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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전 어느새 일과처럼 되어버린 도서관에서의 공부를 마치고 난 뒤 밤에 집에 돌아와 늦은 저녁을 먹는데 소파에 앉아 TV를 보던 어머니가 말을 거셨다.

 

"XX야, 혹시 일요일날 뭐하니? 그때 김장할 건데."

 

"일요일... 일요일이요?" 

 

"왜 무슨 일 있니?"

 

"예... 그때 잠시 약속이 있어서... 12시쯤에는 나가야 하는데..."

 

"그래... 그럼 어쩌나.."

 

밥을 먹으며 어머니와 여러 가지로 이야기를 해본 끝에 내가 아침 일찍 일어나 무 갈기, 배추 옮기기 등 힘쓰는 일을 해주고 집을 나가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동생이라도 집에 있으면 맡기고 갈 수 있겠지만 동생이 회사 일로 출장 중이라 집에 남자는 나 혼자뿐인 상황. 그리 많은 양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힘든 게 김장이 아니던가. 나는 방에 들어와 마음이 무거웠다. 

 

그리고 12월 13일.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맡은 김장 일을 다 하고 12시에 집을 나섰다. 내가 향한 곳은 역삼역과 선릉역 사이에 클럽에서 진행되는, 

 

AV배우 메구리 팬미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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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몇 년 전, 내가 실연에 괴로워하던 때였다. 가끔씩(?) 위안거리를 찾기 위해 들리던 카페에서 나는 나에게 아픔을 주었던 그녀와 꼭 닮은 여자를 발견한다. 그것이 메구리였다. 


화면 속의 그녀와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그녀가 한국을 꽤 좋아하고 트위터에 한글로 메시지를 남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트위터에서 그녀가 한국 팬들에게 팬레터를 보내달라고 직접 올린 한글로 된 주소를 발견한다. 


그때는 마침 그녀가 생일을 앞둔 시기였다. 공짜로 매번 AV를 받아보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필자는 그녀에게 감사의 편지와 그리 비싸지 않은 선물을 보내주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선물 사이트를 발견하고 더운 일본의 날씨를 생각해서 부채와 한국식 거울을 편지와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김, 과자 등과 함께 선물했다. 


약 한달의 시간이 지난 뒤 그녀에게 트위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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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을 보내주어서 감사하다는 사진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랬던 그녀가 한국 최초로 AV 배우 팬 미팅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필자는 실업급여를 받으며 도서관에서 개인적인 공부를 하는 차가운 겨울을 보내는 상황이지만 꼭 참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인지 그날이 일 년에 한번 있는 김장하는 날이었다. 


편치 않은 마음을 갖고 팬 미팅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이동하니 이미 출입구 앞에서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일요일 낮 강남 번화가에 남자들 수십 명이 길게 줄을 서 있는 광경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좋은 구경거리였다. 


애써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시간을 보내니 출입이 시작되었고 경호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숫자가 적혀있는 팔찌를 손목에 감아주었다. 여러 가지 물건이 들어있는 작은 쇼핑백도 함께 줬다. 순서대로 들어가서 미리 준비된 의자에 가서 앉고 상자 안에 들어있는 물건을 확인하니 미리 공표되었던 대로 얼굴을 가릴 수 있는 마스크, 캔커피와 샌드위치 하나 그리고 초소형 맥주캔 하나, 봉인된 기다란 물건이 들어있었다. '이게 뭐지?'하고 봉인을 풀어보니 해당 팬 미팅 협찬사인 성인 쇼핑몰에서 제공한 성인기구였다. 


그리 배고프지 않았지만 약 30분가량 밖에서 기다렸더니 목이 말랐다. 술을 잘 못 하는 필자였지만 이 정도 초소형 맥주캔은 괜찮겠지 싶어서 마셨다. 새벽부터 일어나 김장 일을 한 터라 그래서인지 꽤 알딸딸했다. 나중에 적겠지만 이건 매우 잘한 행동이었다. 


시간이 흘러 2시가 되었고 마사오 님이 나와서 진행을 시작했다. 여러 가지 팟캐스트에서 목소리로만 들어왔던 마사오 님에 대한 이미지가 조금 있어서 '대략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까?'하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실물을 보고 정말 놀랐다. 


