한 악화는 거시적으로 발생한다.


단순한 상관의 권력, 개인들의 권력 이전에, 심지어 강력하고 폭력적인 국가 권력 이전에 더욱 더 빠른 속도로 확장되고 있는 자본의 권력이 문제라는 것이다.


결코 소수가 아닌 젊은 세대가 아무런 희망도 없이 사회적으로 격리된 공간에서 무의미한 생을 이어가고 있고 그 결과로 세계 최고의 자살률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역시 우리 사회의 맨얼굴이다.




한국 사회가 달동네만 밀어낸 것은 아니다. 가난한 노동의 공간도 밀어냈다. 그것은 ‘공단’이란 이름으로 수도권 궁벽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공단에 가면 학업중단 청소년, 전문계고 졸업자, 전문대 졸업자 등을 만날 수 있다.


뒤집어 말해, 공단에 가지 않으면 만날 수 없다. 일삼아 공단에 가서 그들을 만나보는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들은 공장에서 일하고 먹고 잔다. 이들이 변두리 공단에서 시급 4천원을 감내하는 이유가 있는데, ‘돈 쓸 일은 없고, 오직 일만 하게 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임금으로 감내할 수 있는 소비 규모를 알고 있다. 도심에서 알바하면 도심에서 다 써버린다. 공단에서 일하면 몇 푼이나마 돈을 모을 수 있다. 그들은 스스로 고립되어 지낸다. 옛 청년은 고시 공부를 하려고 스스로를 유배시켰지만, 요즘 청년은 반지하방 보증금을 위해 공단으로 귀양 간다. 그리하여 가난한 노동의 공간조차 우리는 보지 않고 산다.


'그들과 통하는 길: 언론이 주목하지 않는 빈곤 청년의 실상', 안수찬. <ㅍㅍㅅㅅ>




이런 사회에서 극히 일부 미래가 보장된 젊은이들을 제외한 모두가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이런 상황과 우리 사회의 성매매 산업의 기형적인 번성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게 탈출구가 없는 상황에서 성매매를 직업으로 선택하고, 거기서 몇 푼의 돈 때문에 자발적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포기하는 젊은 여성들은 스스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지키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이것은 어떤 면에서는 자본 권력이 주도하는 위력에 의한 집단 강간이다.


그리고 심지어 피해자들조차 자신이 강간 피해자라는 사실조차 인식하기 힘들게 변해가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현실이라는 얘기이다.


스스로의 판단하에 성매매를 직업으로 선택한 성노동자들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다. 그건 개인의 권한에 속한 일이기도 하다. (물론 현재 시점 우리 사회에서 성매매는 불법이다. 따라서 그 직업은 불법적인 직업이니 선택의 권리가 존중받기는 쉽지 않다는 점은 명시해 두자. )


그러나 만약 조금 더 나은 다른 “기회”가 주어진다면 절대 성매매를 직업으로 선택하지 않을 수많은 여성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건 말 그대로 사회적 차원으로 벌어지는 자본에 의한 집단강간일 수도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조금은 과격할지도 모르지만 그 길 말고는 설명할 도리가 없다.


다시 말해두자.


내게 있어 강간이라는 것은 타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일체의 행위를 의미한다. 그리고 강간은 금지되어야 한다. 어떤 형태의 것이라도 말이다.


끝.






물뚝심송

트위터 : @murutukus


편집: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