'뭐야... 그냥 보통 아저씨잖아?'


저 사람이 사무실에서 당당하게 AV를 보고 녹음 중에 덥다고 웃통을 까고 경찰 버스에 성기 그림을 그리며 표현의 자유를 외치던 그 마사오란 말인가? 


하지만 그는 마시오가 맞았다. 마이크를 들고 참가자들에게 주의사항을 말하는 그 목소리와 임신 6개월을 향해 가는 거 같은 그의 배는 그가 마사오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마사오 님의 소개와 함께 오늘의 주인공 메구리 양이 등장했다. 


전체적인 진행 상황에 대해서 먼저 말하자면 메구리는 99%의 대화를 전부 한국어로 해냈다. 어려운 단어나 표현은 옆에서 통역분과 마사오 님이 도와주기도 하였으나 전부 자신이 말하려 애썼으며 그 표현력도 매우 훌륭했다. 


초반 한 시간은 참가자들이 미리 질문한 것에 메구리가 답하고 AV 촬영 비하인드에 대해서 말하는 시간이었다. 모든 내용을 적을 순 없어 기억에 남는 것만 적는다면,


참가자1 : 저는 성기가 작아요.


메구리 : 오모나~괘찬나요~ 테크닉으로 승부하면 되용. 노무 크묜 오히려 아포요~~~


참가자2 : 여자친구가 관계 시에 일부러 좋아하는 게 제 눈에 보일 정도에요.


메구리 : 전위...전휘? 를 잘 공부하세용~


마사오 : 이거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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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구리 : AV 춀용은~100% 대본이에용. 지하철, 도서관 등등 다 세트가 있쏘용~ 만일 진짜로 그런데서 찍크면용~ 굥촬이~(두 손으로 수갑 차는 포즈) 


마사오 : 아 그렇군요. 그럼 촬영 시에 감독이라던가 다른 스탭들에게 상황을 지시를 받기도 하나요?


메구리 : 넹~ 감독님이 큰소리로 배우에게 연기 지시를 하고요. 나중에 편집에서 그 소리를 다 짤라용. 스탭이 스케치북이나 이런 걸로 지시를 하기도 하고요.


마사오 : 아 ~그렇군요. 그럼 촬영 전에 여배우들은 따로 무엇을 준비하나요?


메구리 : 으ㅡ음~~~ 하루나 이틀 전에능 섹크스를 안 해용. 자위망! 


마사오 : 아... 이건 저도 처음 들었네요.


이렇게 또 하나의 지식이 늘어나는구나... 무언가 뿌듯함을 느끼며 첫 번째 시간은 종료되었다. 


또 하나 재미있었던 기억은 토요일 생전 처음으로 한국에서 이벤트를 진행해본 메구리 양의 감상. 


"일본에서능요~ 이벤트를 하면 반응이 전혀~ 업써요. 그냥 다들 카메라만 보고 무써워. 근데 한국에서 어제 했는데 지금도 그렇고 반응이 너무 좋고 이야기를 잘 들어줘성 넘 재미써용~"


머릿속에 음침한 오타쿠의 이미지가 그려지며 순간 나도 그런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 한구석이 쓰려 왔다. 


조금 쉬는 시간을 가지고 메구리의 포토타임이 시작되었다. 일반 회사원 같은 오피스룩을 입었던 첫 번째 시간과 달리 가슴골이 다 드러나는 과감한 옷을 입은 메구리 양이 마사오 님의 진행과 함께 등장했다. 


필자는 사진을 잘 찍지 않고 좋은 카메라도 없어서 그냥 대충 멀뚱멀뚱 구경만 하려 했으나 메구리 양이 나중에 추첨해서 팬들에게 증정할 비키니를 인증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을 들고 있더라.


포토타임이 끝나고 팬미팅에 참석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게임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는 이상형 게임. 메구리 양이 미리 종이에 적은 여러 가지 조건, 즉 '사각팬티를 입은 사람' 등을 뽑아 읽으면 팬 미팅에 참석한 전원이 서 있다가 해당 사항이 안 되면 자리에 앉으며 인원을 점점 줄여나가는 게임이었다.


필자는 '시계를 차고 있는 사람'에서 탈락했다. 


그렇게 5명이 선발되었다. 이들은 메구리 양이 직접 증정할 성인기구와 지금 입고 있는 비키니를 얻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한 것이었다. 이들을 상대해서 가족오락관에서 자주 진행했던 벽과 벽사이 게임을 진행할 5명을 선정했다. 입장객들에게 나누어준 팔찌의 번호를 추첨하는 방식이었는데...


필자가 3번째 인원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나는 메구리 양에게 직접 포즈로 해당 문제의 설명을 받고 다음 사람에게 행동으로 이것을 전달해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메구리 양을 매우 가까이 보고 있는 건 좋았지만... 마사오 님의 구호와 함께 메구리가 나에게 자위행위를 연기하기 시작하자 당황스러워졌다.


'저걸 바로 다음 사람에게 포즈로 설명하라고? 생전 처음 보는 남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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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짧은 순간 온갖 번뇌에 시달렸다. 악마 같은 마사오 님은 어서 다음 사람에게 설명을 하라 재촉하기 시작했다. 아부나이 니홍고에서 죽지않는돌고래 님이 이런 식으로 당하는구나, 를 온몸으로 실감하며 필자는 두 눈을 꼭 감고 생전 처음 보는 남자 앞에서 자위행위를 온몸으로 설명했다. 술 마시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온 관객이 빵 터졌다. 통역사마저 완전히 터져서 웃는 걸 보고 '내가 행사 분위기를 망치지는 않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짧은 순간,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상대팀과 우리팀 모두 정답을 맞췄고 메구리는 다음 포즈로 나에게 '펠라치오'를 설명했다. 그리고 '이왕 버린 몸...'이라며 체념하기 시작한 필자는 그다음 사람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아까보다 제대로 된 몸짓으로 이를 설명했으나, 상대팀이 정답에 해당하는 단어를 더 정확하게 맞추는 바람에 상대팀이 1점을 얻었고 다음 문제도 두 팀이 함께 맞추는 바람에 상대팀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녀를 바로 앞에서 보았다는 황홀감에 탈락했다는 슬픔이 주는 오묘함이 더해져 무대에서 내려왔다. 승자들에게는 준비된 성인용품을 메구리가 직접 선물해주었다. 이런 말과 함께 말이다. 


"추카해요~ 일주일에 몇번 자위해용~? 이걸로 마니 해용~"


이 장면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떨어져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후 OX 게임 등 여러 가지 상품을 건 게임이 진행되었다. 필자는 이미 이전 이벤트에 당첨되어서 모든 운을 다 써버렸다는 걸 알기 때문에 가슴 졸이지 않고 이후 상황을 즐겼다.


3시간가량의 모든 행사가 끝나고 행사처에서 팬 미팅 참가자 전원에게 사인과 사진 촬영 등을 해주는 시간을 마련해주었다. 여기서 또 한 시간 가량 기다려야 했다. 피곤했지만 기다릴만했다. 


그녀에게 사인을 받기까지, 길고 긴 기다림이 끝나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인사를 하고 다가가자 이전에 게임에서 본 기억이 있는지 반가운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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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을 하는 그녀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건넸다. 혹시 지난 생일날 부채와 거울을 선물한 사람이 나라고. 기억하냐고.


메구리는 깜짝 놀라면서 지금까지도 잘 쓰고 있다고 너무 고맙다고 하며 '거울 선물 고마워용'이라는 멘트를 적어주었다. 어설프지만 정성스러운 한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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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지를 들고 포즈를 취해준 그녀의 사진을 찍고 가벼운 포옹을 하고 그렇게 행사를 마쳤다. 


행사장을 나오니 화창했던 밖은 어두워져 있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김장을 다 마치고 쉬고 계셨다. 필자는 최책감을 덜기 위해 나머지 청소 등을 도와드렸고 모든 것이 다 마무리된 이후 방에서 이 후기를 적고 있다. 


내가 어느 정도 도울 수 있는 부분은 다 도와서 큰 문제 없었다고 하지만 마음이 안 좋은 것은 어쩔 수 없다. 


어느새 새 직장을 구하기 힘든 나이가 되었고 실업급여를 받으며 (이제 12월분 받으면 종료된다.) 개인적으로 하고 있는 공부에만 집중하는 상황에서 이런 일까지 겹치니 더욱더...


더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해야겠다는 생각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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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